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길

얼마 전 폴 크루그먼이 자신의 뉴욕타임즈 블로그에 “내일의 칼럼을 위해서(For tomorrow’s column)”라는 짧은 멘트와 함께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히트곡 Road To Nowhere의 뮤직비디오를 올려놓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인지라 반갑기도 했고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칼럼을 찾아 읽어보았다. 짐작대로 그의 글은 도로, 교육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는 미국 정부가 제 갈 길을 잃어가고 있다는 중의(重義)적인 의미로 ‘길(road)’을 언급한 것이었다.

칼럼에서 크루그먼은 미국이 한때 이리(Erie) 운하나 주간(州間) 고속도로 등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기반시설에 많은 돈을 투자하여 전 세계를 매혹시켰는데, 이제 지방정부들이 예산절감을 위해 유지관리에 돈이 드는 도로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없애고 있으며, 중앙정부는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두고 “미국은 이제 가로등도 꺼져 있고 포장도 안 된 목적지도 없는 길 위에 놓여있다(America is now on the unlit, unpaved road to nowhere)”고 묘사했다.

케인지언으로서 당연하게도 그는 정부가 사상 최저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도 이렇듯 재정난을 핑계로 투자를 꺼리는 것은 단기적으로 경제를 악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주장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한편으로, 뜬금없이 크루그먼이 언급한 그 도로의 경제사적 또는 도시계획사적 의미에서 대한 잡념이 생겼다. 그가 공공서비스로써 당연히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도로가 어떻게 발전해왔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등에 대한 여러 잡념들 말이다.

도로는 철도와 함께 문명의 현대화를 이끈 원동력 중 하나였다. 서구 자본주의 초기, 도시는 주로 철도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성장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졌고 그 뒤를 자동차도로가 이었다. 즉, 20세기 초 미국에서 포드의 모델 T와 같은 자동차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르꼬르뷔제와 같은 도시계획가가 담대하게 제안한 격자형 고속도로 체계와 같은 초안이 ‘고속자동차도로(motorway)’ 등으로 실현되며 대도시와 도로로 연계되는 교외단지가 새로이 형성된 것이다. 그 선두주자는 당연히 미국이었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공급능력과 소비력, 넓은 영토, 개인 운송수단을 선호하는 소비성향, 스스로 주요 산유국이면서도 해외에서 나는 석유를 석유 메이저를 통해 값싸게 확보할 수 있는 능력 등 높은 마천루와 쭉 뻗은 고속도로의 쾌적함을 누릴 자격을 충분히 갖춘 나라였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다른 나라보다 앞서 오랜 동안 승용차로 중산층 교외 주거단지에서 몇 키로 떨어진 도심의 직장에 다니거나 쇼핑센터에서 구입한 물품을 차 한 가득 싣고 와 소비하는 문화에 익숙해져왔다.

이와 같은 현대 도시의 풍경은 20세기 초 거대도시와 과학기술에 매료된 도시계획가들이 꿈꾸는 세계였다. 일례로 르꼬르뷔제는 도시는 하나의 기계와 같아서 곡선이 될 여지가 없다며 미국의 고층건축과 자동차 사회, 그리고 직선의 고속도로를 찬양하였다. 사상가들의 이러한 영감, 경제력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된 각국 의사결정권자들의 호응, 그리고 개발업자의 교외단지 개발이나 도심 재개발을 통한 수익추구 행위 등이 뒷받침되어 결과적으로 오늘날 세계 주요 대도시는 대부분 미국의 대도시 풍경을 닮아 있다.

그런데 오늘날 경제위기로 인해 바로 미국에서 그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한다. 미국인에게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차들이 중고시장에 나오거나 압류 당하고, 또는 차주인 스스로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운전을 자제한다. 주택이 압류당해 교외단지는 텅 비어가고 있다. 거기에 크루그먼이 지적했듯이 기존의 도로는 노쇠해졌고 심지어 없어지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직주 기능이나 소비기능이 넓게 분산되어 있는, 거기에 대중교통망이 의외로 발전되어 있지 않은 미국형 도시구조에서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즉 직장, 주거, 상업 등 각각의 기능이 거리가 떨어진 용도지역에 집단적으로 배치된 상황에서 그것을 이어주는 주요수단이 승용차를 몰고 다녀야 하는 고속도로인데, 그 기능이 마비된다면 도시의 기능이 둔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때 그 풍경은 이상적인 도시계획과 고도의 물질문명, 그리고 미국식 개인주의의 이상적인 결합을 상징했지만, 오늘날 그것은 그 쇠퇴해가는 물질문명의 영향을 받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미국식 조닝(zoning)의 시대적 한계랄 수 있다.

US 131, M-6, 68th St interchange.jpg
US 131, M-6, 68th St interchange” by Michigan Department of TransportationMichigan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한편 이런 조닝과는 다른 좀 더 실험적인 시도가 다른 경제체제에서 있었다. 니콜라이 밀루틴이라는 소비에트 도시계획가가 주창한 ‘선형도시(linear city)’형의 스탈린그라드 계획이 그것이다. 이 계획은 철도, 공업지구, 녹지대, 주거지구 등이 샌드위치처럼 선형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형태다. 즉, 이 도시는 각 기능이 떨어져 있던 현대의 전형적인 도시와 달리 직장과 주거가 녹지를 사이에 두고 길게 선형으로 계획되어 있다. 그리고 도시는 이렇게 좌우로 계속 같은 패턴으로 뻗어가면서 커간다.

이 계획은 원래 스페인의 건축가 아르뚜로 소리아 이 마타가 1882년 제안한 선형도시 개념이 원형이다. 이 제안은 산업발달에 따른 화물수송 등의 도시적 요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하는 목적이었다. 마드리드 일부, 앞서 말한 스탈린그라드 등 몇몇 도시에서 실험적으로 시도되었던 이 방식은 “도시 없는 도로”인 고속도로가 도시와 도시, 도시와 농촌을 잇는 방식과 달리 계속 각종 기능을 도로 옆에 배치하며 도농 통합으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도시 발전방식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시 밀루틴으로 돌아가 그는 소리아의 선형도시 개념을 활용해 사회주의적인 ‘직주근접의 계획원리’를 구현하려 했다. 즉 공장과 완충녹지를 사이에 두고 배치된 주거지에 기거하는 노동자는 직장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편하게 출퇴근을 할 수 있다는 원리다. 이 계획의 단점은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선형도시가 계속 확산되면서도 직주근접이 되고자 한다면 물적 계획뿐 아닌 직장과 주거의 계획적 배치와 같은 완고한 사회계획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기에 자본주의적 자유 개념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굳이 선형도시를 언급한 이유는 이제 미국식 도시구조는 낡고 비효율적이니 대안으로 선형도시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하면 다른 대안이 고려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애초 우리는 도심을 둘러싸고 원형으로 확산하는 도시, 그 도시들을 잇는 고속도로를 당연시하고 있지만 그러한 모습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십 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좀 더 다양한 꿈을 꾸었다.

물론 폴 크루그먼의 주장대로 당장은 생산성 향상 및 생활의 편의를 위해 교통시설 등 기반시설을 짓고 잘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당연시되는 그러한 시설들의 수요발생 원인과 문제점을 따지고 들어가 그 구조적인 개선을 관찰해야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우리가 기본 상수로 여기고 있는 도로와 자동차와 같은 스톡들도 그것의 적정선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검증된 근거는 없다. 크루그먼도 모를 것이다.

물론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의 비정상적인 작동이 도시와 그 교외의 모습을 단숨에 바꿔놓지는 않을 것이다. 물적 계획은 단기간에 실현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처럼 오랜 변형을 거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 에너지 위기가 서구 도시의 대중교통망 확충으로 이어졌듯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있을 것이다. 자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 부동산 시장의 질적 변화, 그리고 교통에 대한 새로운 고민 등 시대적 요구로 인해 현대도시들은 새로운 철학적 고민을 떠안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사실 개인적인 의견으로 Road To Nowhere는 폴 크루그먼이 생각했던 비관적인 의미가 아니라 ‘이상향을 향한 길’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노래다.

4 thoughts on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길

  1. contender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느낀 건 한국이 정말 도로나 대중교통 관리를 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차량문제와 운전등을 관리하는 DMV라는 곳이 있는데 심지어 이 주위마저도 길이 정말 더럽습니다. 대중교통도 한국보다 불편하고 더럽고요. 이것이 돈이 없어서 그 길을 다시 관리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규모가 워낙에 커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지금은 길은 더러운데다가 캘리포니아가 워낙에 돈이 없으니 경찰들이 필사적으로 벌금 티켓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ㅎㅎ

    Reply
    1. foog

      물론 땅이 넓다는 이유때문에 여러가지 장단점이 있겠지만 여하튼 미국식 국토계획은 이제는 어느 정도 시스템적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몇 해 전부터 interstate 철도를 부지런히 꺼내보더니 요즘은 좀 잠잠하네요. 제 생각엔 하루라도 빨리 전국망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정비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암튼 경찰님들 뭡니꽈.

      Reply
  2. 김기동

    정말 좋은 글이네요. 친구가 도시공학과에 다녀서 이런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접하는데
    선형도시는 완전한 대체적인 수단이라 할 수 없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는 거 같습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Reply
    1. foog

      맞습니다. 물론 절대 대체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고의 방향을 바꿔주는 데에 의미가 있겠죠. 새로운 도시계획은 여태의 한계와 시행착오를 개선해주는 그런 멋진 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Reply

Leave a Reply to 김기동 Cancel reply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