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 다국적 기업이란 무엇인가?

다국적(또는 초국적) 기업이란 순수하게 일국 내에서만 비즈니스를 영유하는 기업과 달리 한 나라 이상의 지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회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이러한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6,3000개에 달하며, 이들이 전 세계 거래의 3분의 2와 투자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화’의 무대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제적인 존재이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지구적인 규모에서 그들의 거대한 사업을 일구어나가고 있으며, 가장 큰 다국적 기업의 연간 매출은 많은 개도국들의 총생산 규모를 초과하고 있다. 일례로 General Motors의 매출은 노르웨이의 총생산을 상회하며, Ford의 매출은 남아프리카의 총생산을 넘어섰으며, Shell의 매출은 나이지리아의 총생산의 두 배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00개의 경제주체 중에서 51개가 기업이고 나머지가 국가이다.

다국적 기업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그래서 이들은 각국의 정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수립하게끔 로비를 할 수 있는 힘을 집결시킨다. 국제상공회의소(the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유럽 기업가 원탁회의(the European Roundtable of Industrialists) 와 같은 단체들은 상거래와 투자와 관련한 지구적인 정책에 가장 많은 영향을 행사하는 단체들이다.

■ 국민국가와 국제기구, 다국적 기업들의 개?

이들 다국적 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관세없는 자유무역이다. 80년대 신보수주의 정권의 비호 아래 수많은 적대적 M&A를 통해 몸집을 불려왔던 이들 기업들에게 이제 일개 국민국가라는 옷은 더 이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서방의 정부들은 이러한 다국적 기업들의 전방위적인 영향력 행사에 대해 그들에게 상당 부분의 권한과 역할을 줌으로써 호의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오늘날 수립된 수많은 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이 지난 몇십년간 이들 그룹의 로비에 의해 입안되고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에 마냥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차원에서만 대응하고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과거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형태로 국가를 운영해왔던 여러 서구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의 본거지가 이들 국가들인 관계로, 다국적 기업의 관능적인 브랜드를 등에 업고 그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국제경제를 그들의 국부(國富) 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본가들 자신이 집권세력이 되어 기업편향적이고 반환경적인 정책 입안, 경제적 이해를 위한 전쟁도발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정의를 부르짖고 있는 국제기구들도 다국적기업의 대변인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가장 주도적인 개입형태는 WTO(the World Trade Organization)이다. GATT와 우루과이 라운드의 결과로 정비된 이 기구는 전 세계의 자유무역을 위하여 자유주의적 정책을 관철시키고 동시에 거래의 자유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WTO와 함께 또 다른 대표적인 자유무역 전도사로는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와 세계은행(World Bank)이 있다. 이들 두 단체는 선진국에서 추렴된 돈을 미끼로 무역규제가 심한 개도국들을 무장해체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무엇이 자유무역을 가능하게 하는가?

아무리 다국적 기업들이 일국내 무역을 뛰어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여 좀더 많은 이윤을 남기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몇 가지 전제조건이 없었다면 적절한 이윤창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선 첫째로, 통신기술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전 세계를 초단위로 묶어내는데 성공하였고 이로써 전 세계 자본거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둘째로, 운송비용의 인하를 들 수 있다. 해상운송비용은 지난 20년 간 70% 정도 인하되었다. 따라서 이제 관세장벽만 철폐하면 제반조건은 대충 마련되는 셈이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과 운송요금의 인하는 자본주의 초기단계에서 자유무역의 전제조건을 연상시킨다. 당시 도시간 거래의 활성화의 기초에는 철도, 도로 등 인프라스트럭처의 급격한 양적 팽창을 통해 가능하였다. 당시 기업들은 국가로 하여금 인프라스트럭처를 국가의 세금으로 짓도록 강제하였고 미국의 경우에는 기업들이 직접 나서서 전국단위의 철도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이 철도기업이 건설한 철도 노선을 따라 버팔로 사냥 투어를 상품으로 내놓은 사실은 유명하다.

■ 역사의 반복

또한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은 과거 자본주의 초기단계에서 길드(Guild)의 성장과 안전을 보장하던 도시경제권을 해체시켰던 국민국가의 폭력성을 연상시킨다. 길드가 도시 내에서 제조업 장인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이해단체이며 필연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는 보수적인 집단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점이긴 하나, 이들 길드가 상층 장인들과 직인들로 분열되고 길드들 사이에 우열이 나눠지기 이전에는 조합원들의 이해관계 관철과 더불어 상품의 질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고 나름의 사회적 연대를 보장해주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강력하게 성장한 상업자본은 길드의 존재가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있어 불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전제적 군주와 한통속이 되어 폭력적으로 도시경제를 해체시키고 국민국가의 성장을 강력하게 견인하였다. 이러한 역사극의 주연들은 국민국가의 틀 내에서 국민들의 복지와 국내산업을 보호해왔던 개도국 정부와 이를 깨부수려는 다국적기업과 선진국들, 그리고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제기구의 모습과 근사하게 중첩된다.

국민국가의 형성과 자유무역의 증진이 윈-윈 게임이 아닌 상업자본을 위한 제로섬게임이었듯이 세계화와 국제간 거래의 자유 증진은 또 하나의 거대한 제로섬게임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승자는 다국적 기업과 선진국의 집권세력, 패자는 개도국과 전 세계(선진국이나 개도국 구분 없이)의 하층계급으로 나뉘어져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개도국 정부들은 ‘비열한’ 게임의 법칙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국가를 세일즈 하는데 앞장서는 한편 그나마 가능성 있는 자국의 산업 분야의 덩치를 키워 다국적 기업에 대항하려 하고 있다.

■ 국가 세일즈 성공할 수 있을까?

경제자유구역, 기업하기 좋은 환경, 귀족노조, 노동3권 약화, 국가경쟁력…. 이러한 단어들은 한 나라의 경제규모를 넘어선 다국적 기업들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사탕발림들이다. 오늘날 다국적 기업의 존재 앞에서는 권위주의적 정부이건 자유주의적 정부이건 간에 비위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나라가 지구경제권이라는 폭주기관차에서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정부는 동북아 지역단위의 맹주들을 묶어 서구 중심의 자유무역의 공격으로부터 대항세력을 키우고자 하는 의지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중국의 맹렬한 경제성장과 지역 헤게모니 획득의도,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일본의 저항, 양국의 군사대국화, 북핵 문제, 상대적으로 뒤쳐지고 있는 한국의 외교적 혹은 경제적 위상 등으로 말미암아 그 앞날이 쉽지만은 않을 듯 하다. 한편으로 FTA 등을 통한 신자유주의 편입시도 역시 FTA가 지니고 있는 계급편향적인 본질로 인해 국내 진보세력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대답은 쉽지 않다. 다국적 기업, 미국의 매파 정부, 이들을 변호하는 국제기구의 존재 등은 속된 말로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겁먹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이다. 하지만 결코 길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미 전 세계 진보세력과 일부 개도국들은 서로 힘을 합쳐 몇 번의 WTO 회의를 무산시키고 일정 정도 양보를 받아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강자의 자유에 맞서 약자의 자유를 얻어낸 소중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과 성과를 어떻게 엮어내어 진정한 대항세력을 성장하는가가 향후의 주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부와 의회, 자본가들은 알량한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하는 기대감에 국내 진보세력이나 여타 비동맹의 성격을 지닌 국가들과 연합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푸들 노릇이 성공할 수 있을까? 세계 500대 기업에 우리나라 기업이 13개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그네들 생각의 자유이고 그러한 사실이 우리나라도 언젠가 다국적 기업을 등에 업고 선진국(?)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대시키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도 필자 생각의 자유이지만, 그러한 국제간 경쟁의 냉혹함을 빌미로 형식적 민주주의의 역사적 성과를 무위로 돌리려고 시도한다면 이것은 형식적 자유나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적 대립과 계급투쟁의 문제가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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