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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의 진원지에 존재하는 여전한 위기

26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주택 재고는 이 나라의 주식시장의 총액보다 약간 더 많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 층이다. 11조 달러에 달하는 부채의 미국 모기지 금융 시스템은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금융 리스크가 가장 크게 집중된 곳일 것이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약 1조 달러의 모기지 부채를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어 국제 금융 시스템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가혹한 경기침체기에 폭발한 이래 10여년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고 있는 곳이다.[Comradely capitalism]

전 세계의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이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 여부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면, 그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은 미국 주택시장의 부침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리고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미국 주택시장의 자산 규모는 단일 시장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따라서 이 시장에는 당연히 수많은 투자자들과 그들을 돕는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 풍경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까지의 풍경이었고, 그 이후의 상황은 잘 아는 바와 같다.

두 번째의 큰 변화는 2008년 12월의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긴급 구제조치가 정부의 더 커다란 역할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전에는 민간이 운영했던(비록 암묵적으로 보증은 하고 있었지만) 모기지 회사들인 프레디맥과 패니메의 대주주가 됐다. 이들은 이제 “후견체제(conservatorship)”, 종결될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 일종의 명목상의 한시적인 국유화 체제 하에 있다. 다른 증권화 업자들은 퇴출했거나 파산하였다. 이는 대부분 민간 부문에서 이루어졌던 부채의 증권화가 이제 거의 완전히 국영화됐음을 의미한다.[같은 글]

이코노미스트의 저 기사 제목을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인용문의 맥락에서 보자면 저 제목은 “동지적 자본주의”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 형태를 띠고 있는 현 체제의 상류에 거슬러 올라가면, 즉 전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을 좌우하는 그 시장은 국유화됐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상황을 묘사한 기사의 제목을 저렇게 지은 것이다. 요컨대 2008년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가 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체제는 사회주의라는 게 기사의 논지다.

한편 “동지적 자본주의” 성향은 채권자 현황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는데, 정부 모기지 채권의 27%에 해당하는 1조8천억 달러의 채권을 Fed가 매입했기 때문이다. 즉, 이는 국영 모기지 회사들이 금융위기 이후 전체 채권 중 60% 이상의 – 심지어는 80% 이상까지 – 보증부 채권을 발행했고, 이를 다시 Fed가 매입하여 가동시킨 시장이 바로 미국의 주택 모기지 시장이란 의미다. 시장은 존재하는데 그 시장의 주요 공급자와 주요 수요자가 정부부문인 시장, 그렇다면 이 체제는 “시장 사회주의”인가?


미국의 모기지 신규 발행분 조달 재원(출처 : 이코노미스트)

사실 그동안 미국정부는 국영 모기지 회사들을 다시 민영화시키려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1 Fed도 한시적으로 채권을 매입하겠다는 심산이었지만 상시적 조치가 되었다. “국유화”란 표현조차 “후견체제”라는 표현으로 세탁하였지만, 근시일 내에 이런 한시적 체제가 해소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미국 주택시장이 다시 호조를 보인다는 뉴스는 큰 의미가 없다. 리스크가 노출돼 폭락한 시장을 정부보증의 리스크 제로로 둔갑시킨 것은 닷컴버블의 변이인 닷거브버블(dot gov bubble) 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대안은 어쨌든 이들 국영 모기지 회사를 증자 및 수수료 인상 등의 방법으로 건전화시켜 민영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을 것이고 또다시 주택시장을 깊은 악순환의 수렁에 빠트릴 수 있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전부터 이미 프레디맥과 패니메는 “정부보증기업(government-sponsored enterprise : GSE)”이란 이름의 국유기업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리고 그들의 보증부 채권이 시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였었기에 민영화라는 대안도 사실 허상인 것이다.

미국의 주택시장은 민영화시키기에는 너무 크다.

“Too Big To Privatize.”

미국이 감옥의 민영화를 포기할 것인가?

8월 18일 샐리 예이츠 美법무차관은 법무부는 민간 감옥과의 계약을 줄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짧은 메모를 발행했다. 미국의 수감자수가 절정에 달한 3년 전, 그녀는 민간 감옥이 연방 시설의 초과분을 경감시키면서 유의미한 갭을 메우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연방 시설의 수감자 수는 13% 감소했고, 민간 감옥의 수감자 수는 거의 25% 감소했다. 이러한 감소에 따라 예이츠의 민간 감옥 회사와의 협상은 중요성이 덜해졌다. 영리추구의 감옥들 역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관이 운영하는 시설들보다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라고 예이츠는 적고 있다. 민간 감옥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직업 훈련”과 같은 유사한 “교정 서비스”가 결여되어 있고 “같은 수준의 안전 및 보안을 유지하지 않고” 있었다.[America is phasing out the federal use of private prisons]

마이클 무어 감독이 2009년 발표한 “자본주의 : 어떤 사랑이야기(Capitalism: A Love Story)”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민간감옥이다. 작품에서는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고기를 던졌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살아야 했던 한 소년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마이클 무어는 그런 가혹한 형벌의 이유가 더 많은 수감자가 더 많은 이윤으로 이어지는 민간 감옥의 이윤논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민간 감옥은 여러 민영화 아이템 중에서도 미국에서 최초로 사업화된 아이템이기 때문에 마이클 무어가 비판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소개하는데 그만큼 어울리는 아이템도 따로 없지 않을까 싶다.

사실 마이클 무어를 비롯한 민영화 비판론자가 지속적으로 그 해악을 제기해온 사업 분야가 바로 민간 감옥이다. 민간 감옥이 가지는 가장 모순적인 부분은 바로 비즈니스모델 그 자체랄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자도로는 더 많은 이윤은 더 많은 통행량으로부터 얻어진다. 이는 통행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지어진 도로로부터 얻고자 하는 사회적 효용과 경제적 이윤이 어느 정도 일치함을 의미한다. 한편,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민간 감옥의 더 많은 이윤은 더 많은 수감자 수로부터 얻어진다. 그렇다면 더 많은 수감자가 더 좋은 교정실적이나 더 안전한 사회로 이어졌던가? 이것이 민간 감옥이 가지는 근본적인 모순이다.

그러한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교정 서비스의 민영화 내지는 시장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한 이들이 시도한 대안이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사회영향채권(Social Impact Bonds : SIBs)”이다. 사업 수익률을 더 많은 수감자 수와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재범률과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이 처음 시도된 지 5년여가 흐른 지금 SIBs는 어느 정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과연 지속가능한 모델인지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주요하게는 정치적 요소, 성과의 측정 등에 있어 사업성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대안으로 삼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어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샐리 예이츠의 메모가 발표되던 날 감옥 회사들의 주가가 폭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업들이 단기간에 모든 계약을 해지당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수감자 수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정시설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감해야 할 불법 이민자수의 증가도 시설수요를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범죄자의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그 범죄자의 교정이라는 두 개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그렇기에 그 사회적 효용을 계량화하기에 한계가 많는 이 공공서비스를 어쨌든 시장화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아이템임은 분명하다.

규제와 인센티브가 생겨나는 과정

18세기 중반까지 도로의 통행량은 매우 많았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수리하는 데에 사용된 수단이 가장 효율적이라면, 당시 널리 쓰이던 좁은 바퀴의 마차가 무거운 짐을 싣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1753년의 법은 유료도로를 이용하는 짐마차, 객차들의 바퀴는 9인치 폭이어야 할 것을 규정하고, 이를 어길 시 5파운드 혹은 말 한 필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조합은 광폭의 바퀴를 단 마차는 특별요금을 경감시켜줄 수 있었고 마차 바퀴의 폭을 지정하여 도로 입구에서 이를 측정할 수 있었다.[The Development of Transportation in Modern England, W. T. Jackman, Cambridge at the University Press, 1916, pp 75~76]

18세기 영국에서는 유료도로에 관한 법적 근거가 좀 더 명확히 제정되어 이전 세기에도 존재했던 유료도로가 더욱 성행했다. 도로의 유지관리는 통행료를 징수하는 ‘유료도로 조합(turnpike trustee)’의 의무였다. 유지관리에 있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인용문에서와 같은 폭이 좁은 바퀴를 단 과적차량이었다. 이런 마차는 당연히 도로의 바퀴가 지나는 부분을 더 깊게 파이게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용문을 보며 규제와 인센티브가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가에 대해 알 수 있었기에 번역하여 여기 옮겨 적어 둔다.

사회기반시설의 공급과 유지관리,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1663년 영국의 도로 관련 법규에 또 다른 이정표가 등장한다. 최초의 유료도로법(Turnpike Act)이 “하트퍼드, 캠브리지, 헌팅턴 주내의 고속도로 보수를 위한 법”이란 이름으로 통과된 것이다. [중략] 이 법의 서문이 말하길 “이 지역에 대한 법령에서 정한 통상의 과정이 도로의 효과적인 보수에 불충분”하기 때문에, 그리고 도로가 놓인 지역의 거주민들이 더 많은 자금 지원 없이는 이를 고칠 수 없기 때문에, 법에 정한 수단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치유하는데 조력하는 것이 이 법에서 고려되었다. [중략] 이들 세 개 주의 도로를 보다 신속하게 보수하기 위해 각 주의 감찰관은 사법관의 동의하에 현재가치로 자금을 내는 이에게 9년 이하의 범위에서 그 이윤을 저당 잡힐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The Development of Transportation in Modern England, W. T. Jackman, Cambridge at the University Press, 1916, pp 61~62]

이 도로들과 법률이 오늘날 흔히 “민자도로”라고 불리며 민간자본에 의해 건설 및 유지·관리되는 도로와 – 예를 들면 신공항 고속도로나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와 같은 – 이 사업을 규정하는 법률의 원조 격의 법률이다. 도로와 같은 사회기반시설은 통행하는 이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거나 무역의 필요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이들 도로에 대해 통행인이 직접 대가를 지불하게끔 하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이 시기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더 이른 시기에 통행료가 징수된 역사도 존재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13세기 경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일부 성은 왕의 허가 하에 성에 들어오고자 하는 상인들에게 일종의 통과세인 이른바 “성벽세(城壁稅, Murage)”를 징수하였다. 이 돈은 주로 성벽의 보수에 사용되었으나 또한 성 주변의 도로의 보수에도 이용되었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통행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통행료를 걷은 것은 앞서의 유료도로법에 의해서가 처음이다.

여하튼 도로 이용자가 통행료를 지불하는 원칙, 이른바 “오염자 부담원칙(Polluter Pay Principle)”이 영국에서 시도된 데에는 이전의 법령과 권위로 도로의 건설과 유지·관리가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사회기반시설은 여러 특징이 있지만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외부효과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기꺼이 도로를 건설 혹은 관리하려는 이가 없었기에 당국은 꽤 오랜 기간 지주, 교구 등에 그 의무를 부담시키고 주민의 강제노역을 부과하는 등의 수단을 동원해 왔다.

A toll bar in Roumania, 1877.jpg
By The Graphic – The Graphic,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0435592

하지만 이것이 가지는 한계는 명백했다. 즉, 강제적인 경제행위 – 물론 자발적인 노동으로 미화되었겠지만 – 가 가지는 인센티브 부여의 실패가 그것이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사회기반시설의 또 하나의 특징인 비배제성(非排除性)1을 배제성으로 전환하여 그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유료도로의 영단어 turnpike는 창(pike)을 길 가운데 설치하여 돈을 낸 이가 지나갈 수 있게 돌린다(turn)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권한을 민간에게 위양한 것이 중세의 민자도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유료도로가 저항 없이 순탄하게 유지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19세기 중반 남부와 중부 웨일스 지역에서 발생한 레베카 폭동이다. 영국에서의 유료도로로 돈을 버는 유료도로 기금(turnpike trust)는 한때 1천개 이상일 정도로 흥했다. 그런데 어느새 준조세가 된 이들의 징수요금이 가난에 시달리는 농민 계층에게 분노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폭동의 결과로 당국은 입법을 통해 부당한 요금의 인하 등을 시행하여 민심을 달랬다.

자원의 강제동원 실패가 “정부의 실패”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면 레베카 폭동의 사례는 “시장의 실패”의 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날의 사회기반시설은 이러한 역사의 양측에서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그 시행방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우리의 상황을 보면 정부주도의 공급이 정치적 요소에 따라 지역편중적인 폐단이 있다면 민간주도의 공급은 비싼 서비스 가격에 대한 저항의 폐단이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현재진행중인 것 같다.

인도 은행들의 부실자산 급증 상황에 대하여


출처 : Dealogic Project Finance Review(1H 2012)

이런 인도의 상황과 관련하여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위의 표는 최근 5년간 전 세계 민간투자사업(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의 지역별 추이다. PPP는 정부에서 필요한 인프라시설을 건설할 때 민간의 자금을 빌리는 방식으로 통상 경제성장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지만 재정이 부족할 때 쓰는 방식이다. 즉, PPP방식으로 투자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단기적으로 재정도 건전해지고 경제성장률도 올라간다. 표를 보면 인도의 PPP 활용도는 워낙 압도적이어서 Dealogic이 아시아와 별개로 떼놓았을 정도다. 경제성장 여력이 있던 2008년까지 미미하던 인도의 PPP투자는 2011년에 이르러서는 압도적으로 증가한다. 역시 경제성장률을 위해 인프라 투자를 주도했던 중국이 재정을 활용한 것과 달리 인도는 민간자본을 이용했고, 이는 결국 미래의 빚으로 이연된다는 점에서 인도의 경제상황은 생각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인도경제의 관전 포인트 하나]

이 블로그에 2년 전에 위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래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의 최근 기사를 보면 이런 우려가 벌써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내용이 있다. 즉, 경제침체에 직면한 인도정부는 인프라스트럭처를 포함한 다섯 개 부문에 국영은행을 동원하여 대출을 집중하였다. 이런 대출방식은 주로 PPP 등을 활용한 기업대출 방식이었을 것이다. 즉, 인도 정부는 이런 시장조성에 민영화 – 정확하게는 시장화 – 방식을 선호하였고 국제 금융기관이 아닌 손쉬운 국내 국영은행을 투자자로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인도 은행들의 부실대출은 대개 인프라스트럭처와 산업개발에 집중된 2008년에서 2010년까지의 방만한 기업대출의 유산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기침체의 효과가 인도에도 미치면서 성장은 지체되고 업계의 대형 계획도 어려움을 겪었다. [중략] 이 나라의 중앙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광산, 철강 생산, 섬유, 인프라스트럭처, 그리고 항공 등 다섯 개 부문은 인도의 전체 은행 대출의 4분의 1에 달하고 부실 자산의 2분의 1에 달한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은행 자산의 70%를 들고 있는 국영은행들은 2014년 현재 전체 부실 대출의 거의 90%를 들고 있어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기업들이다. [중략] 대출 사태의 중심에 있는 대규모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가 건설한 이들에게 대출을 제대로 되갚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람들은 일단 운영에 들어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어요. 난 그런 논리가 의문스럽습니다.” 피치 레이팅스의 인도 계열사인 인디아 레이팅스의 임원인 Ananda Bhoumik의 말이다.[Bad Loans Impede India’s Economic Growth]

어느 나라나 경제가 어려우면 인위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카드로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를 선호한다. 내 글에 언급했던 중국이 그러했고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인 MB정부가 그러했다. 다만 두 정부는 아직 여유가 있는 예산을 활용한 재정지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1 2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인도 정부는 PPP방식 등 인프라스트럭처의 시장화로 투자를 주도하였고 불과 5년이 흐른 지금 이들 대출은 빠르게 부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 주도의 양적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이 부작용을 빚은 전형적 사례다.

사실 모든 인프라스트럭처 투자가 그렇게 빨리 부실화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인프라스트럭처의 시장화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투자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가 자산실사와 사업타당성 분석 과정을 통해 의사결정을 보다 엄밀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방식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인도에서의 그 과정은 주된 시장참여자가 국내 국영은행이었다는 점에서 부조리한 관치의 냄새가 난다. 결국 인도의 시장화는 시장화의 장점도 살리지 못한 채 금융권만 부실화시키는 이중의 패착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체투자, 인프라스트럭처, 공익성 등에 관한 단상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 시장은 전통적인 투자시장인 주식, 채권 등과 달리 Private Equity, 부동산, 인프라스트럭처 사업, 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시장을 말한다. 이 시장은 전통적인 투자시장의 계속되는 낮은 수익에 대한 피난처가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100개의 가장 큰 규모의 대체 펀드 그룹의 자산은 지난 해 6% 성장한 3조3천억 달러에 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중 가장 핫한 투자자들이 바로 연기금들이란 점이다.

연기금들은 가장 큰 100개의 펀드 하우스에 투자한 돈 중 1조3천억 달러를 구성하며 대체 자산 매니저들에게 있어서 자본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남아 있다. 대체 펀드 산업에게 연기금 자금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고 Rajan 씨는 믿고 있다. 그는 유럽 연기금의 약 4분의 1이상이 현재 적자의 현금흐름이며 전후의 가장 큰 규모의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함에 따라 다음 5년 동안 이 숫자는 두 배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Pension funds seek ‘sweet spot’ in alternatives]

대체투자 시장은 1980~90년대 이후 금융의 세계화, 국유 인프라스트럭처의 민영화 추세, M&A 시장이 성장 등과 맞물려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 투자 시장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았지만 그 규모가 날로 늘어나서 인용기사의 말미에도 나오듯이 앞으로 “대체가 주류가 되는” 시절이 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세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집단이 각국의 연기금인데 이는 개인적으로 참 흥미로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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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cuated Highway 401 Color” by Kenny Louie.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즉, 대체투자, 특히 인프라스트럭처와 같은 전통적으로 국가가 공급하던 소위 “공공재”가 시장화되면서 그 투자자로 다시 공공의 돈이라 할 수 있는 연기금이 참여하는 현상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국면의 사회적 투자행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듯이 인프라스트럭처의 소비자로서의 공공과 투자자로서의 공공 간의 긴장관계를 낳기도 한다. 소위 “공익성”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앞으로 대체투자 시장이 정말 주류가 되고 국경간 지역간 투자와 소비가 이렇게 다양한 주체로 나누어지다 보면 경제학자 또는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갈등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를 떠안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미국에 투자한 도로 사업이 미국정부에 의해 “공익성”이라는 이름하에 – 한국인이 보기에 – 부당하게 몰수당한 정황이 있을 경우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는 어떤 해석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1980~90년대 동구권에서의 “대중적 사유화”의 경험에 관해

슬로베니아에서 색스는 주식의 자유로운 분배를 통한 대중적 사유화를 옹호했고, 이는 파레토에서 도출된 후생경제학 제2 공리를 실현하는 듯했다. 파레토의 사상에 따르면, 대중적 사휴화는 소유를 전 사회에 재분배하므로 지극히 공정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시작부터 부를 재분배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경쟁적 시장이 나타나서 공정하고도 최적인 결과를 산출하게 되어 있다. [중략] 일부 헝가리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종업원들과 종종 경영자들까지 포함하여 ‘자생적인 사유화’를 할 것을 옹호했다. 이것이 직접적인 국가의 개입과 사회적 소유를 국가가 다시 또 통제하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략] 1992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들은(테아 페트린, 알레시 바흐치치 : 역자주) 주식을 모든 이에게 주어버린 것이 소유권을 과도하게 분산시켜 실질적 소유자를 창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그 대신 실질적 소유자를 빠르게 창출할 수 있는 종업원 소유제와 여러 형태의 자생적인 사유화를 포함하는 탈중앙집중화된 모델을 요구한다.[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조하나 보크만 지음, 홍기빈 옮김, 글항아리, 2015년, pp374~375]

1990년 소비에트와 동구 블록이 무너지고(!) 나서 이들 나라는 서구의 경제학자들에게 그들의 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 이들중 하나가 바로 인용문에 언급된 제프리 색스다. 밀턴 프리드먼과 함께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색스가 꺼낸 카드 중 하나가 바로 위에 언급된 “대중적 사유화”다. 이 카드는 오늘날 우리가 “민영화(privatization)”이란 표현으로 익숙한 신자유주의 경제의 대표적인 정책수단이다. 1979년 다우닝가 10번지를 차지하게 된 마가렛 쌔처가 “영국병”의 치유를 위해 국유기업을 대중에게 팔겠다고 공언했고 그때 쓴 표현이 바로 민영화, 다른 말로 “대중적 사유화”다.

“나는 민영화를 자본소유의 민주주의라는 내 야망을 달성하는 데 사용하고자 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집과 주식을 소유하고, 또 사회에 이해관계를 가진 그런 국가를 말한다. 미래의 세대에게 넘겨줄 부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시장對국가(원제 The Commanding Heights), Daniel Yergin and Joseph Stanislaw, 주명건 譯, 세종연구원, 1999, p187]

쌔처는 당시 이러한 기조 하에 통신회사, 항공회사, 히드로 공항 등 주요 국유기업을 국민주 형식으로 매각하였다. 이러한 민영화 정책의 이면에는 이전 노동당 정부의 흔적 지우기, 노조 무력화 등이 있었지만, 어쨌든 쌔처 자신은 사유화를 통해 “자본소유의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념적 확신도 있었던 듯하다. 즉 ‘국유’라는 실체 없는 소유가 아닌 ‘사유’라는 실체 있는 소유를 통해 대중은 ‘자기책임’이라는 규율과 사회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이후 미국이나 기타 서구권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이들 집권층은 이른바 “소유권 사회”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였다.

색스가 동구권에 이식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아이디어는 어떤 면에서는 국가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시장사회주의적 경로를 택했던 동구권의 사회적 소유와도 닮았다. 즉 위계적 사회주의가 아닌 자주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동구의 자유주의자들의 아이디어도 “대중적 사유화”를 포함한 집중화되지 않은 다양한 사회적 소유였던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일부 동유럽 경제학자들은 색스의 대중적 사유화 아이디어를 지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시장사회주의가 국가사회주의보다 발달한 형태고 대중적 사유화도 그 경로상의 한 수단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리라 여겨진다.

이에 대한 사후 결과는 명확하다. 일단 당시 소비에트 및 동구권 엘리트들은 자국의 시장사회주의 성향의 경제학자, 심지어는 색스의 의견도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자본은 舊공산당 관료와 그들의 친구들에게 집중되는 등 국가사회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에 따라 통치형태는 형식적인 대의제의 외피를 쓰고 있는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공고화되었다. 그 국가들에서 전 단계로써 쌔처가 실시한 국민주 매각의 형태가 실제로 많이 시행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결국 그 정책이 “실질적 소유자를 창출하지 못 한다”는 비판은 유요한 것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리고 엘리트들은 실질적 소유자가 되었다.

이러한 과도한 소유권 분산의 폐해는 우리도 경험한 바 있다. 1988년 4월 정부는 포항제철의 정부 지분 중 일부를 일반인에게 팔았다. 이듬해인 1989년에는 역시 한국전력의 정부 지분을 국민주 형태로 매각하였다. 하지만 과도한 주식매각은 오히려 해당 기업의 주가를 떨어트렸고 국민주를 산 이들은 주식을 팔아치웠고 이는 다시 소수의 투자자에 집중되었다. 당시의 작은 자본시장 규모를 고려하지 못한 기술적 한계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해관계와 불특정다수의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한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실체가 있는 소유도 중요하거니와 상호 이해관계 역시 중요하다는 교훈을 안겨준 사례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