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평가 이전 소득(Revenue Before Honest Ra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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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1078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361321

오렌지카운티의 아름다운 경치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카운티는 1994년 재정책임자인 로버트 시트론이 채권투자를 하다가 17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손실을 내고 파산한 경험이 있다. 시트론은 납세자의 돈을 가지고 단순한 재무부 채권이 아닌 구조화 채권을 사들였다. 그가 산 구조화 채권은 기본적으로 금리가 낮게 유지되는데 거액을 거는 방식의 채권이었다. 그는 납세자의 돈 74억 달러에 더해 모두 130억 달러를 더 빌려 2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이 채권에 쏟아 부었다.

그런 상황에서 1994년 2월 4일 연준이 하루짜리 단기금리를 3%에서 3.25%로 올린 날은 오렌지카운티에게는 재앙의 날이 되었다. 당초 앨런 그린스펀은 시장의 여건이 양호하기 때문에 0.25% 정도의 금리인상은 시장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하지만 오렌지카운티뿐만 아니라 수많은 투자자들은 오랜 기간의 저금리의 꿀을 빨아먹느라 정신이 없어 오직 저금리로만 베팅하고 있었고, 약간의 금리인상에도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오렌지카운티 사태에서 월스트리트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투자은행인 메릴 린치는 오렌지카운티에 파생상품을 파는 동시에 오렌지카운티의 신규채권 발행을 알선해주었다. 신용평가사들은 일반적인 AAA등급의 투자대상보다 훨씬 리스크가 큰 구조화 채권에 AAA등급을 부여했다. 덕분에 시트론은 투자지침을 어기지 않으면서 큰 베팅을 할 수 있었다. 투자은행과 신용평가사에게 오렌지카운티는 봉이었다.

오렌지카운티에 구조화 채권을 팔았던 투자은행들도 소송 해결을 위해 수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오렌지카운티는 신용평가회사 에스앤피의 모기업인 맥그로-힐 컴퍼니스(McGraw-Hill Companie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에스앤피는 자사의 신용등급 평가 업무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의사표현의 자유(free speech)에 해당된다고 항변했다. 담당 판사인 게리 테일러는 “에스앤피의 신용평가는 수정헌법에 의해 보호된다”고 판결해 에스앤피의 주장을 받아들였다.[전염성 탐욕, 프랭크 파트노이 지음, 이명재/이주명 옮김, 필맥, 2004년, p289]

이 기막힌 소송결과는 월스트리트, 특히 신용마피아라 불리는 신용평가사들에게 완벽한 면죄부를 주는 결과다. 신용사회의 신용에 정량적인 등급을 매기는 행위를 “의사표현의 자유”로 본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의 변호인의 논리에 따르면 신용평가사들은 언론(press)기관에 해당하고, 따라서 ‘언론의 자유를 약화시키는 법을 제정하면 안 된다’는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이 주장이 옳은 주장이려면 신용평가사들은 ‘언론기관’이어야 하고 그들의 ‘평가(rating)’행위는 ‘출판(publishing)’행위여야 한다. 그러한 주장의 합당성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신용평가사와 전통적인 의미의 언론기관이 가지는 위상과 역할, 그리고 그들의 개별행위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오렌지카운티 사태 당시 법정은 신용평가사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후 엔론 사태 등 유사사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에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지난해 9월 美법정은 일련의 투자자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대한 잘못된 신용평가로 손해를 입었다며 신용평가사들에게 제기한 소송이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다는 무디스와 S&P의 주장을 묵살한 것이다. 판사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의견이 공중이 아닌 선택된 투자자에게 “사적으로 배포된(distributed privately)” 것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물론 사안에 따라 신용평가사는 언론기관의 역할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즉 언론과 비슷하게 사회에 경고음을 울리고 잘못을 시정할 수 있도록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허다한 금융사고에서 보듯이 때로 신용평가사는 시장의 잘못을 알리기보다는 오히려 그 잘못에 동참하여 그것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 행위를 통한 이득을 ‘정직한 평가 이전 소득(revenue before honest ratings)’이라 부르기도 한다.

읽어볼만한 글 : Why the First Amendment Does Not Shield the Rating Agencies From Liability for Over-Rating CDOs

7 thoughts on “‘정직한 평가 이전 소득(Revenue Before Honest Ratings)’

  1. sonospace

    흠 흥미롭군요. 그럼 신용평가회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로 자기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따라 신용평가를 싸지르면 되고, 거기에 낚인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보더라도 그건 거기에 낚인 투자자들 잘못이라는 말? 그럼 대체 신용평가회사가 왜 있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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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모든 신용평가보고서는 피평가자들이 제공하는 자료 한도 내에서 평가한 것이며 이에 따른 정보이용에 대한 손실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박혀 있습니다. 어찌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비슷하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회계법인의 경우 분식회계가 드러나면 공인회계사 개인의 재산까지 추징해버리는 것에 비교하면 언뜻 이해가 안가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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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pc

    “신용평가사들은 일반적인 AAA등급의 투자대상보다 훨씬 리스크가 큰 구조화 채권에 AAA등급을 부여했다.” 어의 없는 표현이네요. 구조화채권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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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어떤 점에서 어이가 없으신가요? 일단 문맥 상으로 볼 때 제가 말한 구조화 채권은 구조화 채권 일반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오렌지카운티가 매입한 채권에 관한 이야기라는 전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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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ryuhda

    위 SPC님, 님이야말로 구조화 채권과 구조화 상품을 혼동하시는 거 아닌지? 구조화 채권에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왜 어이없는 표현인지요? ELS, ELD 같은 구조화 상품에 등급이라면 또 모르지만…. CDO같은 구조화채권에 트랑쉐별로 메자닌, 에쿼티,, 얼마든지 등급부여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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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Pingback: “장기 성과에 따른 보수 체계”가 금융위기의 해법일까? | fo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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