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de Runner, 기억은 믿을 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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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de Runner poster” by http://www.impawards.com/1982/blade_runner.html. Licensed under Wikipedia.

십 수 년이 훌쩍 지나 Blade Runner 를 다시 감상하였다. 제작된 직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이기에 새삼스럽게 상세한 작품소개 따위가 필요없을 것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Philip K. Dick의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을 원작으로 하여 Ridley Scott이 감독한 이 영화는 개봉이후 열광적인 광신도를 거느리게 되어 동시대에 이미 컬트가 되어버렸고, 무수한 헐리웃 SF에서부터 사이버펑크 계열의 저패니메이션까지 수많은 작품의 자양분이 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기억’에 관한 영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억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 … 마치 장자의 꿈이나 뫼비우스의 띠, 에셔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다. 인조인간들은 그들이 인간임을 믿는 근거로 그들의 추억을 들고 있지만 그것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설정이다. 그렇다면 진짜배기 인간들의 추억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근거는?

여기까지 가봤던 영화가 The Matrix와 Memento가 있다. 전자의 경우 우리의 기억은 송두리째 거짓일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교리를 설파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 과거의 추억은 현재의 편리에 의해 얼마든지 재배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사실 영화라는 장르에서 수많은(정말 수많은) 작품이 ‘기억’을 어떤 식으로든지 작품의 플롯을 꼬는데 주요한 매개체로 사용해 왔고 바로 그 ‘기억’이 누군가에 의해 인조인간의 인공지능에 심어졌다는 아이디어가 바로 이 영화를 사이버펑크의 고전으로 등극시킨 오리지날리티였다.

다시 Blade Runner의 스토리로 돌아가서 결국 Rachel 이든 Nexus 6 무리든 그들은 원하지 않은 탄생에서부터 원하지 않는 죽음을 두려워 한 가련한 존재들이었다. 인간이 아니기에 천국에(천국이 있다면) 갈 자격마저 없을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한때 인간이 아닌 동물로 규정되었던 흑인노예들처럼. 그러니 결국 경찰입네 뽐내고 다니던 Rick Deckard는 Tyrell 회사라는 노예상 자본가를 위해 도망간 노예를 쫒는 노예사냥꾼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해리슨포드가 맡은 Deckard가 아니라 룻거하우어가 연기한 Roy다(‘뿌리’의 SF버전?^^).

추1. 예전 비디오로 영화를 감상하던 시절 우리나라 출시 비디오의 기막힌 자막은 가끔씩 화제가 되곤 했었는데 이 작품도 ‘기막힌 자막 탑3’에 충분히 낄 정도로 기막히다. Deckard 와 Rachel의 정사 장면에서 둘이 “I want you” 라는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번역자는 Dekard 의 “I want you” 는 “너를 원해”라고 번역했고, Rachel의 “I want you”는 “드리고 싶어요”로 번역했다.

추2. 이 영화는 소위 Director’s Cut 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화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감독은 1990년의 재개봉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고 제작사는 전격적으로 그에게 전권을 일임하여 감독이 편집에 권한을 행사하게 자유를 주었다. 그 결과 감독의 주제의식은 보다 선명해졌고(예를 들어 결말의 종이접기 유니콘의 의미 등) 수많은 광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이후 많은 영화에서 Director’s Cut 이 하나의 마케팅 카피로 자리 잡게 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잘 아시겠지만 아무 영화나 감독이 커팅한다고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추3. 역시 80년대에 제작된 로맨틱코미디 Electric Dreams라는 영화가 있다. 와인을 먹은(?) 컴퓨터가 의식이 생겨 어느 여인을 짝사랑하게 된다는 황당한 내용인데 이 영화에 자유의지를 갖게 된 컴퓨터가 모니터에 양떼가 장애물을 뛰어넘는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이 영화의 원작 제목인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재밌게 풍자한 장면이다.

12 thoughts on “Blade Runner, 기억은 믿을 만 한가

  1. PSB

    이 영화 블루레이로 가지고 있습니다. 따끈따근한 파이널 컷이지요. 원본을 보면 스카이카를 매단 와이어 줄이 막 보여요. 영화 내내 비가 내리고 어두컴컴했던 것도 바로 이 와이어를 감추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CG가 없던 시절의 원하지 않은 필름 느와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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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조명을 어둡게 쓴 이유가 나름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그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미덕을 지닌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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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하여튼 그당시 사회분위기느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요즘에야 여자분들도 길거리에서 담배펴도 되지만 그 당시엔 어디 감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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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초큼’ 이상하게 들리는 게 아니라 ‘엄청’ 이상하게… 또느 노골적으로 들리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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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ooe

    Electric Dreams 재밌겠네요.
    Rachel과 Dekard의 대순서가 바뀌었다면 어떻게 번역했을까도 궁금하네요.^^;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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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개인적으로는 Electric Dreams를 Blade Runner만큼 좋아합니다. 기회되면 한번 리뷰 올리도록 하죠.

      대사 순서가 바뀌면 이렇게 되겠죠.

      “드리고 싶어요”
      “받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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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j4blog

    아놀드옹이 주연을 맡았던 ‘토탈 리콜’도 생각나는군요. 기억조작에 관련한 영화로 또 하나의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라? 잠깐..같은 필립 K 딕 작품인가요?(기억의 조작보다도 유지가 필요한 금붕어) 저 대사는 전혀 기억에도 없습니다. oTZ….

    개봉당시 극장에서 봤는데 관람객이 저를 포함해서 딸랑 3명이었다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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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헐헐 딸랑 3명이서 영화를 보셨다고요.. 정말 호화스러운 관람이셨네요. 토탈리콜 명작이죠. 아놀드만 배역에서 제외를 시켰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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