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독점, 자유무역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관세나 기타 조치로 나타나는 공공연한, 혹은 은밀한 정부지원 없이는 한 나라 안에 독점이 성립하기 힘들다. 규모가 세계적이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드비어즈 다이아몬드 독점이 우리가 아는 바로는 성공한 유일한 실례이다. 정부의 직접 지원 없이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밖에는 없는 것으로 안다. – OPEC 카르텔과 초기의 고무 및 커피 카르텔이 아마도 두드러진 예일 것이다. 그리고 정부지원을 받는 카르텔의 대다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은 국제경쟁의 압력 아래 부서져 버렸다. – 우리는 이 운명이 또한 OPEC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자유무역의 세계에서는 국제 카르텔은 더 빨리 사라져버린다. [選擇의 自由, 밀턴 프리드먼 저, 朴宇熙 역, 중앙신서, 1980년 pp84~85]

나는 이글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진정성을 믿는다. 억압(프리드먼이 생각하기에 주로 정부의 통제) 없고 독점 없는 경제가 진정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고 “공공연한, 혹은 은밀한 정부지원”이 없다면 한 나라 안에서, 더군다나 세계적인 규모에서의 독점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정부의 지원(또 다른 의미의 통제이므로)은 철폐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고, 이는 매우 아름다운 구조를 이루고 있다.

위와 같은 프리드먼의 사상을 이어받아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 국가들은 “자유”무역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나 그들은 보호무역이 대공황을 심화시켰으며, 심지어는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결과까지 낳았다고 여기고 있기에, 금융위기에 직면한 지금은 한층 자유무역의 수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프리드먼의 희망과 달리 자유무역의 실천수단인 WTO, FTA 등은 각국 정부의 통제와 지원에 의해 실현되고 있고, 그 조약체결 주체 역시 여전히 국민국가라는, 더불어 그러한 것들은 또 하나의 “정부지원”이라는 ‘역설’이다.

프리드먼의 이상론에 의하면 모든 관세장벽은 부서져 버려야 하고 오로지 자유로운 생산자들이 정부의 간섭이나 지원 없이 경쟁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자유무역 노정은 실은 유력한 국가들의 주도하에 상호평등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WTO와 FTA가 체결되고 있고, 그 와중에 국가의 의사결정단위에 개입할 수 있는 독점기업들이 배타적으로 조약체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꼴이다.

예를 들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대로 농업부문 등에서는 카길 등 국제 곡물메이저가 조약 초안을 작성하고, 심지어는 협상 테이블에 앉고 있다. 제약분야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매우 강하다. 그 반면에 조약의 내용을 투명하게 알아야할 국민들은 – 심지어 대다수 중소기업들도 – 협상의 기밀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명분 하에 정보접근으로부터 차단당하고 있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각 나라의 의회마저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과연 현재의 무역기조를 진정 “정부의 간섭이 배제된 자유무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프리드먼이 살아 돌아온다면 한미FTA를 자신의 이상과 일치하는 타당한 무역협정이라고 간주할 것인가? 나는 그것에 회의적이다. 그의 오류는 현존하고 있는 가장 큰 경제주체인 – 일수밖에 없는 – ‘국민국가’라는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없앨 수 없다면 그것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여야 할 터인데 그는 땅을 머리에 처박고는 ‘국가’가 안보이므로 없어졌다고 믿으라고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의 예언 – 혹은 바람? – 과는 달리 여전히 OPEC은 건재하다.

3 thoughts on “정부, 독점, 자유무역

  1. sonofspace

    예전에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책을 읽고서 들었던 생각이, “야아 이 사람들이 그래도 지금 우리가 ‘신자유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하고는 급이 다르구나. 지적 정직성도 있고, 자신의 이상에 투철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려는 열망이 있구나.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 조금 나이브해 보인다” 였지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이 전체 (세계) 시장의 자유를 아무리 옹호해도 현실에서는 개별 국가, 개별 기업이 때로 ‘시장의 룰’을 어기면서까지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니 이 사상가들이 좀 딱해 보이더군요. 물론 이런 현실의 논리를 알면서도 그런 거면 혐오스러운 일이겠지만… 뭐 아니었으리라고 믿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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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아예 권력과 돈의 맛을 본 관변경제학자들은 그렇다치고 오히려 이런 순수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뇌구조는 어떠한지 가끔 궁금하다니까요. 전자가 소망교회에 고급승용차 타고와서 예배보는 이들이라면 후자는 명동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팻말 등에 메고 다니는 초췌한 할아버지라고 해야할까요?(이거 돌날아올 비유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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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사에 좀더 관심을 두었다면 자신의 신앙(?)을 재고 할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유무역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했었다고 믿어지는 일종의 신앙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드는 생각입니다.

    서세동점의 시기에 백인 학자들이 당시상황의 필연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스의 민주주의 같은 픽션(소수지배계층간의 민주적 합의는 어느 지역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그리스는 어디까지나 노예제에 근간한 도시국가)을 끌어들인 것처럼, 자유무역과 그 마법같은 효과는 있지도 않았던 사실에 대한 믿음이라 봅니다.

    자유경쟁… 이런 말은 준비할 것 다하고 나서 아직 준비 안된 상대만 골라서 하는 말 아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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