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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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 coins and banknotes” by Avij (talk · contribs) – 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요즘 ‘유로화의 종말’이란 책을 읽고 있다. 현재는 저자인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가 유로화가 탄생한 역사적 배경을 경제/정치적으로 두루 소개하면서 유로가 가지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해나가는 부분을 읽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경제이론 중 하나는 로버트 먼델이란 경제학자가 초석을 다진 ‘최적 통화 지역(optimum currency area)’라는 이론이다. 최적 통화 지역이란 “ 단일통화가 통용되기에 가장 이상적인 크기의 지역”을 의미하며, 해당 이론은 특정 지역이 단일통화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조성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연구라 할 수 있다.

그리 복잡한 이론은 아니며, 이 이론에 따르면 최적통화지역을 구성하기에 유리한 조건은 △각국의 경제구조가 유사해 경제적 충격이 대칭적일 것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 이동이 자유로울 것 △역내 국가들 간 경제연관성이 높을 것 △역내 각국의 산업구조가 다변화돼 있을 것 등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유럽이 바로 이러한 조건을 결여 – 내지는 부족 – 하고 있기 때문에, 유로라는 단일한 통화동맹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일례로 저자가 들고 있는 성공한 통화연맹은 미국의 통화연맹이다. 여러 조건 중 노동의 이동에 관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화폐통합을 이루기 전부터 자본과 노동의 높은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노동시장과 임금은 여전히 유럽통화연맹 국가들보다도 덜 엄격하다. 유로존 내에서는 0.1% 이하의 인구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영구적으로 이동하지만 미국의 주들 간에 인구 이동 비율이 2.5%에 달한다. 노동력의 유동성은 미국이 유럽의 3배나 높다.[유로화의 종말,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골든북미디어, 2012년, pp 111~112]

이런 묘사는 경제학이나 고용 등에 대해 심오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즉각 와 닿는 묘사다. 한때 총칼을 겨누고 싸울 만큼 지역적인 분열도 있었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일찌감치 연방정부가 있었고 단일한 언어를 쓰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유럽보다는 더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였듯이 미국에서는 정치연맹이 통화연맹보다 수십 년 앞서서 이루어졌다. 반면 유럽의 통화연맹은 훗날 정치연맹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이렇기 때문에 노동의 이동은 다른 많은 요소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가 유럽에서보다 훨씬 자유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라스케바와 같은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고향에서의 나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독일로 향하고 있다. 약 25,000 명의 그리스 이민자들이 작년 독일 당국에 등록을 했는데, 이는 2010년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함부르크 이민 전문가 바실스 치아노스는 이런 수치가 독일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이민자들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므로, 작년에 독일에서의 신규 그리스 이민자는 6만 명에 달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대부분이 학위가 있는 경제적 난민인데, 변호사, 엔지니어, 그리고 건축가들이다. [중략] 그러나 아파트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우리는 그리스인에게 세를 놓지 않아요.” 그녀가 종종 들은 말이다. 파라스케바는 누구라도 어떤 회원국에서든 일할 권리가 있다는 단일시장으로서의 유럽연합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재빨리 깨달았다.[Young Greeks Struggle to Gain Foothold in Berlin]

위기 전에는 이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자유로운 노동이동이 위기로 말미암아 더 증폭되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 슈피겔의 기사다. 유럽연합은 회원국 내의 노동이동권을 보장하고 있으니 이동이 수월할 것이라 기대는 하지 않았겠지만 파라스케바가 처한 상황은 그러한 명시적 선언이 없는 국가 간에서 국력의 차이에 따른 차별받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파라스케바와 독일인이 같은 화폐를 쓴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동질감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에 비하면 미약할 뿐인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화폐는 경제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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