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주식투자 옳은 일인가?

‘연기금 주식투자 옳은 일인가’ 라는 질문에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를 위한 연기금 주식투자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Orientation 과 Destination 이 확실하게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Orientation 은 국민의 돈이고 Destination은 연기금이 고갈되지 않고 실질적인 노후보장 방안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기금 주식투자라는 의제 역시 지난번 행정수도 이전처럼 이러한 당연한 수순이 배제된 채 정치논리에 의해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번 행정수도 이전 논쟁에서의 문제점은 정부와 여당이 충청권 득표 전략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상정해놓고 뒤에 가서야 타당성 분석을 끼워 맞추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 반발과 국론분열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 있다. 이번 연기금 주식투자도 마찬가지이다. 주식투자의 논리는 연기금의 고갈위험에 대한 대비책의 차원에서가 아닌 시장 활성화라는 부수효과에 관심이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현재 1백조 정도 연금기금이 있는데 이 돈이 묶여 있으면 결국 경제법칙에 의하면 수요를 줄이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쓰자는 게 아니고 우선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거 풀지 않으면 경제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발언에서도 이미 그의 생각은 연기금의 효율적 운용은 뒷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분명 연기금이 쌓이게 되면 시장에서 돈의 흐름이 왜곡될 여지는 있다. 즉 연기금에 돈이 쌓이지 않았더라면 돈이 보다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처로 흐를 개연성이 있을 텐데 연기금의 고유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저위험 저수익의 투자처로 돈이 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식시장 등 살벌한 전쟁터에서의 총알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정책운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논지다.

그러나 그러한 논지는 연기금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연기금이 시장을 왜곡시키리라는 것은 이미 연기금 제도 수립 당시부터 불문가지의 사항이었다. 정부는 시장의 실패로 말미암은 사회안전망의 부재를 보완하고자 연기금을 설치한 것이고 그로 인해 시장의 왜곡은 불가피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경제법칙 운운하는 것은 노 대통령이 시장 무한자유주의에 경도되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해주는 꼴이다.

한편으로 연기금을 주식투자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주식시장이 장기적으로 반드시 우상향할 것이며, 주식수익률이 채권수익률을 상회한다는 경험적 수치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적(?)인 상승경향이 보여주는 모습의 근본한계는 그 ‘장기’의 정확한 기간 산정이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80년대에 비해서는 주식수익률이 높다 하겠으나 그 중 외환위기 기간의 하락폭은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하지는 않았어도 연기금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파괴력은 있는 정도이다. 그 와중에 만약 연기금이 그 이전부터 주식투자를 했더라면 연기금 투자결정 단위는 주식이 2004년에는 분명히 오를 것이므로 손절매 하지 않겠다고 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또 하나 외국에서는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율이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백번양보해서 그러한 추세에 맞춰 주식투자 비율을 높인다 할지라도 물러서지 못할 부분이 있다. 미국마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Social Security 는 전액 국공채에 투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타 주정부 차원에서의 퇴직연금, 공무원 연금이 기금활용에 주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 연금이 Social Security 보다 수익률이 높으므로 더 좋다는 주장도 있으나 Social Security 가 수익률 7%, 가장 수익률이 좋다는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이 15%인 정도를 감안하면 주식시장의 폭락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8%의 추가수익을 바라본다는 것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도박이다.

서두로 돌아가서 연기금의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주식투자, 채권투자, 미국 채권 투자, SOC 투자 등 갖가지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요는 지금의 논의가 연기금을 납부한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가 아닌 시장의 탄알 보충을 위한 수단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찬이나 노무현이나 다 연기금을 자기 주머니인양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막말로 연기금의 투자운용 결정은 연기금 투자위원회에서 할 일이다. 총리나 대통령이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총리나 대통령이 연기금에 낸 돈이 한 40% 정도 되면 또 모를까 그 돈은 전 국민이 십시일반 노후를 대비해서 낸 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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