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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기계화, 개발주의 등에 대한 단상

그러므로 사회주의가 실현되는 사회는 어디나 적어도 지금의 미국만큼 고도로 기계화되어야 한다. 아마 그보다 훨씬 더 그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그리는 세계는 언제나 완전히 기계화된 세상이며 엄청나게 조직화된 세상이다. 그것은 옛 문명들이 노예에 의존하듯 기계에 의존하는 세상이다.[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이한중 옮김, 한겨레 출판, 2010년, p255]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자처한 조지 오웰이 한 진보단체의 의뢰로 1936년 쓴 르포르타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일부다. 책의 전반부는 작가 스스로가 몸으로 체험한 노동자들의 삶을 묘사한 부분이고 후반부는 인용한 부분과 같이 영국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현황과 이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웰이 잘 관찰하였듯이 확실히 그 당시의 사회주의자들은 기계화에 대한 낙관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그들이 실현할 사회주의는 고도화된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기계화, 산업화를 최대한 극대화시켜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윤동기의 제거는 오히려 이런 기계화를 더 촉진시킬 것이었다.

일례로 오웰과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화가이자 공산주의자였던 페르낭 레제는 기계문명에 대한 그의 신뢰가 아예 그림에 투영된 경우다. 그는 사람의 몸통을 기계 플랜트의 배관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그렸다. 이런 그의 경향에 대해 한 평론가는 큐비즘이란 단어를 재밌게 비틀어 튜비즘(Tubism)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생 소비에트에게 있어 기계화는 사회주의와 거의 동일시되었다. 후진적인 생산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생산과 유통 과정은 기계화, 표준화, 집단화 되어야 했다. 각종 설비는 대규모로 지어져서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 시스템에서 노동영웅이 탄생했고 목가적인 소농은 발붙일 틈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많은 진보세력이 비난하고 있는 맥도날드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도 이러한 기계화, 표준화에 대한 낙관주의를 사회주의와 공유하고 있다. 이전에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지던 음식들을 제조업 공정처럼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어 맛의 질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싸게 팔겠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모든 산업에 이러한 획일적인 표준화를 적용하는 것은 스스로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조차 상당수가 비판적인 시각일 것이다. 그렇기에 원전과 같은 개발주의적 산물에 대해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고, 슬로우푸드 운동과 같은 반성적인 소비운동이 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확실히 이념적 지평을 넓혀 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함에도 과연 삶의 모든 측면에서 기계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오웰 역시도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어떠한 이념적 기반이건 간에) 개발주의 자체의 폐해를 비판하는 이들도 스스로의 삶에 미치는 개발주의의 수혜를 무시할 수는 없다. 원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와중에도 전기는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대한 대안 모색을 위해 우선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맹신을 버려야 할 것이다. 과거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이런 맹신 속에 자연을 파괴했고, 자본주의 국가 역시 일상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조금 더 비용을 감내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지탱 가능한 발전”은 이전의 개발주의와 다른 비용을 요구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자세를 바꾸고 개발주의를 청산하는 일이 과연 현 체제에서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무슨 방송국의 캠페인으로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또한 이상주의자들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도전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Viva Venezuela! : 베네수엘라 대선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

베네수엘라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이 담긴 것은 아니고 지난 선거에서의 풍경을 스케치한 정도의 비디오지만, 노래와 풍경이 좋아서 공유한다. 🙂 리듬이 살아있는 남미, 언제나 가볼 수 있을까?

美대선 관련, 이념적 순수성에 관한 雜念

美대선이 끝났다. 오바마의 승리는 예상됐지만 그 차이는 제법 컸다. 상원과 하원은 여전히 양당이 다수당으로 나눠가져 소위 “재정절벽” 위기가 원활하게 해소될지에 대해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어느 선거나 이념전의 양상을 띠지만 이번에는 유난히도 우익에서 이념적 순수성을 앞세워 오바마를 공격했다.

폴 크루그먼이 쓴 칼럼 Socialism!을 보면 우익들은 미국이 사회주의자의 손에 넘어갔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양이다. 이스라엘의 한 신문은 “미국이 사회주의를 택했다”라고 헤드라인을 뽑기까지 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혁명”을 부르짖었다. 부자에 의한 제5인터내셔널이 뜰지도 모르겠다.

예상컨대 향후 4년의 경제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되므로 그 간의 이념공세는 강도를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적완화를 시도하거나 부시의 작품인 감세조치를 끝내거나 증세라도 할라치면 이를 드러내며 짖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너그러운 태도를 보일 거면서 말이다.

최근 Siri 비슷하게 묻는 질문에 대해 인터랙티브한 대답을 하는 evi라는 아이폰앱을 다운받았는데, 심심풀이로 이 앱에 ‘오바마가 사회주의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대답이 “Yes. Barack Obama is a socialist.”라고 대답한다. 아마 앱을 공화당원이 만들었나 보다. 유료였는데 일시무료일 때 다운받길 잘한 것 같다.

그 와중에 워싱턴 주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한 하원의원 후보가 27%의 표를 얻었다고 한다. “사회주의자 대안”이란 정치단체의 후보인 Kshama Sawant는 18년간이나 의원직에 머물러 있는 Frank Chopp 민주당 의원의 강력한 도전자가 되었다. Occupy Wall Street 운동의 영향력이 선거에까지 미친 사례랄 수 있다.

公的所有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리얼뉴스네트워크가 메릴랜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Gar Alperovitz와 가진 인터뷰를 소개한다. 이 교수는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공공적 소유, 나아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2008년 위기를 돌아보면 인터뷰에서도 소개하듯이 존 맥케인이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라 비난할 만큼 기업의 소유관계가 크게 흔들렸지만 사적소유를 변함없이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우선주 매입과 같은 변칙적인 방법을 통해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적소유를 보장해주었다.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자본주의의 원칙을 깨트린 오바마, 그런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라 비난한 존 맥케인, 그러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자본주의의 우산 하에서 살아남은 대형투자은행들과 자동차 업체들. 그 자동차 회사를 위해 죽일 기업은 죽여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광고를 찍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 인터뷰를 보니 그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다시 떠오른다.

어쨌든 미국은 최근 경제호조세가 이어지고 셰일가스 등의 자원보유고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며 제2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성급한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의 고질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이제 경제는 다시 선순환으로 접어든 것일까? 과연 자본주의는 살아남은 것인가? 사적소유는 또 다시 그 우월성을 증명한 것일까? 많은 물음이 여전히 해답이 없는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Is Public Ownership the Solution? Pt. 1
Is Public Ownership the Solution? Pt. 2

지불카드의 새로운 실험

“그것은 매우 단순한 일이오. 셀 수 없이 많은 상이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이 사람들의 생계와 편의를 위해 필요한 많은 물건을 생산했을 때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공급하기 위해 개인들 사이에 끊임없는 교환이 필요하지요. 이런 교환이 거래를 만들고 그 매개체로서 화폐는 필수적이지요. 하지만 국가가 모든 상품의 유일한 생산자가 되자마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루어지는 개인들 사이의 교환이 필요 없어졌소. 모든 것은 한 곳에서 구할 수 있고, 그 밖에 다른 곳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국영 창고에서 직접 분배하는 제도가 상거래를 대신했고 이런 까닭에 화폐는 필요 없어진 것이오.”
“이러한 상품 분배는 어떤 방식으로 관리됩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요.”리트 박사가 대답했다. “국가의 연간 생산 범위에서 개인의 몫에 해당하는 신용이 매해 초에 공공 장부 형태로 모든 시민에게 주어지고 있소. 그러면 그 사람에게 발급된 신용카드(credit card)로 모든 동네에 있는 공공 창고에서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리고 무엇이든지 구입할 수 있지요. 당신도 곧 알게 될 이 제도는 개인과 소비자들 사이에 어떤 종류의 사업상 거래의 필요성도 완전히 없애버렸소. 아마도 당신은 신용카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을 거요.”[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 에드워드 벨러미 Edward Bellamy 지음, 손세호 옮김, 지만지 고전천줄, 2008년, pp 93~94]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에는 위대한 통찰력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된 2000년의 미래세계를 그려 최초의 SF소설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 작품 역시 그러한데, 작품이 발표된 1888년에는 싹조차 없었던 신용카드와 – 개념상으로는 직불카드(debit card)에 더 가까운 개념이지만 – 대형할인점을 근사하게 예언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물론 뒤에 살펴보겠지만 구체적인 사용방법 상으로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근본적인 차이라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자본주의 체제인 반면에 작가가 그리고 있는 세상은 사회주의 체제라는 점일 것이다.

벨러미의 구상은 사적소유와 개인들 간의 교환이 사라져 화폐의 축장기능과 교환기능이 필요 없게 되자 자연히 화폐가 사라지고, 대신 국가라는 단일한 공급자로부터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카드가 화폐의 결제기능을 대신하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현대 자본주의에서 발전해온 신용카드나 직불카드와 같은 지불카드(charge card)는 1920년대 특정업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멤버십 카드로 시작하여 다이너스클럽이 여러 소매점에서 공통으로 쓸 수 있는 카드를 내놓으면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공급자를 단일화한 것이 아니라 지불카드를 단일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경쟁은 지불카드가 마냥 단일화되어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메리카익스프레스, 마스터카드 등 몇몇 거대 카드회사가 시장의 강자로 등장하였지만 이후에도 수많은 카드발급회사가 저마다의 지불카드를 내놓았고, 그래서 자본주의의 시민은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디자인은 다양한 지불카드를 여러 개 소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의 1인당 신용카드 발급수는 4.64 장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화폐가 사라졌기 때문에 은행도 사라지리라는 벨러미의 예언과 달리 신용카드는 돈까지 빌려준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현재 가구당 약 1만6천 달러 수준의 신용카드 부채를 지고 있다 한다.

이렇듯 카드가 화폐의 효용이 사라진 곳에서의 결제기능을 담당하리라는 예언자의 바람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지불카드는 오히려 소지하기 부담스러운 화폐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동시에 금융의 기능까지 추가되었다. 이에 따라 카드는 체제의 한 축으로 체제를 보완하는 한편으로 체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 사례는 가깝게 김대중 정부에서의 이른바 “카드 대란”을 들 수 있다. 신용사회에서 신용을 바탕으로 발급되어야 하는 신용카드가 무자격자에게 발급이 남발되면서 연체가 급증하며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종내에는 여러 카드회사가 문을 닫는 신용위기로까지 이어졌던 사건이다.

한편 자본주의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베네수엘라에서는 이와는 다른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 9월 1일 “좋은 생활 카드”라 칭한 지불카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이 카드는 국영 또는 지역공동체 슈퍼마켓에서 채소 등 생필품을 “합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카드다. 지불계좌는 국영은행과 연계된 공동체은행에 개설한다. 사용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멤버십 카드를 닮았다. 차베스는 이 카드가 “소비지상주의가 아닌 필요에 의한 소비”를 독려하는데 쓰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비판자들은 이 카드가 쿠바가 빈곤한 경제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배급카드의 베네수엘라 판에 불과하며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공산주의적 야망”일 뿐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사실 이 카드는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석유수출을 통한 경제부흥을 꾀했던 이 나라에서 유가하락 등 경제여건이 그리 녹록치 않게 되자 물가는 치솟았고 차베스 정부는 이런 상황이 이윤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사적자본의 매점매석에 의한 것이라 몰아붙였다. 그리고 급기야 “매점매석하지 않는” 국가가 공급하는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지불카드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런 점은 시장가격 그대로 값을 지불하는 자본주의에서의 카드와는 다르다. 문제는 과연 국영 또는 지역공동체 슈퍼마켓이 차베스 정부가 주장하는 “합당한” 가격에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지의 여부겠지만 말이다.

현재도 베네수엘라에서는 자본주의식 슈퍼마켓이 앞서 언급한 슈퍼마켓과 공존하고 있다. 이른바 “식량 주권” 확보를 목표로 하는 국영 또는 지역공동체 슈퍼마켓은 물건을 다른 곳보다 싼 값에 공급하고는 있지만 물품이 딸리고 겉보기도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부자들은 자본주의식 슈퍼마켓을 선호한다. 인플레이션에 무관하게 합당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생활 카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해서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차베스 정부는 쿠바를 흉내 내 도시근교 농업을 활성화시켜 공급을 원활하게 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베네수엘라 식량 사정에 관한 뉴스

요컨대 베네수엘라가 추진하고 있는 지불카드는 여태의 카드보다는 벨러미의 개념에 더 접근한 카드라 할 수 있다. 비록 아직 공급자가 국가로 단일화되지는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치유하기 위해 국가가 공급자로 나섰으니 만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카드는 지역민의 생산적 활동과 노동의 성과를 지역 외부로 뺏기지 않고 지역 내에 보존, 순환시킴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지역화폐 운동의 국가주의 버전이랄 수도 있다. 다만 도시근교농업, 공동체은행, 지역공동체 운동 등 보다 광범위한 사회계획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소비자 위주의 지역화폐 운동보다는 보다 확대된 형태이다.

서로 대조적인 길을 걸으려는 두 체제에서의 이러한 지불카드 실험은 특정한 제도나 도구가 어떠한 지향점을 갖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지불카드가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보다는 소비시장의 확대와 표준화, 궁극적으로 대량소비를 독려한 반면 베네수엘라의 지불카드는 “소비지상주의”적인 부정적 측면을 지양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체제를 보조하기보다는 기존 체제를 강화하면서, 예언자의 바람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지불카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박정희의 ‘중도 실용주의’ 노선?

박 대통령이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주재하는 회의 중의 하나가 내각 기획조정실의 국가기본운영회계에 대한 분기별 심사분석회의이다. 내각 기획조정실은 국무총리 직속기관으로 행정부 또는 국무총리 소속 여러 기관의 장기, 중기, 단기 기획의 조정 및 예산편성의 기준인 행정부기본운영계획의 목표와 방침을 결정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중략]
3개월마다 하는 심사분석 보고에는 국영기업체도 심사분석 대상에 포함되었으며 배석하고 있는 평가교수들의 평가비평도 받았다. 한국 경제는 민간 사기업체제이지만 민간자본이 약하여 1960~1970년대를 통해 볼 때, 의회민주주의이면서도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던 인도만큼 산업자산 중 공공기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중략]
경제학에서나 경영학에서 비능률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공기업, 즉 국영기업이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주요사업의 분기별 심사분석’의 엄격한 심사분석 덕분으로 능률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다른 나라의 경우에 비해서도 비교적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다.[아 박정희, 김정렴 지음, 중앙M&B, 1997년, p102]

반공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박정희 정권이 실상은 소위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지향하던 현실 사회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주도의 자원동원 체제에 경도해있었음을 알려주는 증언이다. 저자 김정렴은 박 정권 시절 재무부 장관과 비서실장을 역임한 인물이니 서술내용이나 당시 상황에 대한 그의 분석의 신뢰도는 매우 높다.

인용문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박 정권은 ‘약한 민간자본 ->  국영기업 설립 -> 엄격한 심사분석 -> 효율성 증대’라는 실질적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이, 특히 트로츠키 진영의 경우 과거 사회주의 블록을 “국가자본주의 체제”나 다름없다고 비아냥거렸는데 박 정권에게도 해당되는 소리다.

실제로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식회사를 운영하는 CEO나 다름없다. 인용한 행태는 일반 사기업에서와 똑같은 모습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저해하는 계획경제를 혐오하지만 사실은 사기업 단위에서는 완연한 ‘계획경제’ 체제다. 그리고 박정희는 그러한 계획경제를 사기업이 약한 시절 스스로 계획경제를 주도하는 CEO역할을 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유사 사회주의적 성향을 보였던 – 그것도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면서 –  나라가 우리나라 뿐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후 신생 자본주의 국가는 앞서 인용문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민간자본이 약했기 때문에 – 즉 본원적 축적이 없었기에 – 상당수 국가 동원 체제를 통하여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러한 행태가 그 행동주체들이 ‘현실 사회주의’나 ‘계획경제’ 체제를 궁극적 지향점으로 상정하고 취한 행동은 아니다. 장하준 교수의 말마따나 자본주의 체제의 “공기업은 자본주의의 폐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발전의 시동을 걸기 위해 사용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요즘 누가 유행시키려 하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 쯤 되겠다.

여하튼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며 이른바 ‘민간의 창의와 효율’을 도모한다는 취지하에 수많은 공기업이 민영화되었다. 공기업은 비효율과 낭비의 온상으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그런 마타도어도 금융위기를 맞아 별로 호소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완전한 사기업 AIG나 RBS가 상상을 초월한 ‘낭비’를 일삼다가 국유화된 세상이 왔으니까.

건강보험개혁안(Health Care Bill)이 파놓은 또 하나의 함정

이미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바 크리스마스이브에 미국 상원에서 건강보험개혁안(Health Care Bill)이 통과되었다. 미 하원이 지난달 건강보험개혁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상원도 24일 60대 39로 건보개혁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써 10년간 8천710억 달러를 투입, 현재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인들 중 3,100만~3,600만 명이 보험 혜택을 받아 실질적으로 전 국민의 94%가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 상원통과는 여러 재밌는 기록을 낳았다. 대표적으로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처음 건보 개혁을 주창한 이후 7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건보개혁 추진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안을 통과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고, 상원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표결을 실시한 것은 114년 만으로 1895년 이후 처음이라는 기록도 작성했다. 물론 가장 큰 기록은 이 놀랄만한 일을 흑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해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갈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우선 상원의 법안은 지난달 하원에서 통과된 건보개혁안과는 달리 정부 주도의 공공보험(public option) 도입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주1) 양원제이다보니 같은 주제로 다른 법안을 통과시키는 희한한 꼴이 연출되었는데 어쨌거나 상하원은 절충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상원과 하원이 동의하는 법안이 표결을 거쳐 가결되면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안이 입법화된다.

이번 상원 통과에서 공화당 의원은 39명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세기 건강보험개혁안을 무력화시켰던 대표논리인데 개혁안이 반(反)시장주의적, 좀더 직설적으로 사회주의적 조치라는 주장이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5천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는 증세 예상액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생리에 맞지 않다. 또한 이렇게 하더라도 현재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철저한 보수주의에 입각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反)시장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혐오는 별도로 하고라도 증세와 재정적자 심화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국책사업의 공통적인 근본모순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는 재정지출에의 유혹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바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4대강 떡칠에 쓸 돈이 포함된 새해 예산안을 기습 처리했다.

미국의 민주당은 국민건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고, 한국의 한나라당은 녹색성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치적, 기술적 관점에 따라 어느 것에는 손을 들어주고 어느 것은 비판할 수 있지만 두 사업 모두 생산적인 분야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 전후방 연계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많지만 – 분명하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치성향이 다른 두 정부는 어쩌면 공히 사회 인프라에 대한 공공재원 투입을 통한 경제위기 돌파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건강보험개혁안 통과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Naked Capitalism에 따르면 건강보험개혁안을 반대하는 이들이 보수주의자들만은 아니라고 한다. 소위 리버럴이나 진보주의자들 중 일부도 반대자가 있는데, 그들은 주장에 따르면 통과된 새 법안이 월스트리트에 대한 또 하나의 구제금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이전에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수요자들을 국가가 강제로 시장에 편입시켰다는 주장이다.

Here’s the opportunity, Wall Street’s newest and bestest gamble: there is a huge untapped market of some 50 million people who are not paying insurance premiums—and the number grows every year because employers drop coverage and people can’t afford premiums. Solution? Health insurance “reform” that requires everyone to turn over their pay to Wall Street. Can’t afford the premiums? That is OK—Uncle Sam will kick in a few hundred billion to help out the insurers.[전문보기]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현행 법안이 보조금 지급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고, 절충안에서 더 좋은 안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우선 보조금만 보면 미국은 보조금 지급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보조금 지급이 수혜자의 부담은 덜지언정 민간보험회사의 이윤을 덜지는 않을 것이다. 더 급진적인 안에 대해 비관적인 것이 공공과 민간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지극히 시장주의적인 ‘공공보험’조차 상원 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더 급진적인 조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장기적으로, 그리고 지구적으로 보면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부조가 갖고 있는 모순에 대한 해법이 근본적인 접근법을 통해 해결을 모색해야겠지만, 단기적으로 미국의 상황에서 그들의 건강보험개혁안은 시장주의자들이 반대하는 시장주의 개혁안으로 전락해버릴 개연성이 큰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새로이 수혜를 받는 3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영화 Sicko에서처럼 비용 때문에 잘린 손가락들 중 어떤 손가락만 붙여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주1) 이 옵션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지급방식과 다르다. 이를테면 정부가 별도로 공영 건강보험회사를 하나 만드는 걸 말한다. 공영건강보험회사는 민간 보험회사와 경쟁한다. 보험료 인하를 유도해 서민층의 무보험 사태를 구제하자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