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20kr gold coins.jpg
Two 20kr gold coins” by AnonimskiOwn work. Licensed under CC0 via Wikimedia Commons.

금(金)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특권은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에 타락한 민중들이 만들어서 숭배한 것은 바로 금송아지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야훼보다 번쩍번쩍 황홀한 색채의 금송아지가 더욱 현실적인(?)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금은 인류가 미(美)와 풍요를 추구하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장식품의 원재료가 되었으며 가장 뛰어난 품질의 화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각적 쾌감도 있지만 금이 화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금의 매력은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분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조개나 쌀, 소금, 소, 심지어 담배 등이 교환의 매개체인 화폐의 기능을 다양한 사회에서 수행하였지만 품질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교환되는 가치에 따라 분할이 가능한 금과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유일한 경쟁상대는 은(銀)이었으나 복본위제가 금본위제로 바뀌며 금이 유일강자가 되었다.

금의 위치가 현대에 들어 크게 흔들릴 뻔한 일이 있었다. 금본위제의 변태적인 모습인 금환본위제, 즉 달러본위제를 실시하고 있던 미국이 자국통화인 달러의 구매력이 한계에 달하자 금환본위제를 일방적으로 포기한 사건이 그것이다. 금은 화폐 그 자체였고, 화폐의 가치를 보증해주는 담보였는데 이제 그 연결고리가 끊긴 것이다. 엄밀하게 그것은 달러의 위기이기도 했지만 금이 화폐의 – 또는 담보자산으로서의 – 역사에서 퇴장할지도 모르는 사건이기도 했다. 유사 이래 처음 있었던 금의 퇴출이기에 미래를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식적인 예상은 빗나갔다. 금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美달러는 등락은 있었지만 여전히 기축통화로서 기능하고 있다. 금은 美달러와의 바스킷이 풀리자 이후 지속적으로 가격이 상승하였다. 전 세계 종이화폐의 담보 역할을 미국이 발행한 종이화폐가 하고 있다는 사실, 미국의 종이화폐의 담보 역할을 美재무부의 채권이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만인 – 또는 불안한 – 이들은 여전히 금이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금가격은 그 수급현황과 무관하게 평균적인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며 상승하였다.

소비자물가지수 차트(1800 ~ 2005)
금가격 차트(1971 ~ 2007)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美달러에 대한 신뢰감이 급격히 저하되며 금을 일종의 대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우세해지고 있다. 단순히 금은방을 드나드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금괴매입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관련기사) 천문학적인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근본모순을 지닌 美달러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한데다, 유로나 엔, 심지어 위안이나 SDR조차도 그것을 대체할만한 통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금을 선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지불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상수가 자의든 타의든 작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美달러는 그 든든한 경제력/구매력과 함께 패권주의에 의한 강한 군사력이 美달러를 나머지 화폐에 대한 담보로 인정해주는 든든한 믿음을 제공하고 있었다.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는 바람직하지 못한 특징을 제외하고는 이상적인 심리기제였다. 나머지 통화들은 아직 이러한 배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금을 쫓는다. 하지만  문제는 금 역시 그러한 배경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금은 그저 반짝이는 돌일 뿐이다. 유일한 믿음은 내가 좋아하는 그 금의 매력을 다른 이들도 동일하게 느낄 것이라는 믿음뿐이다. 그 심리는 사용가치를 지닌 다른 상품과는 또 다른 근거 부족한(?) 믿음이다.

결국 美달러와 다른 화폐들이 과학적으로(?), 또는 타협에 의해 정교화 시킨 화폐이론, 또는 합의는 금에 이르러 ‘반짝이는 것에 대한 숭배’라는 하나의 종교적 심리상태만 남는다. 소금에 대해 다양한 특성을 묘사할 수 있지만 ‘소금은 짜다’는 엑기스만 남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각국의 합의 하에 – 적어도 상호신뢰라는 이름으로 – 만들어낸 IMF의 SDR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오래전 화폐의 수단에서 제외된 금은 여전히 인기를 끄니 말이다.

현대에 접어들어 공급위주경제학자들이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주장하기도 했다지만 금괴를 매입하고 있는 국가들이 또 쉽사리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고려하지는 못할 것이다. 금본위가 자국통화를 안정적인 통화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은 금의 수급상황, 신용창조의 승수효과, 국제경제에서의 공조 여부 등 다양한 변수를 무시한 조악한 이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금에 대한 애정은 어느 정도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헬리콥터로 뿌려지고 있는 넘쳐나는 돈으로 달리 살 것도 마땅치 않으니 말이다.

9 thoughts on “

  1. 시퍼렁어

    도대체 금은 화페의미를 제외한 본질적 재화의 가치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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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이 질문은 아무래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전제로 하는 질문인데요? 그 본질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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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라임에이드

    금은 그저 반짝이는 돌일 뿐이다. 유일한 믿음은 내가 좋아하는 그 금의 매력을 다른 이들도 동일하게 느낄 것이라는 믿음뿐이다. 그 심리는 사용가치를 지닌 다른 상품과는 또 다른 근거 부족한(?) 믿음이다.

    일개 국가가 보증하는 종이보다 모든 인간(혹은 여성-_-;;;)의 유전자에 각인된 금이 더 화폐로 적절한 듯도 싶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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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oog

    금값이 오른다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호주달러에 외화예금이라도 하는게 나을듯. 금은 이자가 붙지 않지만 호주달러는 이자가 붙는다. http://3.ly/RWL 금회의론자인 알파헌터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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