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가이트너의 모순된 입장

서머스는 다수 금융사가 자본부족을 평가하는 유일하게 타당한 방식은 자산을 현행 시가에 가깝게 평가하는 것이라 믿었다. [중략] 따라서 서머스는 스트레스 테스트가 좀비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한 눈가림 체계라고 우려했다. [중략] 나는 [중략] “이 자산들은 패닉 중에서 나타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고, 주요은행 다수가 지급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명될 가능성이 그럴듯하게 있다”고 보였다. [스트레스 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335]

티모시 가이트너는 뉴욕Fed 행장으로 근무하다 금융위기의 와중에 집권에 성공한 오바마의 선택으로 재무장관에 취임하였다. 그 후 그가 시장의 공포를 줄이고 한정된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 부실자산매입프로그램) 의 자금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생각한 아이디어가 바로 인용한 책의 제목인 스트레스 테스트다. 가이트너는 금융사가 보유한, 당시 시중에서 전혀 인기가 없어 팔리지 않고 재무제표를 악화시키던 자산을 적정(!?)하게 평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시장에 신뢰를 재고시키겠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그의 경제학 스승인 래리 서머스와 의논한 것이다.

서머스는 하지만 가이트너의 아이디어에 반대하며 소위 시가평가 방식이 진리라 주장했는데, 가이트너는 이러한 견해는 서머스가 헤지펀드에 근무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헤지펀드의 견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서머스의 견해는 독자인 내가 이름붙이기를 “재무부의 견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즉, 시장에 의해 진정한 가치가 평가받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견해를 “헤지펀드의 견해” 혹은 서머스의 견해라고 한다면, 은행의 고유한 회계원칙에 의한 차주의 지급능력에 기초하여 진정한 가치를 평가받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견해를 “재무부의 견해” 혹은 가이트너의 견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과도한 보수를 받는 은행가들을 구제하는 데에 분노하였고, 백악관의 정치팀은 우리가 국민들의 반발에 동조하는 편에 서 있음을 보여 주기 원하였다. [중략] 우리에게는 버블 시기에 이미 지급된 보너스를 압류할 법적 권한이 없었고, 대다수 민간기업의 보수를 설정할 권한이 없었다. [중략] 대중들이 인정할 만한 수준으로 상여금을 삭감한다면 이들 은행으로부터 인재들이 대거 탈출을 초래하고, 은행이 안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전망이 줄어들었을 것이었다.[같은 책, p338]

이러한 두 인용문 사이의 시각의 불일치 혹은 모순이 가이트너의 회고록을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분명히 그는 뉴욕Fed 시절이나 재무부 시절에 소위 공공의 입장 혹은 미국이라는 국가적 단위의 입장에 서서 예외적 조치나 예외적 가치평가를 옹호하고 관철한다. 예를 들어 그는 쉴라 베어 예금보험공사 사장의 부실은행 채권자들의 헤어컷이란 원칙적 조치를 시장의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맹비난한다.1 이는 비상사태를 포함한 각종 상황에 대한 정부 나름의 가치평가법을 옹호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직원보수의 문제를 거론하면서는 한 치도 흔들림 없는 시가평가주의자로 돌아선다.

바로 그가 서머스에게 비아냥거리듯 딱지 붙였던 “헤지펀드의 견해”라는 딱지가 월가의 직원보수에 관해서는 고스란히 본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딱지가 된 것이다. 비록 미국의 금융가 직원이 다른 경제권의 금융가 직원의 보수나 미국 내의 다른 산업군의 보수보다 예외적으로 높았지만 이는 월가가 예외적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 역사가 있는 만큼이나 수용할 수도 있는 견해다. 하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월가에 예외적으로 적용했던 그 가치관이 직원보수에 있어서만큼은 – 몇 페이지 지나지도 않아서 –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시장근본주의적 자세로 돌아서는 그 모순이다.2

그게 비단 티모시 가이트너 한 개인의 모순이라면 큰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실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기틀을 마련하여 존속하여 온 이래 이러한 모순은 크건 작건 위정자와 시장참여자들 사이에 일관되게 흘러온 기류이기도 하다는 점이 사태의 핵심이다.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능을 하는 기업이 사적소유 혹은 주인-대리인 관계의 문제3로 인해 사회적 통제의 범위를 벗어날 때 우리는 왕왕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본질적 모순에 직면하고, 이를 부당하게 정당화하거나 좌절하곤 한다. 가이트너가 정당화하고 있는 관념이 그런 모순이다. “직원 보수는 시장에 맡겨두고 손실은 TARP로 메워주자.”

  1. 쉴라 베어 역시 그의 회고록에서 티모시 가이트너를 “구제금융 편집장(the bailouter in chief)”이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2. 가이트너 역시 낮은 보수로 인한 “인재들의 탈출”를 걱정하는데, 시장이 붕괴됐는데 그들이 어디로 탈출한단 말인가? 가장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월스트리트인데?
  3. 최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서울메트로 등 공기업이 이러한 문제의 모순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

3 thoughts on “티모시 가이트너의 모순된 입장

  1. weirdhat

    안녕하세요.

    “즉, 시장에 의해 진성가치가 평가받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견해를 “헤지펀드의 견해” 혹은 서머스의 견해라고 한다면, 은행의 고유한 회계원칙에 의한 차주의 지급능력에 기초하여 진성가치를 평가받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견해를 “재무부의 견해” 혹은 서머스의 견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서머스의 견해가 두 개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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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Uk You

    TARP집행에서의 가격평가는 국가-민간의 문제이지만 사적 고용계약은 민간-민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헤어나올 수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정가격으로의 매입 후의 자산의 손실은 통제 가능하지만 민간에 피해를 입힌 후의 시장반응은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지 않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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