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에 대한 절대 신뢰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관해

제국중앙보안본부는 친위대의 열두 개 본부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의 맥락에서 볼 때 쿠르트 달뤼에게 장군 휘하의 치안담당 경찰본부였는데 유대인의 체포가 그 책무였다. 친위대 행정경제본부(W.V.H.A.)의 수장은 오스발트풀이었는데, 이 기관은 집단수용소를 담당했고, 후에는 유대인 몰살의 ‘경제적’ 측면을 담당했다. 이러한 ‘객관적인’ 태도(집단수용소를 ‘행정’을 중심으로, 죽음의 수용소를 ‘경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태도)는 친위대 정신구조에 전형적인 것으로 아이히만이 법정에서도 여전히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던 것이다. [중략] 세르바티우스는 “유골의 수집, 종족 근절, 가스를 사용한 살인,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의학적 문제들”에 대한 책임에 기초한 고소 내용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할레비 판사는 그의 말을 중지시키고 “세르바티우스 박사, 가스 살인을 의학적 문제라고 말한 것은 말실수라고 생각되는군요”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세르바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실제로 의학적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의사가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살인의 문제이고, 살인 역시 의학적 문제입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정화열 해제, 한길사, 2014년, pp129~131]

어제 글에서도 언급했던 전범(戰犯)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룬 한나 아렌트 책의 일부분이다. 도덕적으로 악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이 어떻게 조직적이고 “객관적”인 기구와 절차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잘 설명한 부분이라 인용해보았다. 제3제국은 잘 알다시피 독일을 비롯한 유럽대륙에서 유대인을 몰아내려 했었다. 그래서 이들은 심지어 초기에 시온주의 세력과 협의하여 팔레스타인으로의 집단이주를 돕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협조적 태도는 그 뒤 ‘유대인 제거’라는 뼈대만 남은 채 보다 악랄한 방법으로 그들을 제거하였다. 행정적이고 경제적이고 의학적인 수단을 통해서 말이다.

현대에 들어 인류는 천부인권의 개념 등을 통해 이전사회에서 정당화되기도 했던 각종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이를 토대로 한 도덕적 기준을 세워 제반행위를 금지시켜왔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곧잘 인류역사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조국 또는 여타의 조직을 위한 대의(大義)를 통해 정당화되어왔다. 오히려 인용한 것에서 보는 나치의 행위는 이러한 대의가 현대적인 조직 및 절차에 의해 더더욱 “객관적”이 되어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나치의 전체주의 국가기구에서 사용하는 “관청용어”는 감정이 담긴 표현을 말끔하고 냉정한 용어로 대체했다. 담당자는 일처리만 할 뿐이다. 현대화가 가지는 모순의 한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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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Kennedy and Secretary McNamara 1962“.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맥나마라

인용한 구절을 읽으며 생각난 인물이 있었다. 바로 미국의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S. 맥나마라(Robert Strange McNamara)였다. 1961년 케네디 前 대통령이 기용하여 린든 존슨 행정부 때까지 장관직을 수행한 맥나마라는 하바드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에서 근무하였고, 美육군항공대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장관직 직전에는 포드 자동차 회사의 CEO도 역임했다. 참 이색적인(strange) 경력인 셈이다. 이런 이색적인 경력은 그가 본격적으로 관여했던 베트남 전쟁과 그의 부처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바로 전쟁에 “효율성”, “재무적 타당성”과 같은 비즈니스 분석기법이 결합한 것이다.

그는 국방부 내에 ‘시스템스 분석 기관(Institution of Systems Analysis)’을 만들고 민간인 분석가들을 기용하여 각종 문제에 대한 시스템적 분석을 수행하게 하였다. 그는 군사고문의 조언을 듣는 대신 이들 민간분석가들의 분석을 더 신뢰했다. 그는 방위 상황에 대해 시스템적으로 접근하여 계획적인 예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오늘날 정책분석이라는 독립된 장르로 존재하게 됐다. 이런 군현대화의 공신은 또한 베트남 전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통계적 전략에 근거해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고 수많은 지상군을 투입하였다. 결과는 알다시피 그의 “과학적” 분석의 결과와 달랐다.

말년에 맥나마라는 전쟁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고 한다. 그의 고백이 그의 과학적 분석의 결과와 달랐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아이히만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다. 다만 만행에 대한 ‘객관적’ 시스템에 복무했던 아이히만과 달리 맥나마라는 그 시스템을 고안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쁘달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고백은 더 빨리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했다. 또 다른 시사점이 있다면 유대인 학살은 전체주의 시스템에 의해 수행된 반면 베트남인 학살은 “민주주의” 시스템에 의해 수행됐다는 점이다.

객관성에 대한 절대 신뢰는 모든 정치체제의 적(敵)이다.

1 thought on “객관성에 대한 절대 신뢰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관해

  1. 약간의 여유

    객관적인 자료라는 것이 개인의 윤리적인 편견에 따라 마음대로 각색된 것인데도 사람은 자신에게 편한대로 자기합리화하고 마는 것 같네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위험도 그것이고요.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도 그렇지요.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고 집단의 판단을 중시할 경우에는 개인은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더라도 집단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합리하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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