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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률 둔화의 원인진단과 그 해법에 관하여

“디플레이션에서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이 수요에 의한 물가 하락인데 최근 물가 하락은 수요 측면보다는 공급 측면에 기인한 바가 크다”[최경환 “증세 디플레 악화 요인..균형적·입체적 논의 필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 2월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보고에서 한 발언이라고 한다. 현재의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내려간 것은 아니기에 디스인플레이션 상황이라고 할 수 있긴 한데, – 이 부분은 최 부총리도 지적하였다 – 어쨌든 최 부총리는 현재의 추세를 상승률 둔화의 두 가지 변수인 수요와 공급 측면 중에 공급 측면에서의 물가상승률 둔화로 보는 입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공급 측면에 기인한 물가상승률 둔화라면 정책은 수요 진작을 위해 소프트한 자극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소비자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이자율 인하 등 통화정책 등이면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수요 측면에 기인한 물가상승률 둔화라면 보다 하드한, 이를테면 실질소득 진작책 등이 동원될 것이다.

최 부총리는 초기에는 후자의 접근을 중시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대표적인 시도로 기업의 내부유보금에 대한 과세 시도와 정책으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임금이 올라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발언 등이 있었다. 이는 부채가 아닌 실질 소득을 증가시켜 소비 진작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후 이 시도들은 빠르게 퇴색했으며, 특히 임금 상승 발언은 “정규직 과보호 철폐”라는 궤변으로 변질되었다.

다만 2000년대 가격이 크게 상승했던 품목은 가격의 상승률뿐만 아니라 상승폭도 상대적으로 감소된 것으로 나타나, 기술적 요인보다는 주로 수요측 요인으로 상승률이 둔화되었을 개연성이 높음. [중략] 과거의 고물가수준이 최근 저인플레의 배경 중 하나일 수 있음을 감안할 때, 디플레 방지를 위해서는 통화정책을 통해 단기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리기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가계소득 확대를 통한 소비진작 정책이 보다 유효할 것으로 판단됨.[최근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상승률의 특징과 시사점, 한국금융연구원, 박종상 연구위원, 금융포커스 24권 6호]

박 연구위원은 2000년대의 높은 물가상승을 감안할 때 – 디플레가 뭔지 모르던 시절 – 수요측 요인이 높다고 보아 최 부총리와는 다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판단대로 수요 측면 요인이 높다고 볼 때 이는 당연히 가계소득 확대가 좋은 정책이다. 어느 요인이 더 중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더라도 가계소득 및 복지 확대는 고위험의 부채사회에서는 궁극적인 경제건전화를 위해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 경제팀은 일단 현재의 물가상승률 둔화가 유가 하락과 같은 공급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는 초기에 보였던 보다 수요 측면에서의 접근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기업유보금 과세 정책은 퇴색하고 있고, 근본책 중 하나인 복지정책은 보수세력의 반격 등으로 공약의 기대치에도 못 미치게 표류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대출독려 등의 단기적인 부양책으로 경기를 진작시키려는 시도에 그치고 있다.

한편 적정임금을 통한 소비 진작책은 오히려 사기업 광고가 독려하고 있다.

재닛 옐렌의 이례적인 발언

1989년 이래로 현재의 형태로 조사를 시작한 소비금융조사에 따르면 표1에서 보는 것처럼 상위 소수 가구로의 소득집중이 증가세다. [중략] 물가상승을 보정한 상위 5%의 가구소득은 우리가 표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989년에서 2013년 사이 38% 증가하였다. 반면 나머지 95% 가구의 평균 실질소득은 10% 미만으로 증가하였다. [중략] 그리고 소비금융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1989년 이후 부의 불평등은 소득의 불평등보다 더욱 증가세다. 표3에서 보면 1989년 조사에서 상위 5%의 미국 가구는 전체 부의 54%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지분은 2010년에는 61%로 증가하고 2013년에는 63%로 증가했다.[Perspectives on Inequality and Opportunity from the Survey of Consumer Finances]

이 발언은 재야의 “좌파” 경제학자의 발언이 아니라 재닛 옐렌 美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10월 17일 가진 보스턴 연방준비제도은행에서의 연설에서 한 발언이다. 연준 의장이 경제 전망이나 통화정책이 아닌, 이른바 “사회적 이슈”를 연설에서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불평등 이슈가 경제정책에서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한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어쩌면 피케티 열풍의 한 편린일 수 있을 것이고 관찰한 현상도 피케티의 그것과 비슷하다.

미국에서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금융 및 제조업의 세계화는 미국에서 제조업의 일자리를 뺏어서 중산층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반면 금융자산을 쥐고 있는 상위가구의 재산을 증식시켜주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를 위시한 대기업 경영진의 보수는 해당 기간 동안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이 역시 소득불평등에 기여했을 것이다. 옐린 의장은 교육과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것이 근본해결책일지 미봉책일지는 알 수 없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같은 현상을 놓고도 다르게 해석하여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불평등이 무엇이 문제냐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세는 그들이 현실사회에 대해 발언할 때 더욱 냉혹하게 비쳐지는데, 예를 들면 소득불평등의 주요한 원인인 불법 파견근로1 에 대한 시각도 ‘다른 나라 다 하는 것을 법원이 막으면 우리는 경쟁에 뒤쳐질 것이다2라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이제 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경제수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해외직구”가 왜 늘어났을까? 소비자의 과소비? 또는 반란?

오늘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주제는 흥미롭게도 경제와 관련된 주제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이 최근 해외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물건을 직접 구매하는, 이른바 “해외직구”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타임라인을 때 아닌 해외직구 이야기로 채워지게 한 기사는 세계일보의 이 기사로 짐작되는데, 이 기사는 FTA등으로 구매비용이 절감되자 늘어난 소비자들의 해외직구로 인해 내수가 피해를 입고 있으며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관세청이 파악하고 있는 직접구매 규모는 약 1조1천억 원이다. 관세청에 잡히지 않는 소액 구매까지 합하면 실제 시장은 두 배가량일 것이라는 것이 기사의 주장이다. 대체 2조2천억 원으로 우리나라 내수시장이 무너질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지만 만약 그럴 조짐이 보인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보다 깊은 속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 언론, 정부, 학계, 그리고 근본적으로 생산 및 유통업계가 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현재의 현상인식은 “해외직구 나빠”정도인 것 같다.

해외직구는 경제가 세계화되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증가할 현상이다. 기업은 세계화를 위하여 WTO와 FTA 등을 통해 각종 경제장벽을 제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 보다 더 수동적이긴 하지만 – 노동자들은 경계를 넘어 노동의 수요가 있는 곳으로 이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 역시 이러한 “합리적 경제행위” 주체가 되어야 한다. 생산업자와 수입업자가 같은 품질의 제품을 해외보다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면, 소비자는 그에 대응하여 해외직구로 비용을 절감하게 마련인 것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대개의 사람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다. 그러므로 그들의 소득으로 소비를 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소득이 준다면 소비행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해외직구는 어쩌면 그러한 경향에서의 소비자의 자구책일 수도 있다. 최근의 한 연구는 이러한 가정의 전제인 가계소득 감소에 대해 매우 신빙성 있는 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총소득(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소득이 줄어드니 싼 제품을 사야하는 것이다.

2000년 69%에 이르렀던 가계소득 비중이 2012년에는 62%까지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중 17%에서 23%로 증가. 2000년대 이후 가계소득 비중의 하락 추세는 여타 OECD 국가들(24개국 중 18개국)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기는 하나, 우리나라는 그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들 중 하나임. 이 기간 중 우리나라의 가계소득 비중은 6.4%p(2012년-2000년) 하락하였는데, 이는 헝가리, 폴란드에 이어 3번째로 빠른 하락세임.[KDI 경제전망 中 민간소비 수준에 대한 평가: 소득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2013년 하반기, p46]

GDP 성장의 이면에는 그 소득이 누구에게 얼마만큼 분배되는가라는 질적인 문제가 있는데 우리는 그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특히 좋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나 정부는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공직자가 여성인턴을 성희롱하면 여성인턴을 뽑지 않는 것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것처럼 내수를 살리기 위해 해외직구를 금지할 것인가? 국산 TV를 아마존에서 50% 이상 싸게 팔면서 국내 소비자를 “호갱님”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미국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정치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일본 역시 내수 진작을 위해 대기업의 임금을 올리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극우노선을 걷고 있는 아베 정권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경기부양을 위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이념적 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기억나는 것이 “시간제 일자리 늘이기” 정도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연봉 6천의 노동자를 “귀족노동자”라 비난한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