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규제에 대한 미국인의 여론분열, 그 피해자는 누구일까?

2008년 신용위기에 대한 공포감은 전 세계 모든 이들이 공유하였겠지만 특히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미국인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공포였을 것이다. 그들이 산 집은 속절없이 가격이 폭락하였고, 심지어는 살던 집을 버리고 야반도주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던 시절이다. 주요한 투자은행들이 그 본래의 모습을 버리거나 망했고, 미국의 자존심이었던 대형 자동차회사들도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정부의 주택소유 장려정책, 금융의 증권화/유동화, 그림자금융의 성장, 시장의 탐욕 등이 원인으로 뽑혔고 이 모든 것들이 더 큰 폭발력을 가지게 했던 요인으로 무절제한 규제완화가 거론되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폴 볼커 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전면적인 제도강화를 주도하였고, “글래스-스티걸法의 부활”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 도드-프랭크法이 제정되기도 했다.

제도의 강화라기보다는 무지막지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가까스로 폭락세를 반전시킨 현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과연 지난 십년 동안의 ‘정부의 규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갤럽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통상적인 예상을 벗어나 있다. 2007년 중반까지도 정부규제가 ‘너무 많다’가 36%, ‘너무 적다’가 28%였던 상황이, 2012년에는 ‘너무 많다’가 47%, ‘너무 적다’가 26%로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출처 : 갤럽 홈페이지
 

추세적으로 볼 때에도 신용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부터 정부규제가 너무 많다고 여긴 미국인들의 비중은 크게 증가하였다. 2011년에는 그 비중이 50%에 달할 정도였다. 결국 이 수치로만 본다면 규제를 통하여 경제를 정상화시키려는 정부의 행동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행동임에 분명할 것이다. 그 이유를 짐작해보면 “독립적인” 기질이 강한 미국인들로서는 정부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런데 특히 이 수치들을 설문자의 당적으로 구분하여 비교해보면 보다 극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2006년에 정부 규제가 너무 많다고 여긴 미국인들의 당적은 공화당이 40%, 민주당이 36%였다. 2012년 이 수치는 77%와 25%로 벌어진다. 다시 말해 오바마가 집권한 이후 공화당원들은 정부의 규제, 정확하게는 ‘민주당에 의한’ 정부의 규제가 싫어진 것이고, 민주당원들은 정부의 규제를 지지하는 쪽으로 경도된 것이다.


출처 : 갤럽 홈페이지
 

이러한 여론분열의 최대수혜자는 아마도 맹목적으로 “규제완화”를 부르짖는 현실성 없는 보수주의자 밋롬니일 것이다. 빈곤층에 대해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낸 롬니의 비디오가 공개되는 등 수많은 악재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는 데에는 이렇게 오바마의 집권기간 동안에 쌓인 공화당원들의 반감이 고착화되어온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규제가 옳건 그르건 관계없다. 민주당의 규제니까.

그렇다면 오바마는 과연 공화당원들이 “사회주의자”라고 부를 만큼의 급진적인 규제를 시도했고, 그에 따라 위기를 초래한 거대자본들이 충분히 벌을 받았을까? 비록 탈규제 시대를 종식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美금융업 종사자들은 도드-프랭크法이 그리 위협적인 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고, 대형은행들은 전성기의 이익을 회복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자본에게 더없이 좋은 사회주의자랄까?

오히려 월街는 쓸데없는 이념적 선동을 외치고 있는 롬니가 짜증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누가 집권하더라도 큰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이념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롬니도 만약 집권한다면 금새 말을 바꿀 것이다. 큰 틀에서의 오바마의 정책기조는 오히려 부시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문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된 여론이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경제적으로 큰 수혜를 받지 못할 99%의 어리석은 이념적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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