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고호를 괴롭히고 있는 것도 역시 ‘생활’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형의 존재가 단순히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의미에서 ‘저주스러운 짐짝’이 아닐 리 없다. 현세적인 가치관에 대한 순수한 저항을 관철하기 위해서도 의식주 따위 현세적인 뒷받침은 필요하다. 이 단순한 모순이야말로, 옛날 옛적부터 창조자, 구도자, 혁명가를 괴롭혀왔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채찍질을 해대지만, 그런 행위는 그 채찍의 의미를 이해하는 자까지도 함께 쓰러뜨리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자에 대해서도, 창조자, 구도자, 혁명가이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창조자, 구도자, 혁명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자들이 그 채찍의 아픔을 견뎌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짐짝’인 것이다.[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창작과 비평사, 1992년, p57]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미술과 관련된 책치고는 그 내용이 조금 무겁다. 이는 글쓴이인 서경식의 개인적인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그를, 정확하게는 그의 형제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서승, 서준식, 서경식은 재일조선인 2세였다. 이들 중 서승과 서준식은 서울대에 다니고 있던 중 북한을 방문했다는 혐의로 이른바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의 주모자로 투옥된다. 이후 이들 가족에게는 기나긴 고통의 나날이 지속된다.

이 당시 서승은 고문에 못 이겨 난로를 껴안고 자살을 기도해 얼굴과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서슬 퍼런 독재에 대한 저항의 표시를 온몸에 새긴 셈이다. 서준식은 7년형을 마치고도 전향서를 쓰지 않아 감호처분을 받아 다시 10년을 더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의 부모들은 말년에 자식들의 옥바라지를 하다가 자식들의 출소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했다. 누이와 서경식 역시 크나큰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했다. ‘짐짝’이나 ‘채찍’이니 하는 단어는 바로 글쓴이의 이런 생생한 경험에서 나온 단어인 것이다.

사실 재일조선인에게 그 당시 조국이란 남과 북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한반도는 북조선과 남한이 아닌 조국의 남쪽과 북쪽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쪽은 한쪽으로의 굴종을 요구했고, 결국 북한방문 그 자체로 그들은 ‘혁명가’로 분류되어 창살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끔찍한 고문, 자살시도, 사상전향서 작성 거부 등 ‘혁명가적’ 삶은 가족들에게 채찍이고 짐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 때문에 그들을 탓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혁명가’에게 있어서의 ‘생활’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집단적인, 때로는 구조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된다. 혁명가 김문수가 왜 ‘혁명가’의 삶을 포기하고 경기도 지사라는 ‘생활인’의 삶으로 전향하였을까? 언젠가 그는 그것은 정치적 변절이 아니라 그냥 정치적 삶을 포기한 것뿐이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진의는 알기 어려우나 뭔가 “의식주 따위 현세적인 뒷받침”이 그의 태도변화에 한 몫을 했으리라 짐작되는 대목이다. 비단 그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어쩌면 같은 이유로 삶의 노선을 바꿨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활동가나 기타 진보단체 활동가 등 이른바 아직까지 ‘변혁적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러한 현세적 문제가 현재진행형이다. 비록 급여를 받는다고는 하나 현실적인 씀씀이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의 돈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소위 동지들은 여전히 암묵적으로 그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민주노동당의 노조설립 시도에서 보인 지도부의 반동적 행태가 바로 그러한 강요의 전형이다.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진보정당의 득표수 증감보다 이런 현세적 문제가 더욱 당의 진로를 괴롭히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서경식의 이 책은 미술 감상문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그와 그의 가족들, 나아가 조선이 겪어야 했던 아픈 역사를, 그가 감상한 미술작품에 투영시킨 수필집에 가깝다. 고흐, 벨라스께스, 고야, 삐까소, 고이소 료오헤이 등의 그림 등 다양한 그림이 소개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흑백 문고판이다. 다행히 2002년 칼라를 실어 개정 출판되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출옥한 두 형의 그간의 기록도 [서승의 옥중 19년]이란 이름을 출간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글쓴이의 통찰력 있는 서술을 한 문장 더 인용한다.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奔流)가 되지만, 대개는 맥 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는 열매는 흔히 낯 두꺼운 구세력(舊勢力)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창작과 비평사, 1992년, p91]

1 thought on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1. xarm

    아.. 이게 흑백으로 나왔었군요.
    전 칼라로 읽었습니다. ㅎㅎㅎ
    미술 관련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뭔가 색다르더라구요.
    이 분이 쓰시고 연재하신 글 보면서 ‘조선적’이라는 말도 알게된 게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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