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의문

1) “결과론적인 비판에 불과하지만 북한이 자랑한 경이적인 성장은 사실 그 자체가 무상원조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허깨비였던 셈입니다.” 이 표현을 sonnet님이 쓰신 방법으로 남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
2) 특히 박정희 시대에 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누가 봐도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낀 것이었다.(원문보기)

지난번 sonnet님이 추천해주신 ‘길잃은 어린 양’님의 글에 대한 나의 위와 같은 코멘트에 대해서 sonnet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아래와 같은 요지의 반박글을 남겨주셨다.

1)항에 대한 제 의견은 남한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무상원조를 받아서라기 보다도 무상원조를 끊어나간 데 요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2)항에 대해서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제목만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북한이나 사회주의 국가를 베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원문보기)

먼저 진지한 대화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을 sonnet님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역시 현재 논점이 되고 있는 ‘남한경제에서 원조가 차지하는 위치’,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격’이 될 것이다. 이제 이 두 가지에 대한 sonnet님의 주장과 나의 주장의 접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흥미로운 점은 남한경제에 있어 원조가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나의 주장과 “남한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무상원조를 받아서라기 보다도 무상원조를 끊어나간 데 요점이 있다는 것”이라는 sonnet님의 주장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점이다. 즉 나 역시 sonnet님이 주장하는바 남한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은 무상원조에 의존하는 경제를 차관(또 다른 의미에서의 원조이긴 하지만)에 의존하는 경제로 전환시키는 과정 속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니 sonnet님의 주장이 나의 주장에 대한 반박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sonnet님이 나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서는 해방후 남한의 자본축척에 있어 미국의 원조가 – 미군정의 귀속재산 처리와 함께 –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지 안했는지의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sonnet님은 자신의 글에서 “한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돈을 안대주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에” 라고 한국 경제의 미국에 대한 절대적 의존성을 실토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주장과 상치하는 바는?

없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장면, 그리고 이승만(주1) 의 경제개발계획이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꼈다는 나의 주장의 취지는 이러하다. 즉 소비에트 수립이전에 계획경제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러므로 이후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에서 시행된 경제개발계획은 당연하게도 소련의 그것을 답습하거나 이를 원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2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 들은 자신들의 경제체제를 뭐라고 부르건 간에(주2) 압축성장의 방편으로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담긴 경제개발계획이라는, 시장경제를 통한 자연적인 성장이 아닌 국가주도의 계획경제적 요소를 통한 인위적 성장을 지향한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살펴볼 것 같으면 1) 겉으로는 자유기업원칙을 천명하면서도 실제로는 ‘지도받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추진방식을 채택하였다는 점 2) 개별산업을 특정하여 집중육성 전략을 펼쳤다는 점 3) 경제의 핏줄이라 할 수 있는 은행을 국유화하였다는 점 등 몇 가지 특성만을 봐도 그 형식은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차용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sonnet님의 주장을 살펴보면

이 계획은 초안 수립 후 미국인 고문 찰스 울프 박사의 검토를 받습니다. 1961년 3월에 울프는 Singer, Hirschman 등의 경제성장이론에 비추어 불균형성장전략이 타당하며, 미국 원조 의존도를 낮추고 내자동원의 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하는 검토의견을 제시합니다. 이 계획이 완성되자 한국측 대표는 1961년 5월 9일 미국 워싱턴의 국제원조처(USAID)를 방문해 경제개발계획안을 제출합니다. 이것은 한국 국무회의에 보고된 5월 12일보다도 빠른 것입니다. USAID는 울프의 견해가 미국의 정책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즉 이 계획은 계획수립도 미국이 댄 돈으로 하고 있었고, 미국인 고문으로부터 미국 정부의 시각을 대변하는 컨설팅을 받았으며, 완성되자마자 미국에 보고도 했습니다. 한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돈을 안대주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에, 무슨 계획이건 전주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누가 봐도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낀 것”이란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음이 잘 드러납니다. 5개년계획의 원조가 소련인 것만큼은 사실이지만, 공통점은 거기서 끝나니까요.
박정희 본인이나 그 수하들 중에 소련의 경제정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산권으로부터의 컨설팅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제1차 5개년 계획은 전적으로 미국의 입김 하에 장면 정부 하에서 완성된 것이고, 군사정권은 이를 소폭 수정하였을 뿐입니다. 이 미국의 컨설팅을 받은 계획에 이미 요즘 혹자가 말하는 사회주의적(?) 요소는 다 들어 있습니다.(원문보기)

위와 같이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 1) 미국의 감수를 받았다는 점 2) 미국이 전주였다는 점 3) 박정희나 주변사람이 소련의 경제정책을 몰랐다는 점 등을 들어 “5개년계획의 원조가 소련인 것만큼은 사실이지만, 공통점은 거기서 끝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은 형식상으로는 소련의 그것을 답습하였는데 그것을 미국이 감수하고 돈을 대줬다고 해서, 그리고 박정희가 소련의 경제정책을 몰랐다는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운 점을 들어 왜 그것이 이제 “공통점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냐고 주장하는 가 하는 점이다. sonnet님이 인용한 건설부의 자료에도 ‘혼합경제’를 지향한다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는바 오히려 sonnet님의 이야기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여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요컨대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sonnet님의 글이 어느 부분에서 당초 나의 주장을 반박한 것인지 어리석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1) 미국의 원조가 남한 경제에 영향 미친 바 없다는 것 2)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 사회주의의 그것과 관계없는 독창적인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검증하여 주셔야 할 것 같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더불어 해박한 경제지식으로 나의 미천한 경제학적 소양을 고양시켜주신 점에 대해서는 감사드린다.

(주1)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경제계획’ 의미를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의미로 오해하여 극히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주2) 특히나 식민지 국가의 인민들에게는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와 동의어였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요소의 도입을 환영하는 편이었다. 물론 지배계급은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12 thoughts on “풀리지 않는 의문

  1. Pingback: Crete의나라사랑_2008년글

  2. 행인$#$%^

    요 몇일 사이의 이 논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의 사항에 대해서 한가지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2)항에 대해서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제목만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북한이나 사회주의 국가를 베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사항에 대해서 foog 님은 부정하고 계신데,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만주국의 경제개발계획과의 관련 가능성에 대한 견해가 sonnet 님의 글에도 약간 제시되어 있고 몇몇 분의 댓글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래의 블로그 내용을 보면, 물론 경제적 관점의 글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그것보다는 만주국의 그것이 유사성이 더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참고로 아래 블로그는 제 것은 아닙니다.)

    http://www.mediamob.co.kr/sldn84/frmView.aspx?list=sum&id=99055
    http://www.mediamob.co.kr/sldn84/frmView.aspx?list=sum&id=99578
    http://www.mediamob.co.kr/sldn84/frmView.aspx?ist=sum&id=102982

    * 블로그는 없는데 여쭈어 보고는 싶고 해서 주절주절 댓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무례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Reply
    1. foog

      댓글 감사합니다. 🙂

      분명히 해두자면 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만주국의 경제개발계획과의 관련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 장면의 그것을 계승하는 것이던 만주국의 그것을 계승하는 것이던 또는 미국의 감수를 받았던 간에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 프로토타입은 소비에트의 그것이며 제가 위에 언급한 몇 가지 특징에서 그것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sonnet님의 글의 댓글에 몇몇 분은

      “제가보기에는 “북한의 경제개발 계획을 따라했다” 는것은 분명한 오류로 보입니다. 하지만 좀 국지적인 부분으로 가면 공산권의 벤치마킹을 한 부분은있습니다.”

      라는 취지의 상호모순되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베끼되 베끼지 않았다’ 뭐 이런 말씀이신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국제정세로 보면 소비에트가 수립된 이후 신생국들의 지식인들은 좌우를 불문하고 소비에트로 몰려가서 교육을 받고 왔고 그 체제를 – 특히 경제운용방식 – 자국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였음은 상식에 속하는 것입니다.(쟝제스의 군대에도 소비에트 군사고문이 파견되었는데 말이죠^^)

      그러한 저의 따로 이론이 있을 수 없는, 그리고 지나가는 말로 사소하게 언급한 사항을 뭐 그리 진지하게들 반응하시는지 솔직히 좀 의아합니다. ^^;

      추.

      제가 경제개발계획의 ‘저작권’(!)이 사소한 문제라고 말씀드린 취지는 당초 이 논쟁의 초점은 sonnet님이 박정희 시대의 박정희의 역할론에 대한 과소평가가 민중주의라고 비판하면서 김일성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듯한 발언을 하였고, 제가 이를 걸고넘어진 것에 대해 sonnet님이 반론이라며 추천해주신 글이 북한의 경제성장은 소련의 원조 때문이었다는 sonnet님이 비판한 글과 정반대 입장에서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글을 추천해주셔서 이 점을 지적하였으며, 그것이 논쟁의 핵심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주장의 수미일관이 저의 주된 관심사라는 거죠. 그런데 그러한 논쟁이 경제개발계획의 오리지널인 북한이 왜 오늘날 그 모양 그 꼴이냐는 투의 빈정거림으로까지 소모적으로 딴길로 새고 있는 것은 참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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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eagle2

    sonnet님의 블로그는 foog님이 소개하기 전부터 조용히 열독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지식과 ‘균형 잡힌 보수’의 의견에 감탄하면서요. 하지만 그래도 “이 양반도 역시 우익이구나” 싶을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같은 경우죠. 이런저런 자료들을 늘어놓은 다음 반대주장의 맥락을 눈에 안띄게 아주 살짝 비틀어서 논지를 전개하기 때문에 이걸 논박하려면 엄청난 지적 기초체력에 논리력과 집념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겠더군요. 이렇게 숨어서 뒷담화 하는 건 옳지 않지만 감당할 수 없는 논쟁의 장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는 나지 않는군요.

    이 문제를 제대로 논박하려면 대공황과 그 시기의 소련의 경제발전, 거기에 경악해 참관단을 파견할 정도였던 자본주의 동맹들, 전후의 수정자본주의와 독립 각국의 경제발전 등등… 거의 책을 써야 할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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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호박꽃

    윗 댓글에서 ‘베끼되, 베끼지 않았다.’ 라는 말이 인상깊군요. 실제로 박정희 정권 시절에 시행된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스탈린식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느냐, 아니면, 소비에트와의 연관 없이 전적인 미국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느냐는 것을 증명할 자료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정희가 ‘소비에트식’ 경제개발계획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 또한 되지 않을 것입니다. 박정희가 ‘베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경제개발계획이 베낀것처럼 아주 흡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많은 독재 후발 개도국, 혹은 후진국에서 실시했던 국가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은 거의 대부분이 흡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용어사용이 너무 혼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혹은, ‘사회주의식’이라는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분명히 국가주도의 계획경제는 공산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지만, 실제로 계획경제는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 스페인 및 전체주의 국가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와는 전혀 관계없는 후발 개도국들도 전체주의식의 계획경제를 실시했구요.

    논의를 보다보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하나로 묶어 취급하는 것 같고, 전체주의식의 국가개입경제체제를 공산주의 국가들의 전유물, 혹은 유산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북한이나 남한이나 동일하게 독재정부 하에서 전체주의적인 국가주도개발을 한 것이지요. 이건 공산주의와 시장자본주의같은 경제이념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으로 보입니다.

    빠르게 훓어읽은 후에 남기는 댓글이니, 논지에서 벗어났다거나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덧. 나치즘이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 이념도 광의의 의미에선 사회주의에 속하니, 본문에서의 사회주의가 그런 의미에서의 ‘사회주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는 열심히 헛발질을 한 것이 되겠군요. 🙂

    Reply
    1. foog

      제가 알고 있기로 ‘소비에트식’ 계획경제가 나찌즘식 계획경제보다도 시기적으로 앞서는데요?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그리고 본문에서는 특별히 나찌즘을 사회주의적이라고 염두에 두지 않고 소비에트를 포함한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를 전제하였습니다. 어쨌든 이 계획경제에 대해선 기회되면 별도의 글로 한번 다뤄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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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Jayhawk

    이 논쟁의 중간쯤에서 생각나는 것들.

    경영전략시뮬레이션게임 캐피탈리즘2 http://en.wikipedia.org/wiki/Capitalism_II
    리콴유(이광요)이후 싱가포르 vs. 중국으로 넘어간 홍콩
    Fail to plan, Plan to fail. – 어느 기획아카데미의 카피문구

    등입니다. 두서도 없고, 논쟁에 뛰어들고픈 생각도 없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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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흐흐 기획아카데미의 카피가 센스가 넘치는군요. 캐피탈리즘2는 문명2와 비슷한 게임인가요? 게임을 잘 안 즐겨서 잘 모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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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Pingback: a quarantine station

    1. foog

      이리저리 논의가 잔가지로 뻗어나가고 있는 상황을 요점정리 잘 해놓으셨네요. 잘 봤고요. 포스팅 몇 번으로 누가 이겼네 졌네 할 주제는 아니고 계속 진화해 가거나 조만간 다른 주제로 옮겨가거나 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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