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의자놀이>를 읽고

현대사의 비극은, 우리가 그 비극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그 비극이 상상이상으로 우리 곁에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당혹감 때문에 더욱 그 슬픔이 증폭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서울시민이라면 광화문에만 나가도 허름한 천막 속에서 어떤 역사가 진행 중인 사실을 알 것이다. OECD가입국에 세계 9위 규모의 무역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의 역사가 말이다.

쌍용자동차의 비극은 대한민국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전형적인, 한 기업의 굴곡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과 이에 따른 부실, 부실화된 기업의 생존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조치, 이에 따른 이해당사자들(특히 노동자)의 엄청난 고통 등등. 한 가지 보다 도드라진 특징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무려 22명이나 목숨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늦가을의 낙엽처럼 힘없이.

인기 소설가 공지영 씨가 쓴 ‘의자놀이’는 이 전형적이면서도 한편으로 기이한 현대사의 비극을 조명한 “르포르타주”다. 책은 쌍용차 사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작가가 하나둘씩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작가의 느낌을 적고 있다. 쌍용차의 주인이 쌍용인 것으로 알고 있었던 무지한 작가는 발품과 주변의 도움을 통해 회사주인이 쌍용이 아닌 사실 이상의 엄청난 비밀과 비극이 숨어 있음을 깨닫고 분노한다.

이 책이 특히 많이 할애하고 있는 부분은 회사의 정리해고에 저항하여 조직된 77일 간의 파업투쟁 중, 그리고 그 이후 마치 ‘허물어지는 모래성’처럼 이어졌던 연이은 노동자의 죽음의 현황과 원인에 대한 묘사다. 노동환경연구소가 노조원 25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정상인 사람이 7%밖에 안 된다”(147쪽)는 기가 막힌 사실은 그 어느 사실보다 충격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정신병동을 세울 일이다.

하지만 그간 진행되어온 모습은 야만적으로 진압당한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불법파업 세력”이자 가해자로 자리매김 되었고 정신치료는커녕 체포와 구속으로 이어진 상황이었다. 지역사회는 그들을 “빨갱이”라 부르면서 외면했다. 책에서 재인용한 PD수첩에서의 한 노동자의 증언이 이 상황에서의 노동자의 박탈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회가 우리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이 사회에서 나가달라고.”(149쪽)

22명이 목숨을 내려놓는 끔찍한 상황이 우리의 시선을 쌍용차에 더 머물게 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고 그러한 이유로 공지영 씨 역시 서둘러 책을 내게 되었지만, 사실 비슷한 패턴의 “합리적인”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노동자의 투쟁은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쌍용차처럼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간 르노삼성은 매각설이 나오고 있고, 현대자동차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고용을 건 싸움이 진행 중이다.

‘의자놀이’에서의 아쉬운 점은 이렇게 반복되는 경제상황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여 페이지의 짧은 르포르타주1란 점도 제약요인이거니와 경제현상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작가 역량의 한계도 엿보인다. 쌍용차 매각과정에서의 의심스러운 사실관계는 노조 측 전문가의 의견을 많이 참조하여 기술하였지만 이러한 개별사실에 대한 거시적인 통찰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컨소시엄이란 규모가 큰 사업이나 투자 따위를 할 때, 여러 업체 및 금융 기관이 연합하여 참여하는 것을 말하는데, 상하이차의 매각에 왜 컨소시엄이 필요한지 모르겠거니와 이때 난데없이 맥쿼리 증권의 이름이 보인다. 맥쿼리? 들어본 이름이지 않나? 최근 제멋대로 통행료를 올린 우면산 터널에도 맥쿼리란 이름이 보이고, 지하철 9호선에도 보이고, 인천공항을 파는 것이 소원인 이명박 대통령만큼 간절하게 인천공항을 사고 싶어 하는 명단에도 이 이름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큰 아들 이지형이 2007년 9월까지 맥쿼리 IMM의 자산운용사 대표로 있음을 참고로 알려드린다.(84쪽)

M&A는 자산실사, 증권발행 등 많은 제반절차를 수반하므로 당연히 컨소시엄이 필요하거니와, 맥쿼리 증권은 “우면산 터널”,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그 맥쿼리” 자산운용사2와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음모론적 시각은 자본주의 일반의 역학관계를 나꼼수 식 정치공학 놀음에 머물게 하는 시도일 뿐이다. 이런 시각은 작가의 소설 ‘도가니’ 식으로 묘사하자면 이럴 것이라는 다음의 묘사에서 희극으로 변신한다.

‘도가니’의 장경사 식으로 이야기하면 “아니, 아직까지 노무현 때 경찰 이미지 쇄신한다 뭐다 해서 게으른 게 이골이 난데다가, 요즘 노무현 자살하고 나서 나름 그 사람 흠모하던 말단들이 아무리 말해도 잘 안 움직인다고. 그러니 당신들이 요청해야지.(106쪽)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해고라는 직격탄을 날린 법적근거를 마련해준 정부가 김대중 정부였고, 쌍용차가 의심스러운 정황으로 매각된 것이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시절 노동자의 탄압에 “그 사람을 흠모하던 말단들이 잘 안 움직인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소설적인 상황일 뿐이다. 정리해고 사유가 이명박 정부 이전에는 엄격하게 제한되었었다는 사실관계 없는 서술(160쪽)은 사태의 본질에 대한 위험한 편견이다.

이 책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있어 “강력한 무기”다. 사회가 시선조차 돌리지 않던, 기껏 돌린 이도 빨갱이라 매도하던 노동자들이 실은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약자란 사실을 유명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땅의 노동탄압의 원인과 대안에 대해 좁은 시선을 제시했다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 하종강 씨와의 갈등도 작가의 이런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기획과 더불어, 현장을 지키고 있는 다른 수많은 무명작가와 목격자들의 존재가 소중하다.

  1. 사실 이 책은 르포르타주라기보다는 많은 이들의 “재능기부”가 가미된 에세이에 가깝다
  2. 이 맥쿼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여기를 클릭

4 thoughts on “공지영의 <의자놀이>를 읽고

  1. 가하

    공작가의 세계관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이쪽에 눈을 돌려준건 참 좋은 일이에요. 책 출간 후의 각종 논란도 노이트 마케팅과 쌍용차에 문제를 환기하는 역할은 충실히 한 듯 해요. 이 책 사기 싫어서 입금했다는 사람도 꽤 있는 걸 보면, 이 책이 없었으면 입금도 없었겠죠. 저도 원래 사 볼 생각 없었는데 쏘피키님이 추천하시니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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