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에 저항하는 알바

ALBA가 무슨 뜻일까? 아르바이트의 한국식 표현? 그렇기도 하지만 ALBA는 스페인어로 “새벽”을 뜻한다. 동시에 ALBA는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의 대안(the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의 첫 글자를 딴 남아메리카의 대안적인 무역 동맹이다. ALBA는 지난 2004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에 대항한 공정한 무역의 대안으로 우고 차베스 Hugo Chavez 와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 Evo Morales, 니카라구아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Daniel Ortega가 당선되자 이들도 합류하였다. 자금조달은 베네주엘라의 오일머니덕분에 가능했다.

여하튼 ALBA는 지난 25일과 26일 양일에 걸쳐 카르카스에서 여섯 번째 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에서 도미니카도 합류하였다. 그리고 에콰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아이티 등에서 각각 대표사절을 파견하였다. 이 자리에서 차베스는 인민의 필요를 대변하는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독재적인 세계자본주의”를 맹비난하는 한편으로 미국의 경제공황을 경고하면서 각 나라가 보유자산을 미국의 금융기관에서 인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다니엘 오르테가는 환경위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였다. 그는 “개발을 위한 자본주의 모델은 명백히 지속가능하지 않다. 만약 당신 나라의 경제가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투기적 자본에 의해 통제된다면 그 나라는 인간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단 우리가 자유무역 모델을 포기하면 우리는 실업, 가난,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출발점에 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천연가스와 석유를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토지, 물, 에너지와 같은 핵심적인 공공자원은 사적이윤이 아닌 공공선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라틴아메리카는 언제나 헤게모니를 증대시키기 위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는 미국의 지원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ALBA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바로 그 시각 콘돌리자 라이스 Condoleezza Rice 는 베네주엘라의 이웃나라인 콜롬비아를 방문하고 있었다. 라이스는 미국과 콜롬비아간 자유무역협정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하기 위해 콜롬비아의 대통령 알바로 우리베 베레즈 Alvaro Uribe Velez 를 만나고 있었는데 차베스는 그를 “제국의 날품팔이”라고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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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lem of the Bolivarian Alliance for the Americas” by Enigmaticland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ALBA의 로고

구체적인 협상내용으로 들어가서 살펴보자. 협상 내용은 상호이윤추구라기보다는 원조적인 성격이 강하다. 예를 들면 니카라구아는 베네수엘라가 우유, 옥수수, 콩, 소고기 등을 공급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베네주엘라는 니카라구아에 우대조건으로 석유를 판매하기로 했다. 쿠바는 베네주엘라에게 석유를 할인받는 조건으로 의사들을 파견하기로 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이 나머지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 인상이 강하다.

가장 중요한 조치는 각국 정상들이 동맹을 강화하고 세계은행과 같은 미국 주도의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른바 ALBA 은행은 10억 달러내지 15억 달러의 자본으로 출범하기로 했다. 역시 베네주엘라가 주요 자금조달원이 될 것이다. 이 펀드는 예를 들면 도미니카의 풍부한 강물과 니카라구아의 기술이 결합된 수력발전 에네지 벤처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이다. 차베스와 여섯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미 지난달 70억불을 자본으로 계획하고 있는 남미은행(the Bank of the South)을 설립하였고 이 은행은 세계은행이나 IMF보다 더 완화된 조건으로 대출을 제공할 것이다.

ALBA의 미래는 얼마나 더 많은 나라들이 참가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에콰도르나 아이티의 경우는 참가를 원하고 있으나 심각한 내부반대에 직면해 있다. 다른 나라 역시 보수언론의 강한 반발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들은 경쟁이 아닌 상호원조에 입각한 무역이라는 점을 자국에 설명하려 해도 일단 차베스, 카스트로, 오르테가가 거론되면 알르레기 반응을 보이는 우익들 때문에 상황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쿠바의 Martin Luther King 센터의 조엘 수아레즈 Joel Suarez 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ALBA의 사회운동 위원회 활성화를 들고 있다. 이 위원회는 농민, 여성, 환경주의자, 노조 등의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적 차원의 참여가 곤란한 나라는 사회운동단체가 우선 참여함으로써 점차 외연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이러한 제안에는 심지어 미국의 사회운동단체도 포함하고 있다.

또 하나 ALBA의 미래를 흐리게 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 아닌가 싶다. 만약에 오일머니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우고 차베스라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참가하고 있는 각국의 지도자들과 사회운동단체 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실험은 현재 자본에 의해 주창되는 “자유무역”이 의미하는 바는 ‘자본의 자유’, ‘이윤추구의 자유’이고, 이에 비해 남미 좌파세력이 주창하는 “공정무역”에는 ‘인민을 위한’, ‘서로 돕는’, ‘환경을 위한’이라는 개념을 바탕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 실험의 성공이 향후 이 지구의 물질문명의 앞날에 중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12 thoughts on “자유무역에 저항하는 알바

    1. foog

      아~ 그러고 보니 그 알바도 있었군요!
      또 모르죠. 정치적 소신이 실제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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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룸펜

    저는 ALBA가 떠올랐는데… 어쩌면 좋죠?^^

    베네수엘라 안에서 노동자들의 자주관리 조직이 점차 다른 생활 부문과 연계되어 ‘평의회’ 형태로 발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풍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차베스와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지도 중요하지만 대안세계화의 모델 중 하나를 제시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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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오랜만입니다 룸펜님~
      베네주엘라… 주목할만한 성과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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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xarm

    ‘가장 중요한 조치는’으로 시작하는 7번째 문단에서
    ‘ALBA 은행은 10억 달러내지 15달러의 자본으로’
    15억달러가 아닐까 하는 소소한 오타를 발견하며..
    http://foog.com/781#comment15449
    를 충실히 이행한 답이 될까요?^^;

    지속가능할지가 문제지만, 재밌고(?!) 중요한 실험일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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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araAn

    공정무역에 관련된 글을 찾다가 오랜만에 좋은 글을 읽게 되어 반갑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의 정책에 많은 오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된 다양한 시도들에게 대해 일면적으로 알고 있기에 조금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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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반갑습니다. karaAn님의 블로그에서 제가 배울 것이 많군요. RSS구독 들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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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Pingback: foog.com » 볼리비아 정부, 2007년에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에서 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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