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바닥을 드러낸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개인적으로는 이번 개각에서는 (정운천 같은 친구야 어찌 되건 말건) 강만수를 내쳐야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아직 반성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는 유임되었다. 다만 최중경 기획재정부 1차관이 경질되었고 새로이 임명된 김동수 차관은 물가 전문가라고 한다. 이명박의 경제정책 기조가 성장에서 물가관리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실 강만수는 물론이거니와 최중경도 경질될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이명박 정부하에서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네들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70년대 개발독재 + 21세기 신자유주의”라는 희한한 경제기조에 가장 잘 따를 충복들이기 때문이다. 최 차관 경질사유가 “현 경제팀이 성장률 목표 달성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펴다 물가상승을 유발”하였다는데 이거야말로 747이라는 허무맹랑한 구호로 당선된 대통령 말 잘 들은 죄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7%/연 성장률을 달성한다는 발상을 하며(주1), 그 성장률을 운하를 파서 달성하겠다고 하며(주2), 이도 저도 여의치 않으니까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서 약한 원화를 조장하는 발언을 하며(주3), 그나마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환헤지를 한 기업과 금융기관을 비도덕적 집단으로 몰아붙이고(주4), 이도 저도 다 안 되니까 경제위기를 촛불집회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다.

다른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행동을 무슨 이유로 어이없어하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 있어 그의 가장 어이없는 모습은 틈만 나면 경제위기를 부르짖는 모습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그가 민간기업의 CEO 시절 굳어진 버릇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기업의 CEO는 직원들을 다그치는 차원에서 곧잘 있지도 않은 위기를 예언한다. 신년사에 CEO는 흔히 기업의 제2의 도약의 시기라느니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할 험난한 시절이라느니 하는 주문을 하곤 한다. 적어도 직원들의 위기감 강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측면에서는 일정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국가의 수반이라면 이야기가 틀리다. 국민들은, 그리고 시장은 CEO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이 예측불가능의 복잡계는 대통령이나 경제수반의 발언에 제각각의 행동양식을 보이는데, 때로 발언주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효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기에 일반적으로, 상식이 있는 지도자라면 자신이 책임지는 나라의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삼가며, 오히려 때로 의도적으로 잘 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해서 국민을 안심시키고 시장을 안심시켜 때로 현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그 발언 자체로 좋아지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이후로 틈만 나면 ‘경제위기’니 ‘제3오일쇼크’니 ‘촛불집회가 대외신인도를 떨어트린다느니’ 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이래서야 내가 해외투자자라도 투자를 하기 싫을 지경이다. 공황을 뜻하는 영단어가 괜히 panic이 아니다. 경제는 심리다. 위기라고 생각하면 어느새 위기가 된다. 멀쩡하던 은행도 예금자들이 불안에 떨며 예금을 인출하면 – 이른바 bank run – 어쩔 수 없이 부실은행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장도 아닌 대통령이 지금 나라 망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성장률을 논할 때는 지났다. 이제는 저성장을 용인해야 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내수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 자원절약형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주5)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불어 현재 경제피폐로 망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는 북한을 포용하는 한반도 경제권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앞길이 구만리인데 정부는 이제야 물가관리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주1) 이명박 재임기간 동안 연 7% 성장을 유지하면 임기말에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30% 이상 증가한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주2) 사실 이 방법은 노무현도 써먹은 방법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BTL민자사업에 하수도 관거를 끼워 넣어 성장률을 상향시켰다. 하지만 적어도 하수관거는 필요불급한 시설이다.

(주3) 미국이 아무리 달러가 똥값이 되었을지언정 미재무부 장관은 늘 자신들의 기조는 ‘강한 달러’라고 노래를 부른다.

(주4) 이는 반절은 맞는 말이고 반절은 틀린 말이지만 적어도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장에 대고 그 따위 독설을 퍼붓는다는 것 자체는 몰상식한 짓이다

(주5) 아~ 이명박 정부는 최근 대체에너지원으로 가장 크게 각광받고 있는 태양광 발전소에 대한 정부지원을 중단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열심히 짓겠다는 결정도 내렸다.

27 thoughts on “시작부터 바닥을 드러낸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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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Ikarus

    강만수 장관 취임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재경부 사무관님이 그러시더군요. “시키는 대로 하지요…” 결국 문제는 위에서 시키는 사람한테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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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eagle2

    6월 10일을 전후한 기간엔 대폭 개각을 단행할 듯이 말하더니 금새 자신감을 찾았는지 이번에도 또 말을 바꿔 사실상 하나마나한 소폭개각을 했군요. 저러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저 뻔뻔함엔 참 화가 납니다. (강만수도 포함되어야 겠지만 저 개인적으로 꼭 자르고 싶은 건 어청수와 최시중, 법무-노동-행안-문화부 장관입니다.)

    정말 이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정권 퇴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게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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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회사원2

    제가 보기에 기업에서도 경영하는 상사와 정치하는 상사는 금방 구분되며 “직원들의 위기감 강화”를 노리는 정치적 발언들로 경영 흉내를 내는 자들은 오히려 직원들의 사기 저하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예가 많더군요. 부정과 야료를 제하면 성과도 그리 높지 않구요.

    그러나 슬픈 건 기업에서도 정치하는 자들이 경영하는 사람보다는 출세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더라구요. 회사생활…하면 할수록 사람 피를 말리는 체계던데, 어쩌자고 이런자가 셀러리맨의 희망이 될 수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문제는 조중동인가요…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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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말씀하신대로 기업에서도 정치꾼이 경영꾼을 밀고 올라가죠. 딱 악화가 양화를 쫒아내는 그런… 지금 딱 그런 케이스로 우리나라 윗대가리에 올라앉아 있는 녀석 하나 있지 않습니까.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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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른 회사원

      우석훈의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라는 책을 권해드립니다.
      한국 기업이 처한 조직(조직론, 조직문화 등)의 문제에 대해 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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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쌀국수

    강만수를 해임하는 것 만으로도 시장에 심리적인 긴장감을 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적에게 한번 약점을 보인 이상 끝까지 봉 노릇하는 수 밖에 없을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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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JoKer

    대통령의 발언에 우리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겠습니다.
    2MB 曰 “어려운 여건 때문에 경제 목표를 하양 조절 하겠다.”
    대통령 되었다고 말은 함부로 하면 되는 줄 알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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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것이 꼭 어떤 동물을 연상시키지만 굳이 제 입으로 말은 안할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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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w0rm9

    괜히 2mb가 아니죠.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지 마세요.ㅎㅎ;

    (아, 신문하고, 뉴스를 끊던지 해야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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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G.O.

    제 블로그/스크랩북에 댓글 감사합니다.
    (이 글에도 나중에 “빨치산” 글 트랙백 날리겠습니다. ^^)

    그나저나… 이미 걸어논 “빨치산” 글에도 밝혔듯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무렴 정말 바보들도 아니고… 자기 분야인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기까지 올라가진
    않았을테고…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저러는지… –;

    7% 연 성장률 –> 운하를 파서… –> 약한 원화 –>
    환헤지를 한 기업과 금융기관을 비도덕적 집단으로 몰아붙이고
    –> 경제위기를 촛불집회 탓…
    … 이게… 정말 2008년도 대한민국 정권/정부의 목소리 맞나요?
    … 꼭… 한 “잃어버린 20년” 전으로 돌아간듯한 느낌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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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저도 솔직히 이 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뭔가 굉장히 허둥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느 정부나 성장률을 제시해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도 하지만 이 정부는 애초에 7%라는 공상과학의 수치를 설정하고 그 달성방식을 운하라는 토건사업으로 풀어내려 했던 부분이 처음부터 꼬이면서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년 전으로 돌아갔다기보다는 그동안 마치 시대가 발전한 것으로 살짝 겉포장만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검찰이고 경찰이고 언론이고 그동안 세련된 척 하다가 사태가 조금만 달라지니까 구태를 여지없이 보여주니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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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Pingback: 9월 위기설의 진원지 | fo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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