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증하는 신용위기, 침묵의 카르텔은 언제 깨질 것인가

최근 며칠간 대부분의 언론이 오늘 치러지는 대선에 온통 집중해있지만 오히려 필자의 눈길을 끄는 기사는 따로 있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에서 신용위기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를 인용한 각 언론들의 기사가 그것이다.

일단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의 신용위기가 높은 국가로 지명한 주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한국은 호주를 제외하면 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시중은행들의 대출자산이 예금자산보다 훨씬 많은 국가다. 나머지 아시아 국가 시중은행들의 대출/예금자산 비율이 60~80%인데 비해 한국은 130%에 이른다.

2) 이런 상황에서도 예금자산이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시중은행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이전투구 양상을 나타내고, 3개월 코리보(국내 은행간 금리)가 3년래 최고치에서 움직이고 있다.

첫 번째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느 것이 원인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주된 이유는 최근 몇 년간의 금융자유화, 그리고 부동산 시장 폭등과 무관하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은행들은 하나둘씩 민영화되었다. 위정자들은 이것이 관치금융의 관행에서 벗어나는 경제민주화라고 추켜세웠다.(주1) 여하튼 이 과정에서 상당수 시중은행이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다. 그리고 이들 은행들이 그 시기와 맞물려 경쟁적으로 가계대출을 늘리기 시작했다. 물론 국내은행들도 이러한 레이스에 적극 동참하였다. 상당수의 자금은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갔다. 주택담보대출, 모기지 대출, 부동산PF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이 전체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기형적일 정도로 높은 것이 현실이다.

두 번째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 역시 금융자유화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주식펀드의 폭발적인 성장세와 이에 대한 시중은행들의 안일한 대처도 한 몫하고 있다.

즉 금융자유화로 인해 세계금융은 메뚜기 떼처럼 무정형 적이고 거대한 규모로 움직이는 투기자본의 존재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다. 또한 주식펀드의 대규모화(주2)는 시중자금의 블랙홀이라 할 만큼 지나치게 비대해져버린 측면이 있다. 그리고 현재의 한국 금융의 유동성 위기는 가뜩이나 은행예금이 주식펀드로 몰린 상태에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국내의 외국계 자본의 채권투매현상에서 촉발되었다. 이어 정부의 해외 차입 제한 조치 등으로 인해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리게 되었다. 이에 실제로 국내 메이저 은행 중 하나가 얼마 전 지급준비금을 확보하지 못하여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 적이 있다. 기업으로 치면 부도사태다.

대처방안은 무엇인가?

대출금을 서둘러 회수하여야 한다. 시중에 비정상적으로 풀린 돈이 아직도 분양도 되지 않는 부동산 시장에서 비정상적인 호가를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그 회수과정은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 아닐까 예상된다. 억울한 피해자도 발생할 것이다. 어쨌든 언제까지 금융권, 건설업체, 주택소유자의 암묵적인 ‘주택 인플레이션 카르텔’이 존속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 카르텔에 주요 언론도 한 몫하고 있다. 지금도 전면광고로 부동산 분양 광고를 싣고 무슨 지구의 분양에 주목하라는 낚시 기사를 내는 언론들의 행태를 보라.

그다음으로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방안에 대한 내부적 강화, 더 나아가 제도적 장치가 도입되어야 한다. 이미 내년부터 대출시 적용되는 새로운 기준인 바젤2 가 도입되지만 이마저도 시중은행에서 제대로 된 시행계획을 세우지 못하여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묻지마’ 대출로 말라버린 자금 확보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양도성 예금증서를 발행해서 결과적으로 대출 금리를 상승시킨 행위는 좀 뻔뻔스럽지 않은가?

사실 뾰족한 대처방안을 이 글에서 제시하고픈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대처방안이야 시중은행의 대출창구 내지는 임원회의에서 알아서들 하실 일이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들의 안이함으로 발생한 위기를 정부의 선심성 대책으로 풀어달라든지 – 지금도 전매제한 철폐로 미분양 위기를 돌파하자는 저 돌격대식 언론의 모습을 보라 – 또 다시 ‘묻지마’ 대출상환으로 서민금융을 파괴하는 짓이 되풀이될까봐 그것이 걱정된다.

그리고 또 하나 화가 나는 것이 있다.(사실 당연한 일이어서 그냥 헛웃음만 날 일이지만)

왜 국내언론은 지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이면서도 한마디 말도 안하고 있다가 저 바다 건너 멀리 영국의 언론 파이낸셜타임즈가 신용위기 가능성을 기사화하자 이 기사만 넙죽 받아다 기사화하느냐 하는 가 말이다.

기사화 능력이 없는 것인지 기사화 의지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요 경제지와 주요 언론의 경제면은 실제 발생하고 있는 경제위기에 원인과 대책에 대한 분석은 고사하고(주3) 틈만 나면 정부규제 철폐와 노동유연성 강화만 외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철폐하고 해고를 자유롭게 하면 이런 신용위기가 모두 해소되리라 낙관하는가보다.

여하튼 이 무서운 침묵의 카르텔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나라도 지금의 미국처럼 금리를 동결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도달하여야 정신을 차릴까 싶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우리나라는 그 정도 시기까지 버티지도 못한다. 미국은 달러라는 기축통화가 있기 때문에 지금 그야말로 생억지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우리가 지금 더욱 심각한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부정부패 대통령 안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여하튼 이러한 위기에 대해서 이 ‘침묵의 카르텔’은 제대로 된 경고음(그나마 미약한 경고음)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1) 바로 ‘좌파’ 정부라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10년간의 공적이다.

(주2) 이 주식펀드도 최근 점차 해외의 악명높은 헤지펀드와 비슷한 행태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 금융권에서도 국산 헤지펀드의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주3) 대개 그저 미분양 사태나 부동산PF 대출 연체 등의 현상만 나열할 뿐이다.

8 thoughts on “점증하는 신용위기, 침묵의 카르텔은 언제 깨질 것인가

  1. 이정환

    우리도 미국과 비슷한 딜레마에 놓여 있는 셈인데요. 인플레이션(스태그플레이션)을 잡고 유동성 과잉을 해소하려면 금리를 올려 긴축을 해야 하는데 신용 위기 우려 때문에 동결하거나 한편에서는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저도 잘 판단이 안 서는데요. 한편으로는 은행의 위기를 과장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고. 은행의 위기가 모럴 해저드일 뿐이라면 이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만큼 금융 공공성 확보가 절실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은행의 위기가 단순히 은행의 위기로 끝나는게 아니라 미국의 경우처럼 결국 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쪽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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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예전에 한국은행이 저금리 기조로 일관하면서 세금정책으로 부동산 잡으려 할 때 금리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기어코 올리지 않더군요. 다른 정책도 마찬가지지만 금리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금리정책은 기름에 불붙는 격이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 특히 유동성의 문제는 보다 깊은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이미 시중자금은 전혀 새로운 자금창구 주식펀드에 상당액이 물려 있는 상태라는거죠. 3~4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시중유동성의 핵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하튼 전통적인 금융정책 이론이 먹혀들지 않을만큼 최근 몇 년간 금융시장이 극도로 복잡하게 변화를 겪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 시장참여자들조차 감을 잡지 못할 정도로 – 혐의만 두고 있습니다.

      물론 변치 않는 것은 그 해소과정이 연착륙이 되었든 경착륙이 되었든 채권자의 채권손실은 고스란히 보전되어야 한다는 철칙이 되겠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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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oog

      “은행의 위기”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물론 경제지의 일부기사들이 엄살성이 있는 것도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중자금이 급격히 금융권을 이탈하고 있고 이에 따라 채권금리가 오른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에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고요. 이와 더불어 은행들이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과 함께 투자은행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현재의 혼란에 한몫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PF인데요. PF라면 엄연히 리스크분석을 통한 limited recourse금융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PF는 완전한 차주담보를 확보해놓은 상태에다 PF란 단어만 덧칠해놓은 거나 진배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다보니 현재 부실업체에 대한 PF대출이 급증했고 특히 저축은행쪽의 부동산PF 연체율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 급증한 부동산PF가 현재의 금융권 유동성 위기를 부추킨 것이라 볼 수 있죠.

      이러다가 “선진국형의 투자은행”은 고사하고 전통적인 여신기능마저 마비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만 … 또 우리나라가 세금으로 땜빵을 하더라도 부도는 잘 안내는 나라아닙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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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정환

    저도 잘 판단이 안 섭니다. 금융기관이 공공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부실의 책임도 직접 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투기 열풍의 막차를 탔던 그들만의 위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무책임한가요? 미국의 서브 프라임 론과 달리 우리나라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사실 민중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또 지원을 해줘야 하는 걸까요? 좀 취재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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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당연히 금융기관이 공공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으면 자신들이 책임을 지는 원인자부담원칙이 적용되어야 하지요. 하지만 기업이 사익을 극대화하다가 곤란을 겪게 되면 책임을 지라는 이야기는 결국 내부의 칼바람 구조조정이든지 대손상각에 따른 이익감소.. 뭐 이런 것들이겠죠. 시범케이스로 은행장 한두명 갈려도 나머지 임원들에게는 죄를 묻지도 않고,, 미국이 현재 서브프라임에 대해 그렇게 하고 있고요.

      결국 그들만의 리그라고 치부하면 되는가 하는 문제인데 문제의 기저에는 전세계적인 묻지마 대출을 통한 경기부양, 이를 통한 금융부실이 현상이고 현상의 원인은 금융자유화(내외부적으로)에 따른 자본이동의 무정부성이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의 금융억압이 있지 않고서는 나머지는 다 대증요법 정도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막말로 은행을 다시 국가가 접수하던가 사회가 통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금융은 경제의 핏줄이니까 망해도 혼자 망해라 논리가 잘 안통하는 기능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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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foog

    다음 글은 chlwogur님의 레몬펜 공개 쪽지에 대한 답글입니다.

    chlwogur님 원글
    혹시 신뢰할만한 통계자료가 있을까요?
    국정브리핑에 따르면 “GDP대비 주택담보대출비율이 약 35%”이라고 하는데 이를 받아들일 수 있으신지 또한 해당 수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답글
    여러 통계자료를 모아서 비교분석해보아야겠지만 한국은행, 재정경제부 등 관련 부처의 자료실에서 어느 정도 자료를 찾아볼 수는 있겠죠. 찾아보니 대충 현재 예금은행 기준으로 대출금액이 산업대출이 400조원 가량 되고 가계대출은 350조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택담보대출은 219조원 가량 된다고 하니 우려할 수준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GDP가 2006년 800조 정도 되니 대충 비율은 맞는 것 같습니다만 flow(GDP)와 stock(주택담보대출)을 비교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오늘자 매경의 다음 기사를 보니 주요수치가 여러개 나오는군요. 참고바랍니다.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7&no=69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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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Jayhawk

    답변감사합니다. 요약하자면, [부동산 담보대출의 현실은(219조원) 우려할 수준이며, GDP대비 저수준(35%)은 큰 의미가 가질수 없다] 이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특성(가계 재무구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월등한 비율 고려)에 맞는 적정한 주택담보대출의 비율은 어느 정도가 될까요?

    제가 예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부채에 대한 생각 중 다소 신뢰할 만한 부채는 담보부채였는데,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를 확인한 후 부터는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담보부채도 좀더 보수적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고쳐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는 파생된 상품의 차입에 대한 손실이 가장 큰 요인으로 (제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어, 이에 비해 파생된 추가부실이 비교적 드문 국내 모기지의 경우(+ 부동산PF 포함)는 그 부실인식에 대한 판단에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막연한 우려는 공포를 낳는 것이 아닐지… 카드사태 -> 부동산 담보대출 사태로 이어지지 않아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불확실성이 제거되었으면 하는군요.

    사족. 아. 레몬펜을 사용한 이유는 [1. 해보고 싶어서, 2. 편하게 저장해 놓고 싶어서] 입니다. 괜찮은 편이군요. Alert 기능 같은게 있으면 더 좋겠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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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적정 담보비율이라는 것도 참 답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를테면 ‘적정 외환 보유고’가 얼마냐 하는 물음과 비슷하거든요. 그나마 다른 비슷한 수준의 나라의 대출구조와 비교분석하는 방법이 유효할 듯 하네요.

      담보부채든 PF부채든 사실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즉 Bank Run이 일어났을때 신용위기나 유동성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수준이 적정대출규모일텐데 이게 결국 리스크매니지먼트, BIS비율 등 여러 요소랑 얽혀있겠죠.

      말씀하신대로 막연한 공포가 무섭죠. 그래서 공황이 영어로 panic이겠죠. 🙂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 대출의 특성이 현재 서브프라임 사태를 겪고 있는 미국에 접근내지는 그것에 초과하는 위험싸인이 켜진다면 그것은 충분히 조심하여야 할 상황이겠고요. 더구나 금융세계화로 인한 장벽없는 자금유출입에 따른 여파는 이번 채권금리 폭등 사태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죠. 이전의 상황과는 분명히 다른 현상이라고 봅니다.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이런 심도깊은 고민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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