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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家의 미술관 ‘리움’의 어원을 아십니까?

Leeum, Samsung Museum of Art.jpg
Leeum, Samsung Museum of Art” by takato maruiFlickr: Leeum, Samsung Museum of Art.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1.
웬만한 분들은 리움이 뭔지 다 알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마나님께서 미술관을 운영하고 계시고 리움은 바로 최고의 기업 삼성의 경영주 이건희 일가의 마나님인 홍라희 원장께서 운영하시는 미술관이다. 건물 자체가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동원하여 지은 건물이며 콜렉션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수준이어서 ‘역시 삼성은 다르구나!’하는 소리를 들을만한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필자는 아직 가보지도 못했다)

여하튼 제목에서 던진 질문에 답할 차례다.

리움, 영어로 leeum 은 무슨 의미일까? 리움의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leeum’은 설립자의 성(lee) – 아마도 삼성문화재단의 설립자 이병철 혹은 이건희 – 과 미술관을 의미하는 단어의 어미(um)을 조합한 명칭”이다. 즉 leeum 은 ‘이씨 집안의 미술관’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작명의 의도를 좀 더 삐딱하게 바라보자. 애초에 미술관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mu·se·um〔〕〔Gk 「뮤즈신(Muse)의 신전」의 뜻에서〕 n. 박물관;기념관;미술관;자료관

미술관을 뜻하는 영단어 museum 은 그리스 신화 상의 학예·시가·음악·무용을 관장하는 여신 muse 와 um 이 결합되어 만들어져 ‘뮤즈신의 신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로 leeum 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muse 를 lee 로 대체한 단어이다. 의미를 쪼개서 다시 이해하자면 leeum 은 ‘이씨 집안의 신전’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씨 집안이 신과 동격이라는 거야?’라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이 정도까지만 추론해도 ‘사람 되게 삐딱하네’라고 불편해하실 분도 계식터이니 이쯤에서 마치겠다. 뭐 어떻게 보면 그렇다는 거다.

2.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家의 또 다른 비리를 폭로했다. 중앙일보의 위장계열분리 건, 비자금 조성방법, 비자금을 이용한 미술품 구입 건 등이다. 미술품 구입건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 변호사는 “이 회장 부인 홍라희씨와 신세계 그룹 이명희 회장 등이 지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비자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했으며, 해외에 송금된 액수는 6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 자금출처는 “모두 구조본 재무팀이 관리하는 비자금이었다”고 주장했다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구입한 미술품의 명확한 소유관계는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비자금 조성만으로도 모자라 그 돈으로 미술품을 구입한 일종의 공금 유용의 혐의까지 따질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미술품이 홍라희 씨 개인소유로 되어 있다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김 변호사의 폭로에 따르면 작품 하나는 이재용 상무 집벽에 걸려 있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힘들여 번 돈 600억 원이 고스란히 마나님의 취미생활에 쓰인 셈이니 말이다. leeum 소유라 할지라도 엄격하게는 부당한 계열사 지원일 것이다.

이번 폭로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신정아 사건이나 그 이전의 각종 미술대전에서의 비리 등 이미 썩을 대로 썩어있는 국내 미술계에 또 한 번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술품에 차등을 두어 시상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미친 짓이라 생각하는데 거기다가 돈을 받고 미술품에 등급을 매기고 학벌을 통한 카르텔을 형성한 이 미술계, 그러면서도 거짓 학력에 뻔히 속고 있는 미술계에 국내 최고의 미술관이 깨끗한 돈도 아닌 비자금으로 사들인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상황은 절망적이다.

‘이불’이라는 우리나라의 설치예술가가 1997년 뉴욕 MoMA라는 갤러리에 ‘화엄(Majestic Spendor)’이라는 작품을 설치하여 화제가 된적이 있다. 작품은 진짜배기 생선으로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생선이 썩으면서 풍기는 악취로 인해 철거됨으로써 당시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불의 작품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비자금으로 사들여진 미술품이 어찌 보면 또 다른 화엄이 아닐까 생각된다. 두고 보면 볼수록 썩은 냄새가 나지 않을까?

p.s. 1은 2를 위한 낚시 글입니다. 🙂

정부 정책도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베끼는 나라

필자도 삼성경제연구소(SERI, 이하 삼성연)를 좋아한다. 삼성연의 보고서를 이메일로 받아보고 있다. 가끔 글을 쓸 때 참고도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그들의 인적자원이 국내 최고급이라는 사실이다. 아는 선배도 그곳에서 고액연봉 받아가며 일한다. 선거 때만 되면 각 캠프에서 이런 저런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써준다고 하니 요즘 바쁠 거다.(이걸 정학유착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면 양반일 텐데 오늘자 경향신문이 전하는 소식은 (어쩌면 이미 상식에 속하는 이야길지 모르지만) 또 한 번 필자를 우울하게 한다. 기사에 따르면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노무현 당선자 책상에는 인수위 보고서와 삼성연 보고서가 같이 놓여 있었다. 386 측근 참모가 SERI와 같이 만든 보고서였다”면서 “핵심 내용이 ‘대미·대북관계는 진보적으로, 사회경제 정책은 보수적으로’였다”고 회고하였다 한다.

‘대북관계에서의 (상대적인) 진보성과 사회경제에 있어서의 보수성’

이것이 정확하게 참여정부의 스탠스였다. 앞서의 언급에 있어 대미관계는 대북관계와의 종속성으로 인해 레토릭만 자주를 외치다 제 풀에 스러져버린 굴종적인 것이었음은 이미 증명되었다.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있어서는 집권초기 약간이나마 진보적 시도가 있었다. 토지공유론으로 유명한 헨리조지 주의자로 알려졌던 이정우 씨의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 기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김수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등 진보적 인사들과 함께 토지문제에 메스를 가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기사는 “개혁적 소신을 유지한 이정우 전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 이동걸 박사 등의 조기퇴진 배경에는 삼성생명 상장과 개혁정책을 둘러싼 청와대 386 및 관료들과의 파워게임이 있다”는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증언을 전하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삼성연이 한·미 FTA의 논리적 기반도 제공했다는 평가다. 삼성연은 한·미 FTA 개시선언 직후인 지난해 3월 ‘도대체 왜 한·미 FTA를 해야 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서비스시장 개방론’을 처음 이슈화했다고 한다. 이후 노대통령은 FTA 대책과 양극화 해법으로 강조해온 ‘지식서비스업 강화론’을 강조한다. 삼성연이 대통령 이하 국민의 상투머리에서 놀고 있다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삼성연의 연구원들은 훌륭한 인적자원들이다.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니 만큼 아이디어도 상당하고 쓸 만하다. 문제는 그들의 계급성이다. 그들 스스로는 지식 ‘노동자’일지 모르나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삼성 자본’의 프레임을 통해 필터링된 아이디어들이다. 연구원 개인적으로 FTA를 찬성하든 말든 연구소의 보고서는 FTA 찬성으로 나온다. 삼성의 수많은 천재적인 머리들이 불법세습을 위해 전환사채 발행을 고안해냈듯이 사주와 자본을 위해 머리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뻔뻔하게도, 또는 무능하게도 자신의 머리를 비워둔 채 민간기업의 경제연구소의 머리를 빌어다 썼다. 그러고서는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선언했다. 이런 무기력증을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 한편으로 또 NLL에 대한 하나마나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다. 보수적 경제 운용으로 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진보적 대북관계로 우익적인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린 것인가? 그러니 “사람을 죽였대도 이명박을 찍겠다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것은 어쩌면 참여정부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가만 보면 알량한 지식 쪼가리 몇 개를 가지고 지식인이나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회다. 그런데 정작 써먹으려면 알맹이가 없다. 청와대 386이란 치들이 그랬을 것이고 그것이 희극 버전으로 일어난 사건이 신정아 사건이다. 사회가 바로 서려면 정말 똑똑한 이가 우대받아야 한다. 그런데 새치기와 거짓으로 행세하는 이가 너무 많은 이 세상엔 헛똑똑이들이 너무 많다.

경향신문의 해당기사 보기

김경준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는 주주 자본주의

고승덕 변호사는 MAF펀드가 금리성 펀드, 즉 각국의 금리차이를 이용하여 무위험 차익거래를 할 목적으로 설립된 펀드였으므로 LKe는 해당 펀드가 “무위험 안정수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회사의 대기성 자금을 투자했다고 주장하였다. 진위여부야 사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다. 혹은 LKe를 포함한 나머지 투자자들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MAF펀드는 일종의 사모 헤지펀드인 정황이 짙고 이러한 펀드들은 통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대며 대개의 경우 금융당국, 심지어 투자자들에게까지 자금운용상황을 알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경준 씨가 광은창투를 인수하여 경영권을 장악하고 옵셔널벤처스로 회사명을 바꾸는 과정은 주가조작과 공금횡령이라는 불법이 가미되었다 뿐이지 사모펀드들이 통상 수행하는 적대적 M&A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론스타 이하 많은 사모펀드들이 국내기업을 인수하고 값을 올려 되팔아 차익을 챙긴 방식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즉 조세회피지역에 펀드를 설정하고 회사를 하나 선정하여 거래하여 차익을 챙긴 뒤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바로 그런 방식은 전형적인 사모펀드의 투자방식이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이른바 경영권을 확보한 주주들의 행동양태다.

현대 자본주의 기업은 자산의 대부분이 주주의 자본과 대주의 차입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이 제기되면 현대 자본주의는 바로 이러한 자산의 구성을 근거로 주주가 주인임을 천명한다. 생산활동의 주요 투입요소인 노동과 자본 중에서 주체는 노동이되 주인은 당연히 자본이라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입장이다. 그리고 대주는 원리금 보장이 최우선 과제이므로 경영에는 – 불가항력의 사태가 아니면 – 참여를 하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되면 주주가 주인인 셈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주주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초기에 창업자가 주식 절대다수를 소유하던 가족형 기업에서 주식을 일반시장에서 공개하는 이른바 주식회사의 형태로 발전해나가는 시점에서 유명한 경제학자 피터드러커는 주식공개가 사회주의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엄살을 떨었다지만 현실은 오히려 경영권을 확보한 이가 상대적인 소수 지분으로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다수의 소액주주는 경영에 관심이 없고 이해관계가 있는 정보에의 접근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삼성을 비롯한 국내 재벌 상당수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권력기반을 온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현실에서의’ 회사의 주인은 다소 추상적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에서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한 소수의 주주들이다. 다시 ‘주목하여야 할 주주들의 행동양태’로 돌아가면 결국 회사의 노동자들이나 이와 관련된 사회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아랑곳하지 않는 주주라면 그는 ‘주주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이익추구에만 봉사하게 된다. 론스타에 의해 자행된 외환은행의 대량해고 사태, 삼성의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불법세습, 그리고 김경준의 비열한 공금횡령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더군다나 삼성과 김경준의 경우는 주주의 이익조차 고려하지 않은 사익(私益)추구 행위라는 점에서 더욱 악랄하다.

어쨌든 문제는 그들이 인수한 회사를 첨단금융기법을 동원해 가치를 극대화시켰든, 법테두리를 교묘히 벗어난 천재적인 수법을 발휘했든, 대놓고 불법을 자행한 후 미국으로 튀었든지 간에 공통점은 ‘사회와의 상생(相生)’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이익창출이 근본목적인데 그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기업의 부(富)는 어디서 창출되는 것인가 하는 좀 더 깊고도 지루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므로 여기에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결국 주주들의 전횡이 일반적인 것이냐 아니면 특수한 상황이냐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자본주의 기업이론의 옹호자들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정부패일 뿐이며 발전한 자본주의일수록 부정부패는 사라진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범법행위와 더불어 오늘날 더욱 더 규모를 키워가는 펀드들의 메뚜기와도 같은 포식성과 이들이 절대가치로 두고 있는 이익극대화는 어떤 경우는 일국의 법 체제마저 뛰어넘는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세회피지역일 것이며 보다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사례가 바로 FTA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FTA이래 가장 걸작(?)이라고 칭찬한다는 한미FTA의 경우 투자자의 절대 보호가 근본목표다. 한미FTA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공익성이라는 이름으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그들은 바로 국제중재원으로 직행한다. 한국의 법원은 낄 자리도 없다. 거기에다 헌법이나 국내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초국적인 자본의 이해가 관철된 제3의 규칙으로 투자자들의 피해여부를 다룰 것이다.

그때쯤이면 옵셔널벤처스 소액주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김경준 정도는 피라미였음을 국민대다수가 느끼게 될 것이다.

이번 대선은 자본이 집권하는 선거

어쩌면 이번 대선은 일개 정당, 또는 일개 정치인이 정치권력을 잡는 선거가 아닌 자본권력이 실질적으로 정치권력까지 접수하는 선거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경우 정치권력이 자본권력을 종속시킨 상태에서의 정경유착이 이루어졌거나 혹은 일단 자본과 독립적인 제스처를 취하다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자본권력과 친해지는 양상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력 대선후보와 다수당이 그 어느 때보다 자본, 특히 재벌과 독점언론의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은행소유

일차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금산분리 철폐’가 있다. 한나라당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이회창 후보는 홈페이지에 정책 올릴 시간이 없어 아예 깨끗이 비워두었기에 그의 정책이 이명박 후보 혹은 한나라당의 정책과 같다고 간주할 때 50%를 훨씬 웃도는 후보들이 자본의 은행지배를 허락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의 폭로덕분에 우리는 이 정책이 삼성이 핵심적인 이해당사자임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최근 이명박 후보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민영화까지 거론하였다. 이는 실질적으로 국가가 고유의 금융정책 집행수단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며, 국가경제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금융기능을 마비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이후보는 13일 중소기업중앙회 초청 강연 자료에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민영화함으로써 20조~30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중소기업 지원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중소기업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하는 전형적인 물타기다. 그는 또 국책은행의 인수주체를 국민연금이나 중소기업의 컨소시엄을 지목하고 대기업을 차별하는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는데 인수규모로 봐서도 비현실적일뿐더러 정녕 그가 이런 계획이라면 현행 은행법 체제에서도 얼마든지 추진이 가능한 사안이므로 이를 금산분리와 연계시킬 이유가 없다.

신문의 미디어 제국화

또 하나 노골적인 편들기 정책은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신문언론이 사활을 걸고 있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 혹은 교차소유 허용’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해에도 방송개혁이랍시고 공영방송의 민영화와 신문의 방송소유를 골자로 하는 각종 법안을 계속 상정하고 있던 상황이다. 이명박 후보는 이 역시 허용할 방침이라고 선언하였다. 더불어 최근 앞서의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민영화와 함께 강력한 공기업 민영화 방침을 밝혀 지상파 방송의 민영화 방침을 밝힌 셈이 되었다.

문제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 내지는 교차소유가 조중동이라는 3대 신문사가 신문시장의 70%를, 지상파 방송이 방송시장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독과점 구조를 더욱 강고하게 만들어 이 나라에 거대한 미디어 제국이 탄생함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곧 한 개의 미디어 기업이 생산해내는 뉴스를 신문, 방송, 라디오, 인터넷 등 모든 매체에서 귀가 따갑도록 접하게 되는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국토를 파헤칠 운하건설

이와 더불어 이미 끊임없이 그 타당성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애물단지 ‘경부운하’가 있다. 운하를 파는 목적도 바뀌고 그 사업성도 바뀌고 뭐 하나 온전하게 그 실체가 밝혀진 것이 없는 경부운하는 이제 이름과 그 추진방식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추진방식은 민간투자사업으로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예산을 절감하겠다고 한다. 신공항철도를 보면 잘 알겠지만 민간투자사업은 거저먹는 사업이 아니다. 시설의 건설비에 운영비까지 합쳐 일정 수익률로 매년 민간에게 지불하여야 하는 사업이다. 그 채무는 현 세대 뿐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짊어지게 될 것이다.

서민복지에는?

반면 그의 홈페이지에 쌓여있는 각종 선심성 복지공약에 대해서는 그 실천의지가 의심스럽다. 한 예로 보육문제나 교육문제를 보자. 이 후보는 얼마 전 한 어린이집을 찾아 “보육 문제도 중요하지만 방과 후 교육문제도 중요하다”며 “방과 후 학교가 있지만 예산부족으로, 선생님의 수가 적고 임금도 적어 높은 수준이 되지 않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16일 ‘공공부문 슬림화 구상’에서는 공공부문의 민간이양과 공무원 수 동결을 이야기했다. 공공부문의 개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의 갖은 복지공약과 ‘공공부문 슬림화 구상’은 상호 모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울한 점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추세가 현재 범여권의 후보가 집권한다 하여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사회공공성의 대폭적인 축소를 가져올 한미FTA는 현 정부가 주도적으로 진행시킨 사안이다. 그것만으로도 차기 정부가 반외세 정부여야 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위 자주세력의 반한나라당 노선은 착시현상임을 알 수 있다. 정동영 후보의 최근 좌향좌 행보가 그간 그가 보여 온 보수적 행태를 살짝 가리는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요컨대 현 상황은 신자유주의화와 자본승리를 위한 세계화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정치권력의 이양이 아닌 좀 더 폭넓은 범위에서의 과제임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독백, 왜 제2의 김용철은 쉽지 않을까?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리에 대한 폭로선언 시리즈를 보고 있자니 문득 영화 한편이 떠오른다. 테일러핵포드가 감독하고 알파치노, 키아누리브츠가 주연한 “The Devil’s Advocate(악마의 변호사)”가 바로 그 영화다. 실력 있는 변호사인 키아누리브츠가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한 기업을 위해 충성하는데 그 기업의 우두머리인 알파치노는 사실 악마였다는 초현실주의적인 영화였다.

알파치노가 ‘진짜’ 악마였다는 사실 때문에 초현실주의적이긴 하지만 그것을 비유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가장 사실주의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삼성의 우두머리로 계신 그 분을 영화에서의 ‘악마’ 알파치노에 비유한다면 김용철 변호사는 영락없이 키아누리브츠다. 영화 말미에서 결국 키아누리브츠가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듯이 김용철 변호사도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어쩌면 ‘악마’는 알파치노나 삼성의 어르신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 서로를 엮고 있는 강한 그물일 수도 있다. 물욕(物慾)에서 비롯된 이윤동기, 이를 위한 무한경쟁, 종내는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먹이사슬,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에 대한 유혹 들이 우리가 우두머리의 가시권에 있지 않아도 스스로를 비양심의 투전판에 끼게 하는 진정한 ‘악마’일지도 모른다.

헐리웃의 반골 마이클무어의 최신작 Sicko를 보면 의료보험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오던 한 여의사의 양심고백 에피소드를 볼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이 기업의 임원으로 있으면서 환자를 치료하여야 할 의사의 본분을 내팽개치고 보험료 청구를 거부할만한 합당한 논리를 개발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상상을 초월한 급료를 받았다. 누군가의 치료비로 썼어야 할 돈이었다. 그 역시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가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토록 용기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첫째, 그러한 행위가 여태껏 자기가 누리던 기득권의 포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함께 기득권을 포기하자고 했다고 한다. 가난한 이는 부자에게 너는 포기할 기득권이 많으니까 쉽게 포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한다. 그러니 떡고물이 큰 이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사회 구성원 다수를 점하고 있는 서민들은 어쩌면 포기할 기득권이 없어서 그나마 있는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둘째, 또 내부자고발에 따른 배신자라는 자괴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어쩌면 눈에 보이는 알파치노와 같은 악마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인데 악마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그간 같이 일해오던 동료들을 배신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똑같이 기득권 없기는 마찬가지이던 동료들이 유탄에 쓰러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고발자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부고발을 했던 한 공공기관 직원에 대한 동료들의 집단 괴롭힘은 한때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 고발의 용기를 꺾는 원인은 그럼에도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감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를 했으니 삼성은 문을 닫게 될까? 삼성을 조각내서 사회화시키자는 데 국민들 중 몇 명이나 동의할까? 김용철 변호사가 이번 고백을 통해 사회에서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칭송을 받으며 홀가분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삼성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고 김 변호사는 남은 인생을 죄인처럼 살아갈 개연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더 큰 물결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반향이 아니고서는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악마의 제국’이 무너질 리 만무하다. 앞서 예를 들었던 여의사의 양심고백도 큰 반향없이 스러져 가고 여전히 의료보험 기업은 건재하다.

누구나 조직에 속해 있고 조직의 논리를 익히고 살아간다. 심지어 세상을 등지고 사시는 노숙자분들마저 자체적으로 조직이 형성된다. 그것이 ‘사회적’ 본능을 타고난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 조직논리와 자신이 생각하는, 그리고 인류가 동의해온 보편타당의 논리가 배치될 때 우리는 갈등하고 번민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사회의 견고한 미시권력을 전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어쨌든 개개인 스스로는 이 미시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자기반성과 또 다른 조직화, 공론화(어쩌면 블로깅? 어쩌면 정치활동?)를 시도하는 이외에는 뾰족한 방도가 없는 것도 안타까운 점이다.

삼성은 선진국형 정경유착을 꿈꾸고 있다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삼성

삼성의 핵심 임원 중 하나였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또는 자수 선언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삼성이 사법부 내에서 휘두르는 강력한 로비력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를 통해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삼성 측은 그를 정신이상 쪽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는 모양인데 참 궁색하고 졸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실 삼성만 탓할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라면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세 가지 종류의 국가권력에 항시 줄을 대고 친해지고, 또 어느 순간에는 저항하는 일상을 반복하게 마련이다. 삼성은 그러한 기업들 중에서 가장 선진화(?)된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들키면 그렇게라도 발뺌을 해야 한다.

정경유착은 선진국형의 정치체제

그러면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정치와 경제의 통합이 아닐까 싶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정종일치(政宗一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권력일진데 서로 사이 나쁘게 지낼 필요가 없다. 이게 웬 후진국형의 정격유착이냐고? 그렇지 않다. 사실은 굉장히 선진국형인 지향점이다.

정치 민주주의의 최첨단 국가 미국을 보라. 일견 이들의 분식회계에 대한 엄격한 법적용, 독점기업에 대한 가혹한 반독점 판결 등이 정경분리의 사례들로 제시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법적용은 사실 또 다른, 그리고 보다 커다란 규모의 최첨단의 정경유착을 그늘지울 뿐이다.

부통령이냐 CEO냐

지난 2004년 이라크의 전후복구 사업을 들여다보자. 당시 미국의 건설업체 핼리버튼이 이라크의 재건에 관련되어 2004년 현재까지 미국정부와 맺은 계약금액은 미국 기업 중에서도 최고금액으로 약 170억 달러에 달한다(이라크 과도정부의 2004년 예산은 130억 달러였다). 그리고 그러한 막대한 금액의 계약은 어떠한 경쟁 입찰도 없는 수의계약으로 체결되었다. 이에 민주당의 거센 반대가 있었고 경쟁이 도입되었지만 또 핼리버튼이 계약당사자가 되었다.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 헨리 왁스맨은 이러한 상황을 “낭비, 사기, 오용의 조리법(a recipe for waste, fraud and abuse)” 이라고 칭하고 미국의 납세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상황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의 핵심에는 바로 부시 행정부의 사실상의 최고 권력자 딕 체니가 있다. 그는 핼리버튼의 CEO으로 5년간 근무하였다. 정종일치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메일 관리를 잘 하실 것

그래도 딕 체니와의 유착관계에 대한 물증이 없다고? 물증도 있다. 일단 공식적으로 딕 체니는 핼리버튼 으로부터 2003년 미지급 보수라는 명목으로 약 17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 당시 Time 지는 딕 체니와 헬리버튼의 관계를 증명하는 이메일을 입수하여 공개했다. 이 이메일은 2003년 3월5일 미 육군 공병대 간부가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차관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이라크 공사계약 감독 책임을 맡은 페이스 차관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내일 백악관에 보고하기로 하고 승인했으며, 부통령실이 계약을 주선한 이래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적고 있다. 사흘 뒤 핼리버튼이 계약을 따냈다.

물론 딕 체니만 이렇게 기업의 배후를 봐주는 것은 아니다. 잘 알다시피 조지 부시 이하 행정부의 모든 각료들은 전직 대기업 CEO 이었든지 임원이었든지 어떤 식으로든 기업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각종 입법과 행정 등에 있어 기업들의 편의를 봐주게 된다. 물론 두둑한 보너스와 퇴임 후의 일자리를 보장받으면서 말이다.

선진국형 정경유착의 시작?

물론 과거 권위주의 시절 정치인들의 독재적인 관치의 휘둘림에 경제인들도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 법적기준의 적용이랄지 정치자금 기부 협박 등 이루 말로 못할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발적으로 돈을 갖다 바쳐 특혜를 받기도한 것이 사실이다. 후진국형 정경유착인 셈이다. 그러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못살겠다며 그만의 스타일대로 대권에 도전하다 실패했다. 그리고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이를 본 삼성은 또 삼성만의 스타일대로 물밑에서 조용히 권력을 접수해 나갔다. 삼성은 그렇게 들이대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법적소송이 조용히 무마될 정도의 힘을 키웠다. 그리고 더 큰 그림도 그리고 있다. 이번 금산분리 철폐의 시나리오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조용하고 은밀한 물밑 작업 결과 허다한 경제 관료들이 삼성의 은산분리 철폐 논리를 거들고 있고 급기야 대권주자까지 나서서 철폐를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직 정치적 후진국이어서 많은 경제인들이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기업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청와대에 속속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반기업 정서 때문에 지난 5년간 투자성장률이 1%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대권주자가 있으니 말이다. 그 때가 되면 뭐 굳이 배신자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삼성과 김용철의 악연
http://news.media.daum.net/economic/finance/200710/30/nocut/v18655073.html?_RIGHT_COMM=R1
핼리버튼과 딕 체니의 정경유착에 관한 글
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4/03/02/200403020500002/200403020500002_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