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rn balance

얼마 전에 어떤 영화가 굉장히 보고 싶어졌다. 보고 싶은 영화는 흔히 말하는 심오한 걸작이나 마이너 취향을 충족시켜주는 컬트영화가 아니고 랄프 마치오 주연의 80년대 십대영화 ‘가라데키드(The Karate Kid)’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일정서 때문에 베스트키드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이 영화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한 외톨이 소년이 일본계 아파트 관리인으로부터 가라데를 배워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흥행도 무난하게 성공해서 랄프 마치오는 청춘스타가 되었고 – 요새는 어디서 뭐하는지? – 시리즈는 4편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4편 정도까지 가면 완전 짝퉁 가라데키드가 된다. 여하튼 기어코 – 어둠의 경로를 통해 – 찾아보고 포만감을 느꼈다. 아무튼 이 영화대사 중에 오늘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비슷한 대사가 있다.

“Learn balance. Go water, kick. Learn balance.”

스승인 미야기가 제자 다니엘(랄프 마치오)에게 균형이 중요하다면서 호숫가의 배위에 서서 균형을 잡는 연습을 시키면서 하는 말이다. 무술을 연마하지 않은 사람들도 수긍할만한 말이다.(누군가 말하길 좌우 균형이 완벽한 이가 있으니 그 이름은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라고 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적절한 균형감각, 또는 선을 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한 법이다.

다음 그래프를 보라.

자료 : SIFMA, 세계 자산유동화증권시장의 현황 분석, 한국증권연구원, 자본시장 Weekly II에서 재인용

균형감각 이나 절제라는 단어가 절대 생각나지 않는 그래프다. 특히 2007년 현재 미국에서 발행된 자산유동화증권이 전 세계에서 차지했던 비중이나 이후의 증감추이는 사뭇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여기서 느낄 수 있는 점은 현재 위기의 원인을 자산유동화 그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자금시장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즉, 현재의 위기는 자산유동화가 소위 말하는 어떤 임계점(threshold)을 넘어서게 되면서 여타 부문으로 흘러넘치는(spillover) 양질(量質)전환의 단계라는 가정이다.

승용차가 많은 것은 문제가 안 된다.(물론 환경적인 차원을 배제하고서의 관점에서) 하지만 공공교통수단이나 도로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승용차만 늘어난다면 그것은 어느 임계점에 달해서 도로의 비효율을 가중시키고 공공교통을 마비시킨다. 결국 우리는 승용차 10부제를 실시하든지 도로를 더 확충하든지 하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자산유동화 증권의 경우도 그것의 급격한 증가는 다른 대안들을 마비시키고 말았다. 도로 확충과 같은 과제를 풀기위해 무자격자에게까지 눈먼 돈을 빌려주었고, 마침내 도로가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번 사태의 진정한 원인은 앞으로도 한동안 저자거리나 강단에서의 지속적인 주제가 될 것이다. 몰인정한 신자유주의, 무절제한 금융자본주의, 월스트리트의 탐욕, 미당국의 저금리 기조, 금융당국의 탈규제 등등 다양한 원인분석과 그 대안이 난무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 하나로 ‘상품에 대한 균형 상실’도 고려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자금시장은 – 특히나 미국의 – 모든 실물자산을 증권화 시켜야 하고 유동화 시켜야 한다는, 이를 통해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왔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착각은 앞서의 다양한 원인들과 결합되어 위기를 증폭시켰지만 말이다.

2 thoughts on “Learn balance

  1. IKARUS

    Balance라는 단어를 들으니 “중용”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군요. 사람들은 많은 경우 Optimization을 노리다 나락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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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옳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 ‘중용’이었죠. Ikarus님이 꼭 짚어내시니 감탄할 따름입니다. 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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