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타면 좋겠지만 못 타면 또 어떤가?

노벨상 하나도 못 탄 나라여서 후진국이라고 스스로 자괴감에 시달리던 나라가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대한민국. 드디어 김대중 대통령께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시어 태극기를 세계 방방곡곡에 휘날리셨다. 그런데 그마저도 또 로비로 탄 상이니 뭐니 자국인들끼리 싸우는 희한한 나라가 바로 이 나라가 아닌가 싶다.

노벨상.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다. 그 권위를 세운 과정은 깊이 알지 못하지만 하여튼 선정 과정이나 수상 과정을 보고 있자면 과연 폼은 난다. 유럽의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직설적으로 말해 ‘귀족’스러운 그 분위기는 수상을 하는 사람이나 그 수상자의 해당국이나 뿌듯한 자부심을 심어줄 만큼 근사하다.

고은 시인이 이번에도 노벨 문학상의 문턱에서 미끄러졌다고 문학계에서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한 출판사 대표는 “노벨 문학상의 유럽 중심주의는 그동안 계속 문제제기가 된 부분”이라며 “일본을 제외하곤 제3세계와 아시아 문학에 대해서 지나치게 무관심해 왔다”고 말했다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유럽의 상이니 유럽중심인 것 아닌가. 오스카가 미국 중심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또 한국문학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실패했다는 자성론도 나오는 모양이다.

왜 이 시즌만 되면 유럽의 어느 상패에 휘둘려 자학모드로 돌입하여 OTL 자세로 들어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왜 한국인은 이렇게 유난히도 타국인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는 것일까.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심히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체면’ 문화가 아닐까 싶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도 그러한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싶다. 외국인들이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서 뭐라 이야기하는지가 신경 쓰이고 또 알고 싶은 것이다.

물론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예술이 지향하여야 할 바이긴 하다. 그러나 그 보편성은 소설을 영어로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는 특히 언어라는 장벽이 있긴 하지만 판소리가 판소리이기 때문에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한국문학이 한국인에게 기쁨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걸쭉한 사투리가 배어 있는 토속적인 문학작품에서 느끼는 정서를 영어로 아무리 멋들어지게 번역한들 그 정서가 그대로 옮겨지지는 않을 것 아닌가? “누리끼리한” 을 영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타면 좋겠지만 안탔다고 정기적으로 “우린 안 돼”라고 고개 숙이는 짓은 고만하자. 막말로 노벨이 문학을 알기나 했을까?

노벨상 수상자 선정 원칙과 과정의 실체

2 thoughts on “노벨상 타면 좋겠지만 못 타면 또 어떤가?

  1. 한방블르스

    노벨상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 괜히 출판사와 언론에서만 나서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 않군요.

    한가지 의문은

    왜? 고은시인이 후보로 올르는지 모르겠군요. 김지하시인이나 박경리선생이 훨신 더 노밸상 어울리고 나아보입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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