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제학자의 사상전향서를 읽다 든 생각

마르크스경제학에서는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착취, 수탈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하고 있지만, 글로벌경제 이전의 자본주의에서는 맞지 않는 말이었다. 오히려 자본주의에서는 과도한 착취나 수탈이 마이너스로 움직인다. 적절한 재분배를 행하는 편이 자본주의 성장에 유리했던 것이다.[자본주의는 왜 무너졌는가, 나카타니 이와오 지음, 이남규 옮김, 기파랑, 2009년, p106]

제목이 사뭇 거창하고 과격한데 원래 오리지널의 제목은 ‘자본주의는 왜 자괴(自壞)했는가 – 일본의 재생을 위한 제언’이라고 한다. 여기에 쓴 “자괴”란 표현이 마땅치 않았던 역자가 부득불 위와 같은 제목으로 대체한 것이다. 따라서 제목에서 보는 것만큼 책 내용이 그렇게 과격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저자의 살아온 길과 이 책을 쓴 의도에서 엿볼 수 있다.

저자 나카타니 이와오는 1960년대 말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배운 철저한 시장주의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시장주의적 개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한계를 깨닫고 일종의 전향서로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일반을 폐지하자는 것은 저자의 생각이 아니다. 다만 시장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고 있을 뿐이다.

인용한 구절은 저자가 주류 경제학자로서의 길을 쭉 걸어왔기에 사실 이 반골(反骨)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한다는 정황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인용하였다. 즉, 저자는 세계화되지 않은 과거의 자본주의는 그 지역의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재분배를 하다 세계화가 진전되며 이런 메커니즘이 사라지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맑스가 자본론을 쓰던 당시의 영국은 이미 세계화된 자본주의 국가였다. 어쩌면 플라자 합의 이전의 일본보다도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제국주의 종주국으로서 영국은 인도 등 식민지와의 무역을 통해 원자재와 상품소비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었고, 자국 노동자는 “자유”계약을 통한 “자유로운”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고 어린이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이후 1차 대전 이전까지 자본주의의 중핵인 유럽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세계화 정도와 유사한 정도로 금융과 무역 등이 세계화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점증하는 자본주의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호무역주의를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전쟁의 한 원인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본주의와 세계화는 따로 존재할 수 없는 두 축이다.

저자의 말처럼 “적절한 재분배”는 자본주의 성장에 유리하다. “복지냐 성장이냐”를 고르라지만 복지는 GDP에 반영되기에 성장의 다른 말이다. 하지만 자본가는 자본주의자가 아니기에 자본주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사회는 없고 자기책임만 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본질이고 이것이 자본주의의 지탱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 자본주의의 모순인 셈이다.

3 thoughts on “어느 경제학자의 사상전향서를 읽다 든 생각

  1. 1

    ‘글로벌 경제’ 이전에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수탈하는 체제가 아니라고 보세요?

    그냥 공부를 더 하시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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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ex

      생각하면서 잃다가 이 댓글에 빵터집니다.
      이런 댓글도 재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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