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파생금융상품, 그리고 머니게임

현대 자본주의의 플레이어들에게 사업을 영위함에 있어 가장 유념하여야할 것을 5개만 나열하라면 어떤 것들이 리스트에 오를까? 모르긴 몰라도 상당수 사람들이 리스크(risk)를 뽑지 않을까 싶다. 사람 사는 세상이 모두 그렇지만 특히 비즈니스에 있어서 리스크는 모든 이들이 가장 꺼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리스크를 우리말로 무어라 해야 할까? 리스크를 ‘위험’이라고 번역하면 그건 좀 ‘위험’하다. 리스크(risk)는 위험(danger)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으로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요소가 더 많이 내포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다. 즉 누군가 리스크를 헤지(hedge)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위험을 분산’하였다는 표현도 타당하지만 ‘불확실성을 제거’하였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high risk, high return 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동어반복이다. 리스크는 비용(cost)인 동시에 기회(opportunity)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업을 영위하는 중에 많은 이들은 곳곳에 산재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즉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기회도 포기하려는 속성이 강하다.

이러한 속성을 파고든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보험일 것이다. 만약의 사고라는 비용에 대비해서 보험가입자는 보험료라는 오늘의 기회를 포기한다. 그래서 보험은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 일찍부터 해상무역이 활달했던 영국에서 발전해온 리스크 헤지 방법으로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변종으로 번식하며 득세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 접어들며, 특히 1970년대 닉슨의 달러 금태환 정지 선언 등에 따라 변동환율제 체제로 접어들며 파생금융상품이 리스크 헤지 방안으로 등장했다. 플레이어들은 스왑, 옵션, 선물 등으로 불리는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환 리스크, 금리 리스크, 가격변동 리스크 등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닉슨 행정부를 통해 본격적으로 금융억압이 막을 내린 서구 자본주의의 금융시장에서 위와 같은 기초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파생금융상품이 등장한다. 실질적인 통화나 실물이 오가는 것이 아닌 단순한 리스크 헤지 거래의 차액만이 결제되는 시장이 점점 더 그 규모를 키워왔다. 그리고 그러한 비대화되어가는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CDO와 CDS라 할 수 있을 것이다.

CDO는 다양한 신용도의 기초자산을 – 대표적으로 모기지 채권 – 여러 개 섞어서 구조화시킨 후 리스크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입맛을 지닌 소비자(즉 CDO를 구매하는 투자자)에게 판다는 것이 기초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 개념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기초자산 시장이 통째로 불황에 빠지는 매크로 리스크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사실을 플레이어들이 인지하지 못하였거나 고의로 무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실제로는 기망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CDS는 또 그러한 CDO나 여타 허다한 기초자산, 기업, 급기야 모든 것들의 채무불이행 리스크(default risk)에 대해 일정액의 수수료로 손실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보험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신종상품이니 규제도 받지 않고 신나게 팔린 모양이다. 누적판매액이 60조 달러쯤 된다니 뭐 상상이 안 간다. 그런데 이 상품마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이 흔들릴 정도로 예기치 못했던 강진이 발생하자 속절없이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 디폴트 리스크의 판매자가 디폴트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거칠게 살펴보았지만 요는 결국 현재의 시장상황은 리스크 보장을 팔아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 그 현황 자체가 리스크인 모순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리스크를 헤지 해주겠다고 나선 이들이 정작 내부 시스템에서는 자신들에게 거대한 리스크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파생금융상품의 수많은 변종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이해부족, 정보공유부족, 기망, 심지어 사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투자론, 금융공학, 경영학, 산업공학 등이 발전하면서 가장 세분화된 부분이 바로 이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리스크 헤지 부분일 것이다. 수학의 천재들이 그리스 문자가 뒤섞인 온갖 수식을 개발하고 첨단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실무에 적용해왔다. 그런데 결국 그 화려한 최첨단의 금융공학과 이 이론으로 포장된 파생금융상품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기초적이고 고전적인 신용 리스크, 그리고 그것이 폭발할 때까지 펼쳐진 광기어린 머니게임의 – 그것이 없었더라면 좀 더 빨리 리스크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 차단막이 되어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7 thoughts on “리스크, 파생금융상품, 그리고 머니게임

  1. Ikarus

    CNN,NBC,Fox를 가릴것 없이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뒤덮어 버리고 연일 쏟아져나오는 금융위기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참 모진 세상을 살고 있구나 하는 자조가 듭니다. 고도의 수학기법을 사용한 첨단금융상품이라고는 하지만 그 기저엔 인간의 욕구과, 더 나아가 탐욕이라는 원초적인 욕망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으니 허영에 부푼 엄마 개구리의 배가 펑~하고 터져 나가더라도 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 자신은 여기에 직접적인 기여를 한 바 없다는 이기적인 믿음때문에 제게 돌아오는 파편들이 짜증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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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만약 간접투자펀드에라도 가입하셨으면, 그리고 연금에 가입하셨으면 적어도 간접적으로는 플레이어가 되신거겠죠.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직접적으로는 기여하신 바 없다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파편.. 표현이 그럴싸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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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제 조금 있으면 한국에서도 합성 CDO 판매가 가능해지고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허용은 하되 규제를 강력하게 하면 된다’ ‘아예 못 만들게 해야 한다’ 두 가지 의견이 있는데 어느 쪽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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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게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 합성CDO같은 것들이 소위 말하는 구조화금융일텐데 그런 구조화금융은 사실 이미 우리 생활속에도 자리잡고 있는 것이거든요. 집살때 내 돈 몇프로 은행빚 몇프로 계획세워서 자금조달하는 것이 바로 구조화니까요. 🙂 금융시장의 유동성과 안정성을 위해 마련한 각종 장치들이 그 본 취지를 무시한, 심지어 반대되는 상황을 연출하는 상황을 우연적인 것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본질적인 것으로 봐야할지… 그 부분이 현재 혼란스러운 상황이죠. 공매도 자체도 분명히 헤지의 한 주요수단이었는데 리스크 헤지 시장의 본령인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 금지시키고 있고… 모든 것이 아노미입니다. 끝이 어딜지는 그린스펀만이 알겠죠(또는 아는 체 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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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Jayhawk

    신용(信用/Credit) – 믿음을 쓰는 것(마이너스적)
    신뢰(信賴/Trust) – 믿고 의지하는 것(플러스적)

    신용을 쓰려면 신뢰를 쌓아두어야겠죠.

    현재의 전지구적 현상은 신용을 쓰는데만 몰두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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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신용을 쓰는데만 몰두”한지는 꽤 되었죠. 우리 역시 거리에서 신용카드를 팔고 여전히 카드를 남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 도대체 나를 어떻게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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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oog

    ㅁ (신용위기 발생원인) 다양한 원인이 제기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비효율적인 금융권 관행
    및 일탈적인 보상체계에 기인
    ㅇ 기관의 이익과 구성원 개인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으며, 유명무실한 내부통제 기능과 결정사항의
    실행이 어려운 조직문화가 위기를 초래/심화

    ㅁ (금융기관 대응방안) ① 통합된 위험관리 체계의 확립, ② 위험관리에 대한 내부문화 정착,
    ③ 대응방안을 실행할 용기가 필요
    ㅇ 내부 부문간의 소통 및 이해조율을 통한 전체 조직단위의 위험관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조직원 모두가 공유하는 위험관리에 대한 교감 및 필요조치를 실제로 실행하기 위한 경영진의
    용기가 필요

    ㅁ (정책기관 대응방안) ① 자본 확충, 유동성 관리를 통한 완충능력 확보, ② 위험관리 기능의
    효율성 향상이 필요
    ㅇ 시장성 여신에 의존한 단기자금이 아닌 투자 또는 장기자금의 확보 및 위험관리 기능의 실질적
    활성화 유도

    ㅁ (요약 및 평가) 금융당국과 업계는 실질적인 내부정비 및 투명성 제고조치가 시행되어야
    최근 위기로 손상된 신뢰의 회복 가능할 전망

    http://www.kcif.or.kr/board.asp?mode=view&id=5&no=2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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