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판매” 빵집

런던에는 두 가지 종류의 빵집이 있다. 빵을 그 가치대로 판매하는 “정가판매” 빵집과, 그 가치보다 싸게 파는 “할인판매” 빵집이 그것이다. 후자의 부류에 속하는 것이 빵집 총수의 3/4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빵제조업자의 고충”에 관한 정부위원 트리멘히어(H. S. Tremenhere)의 [報告書], 런던, 1862년). 이 할인판매 빵집들은 거의 예외없이 명반이나 비누나 粗製탄산가리나 석회나, 더비셔州에서 나는 石粉이나 기타 유사한 成分을 섞어 놓음으로써 不純빵을 판매하고 있다(앞에서 인용한보고서 및 “不純빵의 製造에 관한 1855년의 委員會”의 報告 및 하설[Hassall]의 [적발된 불순품], 제2판, 런던1861년을 보라). 존 고든(John Gordon)은 1855년의 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이와 같은 불순빵 때문에 매일 매일 2파운드의 빵으로 살아가는 빈민들은 이제 자기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는 영양분의 1/4도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중략] 트리멘히어는 (앞의 보고서에서) 그들은 [중략] 勞動週間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임금을 받기 때문에, 그들은 “한 주일 동안 그들의 가족이 소비한 빵값을 주말에 가서야 비로소 지불할 수 있다.”[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자본론I[上], 비봉출판사, 1994년, p220]

이 글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노동력은 매매계약에서 확정된 기간만큼 기능을 수행한 뒤에야 비로소 지불을 받는”다는, 일종의 ‘노동력 선대(先貸), 혹은 임금 후불(後拂)’ 제도를 설명하기 위한 보충설명이다. 노동자는 자신이 판매한 노동력의 대가를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받기 때문에 위와 같은 곤란을 겪는 한편, 자본가가 파산하는 경우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편 이 글을 읽고 본래 의도와 달리 드는 잡념은 이러한 것이다. 즉, 런던에 “정가판매” 빵집이 전체빵집 수의 1/4이고 “할인판매” 빵집이 3/4이면 정상(正常)적인 빵집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우리가 통상 평균이라 부르는 것이나 보통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특정 집단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기준에서 보자면 정상적인 빵집은 “할인판매” 빵집이 아닐까?

문제는 이들 빵집이 빵값을 할인하기 위해 취한 조치다. 이들은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될 것들을 집어넣어 단가를 낮춤으로써 노동자의 수요를 충족시켰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서는 정상적(!)인 영양성분이 가미된 음식을 먹어야 함에도 정상적인 빵집에서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빵을 제조하여 “실제로는 영양분의 1/4도섭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상적인 빵집은 정상적인 영양분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저렇게 장기적으로 비정상적인 영양섭취에 견디지 못하는 노동자가 노동현장에서 탈락할 경우 다른 새로운 노동력이 이 빈틈을 채워주는 일종의 노동예비군이 존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그가 노동현장에서 탈락하기 전까지는 마른 걸레를 쥐어짜듯 자신의 근력을 한계상황까지 몰아붙였을 것이다. 우리의 노동시장 역시 개발시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동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City bakeries bridgeton 1936.jpg
City bakeries bridgeton 1936” by robert kelly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city bakeries bridgeton 1936.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실로 노동자들의 노동력 재생산의 수단이 되는 생활수단, 그 중에서도 특히 음식과 관련한 소요비용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본가들에게도 중요한 관심사항이다. 노동대중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너무 많은 식비가 소모된다면 곧바로 임금상승 압박에 시달릴 것이고 이는 총자본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의 개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다.

그 대표적인 음식이 햄버거, 라면 같은 패스트푸드다. 원래는 긴 조리시간과 많은 제조비용이 소요되었을 햄버거와 같은 음식들은 표준화, 합성식품 첨가, 대량생산 등의 처방이 가미되면서 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전보다 더 싼 비용으로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면서 노동자들은 싼 임금에도 큰 불만 없이 노동현장에서 머물러 있게 되었다. 문제는 다시 돌아가서 그것이 장기적으로 정상적인 영양분을 제공하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 세상에서 돌가루(石粉)가 들어간 빵을 판매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 당장 소비자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사법당국이 처벌하고 등등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그런 무지몽매한 짓을 용서하지 않는 현명한 소비자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이치로 패스트푸드, GMO식품, 광우병 의심 소고기에 대해 현명한 소비를 하는 이의 숫자는 돌가루 빵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알아도 값이 싸니 사먹을 수밖에 없다. 가만. 19세기 노동자와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되었을 수도 있다. 1862년 런던에서는 – 사실은 그곳이 정상적인 빵집인 – 1/4의 정가판매 빵집이 있었다. 하지만 과연 21세기의 서울에는 몇 분의 1의 정상적인 식당이 있을까? 항생제 먹이지 않은 닭으로 요리된 삼계탕, 합성식품이 아닌 반찬, GMO가 아닌 야채로 만든 반찬, 중국산이 아닌 직접 담근 김치를 파는 식당이 몇 개나 될까? 돌가루는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고 할 수는 있겠지만 모두가 “할인”식당으로 뒤덮여진 후 그때는 돌가루를 먹지 않을 선택권마저 없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권하는 글 –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8 thoughts on ““할인판매” 빵집

  1. xarm

    요새 자본론 읽고 계신가봐요?
    자주 인용문이 등장하는 거 같아서요….^^;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저주는 책인가봐요..ㅎㅎ
    예전부터 읽어봐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손도 못 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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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네. 요즘 읽고 있어요. 걸작은 생각할 거리를 너무 많이 주는지라 진도가 안 나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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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자본론 인용하신 글이 많이 눈에 띄어서 xarm 님처럼 의문을 가졌는데 역시나였군요.
    하지만 자본론을 읽으면서 이렇게 현대 상황과 잘 결부하는 능력도 foog님만의 대단한 점입니다.
    그래서 자본론 인용하신 글을 모두 검색해 보려고 했는데 검색이 잘 안 되네요..
    키워드가 본문이 아닌 제목에 들어가야만 인식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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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신년 벽두부터 격한 칭찬의 말씀을 남겨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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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oog

      아.. 검색요. 저도 그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새 스킨은 제목만 검색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이거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몰라 좀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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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oog

      제목만 검색되는 에러(?)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티스토리에서 제목만 검색되게 정책을(!) 바꿨다는군요.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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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ate

    와우~ 요즘 제가 하는 고민과 일맥상통하는 적절한 글이군뇨ㅋ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과객이온데;; 감명깊어 댓글 남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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