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를 보면서 민영화의 본뜻을 곱씹어본다

적어도 인수위 내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조치가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언론은 금감위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들의 몇 개월 전의 강경한 금산분리 철폐 반대 입장에서 선회하여 금산분리 완화에 찬성하였다는 보도를 흘렸다.(주1) 경제신문은 금산분리 완화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철폐”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가지는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인수위 측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금산분리 철폐의 궁극적인 대상은 우리금융지주회사이고 이를 노리는 자는 삼성이라는 것이 통설인데 삼성에 대한 저잣거리의 눈길은 얼어붙을 듯이 싸늘하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허가하면 싱가폴의 테마섹과 같은 외국의 산업자본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인수위는 현재까지는 지난번 이명박 당선자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야기했던 부분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대기업의 참여에 대해서는 일정정도 불이익을 줄 것이고 그 대신 중소기업의 컨소시엄이나 연기금의 참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통해 이러한 주장이 근거가 박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관련기사).

우리금융지주회사와 같은 큰 물고기의 경우 중소기업 컨소시엄으로도 펀딩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고 국민연금 등이 참여할 것 같으면 적극적인 주주행사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 정부는 ‘중소기업 컨소시엄’론으로 일부 지방은행을 떡밥으로 던져주고 궁극에 우리금융지주회사, 더 나아가 산업은행 등을 거대 산업자본의 사냥감으로 던져줄 개연성도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다소 애매한 점이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의 은행소유 론인데 현재 이들 연기금을 산업자본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의아한 점은 왜 연기금,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때만 되면 다 자기들 주머니인양 여기 투자한다 저기 투자한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형식상으로는 국민연금이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하는 대외선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이 돈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치권이 정책집행수단으로 이 돈을 탐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박근혜 씨로부터 ‘연기금사회주의’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주식투자비중과 BTL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높이려 했다. 대외적인 변명거리는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 제고였지만 속셈은 주식시장과 경기부양이었다.(주2)

새 정부가 과연 금산분리를 완화한 후 정말 국민연금이 은행을 소유하게끔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어설픈 점쟁이 노릇으로 굳이 예측해보자면 중소기업 활용론과 국민연금 활용론을 들먹이다가 앞서 경제개혁연대나 박근혜 씨가 주장하고 있는 논리에 물타기를 하며 거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정당화해버릴 수도 있다.

여하간 새 정부의 입장은 현재로서는 참여정부와는 약간 다른 입장에서 국민연금을 바라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의료보험 등과 싸잡아 공적부조에 대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 인수위는 참여정부가 작년에 추진키로 한 실손형 민영의보 폐지정책을 무효화시킬 것을 공언하였다(관련기사). 해당 조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보험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공적연금도 마찬가지 노선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즉 공적연금의 폐지와 민간연금의 전면 확대가 그것이다.(주3) 때마침 기금운용 등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도 극에 달해 있다. 게다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공적연금과 의료보험이 현재와 같은 추세로는 멀지 않은 시기에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관련기사). 그렇다면 시장친화적인 새 정부의 선택은? “골치 아프게 우리가 갖고 있지 말고 민영화시켜버리지!”

금산분리도 넓게 보면 민영화고 의료보험, 우정사업도 민영화하겠다고 한다.(주4) 이러한 민영화 쓰나미(아직 이 표현 쓰기는 좀 그런가?)의 논리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 관료주의, 정부의 비효율, 재원고갈 등 각종문제점을 좌파적인 反시장 정책의 결과로 비판하고 시장기능 활성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논리일 것이다. 이는 상당부분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상당부분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영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엄밀히 지금 민영화에서 ‘민(民)’이라는, 즉 백성이라는 주체가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사실 백성은 소위 ‘공공(公共)’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는 공공에 대한 영단어 public이 바로 라틴어(語)의 푸블리쿠스(publicus:인민)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공이라 함은 그것이 정부의 형태를 취함에 있어 인민이 권력을 신탁한 것이라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렇게 보면 ‘공’과 ‘민’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정시기를 거치며 공공 또는 국가소유의 재산을 기업에 불하하는 것이 ‘민영화’라는 인식과 거의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실질적인 ‘민’이라 할 수 있는 대의체가 너무 미약한 탓이다. 결국 일부 시민사회가 일부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였으나 절대다수의 정부기능의 민영화는 곧 기업으로의 민영화, 엄밀하게는 사유화(私有化)를 의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말장난인데 민영화의 어원인 privatization 은 사실 앞서 표현인 사유화로 함이 맞다. 그러니까 사적인 주체가 소유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영화하면 민간이 운영을 한다는 운영의 개념으로 대체된다. 표현이 급격하게(!) 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지금 사회여론은 어떤 이유에서건 민영화(사유화 whatever)에 대해 그리 적대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 공적기능을 떠안을 주체가 백성 중에서는 가장 강한 기업이라는 백성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행이든 연금이든 의료보험이든 우리나라와 같은 가당찮은 시민사회서 뿐만 아니라 제법 헛기침 좀 한다는 서구사회에서조차 기업에 비해서는 절대적인 열세다.

그래서 제시되는 것이 연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주5), 자본과의 사회협약,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의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 정치적 세력이 유의미하게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시점에서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도는 암담하다. 보수 세력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나마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세력이 지리멸렬이다. 인민은 스스로가 공적연금, 은행, 기타 여하한의 생산수단의 운영주체임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이들에게 권력을 신탁하여 버렸다.

 

(주1) 다른 보도에서 금감원은 이를 부인하였다.

(주2) 요즘은 사모펀드와 해외자원개발펀드에까지 투자하고 있다. 투자다변화는 좋은데 이런 위험도 높은 사업에 투자할 능력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주3) 이렇게 공적연금을 아예 폐지한 대표적인 사례로 칠레가 있고 서구언론에서 연금개혁의 성공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주4) 기타 통신 등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수위조절을 하겠다고 한다.

(주5) 연기금 자체가 민영화의 공격대상이라는 점에서 약간 도돌이표 식인데 결국 연기금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민영화(own by public)’이라는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현존재니까

2 thoughts on “인수위를 보면서 민영화의 본뜻을 곱씹어본다

    1. foog

      국민연금은 국민에게나 정부에게나 일종의 닭뼈다귀가 되어벼렸죠. 먹자니 목에 걸리고 내버리자니 아까운… 국민연금의 납부자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현재의 방식이 못마땅하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리는 일은 없어야 겠다는 생각도 드는 복잡한 심정입니다.

      Jayhawk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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