“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에 대한 독후감

고대 사람들은 부(wealth)가 어떻게 창출되는가 물으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남의 것을 뺏으면 되지.”

전쟁을 해서 뺏고, 도둑질을 해서 뺏고, 노예로 만들어서 뺏고 등등 뺏는 방법은 지금보다 훨씬 투박했다. 그리고 솔직했다. 괜히 대량살상무기가 위험하다 화염병을 던지니 위험하다 핑계대지 않았다.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였고 패자는 노예가 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사람들이 좀더 세련(?)되게 살기 시작했을 때에 그들은 무역을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전쟁과 도둑질이 손쉬운 돈벌이였지만 더 머리를 굴려 돈을 버는 방법도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조야한 경제이론이 등장한다.

“무역을 하려면 상품거래의 표준이 되는 등가물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금(金)이다. 금을 많이 가지는 자, 또는 나라가 부자다.”

이것이 중상주의(mercantilism)의 단순논리다. 우리는 적게 쓰고(수입하고) 남이 많이 쓰게 해서(수출해서) 차액을 남기는데 그것이 금의 형태로 체현되는 것이고 그 나라에 금이 많으면 그 나라는 부자라는 것이 논리였다.

이를 반박한 것이 바로 아담 스미스 등이 주창한 노동가치론이다. 금을 서로 뺏고 빼앗겨도 금의 총량은 더 많이 캐내지 않는 한은 불변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점점 윤택해진다. 그것은 금이 더 많아져서가 아니라 바로 노동을 통해 자연자원을 쓸모 있는 물건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당연한 이치다. 과격급진 이론이 아니고 그저 사실일 뿐이다.

이후 무슨 정보가치론이니 뭐니 하는 이상야릇한 궤변으로 오염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노동가치론은 경제학에 있어서 하나의 공준이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생산의 3요소로 토지, 노동, 자본을 들면서 노동을 격하시키지만 나머지 두 개의 것은 경제학적으로는 노동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변화가 없는 것들이다. 토지는 부의 원천이랄 수 있고 자본은 혈맥의 역할을 하나 결국은 노동이 투입되어야 기능한다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이 고전경제학의 노동가치론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이 투입되면서 자본가가 투입된 노동에 상응하는 가치를 노동자에게 지급하지 않았다는 논리직관을 통하여, 잉여가치라는 핵심개념을 도출해낸다. 이 잉여가치가 결국 사회전체의 부의 증분을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이 어떤 노동이냐 하는 것은 때로 혼선도 있지만 대체로 1차, 2차 노동이다. 3차, 즉 금융업을 포함한 서비스업부터는 1,2차 노동으로부터 잉여가치를 나눠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금융위기에 대한 해석에서 바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전제를 당연시하는 것이다.

즉 금융업은 그 자체로는 가치(value)를 창출하지 못한다. 그것을 전유(專有 ; appropriation)할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된다. 세상 모든 노동자들이 1,2차 노동을 하지 않고 금융업에만 종사한다고 가정해보자. 창출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은 자명하다. 아이슬란드 전 인구가 금융업에 종사하며 타국의 화폐를 뺏어오는 것은 가능하지만 전 세계 모든 인구가 금융업에 종사하며 타국의 화폐를 뺏어오는 것은 금을 둘러싼 중상주의보다 더 어이없는 체제일 뿐이다.

결국 1,2차 노동으로부터 창출되는 잉여가치의 총량은 산술적임에도 그것을 전유하려는 금융업 등 서비스업의 기능이 기하급수적으로 활발해지면 사회는 두 가지 길로밖에 갈 수 없다. 화폐증발과 신용창출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든가 아니면 그 금융기능이 마비되든가 둘 중에 하나로 가게 된다. 지난 몇 십년간 급속도로 발달해온 자본주의는 전자의 길과 후자의 길을 왔다 갔다 하다가 이번에 후자의 길로 깊숙이 접어들은 것이라 할 수 있다.

Nick Beams가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고유모순이 바로 이것이다. 사회 전체가 요구하는 청구권, 예를 들면 이자, 지대, 집값 등은 노동으로부터 창출되는 잉여가치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면 그 잉여가치 비율은 여러 사정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점점 그 청구권은 늘어만 간다. 금융화, 증권화, 집값 상승 등이 청구권에 거품을 형성한다. 그리고 빵~ 하고 터진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자유화가 그것을 치유할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위와 같은 프로세스를 부정한다. 케인지언들조차 정부가 유동성을 공급하면 자본주의는 치유될 것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건전성이 악화된다. 결국은 퇴출의 길로 접어든다. 유동성을 공급하는 국가는 어떻게 되는가? 건전성이 악화된다. 그 국가는 퇴출되지 않는 불사의 존재일까? 미래세대는 그들의 영원한 인질인가?

25 thoughts on ““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에 대한 독후감

  1. Haitian

    길지않은 포스트인데, 참 생각할게 많군요…저도 머릿속에는 정리해야할 것이 많은데, 좀처럼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물어보고싶은 게 좀 있기는한데..이런곳에서 문의를 해도 될런지 망설여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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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재테크 방법을 문의하실 것이 아니라면 ^^; 문의하셔도 됩니다. 아는 한에서 대답해드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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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aitian

      문의하고싶은 내용은, 소위 식민지 근대화에 관한 것입니다.

      알다시피 대한제국(이씨조선)의 막장은 비참한 사정이었고..근대화를 위한 획기적인 개혁과 국가 에너지가 없는 상황에서 일제가 잠시 들어왓다 나가는 상황을 겪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이라는 현재가 불가능했다….가 그들의 주장입니다.
      즉 ‘자생적으로는 근대화가 불가능한 조선에 일제가 어떤식이든 도움이되었다’가 그들의 주장이고, ‘조선이란 국가가 원래 이성계가 세울때부터 중국의 식민지를 자처한 국가였다. 그러므로 조선500년은 식민지로서의 자주성이 없던 국가였다’도 그들의 주장입니다.

      할말이 참 많은데…단순한 댓글로는 한계가 있군요…생각보다 일본 우익들의 논리가 정교합니다.

      기회가되면 제쪽에 한번 포스팅을 하고 문의를 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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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oog

      아~ 어려운 주제네요. 저같은 역사에 젬병인 녀석이 대답드릴 주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다만 말씀하신대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가 의외로 정교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솔직히 근대에 들어서까지도 서구적 시각에서는 식민지화 과정을 거쳐서라도 근대화가 되는 것이 – 도의적인 면을 떠나서 – 바람직하다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할 수 있죠. 마르크스조차 영국의 인도 점령을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다죠? 여하간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트랙백 달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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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쌀국수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아버지인 아담스미스가
    칼 마르크스의 이론을 탄생시켰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이렇게 직관적으로 설명한 글은
    처음 읽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화폐를 찍어내는 한 유동성 공급은 뭐 무한한 셈이지만요….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어쨌거나 국가권력은 무시무시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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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 노동가치론이 큰 무게감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알기로 아담 스미스 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미 직관적으로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이전에도 여럿 그러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농주의 경제학자들이 있을 수 있고요. 마르크스는 오히려 아담 스미스보다는 윌리엄 페티라는 경제학자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부가 빚을 져서 현재의 경제를 살리겠다는 소리는 글 말미에도 썼지만 결국 미래세대에게 그 빚을 떠넘기는 행위죠. 국가가 아니면 누가 그런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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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세벤

    음.. 노동가치론에 대해서 말인데, 전에 어디선가 노동가치론에 대해서 요목조목 비판한 글을 본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아, 지금은 노동가치론이 그 의미를 많이 잃었구나’ 생각했었는데..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혹시 ‘노동가치론’ 자체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노동가치론이 현재 갖는 의미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써놓고 보니 정말 염치없는 부탁이네요 -_-;; 무시하셔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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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제 짧은 지식으로는 노동가치론에 대해서, 그리고 현대적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드리기가 참 어려울 것 같군요. 🙂 이 글처럼 그때그때 제가 아는 한에서 풀어 설명을 해드릴터이니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꾸준히 제 블로그를 찾아오십사 ^^; 하는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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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xarm

    와~ 하면서 주욱 읽었네요.
    사실 원문은 제 수준에 좀 어려웠거든요.^^;
    이 글 읽으며 뭔가 쫘~악 정리된 듯한 깔끔한 느낌 ㅎㅎㅎ

    마지막 문단은… 어렵네요.;;
    아, 문장이 어렵다는 게 아니라 답을 구하는 것이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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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polarnara

    전 그래서 금융업이 싫습니다. 저쪽에서 덜어다가 이쪽으로 옮겨드리죠 하는 건데, 고객이건 금융업체건 이쪽에만 신경쓰고 저쪽에서는 얼마나 가져오는지, 어떻게 가져오는지, 그리고 어디서 가져오는지는 신경쓰지 않구요.
    마지막 문단에서 생각할 게 많네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또 나름의 논리가 있고 근거하는 수식이 있고 이론이 있어 믿는 것일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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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polarnara님의 글을 읽고 새 글을 쓸 영감을 얻었습니다. 제목은 “금융업을 위한 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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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Pingback: kabbala's me2DAY

  7. 쟁가

    연재되는 번역,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독후감도 훌륭하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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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말로만 훌륭하다 하지 마시고 쟁가표 도장 하나 팍~ 찍어주십쇼. “참 잘했어요” 뭐 이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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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eagle2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노동가치론에 관해선 저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고 정운영 선생의 글을 읽고 어느 정도의 감은 잡았습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신 분들에겐 동어반복이 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읽어본다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가치이론의 근본 전제에 대한 재확인 – 정운영]
    http://jbreview.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theory&item=2&no=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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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학부시절 방학특강으로 정운영 선생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죠. 다시 없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죠. 덕분에 제 뇌에 주입되어 있는 노동가치론의 개념의 거의 절대 부분이 정운영 선생의 입장이랄 수 있죠. 🙂 링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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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tomahawk28

    정말 잘 읽었습니다. foog님 팬이 되어버린듯 ㅠ
    덕분에 독일에서 외롭게 살다가도 재밌게 보곤한답니다
    그런데 잉여가치가 계속해서 줄어든다는.. 그 전제는 증명이 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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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독일에 살고 계시군요. 마선생이나 엥선생 생가라도 방문하셔서 꽃이라도 한 송이… ^^;

      잉여가치가 계속 줄어든다는 주장의 핵에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가 있습니다. 자본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가변자본, 즉 노동과 잉여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불변자본, 즉 여타 생산수단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이런저런 이유로 불변자본의 비율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잉여가치 비율이 줄어들게 되는거죠. 즉 양의 문제라기보다는 비율의 문제입니다. 기회되면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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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종횡무진

    foog님 덕분에 많은 걸 배워갑니다…
    글도 잘쓰시고 경제에도 해박한 foog님 같은 분을 보면 세상에 대한 괴멸감을 느낌니다만,..
    그래도 기분 좋은 괴멸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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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렇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저 넓은 지식의 바다에 저 역시도 발만 담근 상태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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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잘 지적하셨습니다. 세련된 것이 원래 더 무섭죠. 부시나 이명박은 투박해서 오히려 모순이 잘 드러나는 반면… 다른 양반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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