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냉전 시대의 도래?

원래 ‘자유무역’이나 ‘세계화’라고 하는 개념은 이론적으로 어떻게 무장을 했던지 간에 현실세계에서는 선진 자본주의 체제의 대량생산에 부응하는 시장 확보의 논리로 활용되었다. 자립경제에 가까웠던 중국과 – 어느 정도는 인도? – 달리 유럽의 열강들은 자체시장이 크지 않았기에, 소위 산업혁명(주1)으로 통해 생산된 상품을 소화해낼 수요처의 확보가 절실하였다. 그 해결책이 바로 식민지 개척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오늘 날의 ‘자유무역’과 ‘신자유주의’를 ‘이름만 바뀐 식민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한편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해지곤 한다). 바로 경제권 통합을 통한 국가간 분쟁의 종식이었다. 즉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서구는 경제권의 통합이 각 나라간의 분쟁을 줄여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나치와 파시스트의 등장에서 보듯이 또 다른 분쟁의 불씨를 증폭시키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러한 두려움은 현실 세계에서 GATT체제의 출범과 (냉전이라는 변수가 가미된) 마샬 플랜(주2)의 실행으로 이어졌다. 사회주의권을 제외한 경제권을 한데 묶겠다는 구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상적으로 모든 국가가 자유무역으로 묶여지게 되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지게 되어 특정 국가의 도발이 매우 어려워지리라는 시나리오인 셈이다.(주3)

그렇게 세월이 흘러 90년대 소련을 위시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이후 유일패권을 장악하게 된 미국이 자신들의 경제 시스템을 각국에 이식하면서 이러한 믿음은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에 있어 세계최강인 미국에 비할 나라가 없으니 Pax Americana 시대에 걸맞게 세계경제가 미국의 스탠다드로 자신들의 체제를 정비하고 – 결과적으로 미국은 더 많은 사업기회를 가질 것이고 –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적어도 국지적인 지역분쟁 이외의 – 특히 강대국 간의 – 돌출행동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칠 것 없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여기에 누가 감히 대놓고 개기는 나라는 없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마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전쟁 – 엄밀히 말해 그루지야의 대리전쟁 – 은 이전까지의 일극체제의 균열을 알리는 상징적인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동안 미국에게 대들 생각 말라는 등소평의 유지를 이어 받은 중국이 얌전하게 올림픽이나 개최하며 세계평화를 노래하고 있는 동안 러시아는 남오세아티아人들을 돕겠다는 순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親서방 성향의 그루지야로 거침없이 진주해버린 것이다. 미국에 대한 (거의) 공개적인 도발인 셈이다. 서방의 전면적인 도움을 기대했던 그루지야는 서방의 의외의 침묵에 서둘러 휴전을 선언했지만 이미 사태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금까지 미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냉전에 접어들었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많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워싱턴에서 우리는 소비에트 이후의 미국-러시아 제휴의 시대는 끝났다고 들었다.
So far, much ink has been spilled over whether the U.S. and Russia are in a new Cold War. In Washington, we hear that the era of a post-Soviet U.S.-Russia alliance is over.[After Georgia, Day of Reckoning for Washington, Business Week, August 17 2008]

다시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분쟁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믿음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결과적으로 그 기대는 끊임없이 도전받아왔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확실하게 허물어졌다. 사회주의 체제 포기 이후 빈사상태에 시달리던 러시아, 그리고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노선으로 수정하였던 중국을 살린 것은 분명히 자유무역과 세계화였다. 한동안 정신이 혼미했던 러시아는 세계화에 편승하여 막대한 자연자원 수출을 통해 기사회생하였고 중국은 저가 제조업 상품을 양산해내며 전 세계의 공장 노릇을 담당하였다. 반대급부로 미국을 위시한 서구각국은 자국의 경기하락을 이겨내고 예전의 소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체제유지가 망한 체제의 국가들을 통해 가능하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어떠한 결과를 낳고 있는가를 보면 그리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금융의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역으로 전 세계적으로 ‘생산 및 투자동조화 현상’(주4)으로 인한 경기동조화 현상 심화와 석유 등 원자재가격의 폭등(또는 폭락 등 변동폭 심화)(주5)등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이와 병행한 자원의존성 심화는 자원민족주의 성향을 부추겼다. 물론 상당히 오랜 기간 러시와와 그루지야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반목하기는 했지만 석유문명이 백척간두에 서있는 지금 송유관을 둘러싼 양 측의 대립은 더욱 확대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유무역과 세계화로 세계평화를 이룩하겠다는 이상주의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1) 우선 남북문제가 온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다국적기업과 초국적자본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국제표준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WTO와 같은 자유무역이 호혜평등한 무역관계를 조성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지나치게 순진한 믿음이라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6) (2) 세계화로 인해 가장 큰 힘을 얻은 금융시장, 주되게는 월스트리트가 오히려 실물시장의 교란요인으로 등장한 것이 세계화의 큰 패착 중 하나다. (3) 마지막으로 쇠락한 러시와와 중국의 전체주의적 기조를 나머지 자본주의 국가들이 오히려 자본자유화 가속화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던 것이 큰 원인이다.

한번 살펴보자. 누가 러시아의 푸틴에게 가장 힘을 실어 주었을까? 말로는 민주주의의 세계전파를 외치면서도 자본주의의 세계전파 및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해 푸틴의 전체주의적 국가로의 회귀를 눈감아왔던, 오히려 활용했던 미국과 그 외 서구유럽(주7), 그리고 그의 돈줄이 된 석유가격을 착실히 올려준 국제원유시장이 그 힘의 원천이다. 푸틴은 서구 열강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독재를 눈감아주는 그 와중에 자원민족주의로 힘을 키웠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의 이익을 위한’ 세계화가 분쟁의 새로운 불씨를 만든 셈이다.

많은 이들이 올림픽이라는 신기루에 현혹되어 있는 사이, 어쩌면 新냉전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예전의 냉전과 차이가 나는 점이라면 (1) 체제경쟁의 차원이 아니라는 점 (2) 예전과 같은 형식상으로는 다수의 국가들이 대립하는 블록 간의 대립이 아니라는 점 등일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 과거와 같은 첨예한 대립양상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하나의 차이점이 이러한 낙관을 상쇄해버릴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과거와 달리 자본주의 문명을 (일시적으로라도) 멈추게 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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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산업혁명의 기원과 경과 등에 대해서는 강철구 교수의 ‘영국 산업혁명의 요인들’이 좋은 텍스트이므로 참고바람

(주2) 마샬플랜은 또한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내도록 강제하여 결과적으로 독일경제의 피폐화와 나치의 준동을 돕게 하였다는 주장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다.

(주3) 사회주의 블록이라는 체제 밖의 도전은 지배계급 블록의 강화와 노동자 계급의 억압의 좋은 빌미가 되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사회복지의 확충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주4) 이는 전 세계가 특정상품의 희소성에 대하여 동시다발적으로 공급을 늘리고 그에 따른 산업시스템이 함께 조정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을 달리 지칭하는 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여기에서는 내 나름대로 작명하여 썼다. 이러한 사례의 가장 단적인 예는 바이오연료나 CDO등을 들 것이다.

(주5) 현재까지도 석유선물시장의 존재와 금융세계화가 유가폭등의 주범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설왕설래하고 있으나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현재와 같이 주도적이었던 시장과 지금의 시장은 명백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주6) 그리고 그러한 세계화의 우회로로 오히려 지역주의 블록을 강화하는 FTA를 확대하여 세계화 네트워크를 강화하겠다는 믿음 역시 현재로서는 맹신에 가깝다.

(주7) 그들에게는 러시아의 자본주의화가 목적이었지 그들이 주창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이식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19 thoughts on “新냉전 시대의 도래?

  1. xarm

    과거에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해야 맞나요, 사회주의라고 해야 맞나요?;;- 진영의 대립이었다면 자본주의의 옷으로 갈아입은 러시아의 부활은 이제 어떤 프레임의 대결이 될까요?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이라기엔 러시아도 어쨌건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고…
    대결이란게 먼저 명분을 앞세운다고 볼 때 어떤 명분 대결이 될지 궁금해지네요. 러시아의 인권 상황은 잘 모르지만, 인권으로 몰아갈 가능성도 있으려나요?ㅎ
    전의 제국주의 모습이 다른 제국의 영향권에 없는 땅 먼저 따먹기의 모습이었다고 보면, (시장 확보에서 자원 확보로 목표가 바뀌었을진 몰라도) 앞으로는 땅 빼앗기가 되진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이번 그루지야 사태가 그 예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전문가도 아닌데 너무 많은 말을 한 듯 싶네요.^^; 사실 이 글과 상관 없는 다른 말을 하고 싶어서 핑계삼아 썼던 건데 말이죠.ㅎㅎㅎ
    오른쪽 사이드바에 있는 투표요, 보기가 하나 빠진듯 해요. “전부 다” 라는 항목.ㅋㅋㅋ 모든 글을 다 재밌게 보고 있는 데 그 중 하나 고르라는 건 가혹한 처사인 듯?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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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1) 공산주의라고 해야 맞나요, 사회주의라고 해야 맞나요?;;-

      이거 굉장히 정치적이고 복잡한 문제인데 반공주의자나 사회주의 블록이나 다들 공산주의라고 했으니 – 한쪽은 나쁜 의미에서 한쪽은 뽐내는 의미에서 – 공산주의라고 해두는 편이 좋을 듯 하네요.

      2) 러시아의 부활은 이제 어떤 프레임의 대결이 될까요?

      역시 슬라브 민족주의겠죠.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 언제 그랬는가 모르겠지만 – 재현하는 뭐 그런.. 사실 소비에트 시절에도 혁명 직후에나 형식적으로 국제주의를 외쳤지 2차 대전 이후에는 대놓고 슬라브 민족주의적으로 나아간 측면이 있죠. 이에 대항할 서구측의 논리는 말씀하신대로 인권침해 – 박노자씨에 의하면 굉장히 위험한 지경이라고 – 일수도 있겠고 민주주의의 파괴(?)일수도 있겠고 뭐 이라크에서는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로 침공했는데 핑계가 없겠습니까. ^^;

      어쨌든 21세기의 신조류가 민족주의와 종교의 근본주의가 되고 있으니 참 역사는 돌고 도는 모양입니다. 발전이 없네요. –;

      추.

      투표는 복수응답도 된다는 ^^; 어쨌거나 심심풀이니까요.(저에겐 참고자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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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xarm

      복수응답이 됐군요..ㅎㅎ
      투표 하도 또 투표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네요 ㅋㅋ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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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Odlinuf

    중동의 석유가 고갈될 즈음엔 세계가 어떤 구도로 개편되어 있을 지 참 궁금합니다. 그때도 또다른 에너지 전쟁을 하고 있을까요? 과학자들은 더 분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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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죄송하지만 단순히 과학자들이 분발해서 될 문제는 아니지 싶네요. 포츈지가 최근 발표한 2007년 수익 기준 세계 최고의 기업 순위를 보면 상위 12개 업체중 절반이 석유회사랍니다. 이는 이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선 대체에너지원의 개발을 언제라도 좌절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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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oog

      ㅎ~ 그런가요? 취지를 받자옵지 못하고.. ^^; 실은 고갈 이후에도 기술개발은 석유메이저의 손에 휘둘릴 것이라는 뉘앙스도 있었사옵니다. 암튼 석유고갈.. 생각하기도 끔찍하죠. 석유는 단순한 연료가 아닌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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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Odlinuf

      맞습니다. 그때도 그들이 에너지업계를 좌지우지하겠죠. 다만 에너지원이 어떤 것이냐의 차이겠지만. ^^;
      석유가 고갈된다면…말씀대로 끔찍합니다. 전반에 걸친 대변혁이 필요할테니까 말이죠.
      그리고, foog님의 저(低)자세 보기좋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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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우재

      오호..드디어 과학자들이 세계의 구원자로 등판할 시기가 된건가요? ㅋ

      탁월한 분석 잘 읽었습니다. 전 언제쯤이나 이런 분석을 할 수나 있을까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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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oog

      맞아요 과학자들이 세상을 구원해야죠! 김우재님 같은 급진적 과학자가!

      그런데 희한한게 만화나 영화를 보면 미친 정치가보다 미친 과학자가 더 자주 등장하는데 왜 그런지 아시나요? 😛

      추.

      “탁월한 분석” 이란 표현은 김우재님 글에 더 어울립니다만…

      Reply
  3. 호박꽃

    왈츠 식의 신현실주의자들은 오히려 안정된 국제체제가 도래한다고 좋아하겠네요. 국제정치의 측면에선 말이에요.

    자유주의자들의 머리속 생각과는 달리, 현실이 이렇게 된 점은, 이론과 현실이 다르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요. 이론적으로 분명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은 순수하죠. 그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현재로선 없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하구요.

    문제는, 현재 자본주의를 잡고 흔드는 ‘금융’이라는 놈이 경제학적인 의미에서 ‘균형’이 없다는 점. 그리고, 특정 자원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겠죠. 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것 처럼, 세계경제체제가 순수한 경제체제가 아닌, 권력(자본권력도 포함해서요.)의 손바닥 안에서 춤을 추고 있다는 점도 문제구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구도를 해결할 만한 국제적인 합의나, 그것을 이끌어갈 모멘텀이 없다는 점일까요? 한때 NIEO를 포함한 경제 문제로 뭉쳤던 개발도상국 포함 LDCs들도 현재는 선진국들의 자본의 수혜를 기다리면서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과연 현재 경제 질서가 어떻게 변화할지, 변화한다면 어떤 동력에 의해서 변화할지 궁금해지네요. 앞으로 관련된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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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단기간에 일극체제가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한 귀퉁이는 분명히 무너지지 않았나 싶네요. 누가 새 미국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국제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새로운 기획을 해야하리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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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ozworld

    조지 오웰의 1984의 오세아니아, 아시아, 유라시아 제국으로 나뉘어진 체제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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