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어쨌든 아파트는 뭔가 떨어지고 분리되어 존재하는 주거공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어원 語源은 불어의 아파르트망 appartement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대저택에는 가족과 하인 이외에도 매일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사람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거하기 위해서 집은 몇 개의 공간 군群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령 아파르트망 드 파라드 appartement de parade는 공적인 용무로 수십 명의 사람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고, 아파르망 드 소시에테 appartement de societe는 안주인이 서너 명의 친구와 친척들을 초대하여 간단한 티파티 tea party를 dus는 곳이었으며, [중략] 그런데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귀족계급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대저택 역시 주인을 잃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러한 틈바구니를 비집고 새로 성장한 도시중산층이 귀족의 대저택을 아파르트망별로 나누어 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아파트의 기원이라고 한다.[아파트에 미치다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이숲, 2009년, p20]
아파트 건설초장기만 해도 국가 최고지도자의 관심은 비상했다. [중략] 박정희 대통령(당시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또한 1962년 마포아파트 준공현장에 직접 나가 주거생활의 문화적 향상을 역설했다. 그는 축사에서 [중략] “여기에서 생활혁명이 절실히 요청되는 소이 所以가 있으며 현대식 시설을 갖춘 마포아파트의 준공은 이러한 생활혁명을 가져오는 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정희 대통령은 “본 (마포) 아파트가 혁명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까지 했다.[같은 책, p39]

아파트의 역사를 두고 두 개의 혁명이 관통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옮겨 적어보았다. 하나는 근대 혁명의 시대를 연 역사적 사건 프랑스 혁명이고 또 하나는 남한의 정치에 큰 획 하나를 그은 516혁명(옳게는 516군사 쿠데타)이다. 둘 모두 변혁의 시기를 거치면서 이전의 주거양식과는 전혀 다른 주거양식이 삶의 공간으로 채택되었거나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2010년 남한 땅에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오히려 수구적인 공간이 되었음을, 적어도 더 이상 혁명을 꿈꿀만한 공간이 아님을 목격하면서 묘한 상념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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