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다른 화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카라바지오(Michael Angelo Merigi da Caravaggio)에 대한 내 지식은 짧았다.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는 화가이자 렘브란트보다는 더 극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 정도가 그에 대한 내 지식의 전부다. 그래서 도쿄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 가려던 당초의 이유도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디자인했다는 미술관 건물 자체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Younger)의 ‘새덫이 있는 겨울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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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비오는 금요일 아침인지라 미술관도 한가하겠거니 하고 개관시간인 10시에 조금 이른 9시 반에 터덜터덜 미술관에 도착했지만, 정작 건물 앞은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단체관람을 온 듯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장년과 노년의 일반관람객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물론 카라바지오의 명성 자체가 충분한 집객력이 있을 수준이었지만, – 이후 다른 전시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 도쿄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열기는 상당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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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는 빛의 화가였다. 전시회의 안내 글에도 자세히 나와 있었지만, 그는 작품 바깥의 어디에선가 비춰지는 강렬한 조명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의 캐릭터와 심리상태를 표현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성경 속 예수의 일화를 화폭에 옮긴 ‘엠마우스의 저녁 식사’가 그러한 카라바지오의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랄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인물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상황이 극적인 빛의 분할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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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그의 매력은 성경의 일화를 담은 작품들보다 그가 살던 시대와 근린에서 부대껴 살던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점쟁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인데 젊은 집시 여성인 점쟁이는 상대 남성의 – 모델은 카라바지오의 동료이기도 했던 Mario Minniti로 추정되는 – 손바닥을 보며 점을 치는 듯하지만, 그의 미모에 마음이 뺏겨 있는 듯 손은 보지 않고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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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회에서는 주요 작품과 같은 주제의 다른 이의 작품도 소개하고 있는데, ‘점쟁이’ 역시 Vouet라는 다른 화가의 매력적인 작품도 함께 전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점쟁이와 그녀의 매력에 넋이 나간 남자, 그리고 그 와중에 남자의 주머니를 터는 노파의 구도가 매우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젊은 점쟁이 여인도 이 남자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지만, 노파는 이 어리석은 남자를 등 뒤에서 한껏 조롱하며 – 손 모양이 ㅎㅎ – 탐욕스러운 손을 그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있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작품은 ‘Ecce Homo’였다. 라틴어로 “이 남자를 보라”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한 재력가의 의뢰로 카라바지오가 성경의 일화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의뢰자는 그의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아 다른 작가에게 같은 주제로 의뢰했고 이 전시회에서는 그 작품 역시 전시되었다. 어쨌든 나는 인물의 묘사가 주제와 상관없이 너무 뛰어난 솜씨로 묘사되어 있는 점이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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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 전시회를 보면서 – 이후 다른 전시를 보면서도 – 느낀 점은 전시회가 약 16,000원 정도 하는 티켓 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충실한 컬렉션과 기획을 통해 소비자에게 만족을 준다는 점이었다. 앞서 썼듯이 주요 작품을 위해서는 그와 비교할만한 다른 작품을 같이 보여주며 그림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국내의 일부 알맹이 없는 전시회가 비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