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투자자들은 유가폭등의 주범인가?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가장 큰 사회적 이슈다. 그렇다면 쇠고기 수출국 미국에서는 어떤 것이 가장 큰 사회적 이슈일까? 물론 우리나라처럼 물리적 충돌이 빚어질 만큼, 그리고 전 국민이 설왕설래할 만큼은 아니지만 아마도 유가폭등의 원인을 둘러싼 선물거래자들의 영향력 여부가 뜨거운 사회적 이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米의회가 최근의 유가폭등의 주범을 선물시장에서의 투기세력으로 지목하고 이에 대한 청문회를 잇달아 개최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특히 증언자로 나서 투기세력을 거칠게 비판한 마이클 마스터스 Michael Masters 라는 이는 그 스스로가 헤지펀드의 매니저여서 관심은 더욱 배가되었다. 그는 일종의 내부고발자로서의 그의 발언은 양심선언인 셈이니 말이다. 게다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존 맥케인까지 선물거래 계약을 “무모한 노름(reckless wagering)” 이라고 몰아붙이고 나선 상황이니 이제 선물거래자들은 분명히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범인은 잡혔고 의회가 그들을 단죄하고(주1) 유가는 정상적인 수준으로 환원되는 행복한 시절이 도래할 것인가? 그렇게 상황이 쉽게 풀리지 만은 않을 것 같다. 일단 학계에서도 과연 선물거래가 유가폭등의 원인이냐는 것에 대해 찬반논쟁이 뜨겁다. 선물거래가 유가폭등의 원인이 아니라고 보는 대표적인 이로는 폴 크루그먼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최근 그의 블로그에서 이 입장을 몇십 개의 포스팅에 걸쳐 계속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수많은 독자들의 반론을 맞받아치고 있다.

대표적인 투자은행은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들도 폴 크루그먼의 주장을 거들고 있다.

3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의 제프리 커리, 데이비드 그릴리 애널리스트는 29일자 보고서에서 “만약 가격이 수급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된다면 자연스럽게 재고가 쌓이고 결국 시장에 이 재고가 다시 흘러들어가게 된다”면서 “그러나 최근 재고에는 뚜렷한 상승 추세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원유 가격 강세가 투기에 의한 현상이 아닌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수급 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애널리스트들은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투기꾼들이 아니라 향후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는 정보”라고 강조했다.(골드만삭스 “유가 급등은 투기 때문 아냐”, 2008.6.30, 머니투데이)

더군다나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양심세력으로 등장한 마이클 마스터스가 실은 유가하락으로 이익을 볼 항공사와 GM의 주식에 투자하고 있음이 한 블로그에 의해 제기되었고 이를 비즈니스위크가 보도하면서(주2) 反투기세력 주창자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 추세다.

과연 선물거래자들은 시장의 교란자인가 아니면 억울하게 비난받고 있는 선량한 투자자인가? 폴 크루그먼도 인정하고 있다시피 적어도 “투기는 시장에서 실체의 상품들을 사라지게 하는 경우에 현 시점의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Speculation can affect spot prices because it takes physical stuff off the market.)” 즉 매점을 유발할 때에 가격상승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에는 선물거래 역시 분명히 시장의 한 참여주체인 만큼 가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적어도 수급상황의 악화, 원유채굴가격 상승, 정부의 정책실패, 정유업체들의 폭리 등 다양한 요소를 선물거래에서의 ‘악의 세력’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너무 단순한 해법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주1) 구체적인 조치로는 지수 투기를 막기 위해 높은 증거금 등을 요구하는 법안 마련

(주2) 이러한 언론보도는 블로그가 하나의 대안언론으로써 기능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10 thoughts on “선물투자자들은 유가폭등의 주범인가?

  1. 미싱M

    “만약 가격이 수급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된다면……” 이 말은 우리나라 부동산이 거품이냐 아니냐 논쟁할 때 나오는 논리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요.
    선물거래에서의 ‘악의 세력’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야 없겠지만
    (전 경제에 관해 젬병입니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격이 지나쳐도 어쩔 수 없이, 즉 소비를 줄이는 게 쉽지 않은 석유의 특성상,
    울며겨자먹기로 사야하는 입장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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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주택은 그 품질이 위치나 평형 등에 따라 불균등하여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아무래도 석유와 같은 원자재 시장은 평균적인 품질에 바로 소비된다는 특성상 재고가 무한정 쌓이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 저 주장이 억지주장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역시 말씀하신대로 약간 얄밉게 무죄를 주장하는 측면은 있긴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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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싱M

      예, 그렇군요. 댓글은 어제 봤는데
      다시 오늘 답하는 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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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Ikarus

    단순히 투기성 선물투자에 유가 급등의 모든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겠죠. 또 수요-공급의 불균형도, 달러의 약세, 중국 인도의 소비증가등등…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하며 벌어지는 일이겠지만 누군가 명확하게 투기성 선물 00%, 수요공급불안 00%,중국인도 00%,달러약세00%…뭐 이런 식으로 논문 한번 써 주면 고맙겠습니다. 말도 안되는 줄 알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보지 않고는 직성이 안 풀리니 직업병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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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국제 밀 가격 급등 요인을 분석한 결과, 밀 가격 상승 기여율(100%)에서 투기 요인은 48.1%였다. 곡물 수출국들의 수출 제한 등 정책 요인은 16.8%, 달러화 약세 요인은 15.6%, 전세계 곡물의 수급요인은 1.4%였다. ‘핫머니’의 표적인 국제 원유가의 지난해 상승분 중 투기요인 기여율이 40.3%인 점을 감안할 때 국제 곡물의 투기적 요소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인도, 중국 등 ‘이머징 마켓’의 곡물 수요가 늘어난 반면 생산량은 이에 못 미치고 전세계 곡물 재고량이 감소하면서 곡물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투기 자본의 국제 곡물시장 유입에 불을 질렀다.”

      http://blog.naver.com/pokara61/150032855198

      이 글에는 원유가의 투기요인 기여율이 40.3%(!)나 되는 것으로 나와있네요. 여하튼 누구의 말이 맞는지 요즘 저의 최대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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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러브네슬리

    지금의 고유가 현상을 수급불균형에 70, 투기에 30으로 평균적으로 보더라고요 ㅋ
    신용위기로 금융자산 보다는 실물자산 쪽으로 자금이 몰리 원인이 크다고 하는데,
    달러화가 안정화 되면 투기 자금이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실질적으로 유가에 큰 하락 폭은 없어도 지금에서 20~30달러는 내려간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경제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짜낸 글이에요 ㅎㅎ
    어찌됐든 유가가 다시 작년이나 2년전처럼 될 일은 없다는 건 공통적인 의견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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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좋은 의견감사합니다. 어쨌거나 말미에 말씀하신대로 비록 투기세력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다 할지라도 유가가 예전처럼 돌아가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죠. 고유가에 대비한 경제시스템이 하루빨리 정비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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