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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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andprejudiceposter”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Focus Features.. Licensed under Wikipedia.

극중 인물 엘리자베스 베넷이야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캐릭터다. 안정적인 결혼생활이 가능하지만 안 끌리는 – 역시 무엇보다도 너무 못생겨서(?!) – 콜린스보다는 언젠가 자신을 확 잡아당겨줄 사랑할 남자와 함께 하고 싶다는 그녀. 로맨틱코미디에서 신물 나게 보아온 인물상이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19세기 초반 여성작가가 쓴 소설에서 등장했다면 꽤나 심각히 생각해볼 문제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 1813년 여류작가 제인오스틴이 발표한 이 작품은 이성관계의 연결고리를 지위나 재산으로 보기보다는 둘 사이의 감정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을 법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당시 중산층 이하의 영국여인에게 결혼이란 로맨스의 귀결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밥벌이인 동시에 가족부양의 주요한 수단 일만큼 절박한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는 ‘한정상속’이라고 하여 여자에게는 상속권이 없었고 가장 가까운 남자친척 – 극중에서는 콜린스 – 에게 상속권이 있었다고 할 만큼 여성의 지위는 보잘 것이 없었기에 고소득의 직업군이 있을 리 없을 당시 여성들에게 결혼이외에 다른 대안이란 있을 수 없었다. 작가 스스로도 혼기가 차자 청혼을 받았으나 남자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면서 평생을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하니 결국 엘리자베스는 사랑이라는 너무 위험한 베팅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지라 극 초반 다섯 자매의 호들갑은 충분히 이해할법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을 예쁘게 포장하여 무도회장이라는 시장(市場)에 내놓아 검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무도회에서는 아름답고 우아한 맏딸 제인이 빙리의 뇌리에 꽂혔고 엘리자베스는 어디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시큰둥하기만 한 달시와 어색한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이후 진행되는 스토리는 그야말로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이라 할 만한 장르적 형식, 즉 스크루볼 코미디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오만한 달시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엘리자베스. 주위에서도 다들 서로 싫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는 그 미묘한 긴장감, 그 뒤로 그들을 받쳐주는 아름다운 자연과 시대극의 충실한 재현이 볼거리를 만들어준다.

1940년대부터 영화화되기 시작하여 1995년 BBC에서 시리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고 그 뒤에 원작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브리짓존스의 일기’까지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라 2005년 영화화에 많은 이들이 그 성과에 대해 반신반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타기도 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개인적으로는 엘리자베스역의 배우가 맘에 들지 않는다. 너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약간 나온 턱이 시종일관 눈에 밟혔다.(-_-;) 아버지 역으로 나온 도널드서덜랜드는 극 내내 변변히 등장도 못하다가 말미에 엘리자베스의 결혼소식에 눈시울을 붉히는 촌철살인의 명연기를 보여준다.

18세기 페미니스트라 할 만한 제인 오스틴, 그리고 그의 알터에고였을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결혼에 성공하였고 제인 오스틴은 당시에는 찬밥 대우를 받았으나 오늘날 영국에서 세익스피어 다음으로 최고의 문학가로 손꼽히고 있다한다. 둘 모두에게 잘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사랑에 대한 주체적인 선택이 결혼의 필수조건이라는 모던한 사고방식을 가졌다가 좌절했을 많은 여성들에게 원작은 오히려 여성해방 지침서가 아닌 싸구려 로맨스 소설로 간주되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15 thoughts on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2005)

    1. foog

      맞아요 그러고보니 이 배우가 키이라나이틀리로군요. 왠지 위노나라이더를 1.1배 확대한 것 같은… ^^; 특별히 호오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조금 그랬다는 … 그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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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치군

    저도 키이라 나이틀리의 열렬한 팬이랍니다 ㅎㅎ…

    이 영화는 단지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데… (사실 영국 드라마판이 원작 재구성에서는 훨씬 나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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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드라마판이 크게 인기를 끌어서 영화화되었다고도 들었습니다. 결국 드라마판의 그 주연배우가 이 영화를 거쳐 (주연은 아니지만) 브리짓존스 일기까지 꿰어찼죠? (영국 사람 취향 참 독특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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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James Leigh

    전 이영화 무지 좋아 합니다. 여배우는 그닥 좋아 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제 취향은 맡딸이예요.

    정말 재밋게 본 영화예요. 🙂

    그런데… 달시는 좀… -_-;; 다씨가 낫지 않을까 조심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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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맏딸 얼굴이 생각이 안나네요 ^^;
      저도 재밌게 본 영화랍니다. 그러니 이렇게 감상문을 길게 썼죠.
      달시.. 다씨.. 굳이 따지자면 다ㄹ씨 정도 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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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소금

    그저 여배우 한분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만…
    블루레이로 보고 시퍼서 아직도 참고 있는 슬픈 현실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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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블루레이라는 것이 새로운 영상기술 정도로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암튼 제 추측이 맞다면 영상에 무척 민감하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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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Ray

    저는 BBC 드라마 먼저 봤지요.
    그래서 영화 처음엔 좀 거부감이 들었어요. 엘리자베스가 저렇게 이쁘다니!!
    그리고 마크 다시경이 너무 맥아리가 없었어요. 전혀 오만하지 않았다구요…
    그래두 강아지꼴이 귀여워서 영화는 영화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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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러시군요. 저는 드라마를 안봐서 비교대상이 없는데 아무래도 드라마도 한번 챙겨봐야 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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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애리

    원작을 워낙 좋아해서 어떤 여자친구에게서 욕을 먹었던 사람입니다. 어떤 여성들은 제인 오스틴 작품을 좋아하지 않지요. 로맨틱한 연애로만 간주하기 때문에.. 그런데 남자들 중 싫어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는데, 아마도 남자들은 제인 오스틴을 아예 읽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쨋든, BBC에서 만든 드라마도 녹화해서 여러번 돌려볼 정도였는데, 영화는 왠 삐죽이 같은 여인이 주인공을 맡아서 보기 싫었죠. 그런데 막상보니, 이 여인네 소년같으면서 말괄량이 같으면서 여성스러운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여기서 옛날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니 의외로 잘 어울려, 이 여인네의 다음 영화 ‘희생’ 이었던가? 에도 출연해도 괜찮을 만큼 ‘고전적’이었던 것 같아요. 얘기가 길어졌읍니다만, 다 ㄹ시 역의 남자배우와, 줄거리가 곳곳이 빠져, 엘리자베스의 속마음과, 달시와 관계가 전달되기 어려웠던 것이 흠이라고 생각해요. 320분짜리 드라마의 축약형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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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렇군요! 드라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근데 ‘어떤 여자친구에게 욕을’ 먹을 정도로 열중하셨다니… ^^; (여자친구분이 많이 삐치셨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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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애리

    흠. 이 블로그에 유독 긴 댓글을 남기게 되네요 -_- 오해해도 상관없지만, 말그대로 여자인 친구랍니다. 저도 여자거든요. 그리고… p&p (저는 이렇게 써요. 고등학교때부터 오만과 편견은 ‘PP’라고 했지요)드라마에 달시역으로 콜린퍼스가 나옵니다. 정말.. 콜린 퍼스를 보다, 영화의 남자배우를 보니, 왠 나무토막 같은.. 나라면 그 남자는 안만난다.. 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남자배우 못마땅.. 포스트를 보니, 당시 여작가들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지만, 덧붙이자면, 돈도 없거니와, 글쓸 장소도 없었죠. 6-8명이 같이 쓰는 ‘공동거실’에서 ‘작업활동’을 했으니 말이죠. 그럼 침대는 개인침대 아니냐 라고 하실 지도 모르것는데, 잉크들고 ‘깃털펜’들고 촛불들고 침대에서 글 못쓰죠. ㅎㅎ (정말.. 글이 길어지는데..)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를 번역하신 분이 저와 이름이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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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제가 여자친구라 하실 때에 ‘여자’에 너무 신경을 써서 ^^; 오해를 했었군요. 암튼 애리님의 친절한 댓글 덕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네요. 저역시 심히 공감하는 부분은 드라마에 나왔던 – 저는 못 봤지만 – 콜린 퍼스의 포쓰가 영화에서의 다ㄹ시의 포쓰를 한참 뛰어넘었을 것이라는 사실… 그 무표정한 표정.. 로맨틱코미디(물론 이 작품은 그것을 뛰어넘는 또 다른 맥락이 있는 작품이지만요)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한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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