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l Revolution

아래 댓글에도 링크시켜 놓았는데 “학대받는 동물에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부여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스위스에서 7일 실시됐다”고 하는군요. 현재는 이 제도가 취리히에서만 인정되고 있는 것을 전국으로 확대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랍니다. 한편으로 약간 우습기도 하지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박살나고 있는 세상에서 동물권이라니… 여하튼 그 기사를 보니 예전 바로 그 취리히에 관한 소식을 보고 썼던 한 5~6년 전에 쓴 소설이 생각나서 재탕합니다. 즐감하세요.

역사는 진보한다는 유물론자들의 의견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더욱이 그 역사관이 나선형적 발전론이라면 더더욱 찬성한다. 역사는 언뜻 되풀이되는 듯 하지만 결국 그 되풀이되는 듯한 역사는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새로운 형태를 띄게 되는 것이기에 유의미하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역사의 방아쇠는 언뜻 보기에 아주 사소한 – 마치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 사건에 의해 촉발되기도 하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아니 사실 아이러니란 표현은 옳지 않은 것이 그 사소한 사건이란 사실 역시 유물론자들이 주장한 바 구체와 보편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면 이미 성숙되어 있는 외적조건의 심지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하다.

장광설은 이쯤에서 덮기로 하고 나의 이런 뚜렷한 신념은 오늘 내가 목도하고 있는 거대한 역사의 현장이 분명히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신뢰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시작은 이렇다. 어느 날 나의 아버지는 출근을 하려 문밖에 나섰다가 계란세례를 받았다. 이러한 파렴치한 짓은 아버지가 전날 국회에서 행한 연설에 불만을 품은 적대적인 정치세력의 사주로 할 일없고 머리에 들은 거라곤 놋쇠밖에 없는 한 실직자에 의해 자행되었다. 그 자신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독자적으로 감행한 짓이라고 털어놓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 녀석은 지가 내뱉은 단어들의 절반은 뜻도 모를 두뇌의 소유자였다.

독자 여러분은 이쯤에서 과연 아버지가 국회에서 어떠한 연설을 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아버지가 행한 연설은 동물에 대한 비인간적인 학대의 방지와 이를 어기는 자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것, 나아가 동물에 대한 권리를 새롭게 정의하는 ‘동물권리법’의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는 발언이었다.

이 법안의 강력한 주창자는 아버지가 당수로 있는 동물권리당이었다. 동물권리당은 아버지가 그 역사적인 연설을 행하기 불과 1년 반전에 결성되어 총선에서 6%의 지지를 받아 의회에 진출한 신흥정치세력이었다. 상황은 동물권리당에게 좀 더 유리하게 돌아갔는데 과반수 득표에 실패한 제1당 녹색당은 – 자신들의 당의 한 분파에 불과한 동물권리당이 자기들의 표를 깎아먹었다고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족속들이다 – 10% 득표를 얻은 공산당으로부터 연정제의에 대한 요청을 거절당하자 울며 겨자 먹기로 동물권리당을 넘겨다 보았고 당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당은 단숨에 집권당의 지위로까지 상승하였던 것이다.

유색인종, 농민, 노동자, 여성, 그리고 동성애자 등의 사회 마이너리티의 오랜 저항의 역사는 바야흐로 지구의 마지막 마이너리티인 동물에게로까지 미쳤고 지구의 기나긴 착취의 역사가 그 종지부를 찍을 새 장이 열린 것이다. 당이 의회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 전국의 동물권리당원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하며 축포를 쏘아댔다. 나또한 집에서 TV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새로운 역사의 파노라마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환상을 맛보았다.

이제 새로운 전선(戰線)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었다. 채식주의자들로 구성된 락밴드 The smiths는 Meat is murder(육식주의자는 살인자다)라는 앨범을 챠트에 올려놓았다. 탐욕적인 육식주의자들은 이에 대항하여 Rage against vegetarian 이라는 얼치기 밴드를 급조했지만 그들은 앨범도 내기 전에 멤버 전원이 이상한 풍토병에 걸려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영화감독 조지루카스는 죠스라는 작품을 통해 상어들의 생태와 그 행동양식에 대한 격조높은 표현을 하여 상어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재고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미술가 이불은 ’21세기 신진작가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작품으로 내놓고 고기가 썩어 들어가는 전 과정을 통하여 육식주의자들의 잔학성을 고발하다 미술관의 권위를 내세운 스미쏘니언으로부터(물론 육식주의자들의 소행이지만) 작품을 철회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다소 미묘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동물권리당 내부의 강경파는 적의 잔학성을 고발하기 위해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동물의 살점을 무기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이불의 행위를 비난하였다. 또한 시민들로부터는 일련의 문화충격으로 받아들여져 동물의 권리라는 메시지 자체보다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만 키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상에서 짐작하다시피 아직 동물권리당의 투쟁은 일반대중의 육식주의자에 대한 혐오감을 기반으로 하여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보다 더욱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아버지는 신문기고 등을 통해 동물권리법의 제정을 강력히 주장해나갔으며, 이러한 학문적 배경에 대한 연구를 위한 동물연구소의 설립을 후원하였다. 이는 즉, 단순히 동물을 보호해야 할 피상적인 존재에서 그 자체로써 권리를 지니고 있는 새로운 주체로 설정한다는 광대하고 심오한 철학적 배경을 깔고 진행되는 행동이었다.

나는 이러한 아버지의 철학을 일찍이 아시모프가 고안해낸 로봇에 대한 철학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로봇이기에 박탈당해야 했던 그 많은 권리들을 인간보다도 현명하고 인간보다도 인간다운 한 로봇이 실현해냈던 그 감동적인 작품을 접하였을 때 나는 내가 나아가야 할 길,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행동가로 나섰을 때의 그 순간이 떠오르면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아버지를 비롯한 당의 우두머리들이 이러한 합법적 투쟁을 지속해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끓어오르는 젊음의 극단적 행동은 동물권리파와 그 반대파의 양 진영의 하부에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급기야 우리당의 대표적인 반대파인 기독교보수당의 청년위원회 행동대원들이 우리 당의 한 청년당원을 린치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어지는 서로의 보복행위는 마침내 우리 당원 하나가 살해되는 그 해 가을까지 격렬하게 이어졌다. 그때까지 수수방관하던 경찰당국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기독교보수당 청년위원회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작업에 착수하였다.

기독교보수당은 어처구니없게도 가해자는 당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이를 명백한 정치탄압으로 규정하여 반발하였지만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청년이 기독교보수당원임이 밝혀짐으로써, 더 나아가 그의 팔뚝에 나치 문신이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되면서 의미 있는 침묵을 지켰다. 그들로서는 당이 新나치당과 어떠한 식으로든지 관계가 있다는 추측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당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작년 말 일간지에 의해 이루어진 당 지지도 조사에서 동물권리당은 12%까지 지지율이 높아졌다. 그리고 그 한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극적인 사건은 섣달 그믐의 서울대법원 102호였다. 102호에서 동물원 관람객이 침팬지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침팬지에 대한 구속(창살 안에 가두어 놓는 행위)에 대한 위법성을 지적한 항소법원에서 재판부는 침팬지에 대한 제한적인 – 이는 아직도 재판부에 악질적인 극우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 권리를 인정한다는 판결이 내려졌을 때 방청석에는 환호가 일었다. 드디어 동물이란 단어와 권리라는 단어가 더 이상 이질적인 아니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현장이었던 것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대학교 법학과에서는 신학기 강좌로 동물법을 개설하였고, 동물법을 주장하는 변호사들은 동물에 대한 완벽한 신체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한 상당한 설득력을 얻어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게 되었다. 한편 정치계에서는 동물권리당 전체, 그리고 녹색당의 일부 심정적 지지자들을 기반으로 하여 동물권리법에 대한 법안상정이 의제로 거론되게 되었다. 마침내 2025년 5월 17일 국회에서는 법안통과에 대한 찬반투표가 진행되었고 투표결과는 선행되었던 아버지의 감동적인 국회연설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다음은 아버지가 행했던 연설의 주요 내용이다.

“여러분은 지난 2010년대 과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동물학대에 대한 초현실적인 논쟁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당시 일부 어리석은 과학자들은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주장하였습니다. 고통을 느끼더라도 최소한 인간과 같은 수준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물고기는 입 안 가득 낚싯바늘을 물고 물 밖으로 끌려나와 메마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집니다. 그러나 인간이 무슨 수로 물고기의 고통을 이해할 것입니까? 이러한 우리의 우매함은 시간을 거치면서 사고의 전환으로 개선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동물에게도 ‘계획’이나 ‘인식’과 같은 낱말을 사용합니다. 이제 동물도 스스로의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를 이해하고 서로 느낌을 주고받으며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침팬지와 같은 일부 동물은 기초적인 정치체계와 문화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은 동물에 대한 우리 인간의 태도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말합니다. 동물에 대한 권리의 주장은 노예제 철폐, 노동자의 해방, 여성의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맥을 같이 하는 새로운 해방의 역사에 대한 선언입니다.”

속사포같이 쏟아내던 아버지의 연설은 잠시 침묵으로 숨을 돌렸다. 아버지는 안경을 벗어 잠시 눈을 닦아냈다. 그건 회한의 눈물이었을까?

“고백합니다. 저는 지난 세월 과학자로 살아가던 시절 동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과학의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쥐들을 난도질하였으며, 그에 대한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는 지난 독재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였던 ‘수퍼 애니멀 프로젝트’ – 인간의 지능에 맞먹는 고등동물의 개발에 관한 프로젝트 -를 주도하면서 수많은 동물들을 학대하였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알게된 개 한 마리의 고통으로 인해 처음 나의 죄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이러한 고뇌가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서서 이 연설을 하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진행될 투표가 앞으로 우리들의 미래와 역사, 그리고 우리들의 양심에 미치게 될 영향을 생각해보시고 신중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장내엔 열광적인 박수가 이어졌다. 비록 그 박수소리가 동물권리당의 좌석에서 압도적으로 크긴 했지만…. 투표결과는 동물권리당으로서도 의외였다. 전체 참석의원 140명 중 찬성 65표, 반대 57표, 기권 18표, 동물권리당의 승리였다. 역사의 한 장이 열린 것이다. 기독교보수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은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었다. 절대 질 수 없으리라 확신했던 투표에서의 패배는 당을 그야말로 아노미 상태로 몰아갔다. 투표에 패배한지 불과 다섯 시간 뒤 기독교보수당의 김한진 당수의 사표가 제출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계란세례 – 명백한 테러행위 – 가 있은 날 오후 즉시 용의자가 체포되었지만 이를 시발로 해서 기독교보수파의 극단세력의 테러가 전국에 걸쳐 자행되었다. 동물권리당의 각 지부에 대한 습격이 이어졌고 물리적 충돌로 인한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동물권리당 대변인은 보수당의 야만적 행동을 즉각적으로 멈추어 줄 것을 요구하였고 그렇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물리적 충돌에 대한 동물권리당의 어떠한 책임도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사태는 대변인이 예상한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계속되는 극우파의 테러에 일부 지방에서 동물권리당과 녹색당의 일부 청년들을 주축으로 하는 자위대가 결성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총으로 무장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포항에서 첫 총성이 발사되었다. 전선은 다양한 지형으로 형성되었다. 동물권리법 지지파 대 반대파, 채식주의자 대 육식주의자, 유색인종 대 신나치파, 동성애 지지자 대 동성애 혐오자 등 수구와 진보간의 총체적 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무장투쟁을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당지도부는 5월 21일 마침내 당원들의 전면적인 무장투쟁을 승인하였다. 슬로건으로 채택된 구호는 ‘진보를 향한 마지막 발걸음’이었다. 그들 모두는 이번 투쟁이야말로 인류의 길고 긴 투쟁의 역사를 완결시킬 마지막 혁명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국지전적인 성격의 투쟁은 마침내 전국적인 규모의 내전으로 이어졌다. 진보세력은 동물권리당, 녹색당 좌파, 채식주의자 단체, 행동주의적인 환경운동단체, 공산당내 환경운동가 들을 아우르고 있었고 수구세력에는 기독교보수당, 신나치당, 녹색당내 우파, 공산당내 우파, 육식주의자 집단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혁명군은 빠른 속도로 국토를 장악해나가고 있었다. 혁명군의 산악을 근거지로 삼은 파르티잔식 투쟁과 도시전에서의 기민한 게릴라식 공격은 정규군의 화력을 무력화시켜나갔다. 또한 정규군내의 일부 심정적 동조자들의 사보타지는 혁명군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주요한 산악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한 육군부대의 배식담당자가 그가 요리한 고깃국 요리에 독극물을 풀어놓는 바람에 부대원들은 의무실 침대에 누워 혁명군이 무혈입성하는 광경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또한 공군에서 채식주의자 비행장교들은 출격을 거부하고 부대를 무단이탈하는 바람에 혁명군에 심대한 타격을 줄 공격명령이 무산되고 말았다.

2025년 7월 30일 마침내 혁명세력이 승리를 거두었다. 전국의 주요지역을 거의 장악한 혁명군은 7월 30일 새벽 다섯 시 서울에 입성함으로써 3개월에 걸친 혁명전쟁의 막을 내렸다. 이제 동물권리당은 집권당이 되었다. 그리고는 혁명세력에 동참한 녹색당 좌파와 공산당 좌파를 아우르는 신당작업에 착수하였다.(피비린내 나는 반대파의 숙청에 대한 과정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새로운 당의 명칭은 혁명완수당이었다. 뒤이어 혁명완수당은 동물들의 권리에 대한 보다 강도높은 법안마련에 들어갔고 8월 한달 동안 무려 15개의 각종 동물의 권리에 관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새 정부의 수반으로 등극한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혁명의 완결’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아버지의 생각과 약간 달랐다. 러시아의 1912년 2월 혁명이 미완의 브르조와 혁명이었듯이 2025년 7월 혁명도 미완의 혁명이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이제 혁명의 완수에 대한 과제는 동물 스스로에게 넘겨졌다. 9월 4일 대전시에서는 일단의 새떼들로부터의 습격이 감행되었다. 이로 인해 주요교통은 마비되었고 정전사태가 곳곳에서 빚어졌다. 인간들은 새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한 저항을 벌였으나 동물의 신체적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핵심멤버들이 체포되었다.

9월 5일 광주에서는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늑대무리들로 인해 일대 혼잡이 빚어졌다. 늑대들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였고 관공서, 방송국들로 쳐들어가 주요 기간망을 교란시켰다. 마침내 9월 14일 전국적인 규모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때까지 주인의 온순한 노리개로 남아있던 애완동물들 마저 주인에게 반항하기 시작하였고 인간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각종 무기들의 네트웍을 교란시켜 그들을 무력화 시켰다. 각종 화기들은 코끼리들의 발아래 짖뭉게 졌고 침팬지들은 국립 전산원에 잠입하여 컴퓨터의 기능을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마비시켰다. 새들은 전신망에 자신의 몸을 끼워넣는 가미가제식 공격으로 전력공급을 마비시켰다.

혁명완수당은 이런 불가사의한 동물들의 행동에 크게 당황하며 법질서 준수와 인간들의 자위권 발동에 대한 원칙없는 정치력만 행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부터 무슨 잘못이 이루어졌는지 감지하지 못한채 당내부에서조차 파행적인 논쟁으로 동물에게 저항할 시기를 놓쳐가고 있었다. 당내 강경파들의 강경노선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법들을 그들 자신이 깰 수 없다는 원칙론으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사태 – 인간들이 동물의 공격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지 못함으로써 빚어지는 피해 – 에 대해서는 애써 눈길을 피하였으며, 이에 반해 일부 수정론자들은 이제라도 동물들의 공격에 대비한 군차원에서의 자위권을 발동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9월말 인간들은 동물들에게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그들의 손과 발이 되었던 화력, 네트웍, 경제체계들은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그들은 그러한 모든 것들이 그들 손을 떠나고 나서야 인간이 이 자연속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 차없이는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인터넷 없이는 타인과의 기본적인 대화조차 불가능한(오감조차 기계에 의존하는) 나약한 인간들의 수족이 잘려나간 모습은 보기에도 통쾌할 정도였다. 이제서야 진정으로 ‘혁명의 완결’을 부르짖을 만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너는 도대체 누구 편이나?’라는 질문이 쏟아질 법하다. 그렇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아버지는 인간이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들은 나를 허스키견이라고 부른다. 극지방의 맹추위를 참아가며 인간을 위해 수레를 끌다가 종국에는 주인들의 먹거리로 잡혀 먹혔던 허스키견이다. 내가 나를 키워준 그 인간을 아버지라 부른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길러왔고 나를 교육시켰으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수퍼 애니멀 프로젝트’…. 나는 그 프로젝트의 유일한, 그리고 완벽한 성공작이었다(아버지는 눈치채지 못한채 그냥 프로젝트에 의해 고통받는 천덕꾸러기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의 지능을 – 또는 그 이상을 넘은 고도의 지능을 – 갖게 된 나는 마치 백지가 먹물을 빨아들이듯이 인간들의 지식을 습득해나갔다. 인간들의 수많은 오욕의 역사들을 목도할 때 나는 인간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제거되어야 할 가장 큰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치밀한 계산아래 오늘의 혁명을 준비하여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판은 논리의 모순덩어리인 – 인간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 동물권리법의 제정이었다. 왜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놓은 법이라는 도구로 인해 오히려 그들 자신조차도 보호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었을까? 원인은 간단하다.

애초 동물권리법이라는 아이디어가 만들어질 때 인간들은 권리는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는 상식을 간과하였던 것이다. 앤드류 마틴에게 적용되었던 로봇공학의 세 가지 법칙(작가주:아시모프의 ‘200살을 맞은 사나이’에서 제시된 1.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인간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행동을 해서도 안 된다. 2. 로봇은 제 1 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3. 로봇은 제 1 법칙과 제 2 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만 한다. 라는 법칙) 따위는 우리 동물들에게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10월의 어느 한가로운 저녁 나는 한때 인간이 차지하고 앉아있던 소파에 느긋이 앉아 비데오를 감상하고 있었다. 내가 감상한 두 작품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와 찰튼 해스톤 주연의 ‘행성탈출’이었다. 전자의 작품은 혁명의 실패에 관해 기술된 영화로 인간의 삐뚤어진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었다. 그에 반해 행성탈출은 이기적인 인간의 말로와 혁명의 성공을 다룬 걸작이었다.

12 thoughts on “Animal Revolution

  1. J준

    30분 가량을 정신을 놓고(-_-) RSS를 읽어 내렸습니다. 근래 본 단편 SF 중에 가장 재미있게 봤습니다. 대단합니다.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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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oog

    학대받는 동물에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부여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스위스에서 7일 실시됐다. 인간으로부터 학대받는 동물이 특별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가 지금까지는 유일하게 취리히에서만 인정됐지만, 이날 국민투표에서 이 안건이 가결되면 스위스 내 모든 칸톤(州)에서 동물의 변호사 조력권이 인정된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3/07/0200000000AKR20100307064700098.HTML?source=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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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책상머리 앤

    앞 부분의 소설이라는 부분을 흘려 읽고는 한참 읽었습니다. 스위스에서 있었던 일을 옮겨 놓은 걸로 착각하면서 읽다가 (포항)이라는 말에 깜놀하여 보니 소설이네요 ^^;;
    정말 오랜만에 재밌는 글을 읽었습니다.
    소설 속 상황이 현실로 재현되더라도… 제발 ㅠ..ㅠ.. 기독교보수당은 현실로 옮겨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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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netics

    푸후후. 마지막 반전이 진진돌이라는 만화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한번 찾아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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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oz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반전이 뒤통수 치네요. 이러다가 공업용 로봇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것도 생기지는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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