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소유자의 사회”에서 “투자자의 사회”로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송파와 가까운 위례신도시, 하남 미사지구 등에서 입주 물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더 떨어지거나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면 갭 투자자들은 전세 재계약 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중략] 송파구에서는 월평균 500~600건의 아파트 매매가 이뤄진다.. 부동산 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저금리로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갭 투자에 나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송파구 전세 하락, 무슨 일이?…떨고 있는 갭 투자자]

전세(傳貰) 제도는 – 법률상의 전세권과는 구분되는 –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우리만의 독특한 부동산 거래관행이다.. 또 다른 말로는 우리만의 독특한 부동산 금융기법이다. 즉, 월세와 달리 임차인이 집값의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보증금을 내고 월세 없이 거주하는 이 독특한 관행 덕에 임대인은 집주인은 큰 돈 들이지 않고 집을 구입했다. 그런데 임대인은 왜 임대기간 동안의 월세수입을 포기했을까? 바로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집값 상승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시세차익이 월세수입보다 더 클 것이라는 기대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대출금을 “불확실성이 높은 거래에 투자되는 돈” funny money 으로, 다른 학생은 금융용어를 빌려 미래의 “위험회피 수단” hedge 또는 미래에 대한 내기에 건 돈 bet 으로 불렀다. 자신들을 채무자로 간주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문화[일상생활]기술지적 文化記述誌的 증거에 따르면 미청산 부채를 보유한 사람들은 지불기일을 넘기기 전까지 자신을 “채무자”로 여기지 않는다. 나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주택금융 채무자가 더 정확한 명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주택 소유자로 간주한다.[크레디토크라시, 앤드루 로스 지음, 김의연 옮김, 갈무리, 2016년, p169]

학자금 대출이 일반화되어 있는 미국에서 채무자라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학생들의 일종의 자기최면 혹은 부정에 관해 서술한 내용이다. 어쩌면 부채경제 시대를 살아가면서 현대인들 대부분은 이러한 자기최면을 걸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앞서 송파구의 아파트 소유자는 저자가 스스로를 칭하는 것처럼 그들 자신을 “주택 소유자”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자산가치의 많은 부분을 임차인의 전세금과 대출로 채웠을 것임이 확실해도, 본인은 그것을 “갭투자”, 그리고 인용문의 학생들처럼 “hedge”와 “bet”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GMAC 회장 존 래스콥은 다음과 같이 공언했다. 신용을 제공하려는 GMAC과 같은 금융회사들의 노력은 “만인에게 풍요로운 안식처와 공정한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야말로 사회주의자들이 인류에게 줄곧 환기시켜 온 바가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의 경로는 파괴를 일삼는 사회주의적 수단이 아니라 개량을 모색하는 자본주의적 수단에 의해 추구될 것이다.” [중략] 애초 이러한 선전전은 미국 내에서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차단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1940년대 후부터는 줄곧 사회주의 블록과의 전 세계적인 경쟁 구도하에서 진행되었다.[같은 책, p96]

부채 활성화를 통해 체제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20세기 초 자본주의자들의 비전은 현대에 이르러 더 진화하였다. 당시의 금융기업 회장이 희망했던 “풍요로운 안식처와 공정한 기회”를, 보다 적극적인 현대의 투자자는 단순한 소유를 넘어 풍요로운 유동성과 공정한 갭투자를 통해 달성하려 하고 있다. 즉, 당시 위정자들의 목표가 “자산소유자의 사회(ownership society)”였다면 현대사회의 비전은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자의 사회(investment society)”인 것이다. 어쨌든 전셋값 하락으로 송파구의 투자자는 신규 투자자금 몇 백억 원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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