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국민에게 축하의 박수를

가난한 이들, 특히 가난한 나라에 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독립된 국가를 가지는 것이나 왕정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은 그들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것인가? 이때 그 자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억압자들에게 저항의 외침을 부르짖을 수 있는 자유인가 아니면 굵어죽을 자유인가?

이러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언론들은, 그리고 자연스럽게 많은 국민들은 대표적인 국가로서 티베트를 주목하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오늘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올림픽 성화 봉송 의식과 맞물려 티베트 사태를 둘러싼 다국적 소요가 일어났다고 한다. 맹목적 민족주의를 비롯한 다소 복잡한 이념과 종교적 신념이 결합된 희한한 사례라 할만하다.

한편 우리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는 사이 – 고의적 무시에 가까울 것 같은데 – 중국과 인접한 또 하나의 분쟁지역인 네팔에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 희한한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10년간의 내전을 끝내고 지난 4월 10일 치러진 선거에서 어이없게도(!) 시대착오적인 마오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네팔공산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제3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연대 네팔공산당이다. 그야말로 빨갱이 판이다.

일단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나 줏어 듣기로 마오주의자 네팔공산당은 제도권에 진입한지 이제 2년밖에 안된 정당이라고 한다.(1994년 정치적 해빙기에 한번 주류로 떠올랐으나 이후 탄압받았다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태껏 왕정종식을 위한 폭력투쟁 노선을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정당이 총 601석의 제헌의회 의석 중 3분의 1이 넘는 217석을 차지했다.

무엇이 이러한 압도적인 지지를 끌어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중국의 붉은 별’에서 에드가 스노우가 칭송하던 중국 공산당의 인민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네팔 공산당이 충실히 재현한 덕택일까? 아니면 국민의 왕정종식에 대한 강한 열망을 받아줄 유일한 대안세력이었을까? 아니면 치솟는 물가와 빈곤에 따른 사회주의적 대안의 요구일까?

어느 하나일수도 있고 복수의 답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이유일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세 번째 상황이 인민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역시 혁명은 – 폭력혁명이든 선거혁명이든 – 숭고한 정치적 의지보다는 굶주린 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네팔은 국민의 30% 이상이 빈곤층인 절대빈곤의 국가이다. 그리고 국민 대다수는 왕이 아무리 자비롭고 자시고 간에 절대왕정은 빈곤해결의 답이 아닌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일단 자신들의 문제를 자결권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라는 점에서는 적어도 티베트나 팔레스타인보다는 나아 보인다. 역시 미국이 네팔공산당을 테러리스트로 지목하고 있기는 했고 네팔 정부에게 무기를 제공하기는 했다지만 티베트나 팔레스타인에서와 같은 직접적 군사행동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또한 계급정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는 점도 티베트보다는 나아 보인다.(나는 독립 티베트의 지배계급이 종교지도자들이 될 것이라면 그것 또한 암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앞날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오마주인지 패러디인지 공산당이 집권했으나 공산당을 지지해줄 프롤레타리아가 없다는 20세기의 우울한 후진국형 공산혁명이 21세기에도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투기자본이건 건전한 자본이건 간에 이들에게는 외세의 도움 없이는 경제 자체를 지탱시키는 것조차 어려워 보인다. 이를 즉시 간파한 네팔공산당은 외국자본의 지속적 유입을 장려할 것이고 이를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결국 무늬는 공산당이고 속은 후진국형 자본주의인 또 하나의 기형국가로 당분간은 지내야 할 공산이 커 보인다. 너무 냉소적일지 몰라도 계급억압적인 계급정당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베네수엘라처럼 석유라도 있어야지 비빌 언덕이라도 있을 텐데 말이다. 네팔공산당과 네팔 국민에게 던져진 어려운 과제다.

그렇더라도 어찌되었든 자주적으로 해묵고 시대착오적인 절대왕정이라는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고 근대적인 국가를 탄생시킨 네팔의 국민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다. 예전에 우리나라 이주노동자의 사연을 전하는 중에 네팔의 노동자의 사연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는 네팔의 왕족이었으나 공산당에 가입하여 당 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다고 한다. 아마 이번 선거결과에 그도 만족하고 한껏 웃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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