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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여. 가족의 행복을 위해 집에 일찍 들어가지 마시오.

어제 엄청난 혐짤을 보았는데 이 링크를 따라가면 볼 수 있다. 지난 2010년 방영된 MBC 후플러스 ‘대한민국은 쉬고 싶다’의 한 장면인데, 경총의 경제조사본부장이란 이가 노동자들의 휴식권 보장 여부에 대해 일갈하는 장면이다.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이런 역발상 논리로 천연덕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그 멘탈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오면 아내가 싫어한다든지 남편들이 집에 일찍 들어와서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그런 의식조사 결과가 나온 바가 있습니다. 근로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휴식권은 저희가 볼 때 충분하다…
황인철 /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 MBC 후플러스 ‘대한민국은 쉬고 싶다’ 中

예전에 칼 맑스가 자본론을 쓸 당시, 아동노동이 합법인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아이들을 놀게 하면 나태해져서 노동을 시켜 근로의욕과 성실성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아동노동을 합리화했었다. 이 논리는 아동노동을 금지시키면 많은 가정의 밥벌이가 궁색해질 것이란 논리와 함께 아동노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주된 논리였다.

이 경제조사(!)본부장은 유사한 맥락에서 자본가가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에서의 근로의욕이랄지 가족의 행복권(가장이 집에 일찍 들어가게 하지 않음으로써 보장될 수 있는)까지도 고취시켜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들이 노력하신 결과로 남한은 OECD 중 ‘노동시간’ 분야 탑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자들이여. 가족의 행복을 위해 집에 일찍 들어가지 마시오.

노동생산성과 임금의 상관관계, 그리고 경제에의 영향에 대한 단상

시계열적으로 생산성 대비 임금이 연동되어야 한다는 아이디어에는 크게 이견이 없으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사고의 저변에는 최초에 책정된 노동임금이 생산에 대한 올바른 몫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 같아 그리 탐탁지는 않다. 그러함에도 생산성 대비 임금 변화 추이를 관찰하는 것은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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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홈페이지에서 재인용

위 표에서도 보듯이 1947년 이후 미국경제에서의 비농업 분야의 임금은 생산성 향상 추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근사하게 접점을 찾아가던 생산성 증가와 임금 증가 추이는 1980년 언저리를 기점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신용위기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경제위기를 틈타 기업이 노동조건을 악화시킨 결과일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어째서 임금-생산성 갭이 확대되고 노동을 통한 소득이 감소하는지에 대한 세 가지 장기적인 요소들을 규명하였다. 첫째는 노동시장 정책의 변화와 보다 조직화된 부문의 감소로 인한 노동의 협상력 감소를 들 수 있다. 다른 요소로는 증가하는 세계화와 무역개방인데,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인 부문들이 발달된 경제에서 신흥 경제 쪽으로 이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발달된 경제에 남겨지는 부문은 상대적으로 덜 노동집약적이고 노동의 평균 비중은 줄어들게 된다. 세 번째 요소는 정보 및 통신기술의 개선과 관련한 기술변화인데, 이로 인해 여가분의 생산성이 증가하고 노동에 대한 보상에 비해 자본에 대한 보상이 늘어나는 것이다.[Behind the Decline in Labor’s Share of Income]

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었는지에 대한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의 리서치 분석가의 분석이다. 언뜻 어느 진보적인 논문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분명한 톤이다. 노동의 협상력 감소, 세계화, 기술변화 등 세 가지 요인이 임금조건 악화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것인데, 앞서 두 가지는 진보진영에서 꾸준히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지적하고 있는 문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동일한 경향을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유의미한 자료조사는 1999년경부터 축적되고 있어서 아직 시계열적 분석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여겨진다. 조사범위나 분류도 다소 혼란스러워 분석의 적확성 여부를 판단하기에도 좀 망설여지지만, 여하튼 1999년 이후 광공업의 부가가치 노동생산성과 임금추이는 얼추 조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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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010.4 광공업 평균 상용임금 변화 추이(출처 :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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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010.4 광공업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지수 변화 추이(출처 : 한국은행경제통계시스템)

하지만 현상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살펴볼 통계는 예컨대 지난번 이 블로그에 올린 ‘그래프 몇 개와 암울한 현실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살펴본 몇몇 가계소득의 질적 측면일 것이다. 생산성 증가추이 대비 노동소득을 광공업 분야 노동자가 가져온다 하더라도 기업과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율, 고용의 질, 물가 대비 임금상승(또는 복지수준) 등도 살펴야 한다.


‘최근 소비부진 원인 진단 및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재인용

이렇듯 최근 가계소득의 질적/양적 상황은 좋지 않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내수는 부진해지고 장래에 수출 감소 등으로 줄어들 GDP를 내수가 받쳐주지 못하여 생산도 부진해지는 악순환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사측은 근로시간이 줄면 소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금조건의 변화는 결국 “노동의 협상력”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중략] “자동차산업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자동차 생산 1대당 노동비용이 상승해 기업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며 “독일 폭스바겐의 기세가 강해지고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권토중래를 꾀하는 상황에서 국내 자동차업계의 기업경쟁력 하락은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자동차업체가 황금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 [중략] 이동응 경총 전무는 “폭스바겐은 임금보전 없는 근로시간 단축에 합의해 일자리 나누기에 성공했으나 우리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근로시간 줄면 임금 낮춰야” vs “소득 감소는 안돼”]

혹자는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해서 대기업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 간에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즉, 기업은 근로시간 연장을 통해 생산량을 증대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노조는 어차피 야근이 불가피하다면 이에 대한 수당을 확실히 챙겨 실질임금을 더 높인다는 분석이다. 그러므로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개연성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대기업 노조의, 어쩌면 더 수혜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중 상층부가 기업과 이런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면 조직화되지 않은 대다수 노동자는 이런 수혜에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임금하락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내수활성화, 나아가 총자본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소통이 없는 우리나라의 ‘일자리 나누기’

일본경제신문은 일본 기업 단체(일본 경제단체 연합회, 이하 경단련)와 노조단체(일본 노동조합 총연합회, 이하 연합)의 양자간에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고용을 유지하는 잡셰어링의 도입을 위한 논의를 재개하고 있다고 보도(1/8)[최근 일본의 Job Sharing 도입 논의와 전망,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2009. 2.21, p2]

이 부분을 보면 우리나라나의 일자리 나누기와 일본의 그것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 수 있다. 1) 우리나라는 임금을 깎아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발상이고 일본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2) 우리나라는 정부가 하향식으로 공공기관의 임금을 강압적으로 깎는 방식이고 일본은 노사간의 논의를 통한 방식이다. 네덜란드, 프랑스 등 여타 국가도 일본과 진행양상이나 추진방식은 매한가지다.

물론 일본에서의 일자리 나누기 추진현황이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따라할 수 없는 특수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예나 다른 나라의 예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의 보편적인 원칙은 바로 이해당사자 간의 소통이다. 일자리 나누기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그 현장에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소통은 찾아볼 수 없다.

“마침내 35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프랑스 사회주의의 가장 의미 있는 승리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던 주35시간 근무가 최근 의회를 통과한 한 법률에 의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고 한다.

상원과 하원은 1998년 사회주의자당에 의해 통과된 주 35시간 근무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주요목적이라 할 수 있는, “근무시간을 개혁하고”, “사회민주성을 갱신하는” 한 법을 함께 통과시켰다. 경제일간지인 Les Echos의 지난 2008년 5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자의 79퍼센트가 35시간을 유지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근무시간을 주당 35시간을 유지하는 것으로 하였지만 전체 산업 차원의 협상 대신 개별 사업장에서의 협상을 통해 초과근무를 합의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법의 취지를 제거하였다.
The National Assembly and Senate together passed a law “reforming working hours” and “renewing social democracy,” whose main function was to dismantle the 35-hour workweek law passed by the Socialist Party (PS) in 1998. According to May 2008 workplace poll for the financial daily Les Echos, 79 percent of workers supported maintaining the 35 hours. The government decided, therefore, to formally leave the working week at 35 hours, but to eviscerate the law by allowing agreements on overtime to be negotiated in each workplace, instead of in industry-wide negotiations.[End of the 35-hour week in France: Sarkozy handed victory by the unions and “left” parties, 26 July 2008, World Socialist Web Site]

노동부 장관 Xavier Bertrand 는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마침내 35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누가 누구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너무 멍청한 질문인가? 어쨌든 혹자가 보기엔 배부른 소리하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35시간을 일한다면 주5일제로 가정하고 계산하면 하루 일곱 시간 근무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근무조건이다. 특히 OECD 최장의 근무시간이라는 명예를 얻은 한국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근무조건이 결코 배부른 소리라는 질투 섞인 비아냥거림을 들을 일이 아니라고 본다. 노동조건의 개선을 통한 삶의 질의 향상은 인류역사에 있어 끊임없는 투쟁의 주제였고, 수많은 피를 대가로 하여 쟁취되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어쨌든 선진적인 성과가 나머지 세계들로 전파되는 성과를 거두어 왔다. 아동노동의 금지가 그렇고 8시간 노동 쟁취가 그러했다. 그리고 프랑스 노동계급의 주35시간 노동은 언젠가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누릴 몫이었다.

어쨌든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논리로 어쩌면 이미 프랑스내에서조차 35시간 근무라는 법적규제가 사문화되어 왔을지도 모르겠다.(십중팔구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법이 안 지켜지는 것과 법이 사문화되는 것, 나아가 온갖 예외조항으로 무력화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바로 한나라당이 지금 십자포화로 공격하고 있는 종합부동산세법이 그런 위험에 놓여있다. 그러한 만큼 이번 주35시간 노동규정의 무력화는 프랑스 사회주의의 큰 후퇴라 할 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