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냐의 비극

론인간은 인간 그 자체를 [노예의 형태로] 원시적인 화폐재료로 삼은 일은 가끔 있었으나 土地를 그렇게 한 적은 없었다. 그러한 착상은 발전된 부르즈와사회에서만 나타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착상이 나타난 것은 17세기의 마지막 1/3의 일인데, 그것의 실행을 전국적 규모에서 시도한 것은 그보다 1세기 뒤인 프랑스의 부르즈와 革命期[몰수한 교회토지를 근거로 1789년에 발행된 assignats]였다.[資本論 I(上), 칼 마르크스,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1994년, p112]

봉건제 하에서는 당연하게도 토지는 왕이 영주에게 하사하는 것이었기에 칼 마르크스가 말한 바와 같이 토지를 화폐재료, 즉 교환가치가 실현되는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것이 상품으로 취급되기 위해서는 왕정과 봉건영주가 세력을 잃어 봉건제가 해체되고 부르주와가 사회 주도세력으로 등장하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토지를 가장 먼저 상품화시킨 것은 아시냐(assignats)를 발명한 부르주아 세력이었다.

아시냐는 혁명세력이 몰수한 토지를 근거로 – 즉 담보/기초자산으로 – 하여 발행한 화폐다. 화폐의 생성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데, 어떠한 정치집단이 채권을 발행할 경우 그 채권의 기초자산으로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을 담보로 잡는다면 그것은 금/은본위제가 될 것이고, 아시냐와 같은 경우는 바로 토지본위제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파생금융에서 모기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CDO를 발행하는 기법이랄지 부동산 자산을 REITs로 유동화하는 기법 등의 원조는 아시냐인 셈이다.

재정적 위기로 말미암아 심각한 사회적 의의를 지니는 화폐개혁이 실시되었다. 1789년 11월 2일, 제헌의회는 교회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국유화된 토지재산을 화폐화(貨幣化)해야만 했다. 1789년 12월 19일, 의회는 4억 리브르의 교회재산을 매각키로 결정하고, 그에 상당하는 양의 아시냐를 국유재산을 담보로 지불보증하는 어음의 형태로 발행할 것을 결심했다. 당초 아시냐는 교회재산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연리 5%의 채권(債券)에 불과한 것이었다. [중략] 그러는 동안에도 국고는 텅빈 채로 남아 있었고 부채는 하루가 다르게 증가했다. 일련의 조치를 통해 의회는 국채인 아시냐를 더 이상 이자를 지불하지 않으며 무제한적 강제통용 능력을 지닌 화폐로 변모시켰다.[프랑사 대혁명사 上, 알베르 소부울 著, 최갑수 譯, 두레, 1984년, pp197~1980]

앞서 설명했다시피 인용문을 보면 혁명세력이 그들의 취약한 본원적 축적을 어떻게 실행하였는지 잘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구세력 중 가장 큰 재산가들이었던 교회의 재산을 몰수했다. 당장 몰수하기는 했지만 토지란 오랜 기간 활용하여야 부를 창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엔 토지를 거래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토지를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고 이것의 원리금을 보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하나의 기막힌 변장술을 선보이는데 바로 아시냐를 ‘채권’에서 ‘화폐’로 바꾼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간단하다. 아시냐를 ‘구입’해도 연리 5%의 이자를 더 이상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토지에서 생산되는 부를 통해 5%의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이었던 것이 이제는 지불수단을 지닌 화폐로 변해서 이자도 못 받는 신세가 되었다. 고로 혁명세력은 무한발권력을 지니게 된 셈이다.

지폐는 모든 가치를 상실했고, 환거래는 붕괴되었다. 1793년 12월에 명목가치의 50%로 떨어졌던 아시냐는 혁명력 2년 열월(1794년 7월)에는 다시 31%로 떨어졌다. [중략] 국고수입이 줄고 아시냐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물가의 상승은 국가로 하여금 더욱 거대한 통화팽창을 하도록 자극했다. [중략] 농민과 상인들은 아시냐를 거부하고 정금(正金)만을 찾게 되었다. 아시냐에 대한 거부는 가치하락을 더욱 부채질했다.[프랑사 대혁명사 下, 알베르 소부울 著, 최갑수 譯, 두레, 1984년, p99]

혁명세력도 나름 신진세력으로서 고충이 있었겠고 경제를 하루빨리 활성화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었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무지막지한 일이었다. 채권이었던 것이 하루아침에 화폐가 되고 그마저도 통화증발 등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했으니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금을 찾게 된다. 기초자산이 마땅히 없는 – 또는 발행자가 포기한 – 화폐가 걷게 되는 비극을 잘 보여주고 있다.

美달러를 보자. 처음 그 화폐는 금과의 교환을 약속했다. 아시냐처럼 채권은 아니었지만 기초자산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금태환이 한계에 다다르자 이를 일방적으로 포기했다. 그리고 이후 – 아시냐처럼 폭발적이진 않지만 – 통화증발이 이어졌다. 달러 약세가 계속되고 정반대로 금 가격은 상승한다. 비슷한 이치다. 다른 것이 있다면 기축통화로써의 수요가 있기에 아직까지 휴지조각이 되고 있진 않은 셈이다.

다른 나라들이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달러에 새겨진 In God We Trust를 믿어서가 아니다.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4 thoughts on “아시냐의 비극

  1. 키다링

    우와 이에 관한 이야기를 분명히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정도로 생각을 깊게 해보진 못했었는데, 대단하네요! 당시 아주 리얼하게 붕괴했을 교회권력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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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법사의꿈

    아시냐 화폐는 토지 가치보다 더 많은 화폐를 찍어내서 인플레로 붕괴하지 않았나요? 토지 몰수와 재분배도 약속했던 것만큼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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