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본성”

카지노에 정체를 파악당하기까지 그 팀이 오랫동안 지속하리라고 생각했습니까?
우리가 보다 더 신중했다면, 더 오래 지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팀의 한 사람이 계속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책을 쓰는데 관심이 있어서 생겼습니다(헐이 말하는 책은 켄 우스톤의 ‘The Big Player’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은 내가 추천해서 팀장이 된 사람입니다. 팀이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카지노라도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랬습니다. 금지될 때까지는 카지노는 당신이 능력 있는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시장에서 거래할 때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타이밍의 승부사, 잭 슈웨거 지음, 김태완/양영빈 옮김, 21세기 북스, 2000년, pp86~87]

저자 잭 슈웨거가 ‘헐 트레이딩 컴퍼니(Hull Trading Company)’의 블레어 헐 Blair Hull을 인터뷰한 내용 중 일부인데, 인간의 본능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여서 여기 소개한다. 블레어 헐은 카지노에서 블랙잭으로 돈을 버는 직업 도박꾼이었고 팀으로 움직이는 도박꾼 무리에 합류하게 되는데 위에 소개한 일화로 인해 팀이 해체된다. 그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비슷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 월스트리트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헐이 말했다시피 명예욕이라 표현하든 과시욕이라 표현하든 “사람들은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 본능이 성욕이나 식욕과 비교해서 얼마만큼이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본능을 상당한 정도로 지니고 있음은 자명하다. 나는 때로 그것이 물욕(物慾)에 상응할 정도로 강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고 위의 경우가 바로 그런 사례다. 분명히 켄 우스톤 Ken Uston 이라는 도박꾼은 카지노가 자신의 존재를 아는 순간 본래의 목적인 돈벌이가 심각한 위험에 처함에도 과시욕으로 일을 망치고 만 것이다.

이렇게 물욕(또는 보호본능)과 과시욕이 모순되는 경우 가끔 있지만 – 예를 들면 자신의 범죄행위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연쇄살인범? – 대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시욕이 물질의 보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발명이나 발견, 그리고 비법과 같은 지식들 상당 부분이 끊이지 않고 후대로 이어지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보상을 떠나서 순수하게 그것을 알리고픈 인간의 욕망이 큰 몫을 차지하지 않은가 싶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블로그 등을 포함한 SNS에서의 정보공유도 이러한 충동심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인용문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결국 블레어 힐은 나머지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와 블랙잭 플레이어의 유사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시장에 가장 위대한 플레이어로 알려지고 싶어 하는 이는 가장 위대한 플레이어가 될 수없다는 역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익명성과 예외성이 트레이더의 덕목임을 말하는 것이다. 주된 이유는 트레이더의 존재가 드러나면 그의 수법이 삽시간에 알려지게 되고, 그가 몰래 써먹던 차익거래(arbitrage)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렇듯 과시욕은 어떤 분야에서는 발전의 계기가 되고 어떤 분야에서는 치부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 같다.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발전시킨 후 책을 쓰거나 제자를 키워 후대의 그 지식을 전파하는 그 과정이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연결고리였고, 과시욕은 물욕과 함께 그 과정의 윤활유로 작용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득 지식의 이타적인 공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는 현존 지적재산권 제도가 어쩌면 문명발전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추신 : 위키피디어에 올라와 있는 켄 우스톤의 후일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는 너무 유명해져서 – 그가 바라던 대로? – 모든 카지노로부터 출입을 금지 당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이번에는 ‘변장의 천재(a master of disguise)’가 되었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6 thoughts on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본성”

  1. 고어핀드

    http://blog.gorekun.com/1351

    일전에 을 다룬 영화평에서도 썼습니다만, 확실히 사람 행동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존심(≒과시욕)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현상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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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러고보니 레드드레곤이 과시욕에 해당하는 바로 그 사례로군요. 그런 과시욕이 많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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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과시욕은 자연스러운 본능인 듯합니다.
    누구나 번식 경쟁에서 자신이 선택되기를 바라야 그 종이 더 빨리 진화할 수 있기 때문에..
    넓게 보면 물욕도 과시욕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일단 생존본능(의식주)이 충족된 후에도 계속 부를 쌓으려는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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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골드만삭스에 관한 책에 나오는데 그곳의 파트너들이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동료 파트너들보다 정말 적은 금액이라도 적게 받는데 대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런게 인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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