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에서 중재에 대한 각 당사국의 동의 문제에 관해

그러나 ICSID 협약에 가입했다고 하여 회원국이 자신의 영토 내에 투자한 외국 투자자에게 자국을 국제중재판정부에 제소할 권한을 자동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투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투자유치국 정부가 이 건에 대하여 중재판정부의 관할권에 동의하는 경우에만 중재가 성립되므로 투자유치국 정부는 원하지 않으면 투자중재절차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회원국들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필요에 따라 특정 교역상대국을 선택, ICSID 등의 국제투자중재 관할권에 대한 사전 동의 조항이 포함된 양자 간 투자협정이나 투자협정이 포함된 FTA를 체결함으로써 투자중재절차를 양국 관계 내에서만 의무화하는 것이다.[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 김현종, 홍성사, 2010, p287]

비판자들이 한미FTA의 주요독소조항으로 꼽는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중재절차에 관한 언급이다. 해당절차는 투자자가 – 인용문에서는 “외국 투자자”라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상 투자자 일반 – 자신의 투자가 정당하게 보호받지 못한다고 판단할 경우 이를 투자한 나라의 사법권이 아닌 국제중재로 가져갈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A)가 한국정부(B)에 의해 자신의 투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여겼을 경우, A는 B의 사법권의 3심제도 하에서 재판을 하든지 아니면 한미FTA에 따라 단박에 국제중재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B가 사법제도를 써먹지도 못한 채 중재로 가면 억울하니 관할권에 대한 동의절차를 둔다는 설명이다.

김현종 씨의 설명을 들여다보면 우선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협약에 가입했을 경우, 투자유치국 정부는 중재판정부의 관할권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한미FTA에도 이러한 선택권이 적용되는지가 의문인데, 인용 문구를 읽어보면 “사전 동의 조항이 포함된” FTA를 체결한다고 되어 있어 역시 선택권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제 11.17 조
중재에 대한 각 당사국의 동의
1. 각 당사국은 이 협정에 따라 이 절에 따른 중재에 청구를 제기하는 것에 동의한다.
2. 제1항에 따른 동의와 이 절에 따른 청구의 중재 제기는 다음을 충족한다.
가. 분쟁당사자의 서면 동의를 위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협약 제2장(센터의 관할권)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추가절차규칙의 요건, 그리고
나. “서면 합의”를 위한 뉴욕협약 제2조의 요건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한미FTA 해당조항이다. 찬찬히 읽어보면 2항의 조건을 충족하는 조건 하에서 각 당사국은 중재 청구 제기에 – 자동으로 –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김현종 씨의 설명에 따라 ICSID 협약에 의하면 제소 권한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고 그 협약의 충족이 전제조건이므로 아직 “자동동의”는 아니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3) Consent by a constituent subdivision or agency of a Contracting State shall require the approval of that State unless that State notifies the Centre that no such approval is required.[ICSID CONVENTION, REGULATIONS AND RULES]

한미FTA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ICSID 협약 제2장에서의 정부의 승인에 관한 내용이다. 결국 당사자 간의 관할권에 대한 합의는 정부의 승인을 전제로 한다는 내용으로 김현종 씨의 설명과 부합한다. 궁금한 것은 정부의 승인을 전제로 하는 ICSID 협약의 해당문구를 충족하면 1항에 따라 자동 동의로 간주되는 것이 결국 순환논리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표 1> 조항에서의 ‘동의’란, 세계은행(World Bank) 산하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ICSID)’ 등과 같은 국제중재기관의 관할권을 미리 포괄적으로 동의해 준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협정문의 성격을 결정하는 특징적 내용입니다. 좀 어렵겠지만, 이 조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략]
이처럼 센터의 관할권을 국가가 사전에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국제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표 1> 조항은, 국가의 서면 동의가 없으면 센터의 관할권 자체가 발생하지 않은 국제법 현실에서, 국가가 센터에 관할권을 포괄적으로 사전 부여하는 서면 동의 조항입니다.[“프랑켄슈타인과의 동거 계약서”]

한미FTA의 대표적인 비판론자인 송기호 변호사의 설명이다. “센터의 관할권을 국가가 사전에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국제법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FTA의 해당조항은 관할권을 사전 부여하였다는 주장이다. 적어도 제 11.17 조 1항으로 판단하자면 맞는 말 같다. 2항의 충족조건의 순환논리(?)에 대한 공부가 더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파고들수록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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