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Race 2000

자동차, 폭력, 전체주의 사회, 스포츠 등의 요소가 잘 배합되어 감상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잘 만들어진 B급 영화. 빠듯한 예산으로 ‘나름’ 괜찮은 영화를 만드는데 신통한 재주가 있는 Roger Corman 이 제작자로 나섰고 TV시리즈 Kung Fu 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던 David Carradine 이 안티히어로적인 주인공 프랑켄스타인 역을 맡고 있다. 흥미롭게도 아직까지 무명에 불과했던 Sylvester Stallone 이 프랑켄스타인과 대결을 벌이는 Machine Gun Joe로 출연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가까운 미래 – 2000년이 배경이므로 어쩌면 가까운 과거 – SF 영화가 의례 그렇듯이 배경이 되는 미국의 정치체제는 지금과 사뭇 다른 –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 전체주의 사회가 되어 있다. 성조기는 수십 개의 별 대신에 불끈 쥔 주먹모양의 로고 하나만 그려져 있고 대통령은 TV에 출연하여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끊임없이 대중에게 주입한다. 그리고 대중에게 이 정치가가 선사한 당의정은 바로 사람을 치어 죽이면 포인트가 올라가는 국토종단 레이스, 이른바 “죽음의 경주(Death Race)” 다.

자동차 레이스를 위해 몸 자체가 튜닝된 프랑켄스타인을 비롯한 다섯 팀이 레이스에 참가하여 사람들을 죽이지만 – 첫 희생자의 가족에게는 상품도 주어진다 – 그들 스스로도 거리의 악동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한편 민주주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정치집단의 우두머리 Thomasina Paine 은 자신의 딸 Annie 를 프랑켄스타인의 길 안내인으로 잠입시켜 그의 레이싱을 방해하고 종국에는 Death Race를 무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프랑켄스타인이 레이싱을 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고 그의 뜻을 안 Annie 는 그에게 협조한다.

이 영화에서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써 스포츠의 활용이라는 비판적 메시지가 주제를 이루고 있지만 – 같은 해(1975) 나온 Rollerball 과 비교하면 흥미로울 듯 – 보다 흥미로운 것은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착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다.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의 애정은 각별한 듯한데 그런 영향인 탓인지 유난히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카레이스 장면이 많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카레이스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극중에서야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선악을 떠나서 신나게 벌이는 한판 레이스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들이 레이스를 위한 레이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레이스를 피하는 보행인들의 날렵함이 보통을 넘어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조리한 상황에서 자유롭다. 아예 대놓고 사람을 죽이고 점수를 얻는다. 이것이 바로 B급 영화의 솔직함일 것이다.

항상 보다 숭고한 가치를 위해 불가피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폭력을 향한 본능적 쾌락을 자극하는 메이저 영화의 이중적 행태보다는 – 예를 들면 진주만처럼 – 폭력 그 자체에 직진하고 그런 자신조차 거리낌 없이 조롱의 대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물론 결론에서는 이러한 가치가 전복되고 말지만 그 순간에서조차 영화는 미국인의 개념없는 사고방식을 조롱한다. 속도감 넘치는 레이스 장면과 프랑켄스타인의 안티히어로적인 이미지, 블랙코미디적인 극전개가 감상 포인트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봉 당시 드라이브인 극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4 thoughts on “Death Race 2000

    1. foog

      아~ 리메이크되었군요. 보고는 싶지만 요즘 리메이크작들이 영 션찮아서 걱정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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