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동전 둘레에 금이 새겨져 있을까?

다들 아시겠지만 동전의 옆면, 즉 둘레를 보면 톱니모양으로 금이 그어져 있다.(10원 미만의 동전은 예외지만) 그런 것 생각해본 적 없다는 분은 지금 한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 옆을 슬쩍 긁어보시라. 까칠까칠한 것이 느껴지실 것이다.

여하튼 이 금이 왜 그어져 있을까?

일단 주화의 둘레를 깔쭉깔쭉한 톱니모양으로 새기는 공정을 밀링(milling) 또는 리딩(reeding)이라고 하며 17세기 중반에 처음 도입되었다 한다. 이것은 돈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심과 이에서 비롯된 오래된 눈속임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누구의 어떤 속임수?

사람들이 시장에서 상품을 교환하기 시작하면서 화폐는 교환의 매개기능을 수행하였다. 시장참여자들은 다양한 물건들을 화폐로 쓰기 시작하였는데 그 종류는 조개, 소금, 소, 돌, 심지어 담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그러나 가장 인기있는 화폐수단은 금과 은에게 맡겨졌다. 이 두 귀금속은 희소성, 주조와 측정의 용이성 등으로 말미암아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인기 있는 화폐수단이 되어 왔다.

금과 은이 화폐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많은 나라에서는 주조된 금속 조각에 군주의 인장이나 얼굴을 새겨 넣어 그 주화의 중량과 순도를 보증하였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주화의 중량을 재지 않고도 주화에 쓰여 있는 숫자로 거래를 함으로써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중량에 의하지 않고 액면이나 액수에 의한 지불방법은 부작용을 낳았다. 즉 약삭빠른 이들이 깎아내기(clipping : 동전의 면이나 가장 자리를 깎아 금속 조각을 얻는 짓)와 땀내기(sweating : 가죽가방 속에 여러 개의 동전을 집어넣고 흔들어 떨어지는 가루를 모으는 짓)와 같은 주화 훼손 행위를 저질렀던 것이다.

이렇게 실제 액면보다 중량가치가 떨어지는 금화나 은화는 다른 거래자에게 넘겨지게 되고 주화를 훼손한 이는 그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이치다. 물론 이러한 행위들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었고 그 위반자는 거의 반역죄에 버금가는 처벌을 받았다.(주1) 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성행했다. 돈이 되니까.(주2)

여기서 우리가 많이 들어본 법칙 중 하나인 ‘그레샴의 법칙’ 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두 개의 동전이 있으면 그 중 가벼운 동전을 쓴다. 이 동전들이 바로 ‘깎아내기’와 ‘땀내기’ 공정을 거친 동전으로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무거운 동전은 사용하지 않게 된다. 바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다.

여하튼 ‘깎아내기’와 ‘땀내기’를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가 바로 밀링이다. 동전 둘레에 그렇게 톱니모양을 만들어놓으면 동전이 손상되었다는 사실을 금방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주3) 톱니모양의 무늬를 넣는 대신 동전을 꽃모양으로 만든다거나 가장자리에 글자를 새겨 넣는 방법도 사용되었다.

어쨌든 오늘날은 더 이상 금화를 동전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태여 동전을 깎느라 고생을 사서 하지 않는다. 하지만 톱니모양의 동전은 마치 꼬리뼈가 남아있는 인간처럼 여전히 우리의 주머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p.s. 갑자기 정치인들 얼굴에 밀링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이들 얼굴이 얼마나 두꺼워지는지 금방 알 수 있지 않을까?

 

(주1) 1690년 10월 15일 영국에서 Thomas Rogers 와 Anne Rogers 부부는 은화 40개를 깎아냈다는 혐의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Thomas Rogers 는 목 매달리고, 내장이 꺼내지고, 사지가 사등분 당하였다. Anne Rogers 는 산채로 화형 당했다.

(주2) 사실 화폐주조자 자신들이 이런 좀도둑들보다 훨씬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화폐의 금속함량을 속이거나 편리하게 화폐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통치령을 내림으로써 자신들의 낭비벽으로 텅텅 빈 사금고를 다시 채우곤 했다. 아르키메데스가 이러한 유의 장난질 때문에 얼마나 고심했는지는 다들 알 것이다.

(주3) 하지만 이 처방 역시 ‘땀내기’만큼은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단점도 있었다.

4 thoughts on “왜 동전 둘레에 금이 새겨져 있을까?

  1. 작은인장

    제가 알고 있는 이유랑 조금 다르네요. 저도 언제 한번 글을 작성해 봐야겠네요. ^^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비슷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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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네 다른 이유가 있다면 저도 공부가 되게끔 한번 시간내셔서 포스팅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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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예전에 이런저런 도메인을 몇 개 등록한 적이 있는데 그때 등록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잽싸게 등록했습니다. 나름 깔끔한 도메인이라서요. 언젠가는 써먹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블로그 시작하면서 써먹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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