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이데일리의 “삼성”관련 외신 인용 생쇼

오늘 자 조선일보 웹사이트가 “외신들도 삼성사태 `촉각`..”국가경제 해칠수도” ”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자사의 것이 아닌 이데일리의 기사를 전재한 것이다.

원래 기사
조선일보 기사

우선 기사의 제목들을 한번 살펴보자.

외신들도 삼성사태 `촉각`..”국가경제 해칠수도”
WSJ, 삼성전자 등 그룹株 부담 `우려`
FT “삼성 GDP 17% 해당..외국인 투자 끊길까 걱정”

보수언론의 ‘제목신공’의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즉 제목이 ‘외신들께서 삼성 사태는 국가경제를 해칠 수도 있다고 걱정하시고 특히 월스트리트저널께서는 그룹株 부담을 염려하셨고 파이낸셜타임스께서는 외국인 투자가 끊길까 걱정해주셨다는’ 인상이 강하게끔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사의 첫머리도

“비자금 로비와 분식회계 혐의 등 이른바 `삼성 사태`로 삼성그룹 뿐 아니라 한국의 국가 경제도 해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이 진단했다.”

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원래 궁금한 것은 찾아봐야 하는 성격이라 우선 파이낸셜타임스의 해당기사를 찾아보았다.(월스트리트저널은 이름에 걸맞게 유료신문이라서 못 찾아보았다)

두 기사를 상호 비교해본 결과 두 기사가 공통적으로 삼성이 이번 사태로 인해 얼마나 타격을 입게 될 것인가에 할애하고 있었다. 다만 이데일리의 기사 나머지는 외신을 방패삼아 삼성을 단죄하려는 세력을 국가경제를 아랑곳하지 않는 이상주의자로 매도하는 쪽으로 유도하려는 반면 정작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

외신이 외국인 투자자 끊길까 걱정했나?

필자는 먼저 이데일리 기사의 고갱이라 할 수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을 부패했다고 인식하면서 한국의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해 관계를 끓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한 신문 사설을 인용하기도 했다”

라는 이데일리 기사의 원문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정말 외국의 유력 경제신문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데일리나 조선일보의 우려가 괜한 우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원문이 바로 이것이다.

“삼성은 지구상에서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중요한 기업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만약 삼성이 부패했다고 생각하게 되면 다른 한국 기업들도 똑 같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고 한국에서 가장 큰 신문매체인 조선일보 사설이 주장했다.
“Samsung is an important business representing Korea’s economy on the global stage,” the Chosun Ilbo, Korea’s biggest newspaper, wrote in an editorial. “Foreign investors may end up thinking that if Samsung is . . . corrupt, then other Korean businesses must be much the same.”

파이낸셜타임스가 한 말이 아니라 조선일보의 말을 인용했을 뿐이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데일리는 구태여 조선일보를 언급하지 않고 “한 신문 사설”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좌우지간 이게 무슨 생쇼인가.

1)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삼성이 부패하면 한국 모든 기업이 부패했다고 외국인투자자가 간주할 것이라는 자괴적이고 근거없는 비논리적 주장을 한다.(그럼 우리는 엔론이 부패해서 모든 미국기업이 부패했다고 여겼던가.)

2) 파이낸셜타임스가 이 헛소리를 인용한다.

3) 이데일리가 그 기사를 받아 “한 신문 사설을 인용”하였다고 쓰면서 슬쩍 제목에 “FT 삼성 GDP 17% 해당..외국인 투자 끊길까 걱정”이라고 마치 파이낸셜타임스가 직접 한 말인 것처럼 말을 교묘하게 바꾼다.

4) 조선일보가 지가 한말을 재인용한 이데일리의 기사를 받아 전재한다.

참 재밌는 양반들이다. 이런 식의 헛소리 확대재생산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뫼비우스식 자기파괴적 헛소리 확대재생산”이라고 하면 옳을지?

외신이 국가경제 해칠까 걱정했나?

파이낸셜타임스의 결론은 이렇다.

“분석가들은 이러한 관심이 결과에 상관없이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모니터하여야 할 부분은 삼성이 이 문제를 어떻게 콘트롤하며 어떻게 그들의 지배구조를 변화시킬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라고 서울의 자금분석가가 이야기했다. “삼성은 지주회사로 지배구조를 바꿀 것을 고려하고 있고 이를 위해 비록 삼성생명을 상장하여야 함 할지라도 그 과정을 가속화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Analysts say that the attention could, regardless of the outcome, act as a catalyst for change.
“What we need to monitor is how Samsung is going to control this and how this will change their ownership structure,” says one equity analyst in Seoul. “Samsung has been rumoured to be considering converting their ownership into a holding company so they may try to accelerate that process, although in order to achieve that they will have to list Samsung Life.””

분석가가 삼성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주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뿐 아니라 다른 부분을 찾아봐도 – 조선일보 사설을 인용한 부분을 제외하고 – 삼성 문제와 한국경제의 문제를 연관시키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이데일리 기사제목처럼 “국가경제를 해칠 수도”있다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이번 사건이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뉘앙스의, 주주 자본주의적 입장에서의 지극히 정상적인 멘트를 날리고 있을 뿐이다.

기업비리 조사가 국가경제를 망치는 것인가?

도대체 한 기업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을 조사한 후 기업비리를 단죄하여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왜 국가경제의 위기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묻어두고 가는 것이 국가경제를 지키는 길인가? 마치 주가조작의 혐의가 있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을 네거티브 공세라고 치부하여 정치선진화를 앞당기는 것처럼 말이다.

요컨대 한마디로 이데일리의 기사는 조선일보가 생산해낸 거짓 주장을 외신이 한마디 인용하고 이데일리가 다시 받아 기사화하여 재생산한 생쇼다. 하여튼 이데일리건 조선일보건 좀 허튼 주장을 하더라도 이런 민망한 기사쓰기는 지양하였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10 thoughts on “조선일보와 이데일리의 “삼성”관련 외신 인용 생쇼

  1. WSJ은 재벌 문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제시해 온 편은 아니지만 FT는 꾸준히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요구했고, 공정위원장에 찬사를 보내는 기사를 아시아판에 대문짝만하게 실은 적도 있습니다. 요즘 다들 영어 읽기는 웬만큼 하는데 외신 입맛대로 잘라먹기는 좀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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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 친구들이 한국식의 ‘재벌’ 시스템이나 변칙상속을 옹호할 일이 없겠죠. 그냥 후진적인 아시아적 기업풍토라고 비웃기나 할뿐일텐데 또 우리 사대주의적인 기자양반이 따옴표로라도 구미에 맞는 글을 올려주니 황공하게 생각해서 급히 실어 나른거죠. 기자라면 서구 경제지의 주주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쯤은 이해할만한 소양은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그리고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퍼온 외신은 실시간으로 일반인도 열람이 가능한 시대라는 것도 기억해야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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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왜 그러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염치를 모르는 양반들이어서 그러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요. 가끔 보수언론의 수습기자들 기사를 보면 ‘벌써부터 아주 논지를 길을 들이는구나’하는 느낌이 올때가 있습니다. 암튼 좀 그나마 의식이 있는 기자라 할지라도 그런 기사 몇 번 쓰면 프레임이 딱 잡혀져서 그 톤으로 계속 기사나 찍어내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이정환님이 기자시니까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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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네 걸어주신 글은 잘 읽었습니다. 하여튼 이 친구들은 생쇼를 해도 집단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중앙일보 입장에서야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조선일보-FT-이데일리-조선일보를 거쳐 기사가 세탁되어 조선일보의 헛소리가 외신으로 둔갑했으니 말입니다. 넙죽 받아먹었네요. 🙂

      사족 : 그나저나 제 트랙백이 또 안 쏘아지네요.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 호스팅이 조금 문제는 있는 모양입니다. 번거로우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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