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하면 된다’ 정신

이어 朴대통령은 용지확보를 1주일내에 끝내도록 지시하였다. 적어도 한달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경기도지사와 서울특별시장의 얼굴을 보면서 朴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용지확보는 빠를수록 좋아. 시간을 끌면 땅값이 춤을 출 것 아니오. 1주일 이내에 끝내도록 해 보시오. 군수, 면장, 기타 관계공무원을 총동원하여 발 벗고 나서 함께 뛰면 되겠지. 당장 땅을 사라는 것은 아니고 우선 지주와 교섭해서 기공 승낙서를 처리하면 될 문제지. 기공 승낙서만 있으면 공사를 착수할 수 있는 것 아니오.”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는 朴대통령의 지시대로 완수하였다.[김정렴, 한국경제정책30년사, p239, 중앙일보사]

박정희 前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놓겠다며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에게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땅을 매수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회의 장면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씨가 묘사한 글이다. 참…. Mission Impossible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이라면

1) 1주일은커녕 1달 안에도 땅을 살 수 없을 것이고
2) 기공 승낙서라는 정체불명의 괴문서를 근거로 착공할 수 없을 것이고
3)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가 – 특히 경기도지사가 – 저 지시(혹은 부탁)를 무시할 것이다

한마디로 저 모습은 정부가 초강력 권위주의로 무장하고 전 사회의 자원이 총동원체제를 갖추어 지도자의 지시에 일절 반대하지 않고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무소불위의 개발독재 상황을 묘사한 글이다. 이러한 상황은 박정희의 통치기간 동안 일상적인 모습이었을 것이고 이는 ‘하면 된다’ 정신으로 미화되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오늘 날에도 이런 ‘하면 된다’ 정신으로 대형 토목공사를 밀어붙이려 한 사례가 하나 있는데 바로 지금은 수면 아래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는 대운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의 임기 동안에 대운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저런 ‘하면 된다’ 정신이 있어야만 – 그것도 모든 사회가 총화 단결하여 – 가능한 사업일 것이다. Mission Impossible 2다. 미완성될 확률이 높지만 말이다.

13 thoughts on “박정희의 ‘하면 된다’ 정신

  1. 고어핀드

    뭐 땅값이 비싸지기 전에 일을 처리하려는 기민한 움직임은 인정해 줄 수 있다손 쳐도, 저렇게 정상적인 업무 체계를 뒤흔드는 초법적인 일처리는 사고 터지면 정말 크게 터질 텐데요. 아무 것도 없던 저때에는 사고 터질 것도 없었을지 몰라도 지금 같은 세상에 통할 상황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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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김정렴씨는 저 상황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현실은 훨씬 냉혹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사고도 터졌고요.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냈던 손정목 교수의 저서를 보면 경부고속도로 부지 매입과정이 소상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서울에 당시 미개발지였던 강남 지역(당시엔 영동이라고 불렀다죠)을 매입하기 위해 인용자료에 묘사되어 있다시피 공무원들이 동원되었는데 그들이 단순히 기공승낙서만 받으러 다닌 것은 아닙니다. 즉 그들이 자신들의 명의로 미개발지를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러한 자금여력이 없었다는 것이죠. 이에 대한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고 손정목씨는 그것이 박정권의 비자금이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부가 통치자금 마련을 위해 땅투기를 조장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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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련

      오오, 이런 비사가.. 왕조때였다면 “태종대왕, 왕실의 내탕금을 풀어 부족한 비용 충당” 정도의 훈훈한 미담으로 실록에 실릴 법한 기사로군요. 훈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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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ince

    대운하 카드를 또 언제 끄집어내려할지 참 두렵네요…
    벌써…. 대통령이 참 피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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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땅주인은 억울해도 대통령 각하 지시라니 군말 못하고 내줬겠지요.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 도중 숨진 77명의 인부들을 생각하면 땅주인의 억울함 쯤이야 별거 아닐지도요..
    어렸을 때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도덕’ 교과서에 경부고속도 건설 도중 순직한 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숭고한 희생정신을 발휘한 사례로 묘사한 게 나왔는데, 당시 어린 마음에도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한 대 과업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던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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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어리셨음에도 휴머니즘에 대한 마인드가 있으셨군요.(존경, 농담아니고) 여하튼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사람목숨이나 건강은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던 시절이었죠. 소위 근대화를 지향했던 모든 문명국에서 벌어진 일상적인 야만이 우리나라에서는 저렇게 응축적으로 표출된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사실 지금도 여전히 – 저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 일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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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월덴지기

    ‘하면 된다’ 좋아하다가 ‘한방에 골로 가는 거 터진다’가 될 수도 있지요. 왜 해야 하는지부터 꼼꼼하게 살펴보고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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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ㅎㅎ “한방에 골로 가는 거.. ” 말씀대로 하면 된다고 뛰어들다가 한 방에 골로 가는 경우도 있죠. 실제로 다른 후진국들이 이렇게 되었고요. 우리는 상당 정도 후과는 치르고 있지만 그 골로 가는 길만은 피했다고 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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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미고자라드

    뭐. 이런 매우 강력한 권력이 있었기에 그런 경제 성장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시대에 지금의 시민의식으로 그런 정책을 펼쳤다면.. 불가능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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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전후 극히 일부 선진국들을 제외한 상당수 국가들이 이러한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요소투입 방식의 경제개발을 시도했죠. 위에 월덴지기님 말씀대로 잘못하는 한 방에 골로 가는 시도, 마르크스는 이를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암튼 우리나라는 그 결과가 10%가 넘는 고도성장으로 이어졌는데 많은 나라들은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죠. 결국 장하준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그야말로 선진국이 걷어 차는 사다리의 끝을 잡고 매달려 성공한 셈이 되겠네요.

      여담으로 인용한 책의 다른 부분에 보면 고속도로의 공사비는 일본의 1/8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펄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수많은 사람들이 시공과정에서 운명을 달리 했습니다. 누구의 희생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는지는 명약관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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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히치하이커

    박정희에 대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향수도 향수지만. 일전에 보니 정주영의 사기질(아무 것도 없는 주제에 니가 계약을 해주면 걸 담보로 어쩌구 저쩌구)을 도전 정신이라 써먹는 광고도 있더군요.

    똑똑한 사람들이 이런저런 까닭을 들어 설명을 하려하지만 마음에는 하나도 와닿지가 않네요. 대체 왜 자기가 저임금에 시달리며 땀을 흘리고, 자신이 아는 누군가는 목숨을 바쳐 이룬 성과를 저 놈들의 ‘위대한 지도력(리더쉽)’이라 여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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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 점이 체제수호론자와 반체제론자와의 화해할 수 없는 대립점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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