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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의 차베스의 승리

일요일 베네수엘라에서 치러진 주지사 선거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후보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반대파도 수도 카르카스를 비롯한 몇몇 주요 주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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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차베스, 가던 길로 계속 가라. 사회주의의 길로.” 차베스는 주요 결과가 발표된 직후인 월요일 아침 이와 같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또한 반대파의 약진을 인지하고 있었다. “우린 필수적으로 자기비판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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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위원회에 따르면 차베스 진영의 주지사 후보는 22개 주 중 17개 주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Hugo Chavez Allies Score Big Wins in Venezuela Elections 中에서 발췌번역]

이 기사에 관한 흥미로운 댓글이 있어 소개한다. OREZ_ENO 라는 필명의 사용자 왈.

We really need a man like Chavez as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to help us become democratic. Well, maybe by the next election people will realize that Obama is really just another Manchurian candidate for the fascist Military Industrial Complex. Hopefully people will start to consider voting outside the two party system.

오바마도 결국 “파시스트 군산 복합체(the fascist Military Industrial Complex)”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인데, 흥미로운 것은 그 꼭두각시라는 표현으로 another Manchurian candidate를 쓰고 있어서다. 잘 알다시피 만주국은 일본제국주의가 세운 괴뢰국이므로 그 정치가들이 꼭두각시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더불어 그 표현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릴러의 제목이기도 하다.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이 작품의 오리지널은 1962년 만들어졌는데 한국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극 중 주인공은 정신적으로 세뇌된 꼭두각시, 말 그대로 Manchurian candidate 였다.

라디오스타, 워싱턴에 가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17일 미국 워싱턴발(發) 라디오 연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4일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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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청와대는 해외 연설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가 이 대통령의 육성을 통해 국제 사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후문이다.[李대통령, 워싱턴發 라디오연설 추진, 동아일보, 2008년 11월 4일]

“국제 사회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

참 가지가지 하신다. 충고 하나 하자면 간 김에 가까운 베네수엘라에 가서 차베스와 공동으로 쇼를 진행해도 좋을 듯.

최근의 유가폭등, 그리고 휘발성

금융 쓰나미가 전 세계를 덮치는 광경을 관전하는 동안 유가 또한 극적으로 폭락했다. 타임紙는 폭락의 이유를 크게 수요 감소와 투기세력의 후퇴를 들고 있다.

미교통부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8월에 전년도 동월 대비 150억 마일, 또는 5.6%나 덜 주행했다. DOT는 이는 1개월로 치면 년 단위로 역사상 가장 큰 폭의 하락이라고 말했다. .. 경제학자들이 “수요 붕괴”라고 부르는 것들의 명확한 증거다.
According to the U.S.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Americans drove 15 billion fewer miles in August, or 5.6% less than they did the year before. DOT says it’s the largest ever year-to-year decline recorded in a single month. .. – sure proof of what economists call “demand destruction.”

“OPEC은 중국이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을 확인해야만 한다.” OPEC 회담 전에 워싱턴의 유라시아 그룹의 에너지디렉터인 로버트 존슨이 한 말이다.
“OPEC needs to see China maintain its rate of growth,” Robert Johnston, energy director for the Eurasia Group in Washington said before the OPEC meeting.

금융기관들, 투자은행과 투기세력들이 석유선물에서 돈을 빼내는 바람에 유가 하락이 가속화되었다. 이것이 가격이 수요보다 더 빨리 떨어진 원인이다.
Banks, investment banks and speculators have pulled money out of oil futures, further driving oil prices down; that’s one reason why prices have fallen far faster than demand.

상징적인 두 국가의 수요는 모두 그동안 거칠 것 없이 오른 유가와 세계적인 금융위기 탓에 크게 줄고 있다. 금융기관과 펀드들 역시 금융위기를 맞아 디레버리징(deleveraging) – 투자청산이라고들 표현하는데 현금 확보라는 표현도 괜찮을 것 같다 – 열풍에 따라 석유선물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자제하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산유국들은 추운 겨울을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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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well” by Original uploader was Flcelloguy at en.wikipedia – Originally from en.wikipedia; description page is/was her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그들의 예산을 높은 유가에 맞춰놓은 국가들은 당장 재정적자가 예상된다. 유가폭락을 부추긴 금융위기가 또한 그들의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다. 최근 그루지야와의 분쟁 등 여러 안보적인 문제로 해외자본의 급격한 이탈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는 삼중고에 시달릴 것이다.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현재의 금융위기나 급격한 유가변동의 공통점이다. 즉 그것은 영어로 volatility로 표현되는, 우리말로 하자면 ‘가격변동성’ 정도로 해석되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는 volatility의 형용사격인 volatile이 ‘휘발성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휘발성’이라고도 표현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더 와닿는다. 즉 현재의 세계경제는 휘발성이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이는 크게 ‘증권화’와 ‘유동화’, 그리고 ‘경제통합’과 관련 있다고 생각된다. 증권화/유동화에 대한 개념은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설명했고 다른 경제관련 글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듯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가격을 매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증권으로 만들어 유동화 시키는 것이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특징인데 투자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이면에는 극도의 ‘휘발성’으로 시장변동폭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경제통합, 특히 금융시장 통합은 이 휘발성의 전염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다시 석유로 돌아가서 메릴린치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갈 거라고 큰소리치던 때가 엊그제인데 1/4토막 났다. 우리와 같은 자원빈국으로서야 천만다행이지만 문제는 이 유가가 언제 또 튀어 오를지 예측이 한층 어렵다는 사실이다. 미국인의 자동차 운전거리가 짧아진다니 그러려니 하지만 석유선물 시장은 여전히 모든 투자자들에게 열려있고 또 언제 그들이 메뚜기 떼처럼 달라붙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변동리스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야 석유로부터 자율적인 경제, 대안에너지 생산체제 구축 등에 힘써야겠지만 – 현 정부는 원자력 사용증대를 통한 녹색성장이라는 어이없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OTL – 더 큰 틀에서는 금융시장의 증권화/유동화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금융규제의 틀 – 사실 유가변동성이 아니라도 시급한 일이지만 – 을 마련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멜라민이 식품첨가물이 아니어서 현행법으로 규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어이 없는 상황은 현재의 금융시장도 비슷한 것 같다.

차베스는 혁명가인가 마약거래상인가

차베스는 이상적인 사회주의자인가 아니면 파렴치한 마약상인가. 최근 가디언紙는 “Revealed: Chavez role in cocaine trail to Europe”라는 기사를 통해 차베스가 집권하고 있는 베네주엘라의 정부군이 인접국인 콜롬비아의 좌익 게릴라 무장혁명군(FARC)와 끈끈한 연계를 통해 콜롬비아에서 생산되고 있는 코카인의 주요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차베스는 최근 FARC를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제외시켜 줄 것을 국제사회에 제안하는 한편으로 그들이 인질로 잡고 있는 이들의 석방교섭에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는 등 FARC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사실 마르크스-레닌주의 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FARC는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내전 기간 동안의 폭력행위들로 말미암아 이웃나라의 좌익세력 들에게마저 일종의 뜨거운 감자인 상황에서 차베스의 적극적인 변호는 상당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가디언은 그의 이러한 표면적인 변호이외에도 거대한 마약커넥션에도 손을 담그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좌익 게릴라, 마약, 코카인, 차베스, 남미… 이러한 단어들은 복잡한 상황맥락을 지니고 있다. 이들 단어에는 다른 대륙들에 비해서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격변의 20세기를 보내야 했던 라틴아메리카의 아픈 역사적 추억들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시몬 트리니다드
2006년 11월 2일 에콰도르에서 FARC의 지도자 시몬 트리니다드(당시 53세, 본명 리카르도 팔레라 피네다)가 붙잡혔다. 트리니다드는 FARC 핵심인 서기국 지도자 7명 가운데 한 명으로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이 그의 체포 소식에 ‘반군 패퇴의 징조’라고 말했을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이었다. 트리니다드는 반군세력에 가담하기 전만 해도 성공한 은행가이자 컨트리클럽 회원이었으며, 사랑스런 가족과 함께 주말이면 느긋한 휴일을 즐길 수 있는 한적한 목장까지 소유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부인과 두 자녀를 버리고 홀연히 정글로 떠나 좌파 게릴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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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trinidadmug” by Original uploader was Zero Gravity at en.wikipedia –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transfer was stated to be made by User:Chien..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99년 정부와 휴전협상에 나설 당시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콜롬비아 전국토의 90%를 독점하고 있는 10%의 지주들에 맞서 싸우는 진보적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며 “(세월이 흐르면서) 나 역시 그들 10%의 적이 됐다”고 ‘변신’의 이유를 밝혔다. 이것이 남부러울 것이 없는 한 자산가를 산으로 가게 만든 남미의 아픈 현실이었고 그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합류한 FARC는 1964년 콜롬비아 공산당의 군사조직으로 설립되었다. 1980년대 FARC는 자금확보를 위해 코카 재배에 손을 대게 되었고 불법적인 활동이었기에 이를 계기로 콜롬비아 공산당과의 관계를 청산하게 된다. 현재의 조직원은 약 16,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가디언은 이러한 FARC가 좌익 사상을 공유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정부군과 코카인 밀매에 한배를 타게 되었다고 고발하고 나섰다.

코카 억제에 나선 미국, 반항하는 남미
코카는 주요 마약중 하나인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식물로 미국은 코카인의 불법유통을 막기 위해 코카 재배 자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당근과 채찍의 두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데 1988년대부터 중남미 나라들에게 코카 규제법 시행을 요구하는 대신 매년 1억 달러씩을 지원했다. 볼리비아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들은 이 거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재배만 허용하고 불법재배와 밀매 행위는 강력히 규제했다. 미국이 원조한 돈은 일부 특권층이 독식했다. 하루아침에 생계수단을 잃은 재배 농민들은 마약 사범으로 전락했다. 볼리비아에서는 한때 수도 라파스 산 베드로 교도소의 전체 수감자중 74%나 될 정도다.

그러나 최근 남미의 좌익 세력이 잇따라 집권하면서 미국의 맹방인 콜롬비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미의 주요 코카 생산국들은 중남미의 전통식물인 코카 재배 경작지를 늘리는 등 합법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 자신이 코카 재배 농민이었으며 바로 위에 언급하였던 미국의 코카 재배 억제에 대한 항의운동을 주도하며 정계에 뛰어들었고, 집권에 성공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합법적인 코카 재배지를 늘리고 있는 한편으로 코카와 코카인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의 비밀계좌가 코카인 밀매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며 서방을 비난하였다.

한편 코카를 둘러싼 갈등은 국가간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세계 최대의 코카 재배국인 콜롬비아 정부가 코카 박멸을 위해 2000년 12월 제초제를 공중살포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빌 클린턴 시절부터 ‘콜롬비아 플랜’이란 이름으로 콜롬비아 정부에게 자금과 군사력을 지원하고 있다. 제초제 역시 미국이 지원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에콰도르 농민이 엉뚱한 피해를 보며 양국간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피해상황은 매우 심각한 지경으로 전문가는 고엽제 피해를 입은 베트남과 같은 비극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코카와 코카인, 그 두 얼굴
사실 코카는 중남미인 들에게는 하나의 생활상비품으로 쓰이는 식물이다. 잉카 시대 때부터 이미 코카는 식용이나 의약품으로 쓰였다고 한다.(주1) 코카는 각종 차, 음료수, 케이크, 화장품, 여드름 치료제의 원료로 이용되고 있고, 특히 고산지대에 사는 이들에게는 코카는 필수품이다. 코카 잎을 씹으면 – 환각작용이 아니라 – 혈류량을 증가시켜 배도 부르고 힘이 나게 되어 고산병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코카가 마약으로 분류되는 코카인의 원재료로 쓰이면서 하나의 정치적인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만다.

마약으로 분류되는 코카인은 남아메리카의 코카 잎과 여러 가지 알칼로이드성 약물을 정제하여 만든 것이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벌이던 무렵 미국 남부의 상류층 여성들은 두통 치료용으로 코카인을 섭취하였는데 이것이 코카콜라의 시작이었다고 한다.(주2) 당시 마약산업은 많은 이익이 나는 합법적인 사업이었고 신문과 잡지에는 매일 같이 아편, 코카인, 모르핀, 헤로인 등의 광고가 실렸다.(주3) 코카인의 사용이 금지된 것은 1903년 이었다.

남미의 슬픈 눈물, 코카와 계급전쟁
다시 차베스를 마약거래의 보스로 묘사하고 있는 가디언으로 돌아가 보자. 기자는 FARC 탈영병 등 여러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FARC와 베네주엘라 정부기구와의 커넥션을 밝혀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디언은 또한 콜롬비아에서 밀반출되는 코카인 600톤 중 약 30%가 베네주엘라를 통해 유통되고 있고 이 중 대부분이 유럽으로 향한다고 전하고 있다. 다만 그들의 입을 통해서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 서구 첩보기관의 입을 통해서조차 – 차베스의 직접개입에 관한 부분이다. 차베스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긴 하지만 말이다.

미국의 對마약 전쟁의 일환으로서의 남미에서의 활동이나 가디언의 기사와 같은 고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카 -> 코카인 -> 좌익 게릴라 -> 차베스의 베네주엘라” 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의 각각의 단계에는 쉽게 판단내릴 수 없는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여기에는 심지어 코카인이나 마리화나가 과연 담배보다 더 해로운 마약이어야 하는가라는 문화사적인 회의에서부터 실은 CIA가 세상에서 가장 큰 마약거래조직이라는 음모론적 주장까지 다양한 이견이 개입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가치판단을 유보하도록 하겠다.

어쨌든 코카인은 분명 현재 문명세계에서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는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따라서 이를 유통시킴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행위는 여하한의 변명으로도 별로 설득력이 없는 범법행위라 할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어서 자의든 타의든 고립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조직은 스스로 자멸하여 갔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차베스는 정황으로 볼 때 코카인의 힘이었든 강고한 정치적 의지였든 여태까지 살아남은 FARC를 하나의 정치적 동지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FARC를, 더 나아가 남미 전체와 세계의 대안체제를 위해 진정으로 무언가를 기여하고자 한다면 바로 코카인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가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주1) 옛날 잉카인들이 두개골을 쪼개고 뇌수술을 했는데 그때 코카 잎이 마취제로 쓰였다 한다.

(주2) 1890년대 코카콜라 社(사)는 콜라가 “신경과 뇌의 신비한 강장제이며 뛰어난 치료약”이라고 광고했다.

(주3) 셜록 홈즈는 지독한 코카인 중독자였다.

자유무역에 저항하는 알바

ALBA가 무슨 뜻일까? 아르바이트의 한국식 표현? 그렇기도 하지만 ALBA는 스페인어로 “새벽”을 뜻한다. 동시에 ALBA는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의 대안(the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의 첫 글자를 딴 남아메리카의 대안적인 무역 동맹이다. ALBA는 지난 2004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에 대항한 공정한 무역의 대안으로 우고 차베스 Hugo Chavez 와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 Evo Morales, 니카라구아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Daniel Ortega가 당선되자 이들도 합류하였다. 자금조달은 베네주엘라의 오일머니덕분에 가능했다.

여하튼 ALBA는 지난 25일과 26일 양일에 걸쳐 카르카스에서 여섯 번째 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에서 도미니카도 합류하였다. 그리고 에콰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아이티 등에서 각각 대표사절을 파견하였다. 이 자리에서 차베스는 인민의 필요를 대변하는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독재적인 세계자본주의”를 맹비난하는 한편으로 미국의 경제공황을 경고하면서 각 나라가 보유자산을 미국의 금융기관에서 인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다니엘 오르테가는 환경위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였다. 그는 “개발을 위한 자본주의 모델은 명백히 지속가능하지 않다. 만약 당신 나라의 경제가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투기적 자본에 의해 통제된다면 그 나라는 인간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단 우리가 자유무역 모델을 포기하면 우리는 실업, 가난,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출발점에 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천연가스와 석유를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토지, 물, 에너지와 같은 핵심적인 공공자원은 사적이윤이 아닌 공공선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라틴아메리카는 언제나 헤게모니를 증대시키기 위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는 미국의 지원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ALBA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바로 그 시각 콘돌리자 라이스 Condoleezza Rice 는 베네주엘라의 이웃나라인 콜롬비아를 방문하고 있었다. 라이스는 미국과 콜롬비아간 자유무역협정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하기 위해 콜롬비아의 대통령 알바로 우리베 베레즈 Alvaro Uribe Velez 를 만나고 있었는데 차베스는 그를 “제국의 날품팔이”라고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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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lem of the Bolivarian Alliance for the Americas” by Enigmaticland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ALBA의 로고

구체적인 협상내용으로 들어가서 살펴보자. 협상 내용은 상호이윤추구라기보다는 원조적인 성격이 강하다. 예를 들면 니카라구아는 베네수엘라가 우유, 옥수수, 콩, 소고기 등을 공급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베네주엘라는 니카라구아에 우대조건으로 석유를 판매하기로 했다. 쿠바는 베네주엘라에게 석유를 할인받는 조건으로 의사들을 파견하기로 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이 나머지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 인상이 강하다.

가장 중요한 조치는 각국 정상들이 동맹을 강화하고 세계은행과 같은 미국 주도의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른바 ALBA 은행은 10억 달러내지 15억 달러의 자본으로 출범하기로 했다. 역시 베네주엘라가 주요 자금조달원이 될 것이다. 이 펀드는 예를 들면 도미니카의 풍부한 강물과 니카라구아의 기술이 결합된 수력발전 에네지 벤처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이다. 차베스와 여섯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미 지난달 70억불을 자본으로 계획하고 있는 남미은행(the Bank of the South)을 설립하였고 이 은행은 세계은행이나 IMF보다 더 완화된 조건으로 대출을 제공할 것이다.

ALBA의 미래는 얼마나 더 많은 나라들이 참가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에콰도르나 아이티의 경우는 참가를 원하고 있으나 심각한 내부반대에 직면해 있다. 다른 나라 역시 보수언론의 강한 반발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들은 경쟁이 아닌 상호원조에 입각한 무역이라는 점을 자국에 설명하려 해도 일단 차베스, 카스트로, 오르테가가 거론되면 알르레기 반응을 보이는 우익들 때문에 상황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쿠바의 Martin Luther King 센터의 조엘 수아레즈 Joel Suarez 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ALBA의 사회운동 위원회 활성화를 들고 있다. 이 위원회는 농민, 여성, 환경주의자, 노조 등의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적 차원의 참여가 곤란한 나라는 사회운동단체가 우선 참여함으로써 점차 외연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이러한 제안에는 심지어 미국의 사회운동단체도 포함하고 있다.

또 하나 ALBA의 미래를 흐리게 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 아닌가 싶다. 만약에 오일머니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우고 차베스라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참가하고 있는 각국의 지도자들과 사회운동단체 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실험은 현재 자본에 의해 주창되는 “자유무역”이 의미하는 바는 ‘자본의 자유’, ‘이윤추구의 자유’이고, 이에 비해 남미 좌파세력이 주창하는 “공정무역”에는 ‘인민을 위한’, ‘서로 돕는’, ‘환경을 위한’이라는 개념을 바탕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 실험의 성공이 향후 이 지구의 물질문명의 앞날에 중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위기의 남자 차베스

□ 창이 되어 돌아온 민주주의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승리를 거두었다. 소환투표로 인해 정치적 위기로 몰렸던 그는 58%의 지지를 얻어 재신임에 성공했다. 이러한 정치적 외줄타기의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차베스 그 자신이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국민소환 제도는 차베스가 지난 1999년 처음 헌법에 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민주주의의 선도자를 찌를 창이 되기도 한다.

□ 반란의 과정

2003년 8월 차베스의 반대자들은 차베스의 소환을 위해 헌법 규정에 충족되는 약 3백만 명의 서명을 조직했다. 그러나 국가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서명들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청원을 반려했다.

2003년 11월 반대자들은 새로운 서명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4일 만에 3백6십만 명의 서명을 조직했다. 이번에도 국가선거관리위원회는 단지 1백9십만 명의 서명만이 유효하다는 이유로 청원을 반려했다. 무효서명의 상당수는 중복되어 있거나 심지어 이미 몇 해 전에 죽은 이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선관위의 이러한 결정으로 폭동이 일어났고 9명이 죽기도 했다.

끊임없는 논쟁과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결국 차베스의 반대자들은 헌법 요건에 충족되는 서명을 모았고 – 서명을 위해 경찰들이 사람들의 주민등록증을 징발하기도 했다는 주장도 있다 – 드디어 2004년 6월 8일 국민투표의 실시가 선언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사임압력은 베네수엘라는 물론 남미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 투표의 진행, 그리고 결과

8월 15일부터 진행된 투표는 80%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줄은 길게 이어졌는데 신분확인을 위한 지문 스캔 때문에 – 차베스 자신의 지문마저 잘 인식이 안 되어 곤란을 겪었다 한다 – 투표는 더욱 지연되었다. 당국은 결국 투표시간을 연장하였다.

선관위의 위원 중 한 명인 Francisco Carrasquero 는 8월 16일 국영방송에 나와 예비결과를 발표하였다. 선거과 약 95% 진행된 상태에서의 선거결과는 차베스의 승리였다. ( http://www.rnv.gov.ve/noticias ) 이미 여러 차례 각국의 선거에서 감시 역할을 자임했던 카터 센터의 지미 카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선관위의 발표가 맞음을 보증하였다. ( http://www.cnn.com/2004/WORLD/americas/08/16/venezuela.recall/index.html ) 미주기구의 Cesar Gaviria 는 선거 진행과정에서 부정은 없었음을 확인하였다.

No 4,991,483 = 58%
Yes 3,576,557 = 42%

선거일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투표일이 8월 19일이나 그 이후로 잡혔을 경우 차베스는 그의 6년 임기 중 5년차에 접어들게 된다. 이때 그가 질 경우 부통령 Jose Vicente Rangel 가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투표가 실시되어 차베스가 질 경우 30일 이내에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바로 치러야 한다. 차베스는 또다른 도전의 의지를 분명히 내비친 것이다. 물론 그의 반대자들은 또 다른 반대행동을 조직했을 것이다.

□ 차베스에 호의적인, 또는 적대적인 해외인사들

2004년 7월 유럽의 통합 좌파 단체인 GUE/NGL 그룹은 유럽 연합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베네수엘라는 “훌륭한 사회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하며, 이에 반해 “사유화된 미디어”가 그러한 국가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2004년 8월 여러 나라의 저명인사들이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인민과의 연대를 선언하며 그를 지지하는 서명에 동참하였다. 이 서명에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 영국의 영화 감독 Ken Loach, 영국의 전임 각료 Tony Benn, 런던의 시장 Ken Livingstone, 시인 Harold Pinter, 역사가 Eric Hobsbawm, 우루과이 작가 Eduardo Galeano, 아르헨티나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Adolfo Perez Esquivel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투표가 있기 몇 달 전인 2003년 9월 소환 운동의 배후로 지목되는 Sumate 는 ‘민주화를 위한 미국의 기부’라는 단체로부터 5만3천불을 받았다. 이 돈은 “선거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서명을 조직하는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http://www.csmonitor.com/2004/0811/p07s01-woam.html ) 정부는 이들 단체가 이 돈을 받은 죄목으로 그들을 고소하였다. 차베스의 지지자들은 Sumate가 미국이 해외에서 그들의 의도를 폭력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또 하나의 사례라고 지목하였다. 미국 관료들은 2002년의 반정부 쿠데타시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지도자들과 몇 차례 회동하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http://www.cnn.com/2002/ALLPOLITICS/04/16/US.Venezuela/http://www.guardian.co.uk/international/story/0,3604,685531,00.html ) 한편 로이터 통신이 몇 달 전 차베스 반대 시위라며 사용한 사진은 실은 차베스에 대한 지지시위였다. ( http://www.indymediapr.org/news/2004/08/4018.php )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보도 역시 편향된 시각이 대부분이다.

□ 끝나지 않은 반란

한편 선거결과에 따라 유가는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차베스의 반대자들은 여전히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졌다고 주장하면서 선거결과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총체적인 재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http://newswire.indymedia.org/en/newswire/2004/08/808090.shtml , http://www.aporrea.org/dameverbo.php?docid=19524 ) Coordinadora Democratica라는 반정부 단체는 선거결과가 오히려 차베스 하야에 59%가 투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차베스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은 동시에 나라 곳곳에서 그들의 선거행위가 방해를 받았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앞으로의 정국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대목이다.

앞으로도 그와 그의 이념은 가난한 이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것이지만 자본파업은 보다 일상화될 것이다. 부자들은 세계 5위의 석유수출국이 빨갱이의 손에 놓인 것을 용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급등하는 석유 가격은 차베스 정부에게 양날의 칼이 될 것이다. 석유가격의 급등은 자국의 석유매출의 증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한 보다 많은 정부보조금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집권하였고 또 다시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절차에 의해 실각할 뻔했던 차베스가 과연 쿠바식의 전면적인 변혁의 길을 갈지 아니면 그의 반대자들과의 타협을 통한 개량의 길을 갈지는 현재까지 미지수이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남미 각국의 좌경화 경향은 남미가 이제 더 이상 수탈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차베스의 집권 그러한 인간해방의 모범사례가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미완의 실험에 그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번 그의 승리를 통해 우리는 전자의 경우를 조심스럽게 희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시인 Dana Garrett 이 차베스의 승리를 축하하며 보낸 메시지로 글을 마치도록 할까 한다.

“나는 베네수엘라가 앞으로 전 세계에 경제적 정의와 민주적 자유 사이에 어떠한 모순도 없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I have every confidence that Venezuela will demonstrate to the world in the years ahead that there is no contradiction between economic justice and democratic freedom.”( http://vheadline.com/readnews.asp?id=224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