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기 – 노보리베쓰市

우리가 일본의 홋카이도에 머무른 기간 동안 일본의 재무상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홋카이도의 홈구단 니혼햄 파이터스가 퍼시픽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여를 날아 도착한 신치토세 공항은 적당히 구름이 끼어 쾌적했고 공기는 맑았다. 다소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온 일본인지라, 거기에다 여행계획과 항공권 예약 등은 여행 자체보다 여행계획 수립 자체를 더 좋아한다는 설이 있는 다른 총각이 – 자신을 욘사마로 불러 달라 요구하는지라 욘사마라 부르기로 하자 – 세운지라 다른 나라에 왔다기보다는 약간 긴 국내여행을 한 느낌이었다.

신치토세 공항은 홋카이도 최대의 도시 삿포로市에서 전철로 약 40분 거리의 남단에 위치한 곳이다. 우리의 – 아내와 나, 그리고 욘사마 – 첫 목적지는 더 남쪽에 있는 노보리베쓰市.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도시다. 일본을 대표하는 온천관광지라는데 가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노보리베쓰市를 향하는 버스를 탄 후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랑비의 스산함이 느껴지는 가을날의 온천으로의 여행도 나름의 설렘이 있었다.

유황온천 특유의 계란 상한 냄새가 나는 노보리베쓰市에 다다라 도착한 호텔은 마호로바 호텔. 온천도시의 숙박시설 중에서도 고급 축에 든단다. 이 호텔을 예약한 이유는 유카타를 입고 이 호텔에서 제공하고 있는 다다미방인 호텔 룸에서 일본식 식사 대접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이 욘사마의 설명. 일본에서의 첫날을 정통(?) 일본식으로 누려보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여하튼 서둘러 체크인을 한 후 우리는 바로 노보리베쓰市 관광에 나섰다. 관광이랬자 손안에 들어올 만한 크기의 온천마을 쇼핑가와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산에 올라 구경하는 것이 거의 전부의 볼거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초라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슬비에 우산을 받쳐 들고 점점 심해지는 유황천 냄새를 맡으며 첫 번째 들른 곳은 지고꾸다니(地獄谷).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고, 노보리베쓰市의 마스코트(?)인 도깨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옥까지는 아니어도 기이한 외계 어디쯤의 행성 풍경을 연상시키는 살벌한 풍경이었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낮은 민둥산 사이사이로 새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교통이 지금처럼 편하지 않았을 그 옛날, 어렵사리 이 곳에 도착한 이들이라면 이 험상궂은 풍경에 현세가 아닌 듯한 착각에 빠졌을 법하다.

지고꾸다니를 뒤로 하고 산등성이를 마저 올랐다. 나무 발판으로 만든 정갈한 산책로와 산속 오솔길을 거쳐 도착한 곳은 오유야마 전망대. 전망대 아래로 직경이 한 50미터쯤은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노천 온천 오유야마가 보였다. 역시 김이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다. 우리를 제외하고 유일한 한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던 아빠, 엄마, 아이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 셋도 역시 아빠 분의 도움으로 한 컷. 욘사마 담배 한대 피운 후 다음 목적지인 천연족탕으로.

그 곳은 천연 – 물론 천연이지 – 온천수가 냇가에 흐른다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직접 맨발을 담글 수 있다는 곳이다. 얼마나 뜨거울까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갔더니 이미 일본인 서너 명이 발을 담그며 거닐고 있었다. 우리도 양말을 벗고 들어갔다. 생각만큼 온도가 높지 않았다. 높아야 섭씨 30도 후반 내지 40도 초반? 그래도 하얀 온천물에 발을 담글 수 있다는 것은 이색적인 체험임에 틀림없었다.

대충 산행을 끝마치고 터벅터벅 온천마을 쇼핑가로 내려왔다. 쇼핑가는 기껏해야 100미터 채 되지 않았고 기념품 가게에는 어느 나라의 기념품 가게나 그렇듯 관광객들을 현혹할만한 수준의 기념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벌꿀을 이용한 식품을 만드는 어느 가게에 들러 고구마로 속을 한 떡 종류와 꿀을 넣은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 색다른 맛이라 맛있어 하며 먹었지만 가격은 각각 100엔과 300엔, 우리 돈으로 5천원이 넘는 가격이다. 아~ 환율의 압박!

호텔에 돌아오니 5시 반 경. 7시에 식사를 차리기로 하였으니 유카타를 팬티 위에 둘둘 말아 입었다. 그러고 밖에 나오니 약간 낯간지럽기도 했지만 어차피 모든 겉옷들이 사실 속은 달랑 팬티 한 장이지 않은가. 지하에 있는 탕으로 가는 와중에 허리띠를 안 둘러서, 수건을 안 가져와서 등등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는 여탕에 나와 욘사마는 남탕에. 아쉽게도 혼탕은 없었고, 그 와중에 앞서 글에서 이야기한 ‘황당한 문화충격’ 사건이 있었다. 뜨뜻한 탕에 몸을 담그니 기분이 좋았지만 노천탕은 찾질 못해서 그냥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황당한 문화충격
여행은 저와 아내, 그리고 우리 부부가 잘 아는 총각 한명과 갔습니다. 온천은 빠질 수 없는 관광코스. 기대했던(!!) 남녀혼탕은 없었고요. -_-a 남녀 탕을 하루에 한 번씩 바꿔서 운영하더군요. 그래서 아내는 여탕에, 저와 총각은 남탕으로 갔습니다. 호텔 지하에 있는 노천탕이었는데요. 룸에 비치된 유카타를 입고, 탕 안에서 쓸 작은 수건과 탕 밖에서 쓸 큰 수건을 가지고 갑니다. 저는 그냥 작은 수건을, 총각은 큰 수건을 가지고 갔습니다.

여하튼 둘 다 발가벗고 탕에 들어서는 순간, 제 눈을 의심할 장면이 눈앞에! ‘이라샤이마센’하며 반겨주는 탕의 종업원이 남자가 아닌 아줌마! @_@ 너무 당황스러운지라 갖고 있던 작은 수건으로 중요부위를 가릴 생각도 못하고 스쳐지나 왔습니다. 그런데 아줌마가 뒤따라오던 총각에게 뭐라 하더군요.(총각은 일본어 대화 가능자) 대충 큰 수건은 탕밖에 둬야 한다는 취지로 짐작되었습니다.

재빨리 몸 씻는 곳에 앉아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총각이 나가더니 결국 큰 수건을 옷 보관 바구니에 놓고 오더군요. 그 와중에 저는 ‘아.. 역시 일본은 다르구나’ 하며 처음 경험한 문화충격으로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있었죠. 화장실에서도 아줌마가 있으면 머뭇거리게 되는데 목욕탕에서 마주칠 줄이야. 어쨌든 내 옆에 앉은 총각에게 말을 건넸죠.

“야. 너무 황당하지 않냐?”

총각 왈.

“그러게. 왜 큰 수건은 못 갖고 들어오게 하는 거야?”

방에 돌아와 아내에게 물으니 노천탕은 여탕에 있었다. 하루마다 탕이 바뀌므로 내일 아침에 다시 들르면 될 일이었다. 상은 각 상으로 우리 부부가 머무는 방에 차려졌다. 회 몇 점맛보기 요리들, 된장으로 간은 한 쇠고기 요리, 그리고 샤브샤브 등이 대충의 상차림이었다. 특별히 감동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지만 여행지에서의 이국적인 상차림인지라 나름 즐기는 맛이 있었다. 서비스로 제공된 와인이 감질 맛나서 입가심으로 마시기로 하고 사온 캔 맥주를 꺼내 마셨다.

일본에서의, 홋카이도에서의, 노보리베쓰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8 thoughts on “일본 여행기 – 노보리베쓰市

  1. 키다링

    요,욘사마와 함께하신 일본 여행이셨군요! 아직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질 못해서 정말 부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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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ecter

    잘 봤습니다. 저는 원래 목욕에 취미가 없어서 노보리베쓰는 생각도 안 했고 지금도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홋카이도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를 하나 놓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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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홋카이도 하면 온천’이라는 단선적인 생각에 젖어있던 저는 온천을 빼놓고는 홋카이도에 갈 이유가 없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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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겨울에 가면 추울까요?
    설국에 되었을때 필름 한가방 들고 가보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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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역시 홋카이도하면 ‘설국’에 대한 기대감이 있죠. 🙂 이번에 갔을 때 나름 서울보다 많이 춥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다지 춥지 않았습니다. 그렇더라도 한 겨울에 심한 경우 적설량이 6미터까지 될때도 있다니까 겨울철이 오면 추위가 만만치 않을까 우려되네요. 그래서 이동하는데 교통편이 잘 움직여줄지도 고민되고.. 그리고 또 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이틀째 여행은 겨울에는 즐길 수 없는 별미였답니다. 🙂 그런 면에선 겨울에 가지 않은 것을 그다지 후회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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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북해도 하면 항상 겨울만 생각해왔는데
      그렇지만도 않나보네요.
      그리고 영화같은데서 보여주는 폭설이 가끔 특별히
      많이 오는날을 보여준게 아닌가보군요. ^^;;;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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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진범

    문화 충격 부분 완전 시트콤 상황이네요
    복부에 힘을 주고 어금니 꽉 깨물고 있는데 로우킥 맞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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