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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과 金星

금성은 58년 후반기에 락희 연지 공장 옆에 부지를 마련하고 공장 건설에 착수하는 한편, 독일인 헨케를 판매이익의 2%를 준다는 조건으로 지사장의 자리에 앉혔다. [중략] 59년 11월, 최초로 생산된 국산 1호 라디오는 전기용 단파 5구 1밴드 형이었다. [중략] 외제의 산뜻한 외관과 좋은 성능에 입맛을 들인 고객들은 금성 기술진의 감격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제품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당시엔 배터리로 들을 수 있는 성능 좋은 외제 라디오가 피엑스에서 마구 쏟아져 나와 범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그 후 금성은 선풍기와 전화기 등을 내놨지만 별 재미를 못 보다가 61년 5.16이 일어나면서 하늘의 별을 딴다. <특정 외래품 판매 금지법>이 제정되면서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 변화로 금성은, 죽어가던 나무에 새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듯, 승승장구하게 된다.[재벌들의 전자전쟁, 오효진 저, 나남, 1984년, pp18~19]

전화(telephone)

“이제 오늘의 설교를 듣는 것과 관련해, 만일 그러길 원한다면, 교회에 가도 되고 아니면 그냥 집에 있어도 되오.”
“내가 집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까?”
“단지 우리와 함께 적당한 시간에 우리 집에 있는 음악실에 가서 편안한 의자를 고르면 되오. 아직도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의 설교는 공중 시설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음악 연주회를 듣는 것처럼 가입자들의 집과 전선으로 연결된, 음향 시설이 갖추어진 방으로 전달되지요. 만약 당신이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면 기꺼이 같이 가겠지만, 나는 당신이 어디에 가든 집에서보다 더 훌륭한 설교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소. 신문을 보니 오늘 아침에 바턴(Barton) 목사가 설교하기로 되어 있더군요. 그분은 전화(telephone)로만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의 수신자가 종종 15만 명에 이르기도 하오.”[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 에드워드 벨러미 Edward Bellamy 지음, 손세호 옮김, 지만지 고전천줄, 2008년, p 182]

지난번에도 언급했다시피 이 소설은 1888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그런데 이글에 보면 “전화(telephone)”라 불리는 장치는 – 그 단어가 이제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소리(phone)를 원거리(tele)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 오늘 날 우리가 라디오(radio)라 부르는 그 장치의 원리와 거의 근사하게 맞아떨어진다. 또한 신문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소개한다는 발상도 오늘날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떠한 메시지를 먼 곳으로 전송시킨다는 발상은 실제로는 1901년 마르코니가 무선진신을 이용하여 대서양 건너로 무선신호를 보내면서 실현되었고, 위와 같은 브로드캐스팅 개념으로 라디오가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이후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