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는 기업 형태의 미래인가?

이러한 모든 투자 실적들을 묶어주는 공통점은, 주식시장과 기존 주주들의 압력으로 인해서 기술적인 개편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제 실행할 경우의 결과를 블랙스톤이 꿰뚫어 보았다는 사실이다. 헤르베르크, 바니, 실버먼, 클라크 및 셀라니즈의 웨이드먼 사장 등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구조개편으로 장기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더라도 회사가 상장회사이던 시기에는 현행의 이익 실적을 유지하라는 압력으로 인해서 사업구조를 변경하려는 시도가 장벽에 부딪혔다”라고 증언하였다. 사모투자 편드가 주주로 자리를 잡고 나면, 경영진들은 수년간에 걸쳐서 장기적으로 경영할 자유를 얻게 된다. 사모투자자들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수반되는 위험을 수용하는 이유는 통제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사모투자 펀드에 의해 소유되는 독립기업들은 잠재력을 더 많이 발휘하게 된다.[사모펀드의 제왕 블랙스톤 그룹과 슈워츠만 이야기, 데이비드 캐리/존 모리스 지음, 하영춘/김지욱/김규진 옮김, 2012년, 첨단금융출판사, pp437~438]

사모펀드 계에서 가장 유명한 펀드 중 하나인 블랙스톤과 그 펀드의 창업자이자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스티븐 슈워츠만에 관한 일화를 담은 책의 일부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사모펀드라 하면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진 KKR, 외환은행을 인수했던 론스타, 한미은행을 인수한 칼라일 정도일 것이다. 블랙스톤 역시 사모펀드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거대규모의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지만, 현재의 영어표현으로는 PE(Private Equity)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다. 이들 사모펀드는 ‘병행자본시장’이자 과도적인 기업 소유 형태로 인식되고 있다(446p). 즉 파트너십이나 주식회사처럼 익히 알려진 기업 소유 형태와 병행하여 자본이 조달되는, 그러나 그 소유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이들 펀드는 소위 LBO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Leveraged Buyout 금융 기법을 사용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기업은 통상 자본과 대출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런데 자본을 소유한 이들이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펀드는 이 주식을 인수함으로써 회사를 소유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주식의 인수에도 또 다시 대출을 일으켜 레버리지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펀드가 투자자로부터 10억 달러의 자금을 모집했다고 해보자. 이들 앞에 유망한 회사 5개가 있는데 각각 자본 10억 달러, 대출 2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회사다. 그러면 펀드는 각각의 회사에 2억 달러 씩만 펀드 자금을 투입하고 나머지 자본은 감자를 하고 다시 대출, 채권 등의 형태로 구조를 짤 수 있다. 펀드는 10억 달러를 투자하여 자산 150억 달러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LBO를 주로 구사하는 사모펀드의 특성 때문에 그들의 소유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 A펀드는 각각의 회사에서 실질적인 부채비율은 1500%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속히 현금흐름 창출 등의 방법을 통하여 투자액을 회수하고 나오는 것이 최선이다. 현금흐름을 조금만 개선하여 4억 달러의 배당을 시현한다면 ROE는 200%가 되기 때문에 소유기간이 길지 않아도 무리가 없다.

이런 본질적인 사모펀드의 특징이 오늘날에는 신용위기 등과 더불어 많이 누그러졌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그들을 장기적 사업목표를 추구하는 기업집단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재투자하지 않는다면 죽은 것이다”라고 슈워츠만이 팀원들에게 강조한바 있다고 하는데, 이는 특정기업에 오래 머물러 있기보다는 수익을 시현하고 다음 목표를 향해가는 사모펀드의 습성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상장기업이 주주들의 “현행의 이익 실적을 유지하라는 압력”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고, 사모펀드로 인수되어 “장기적으로 경영할 자유”를 얻었다는 증언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면이 있다. 구조조정의 동기가 강한 것이 사모펀드일 개연성은 높겠지만, 그들 역시 레버리지를 끌어다 쓴 제약조건 하에서 CEO들이 장기적으로 경영할 자유를 주는 기간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모펀드가 이전의, 상대적으로 정체된 주식회사보다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점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확실히 더 위험을 수용하려는 속성이 강하고, 때로 그것을 위해 개혁적인 경영진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과도적인 기업 소유 형태”의 본질이 가지는 한계는 여전하다. 그들이 바라는 현금흐름은 확실히 안정적이기보다는 초기에 수익을 시현하는 쪽이다.

주식인수를 통해 기존의 상장기업도 상장 폐지하는 것이 전문인 블랙스톤은 아이러니하게도 2007년 6월 뉴욕거래소에 자신의 주식을 상장했다. 이를 통해 블랙스톤은 다양한 사업 분야의 펀드들의 산발적인 집합체 같은 이미지에서 하나의 정점을 가진 거대기업집단과 같은 이미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전의 기업과는 다른 모습인 것은 여전하다. 그들을 제조업 집단으로 부를 것인가 금융투자업 집단으로 부를 것인가?

자본주의는 사모펀드를 통해서 확실히 또 다른 기업형태의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빨라진 경기주기만큼이나 기업의 손 바뀜도 빨라지고 있다. 초국적인 사모펀드, 국부펀드는 이전의 대기업이 가지는 엄청난 자금력을 사모 또는 공모의 형태를 통해 실현하고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전의 기업의 진화된 형태인가 아니면 퇴보적인 형태인가? 아직도 정치가와 노동자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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