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니스월과 스타게이트

차이니스월(Chinese Wall)이 있다. 만리장성이 있는 거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내 말은 일종의 금융용어로 쓰이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투자은행의 고유 업무는 원래 brokerage, 즉 중개업에 가깝다. 주식공개나 기업인수 등에 금융자문을 제공하여 먹고사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점차 돈이 많아지면서 그 돈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유망한 투자처에 투자하면 더 높은 이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소위 ‘고유계정’으로 자신들 스스로가 시장의 플레이어가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자문업무와 투자행위 간의 이해상충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투자행위를 하려면 남들보다 더 수준 높은 정보를 독점해야 하는데 자문 업무는 바로 그러한 수준 높은 정보를 남들에게 돈 주고 파는 일이 아니던가.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모순과 직업윤리의 해이를 차단하겠다는 것이 금융권에서 말하는 차이니스월, 우리식 표현으로 바꾸자면 ‘정보교류 차단장치’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투자은행 안에서 자문부서와 투자부서가 공명정대하게 차이니스월을 쌓아놓고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 농담 하냐고? 농담 맞다.

뭐 아무리 엄격한 규제를 하고 본인 스스로가 윤리적으로 업무를 보려고 하더라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은 주식시장을 비롯한 시장 전반에서 숱하게 증명된 사실이 아닌가 싶다. 소위 말하는 내부자거래, 작전세력, 자사주 취득 .. 뭐 이런 표현들은 투자은행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서 이해가 상충되는 경제행위를 윤리의식이나 관리감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나아가 이것은 비단 경제계 안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경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행정당국과 정치계 간의 차이니스월은 더 허술하다.

미국의 정치, 경제 등에 관해 수준 높은 칼럼을 써주고 있는 김상철 기자가 최근 MBC 홈페이지에 올린 ‘가이트너의 교훈’이라는 글을 보면, 개별기업과 특정업종에 강제하고 있는 차이니스월과 같은 윤리기준과 업무지침이 얼마나 ‘눈 가리고 아웅’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워싱턴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임원을 나라의 곳간지기로 임명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는 마당에 이해상충의 사안에서 공명정대를 요구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참여정부 때 강남집값 잡는다고 난리법석 피우던 시절, 부동산의 주요관료 스물 댓 명중에서 강남에 집 없는 이는 딱 한명이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면서도 비단옷을 입고 있다고 – 입고 있을 것이라고, 또는 앞으로 입게 될 것이라고 – 우리에게 최면을 거는 셈이다.

워싱턴과 월스트리트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지금만큼 가까웠던 적은 없다. 오히려 평등주의적 정치집단은 월스트리트를 사악한 자본가 집단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한 대립관계가 해소된 것은 20세기 초반 대공황 시절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금융대통령 J.P. 모건에게 무릎을 꿇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립관계의 해소라기보다는 굴복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 뒤로 워싱턴과 월스트리트는 FRB라는 다소 이상한 금융기관을 사이에 두고 밀월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차이니스월’이 아니고 ‘스타게이트’에 가깝다.

짤방으로 한 투자은행업 관련 번역서의 어이없는 번역을 소개.

“여러 해 동안 은행업과 중개업 사이의 ‘중국인 벽(중요한 정보가 한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하지 않게 막는 비밀 보호의 장벽)’은 종이처럼 얇았다. 월가의 모든 은행가들이 수시로 그 벽을 넘나들며 시장상황에 대해서 거래인들과 의논했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만 다뤄지지 않으면 그런 교환은 합법적이었다.”[세계를 움직이는 투자 은행 골드만 삭스, 리사 엔들리크 지음, 형선호 옮김, 세종서적, 1999년, p177]

5 thoughts on “차이니스월과 스타게이트

  1. EE

    출처가 199년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부동산의 주요관료 스물 댓 명중에서”라는 표현도 약간 어색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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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친절한 지적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스물 댓 명” 중에 댓은 다섯쯤 되는 수를 가리키는 수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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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증말

    어떻게 보면 ‘쑈’ 네요ㅠ 금융자본에 대한 음모론이 아주 틀리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만한 일들이 벌어지네요; 규제대상과 규제에 대한 논의를 하다니요. 모르지는 않겠고 지들도, 그냥 미국 정계는 그럴듯 하게 쑈하는 듯 싶네요. 근데 그게 먹히기는 하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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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미국정계는 뭐 금융자본과 이제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는 셈이죠. 암튼 음모론들은 대개 일정정도 팩트에 근거한 것이니 만큼 듣다보면 솔깃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결국 음모론이든 아니든 그러한 팩트들을 자신이 어떠한 관점에서 걸러내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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