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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이었던 마르크스

만약 이런 국유화 조치들이 사회주의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칼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그루초 마르크스의 그것에 가깝다.
If these nationalizations smack of socialism, it is closer to the Marxism of Groucho than of Karl.

앞서의 글에서 인용한 기사의 다른 멘트다. 프래니와 AIG의 국유화 조치 등 美행정부의 일련의 행동들이 우왕좌왕 개념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Floyd Norris라는 기자의 미국식 유머다. 사실 이 농담을 이해하려면 그루초 마르크스 Groucho Marx 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칼 마르크스 다음으로 좋아하는 마르크스 집안사람인데 미국의 코미디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코미디언이다. 기자는 바로 그래서 이번 조치들을 그루초의 마르크스주의라고 비꼰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의 영화를 몇 편 소개한다.

***

Marx 하면 어떤 인물이 떠오르는지? 사회진보운동이나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Karl Marx 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Marx (들)이 있다. 옛날 코미디 팬이라면 머릿속에 이들을 떠올렸을 법하다. 그들은 바로 30~40년대 헐리웃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표주자로 활약했던 Marx 형제들이다. Chico, Harpo, Groucho 등 세 명이 가장 널리 알려진 – 초기에 Gummo 와 Zeppo 라는 다른 두 형제가 같이 활동하였으나 곧 은퇴하였다 – 이들 형제는 서커스단에서의 오랜 무명생활 끝에 헐리웃에 진출하여 반사회적이고 무질서한 슬랩스틱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었다.

Marx Brothers 1931.jpg
Marx Brothers 1931” by Ralph F. Stitt – This image is available from the United States Library of Congres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under the digital ID cph.3c2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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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들의 코미디에는 세 형제의 나름의 캐릭터와 특기가 일관되게 연출되는 일종의 시트콤 또는 시리즈 – 그러니 사실 개별 영화의 제목은 ‘Marx 형제 무엇을 하다’ 정도 되어야 맞을 – 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Chico 는 이탈리아 악센트가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 캐릭터로 뛰어난 피아노 연주가 장기이며, Harpo 는 농아의 역할을 하지만 뛰어난 하프 솜씨와 재밌는 표정연기를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Groucho 는 – 이 분이 때로 장남으로 오해를 받는데 사실 Chico 가 둘째고 이 양반은 셋째라고 – 숱 검댕이 눈썹과 네모난 수염을 하고서는 아무데서나 시가를 벅벅 피워대면서 상대방을 조롱하는 반영웅적인 캐릭터로 형제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다.

우디 알렌은 이러한 Groucho Marx 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이라고 칭송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그의 작품 The Purple Rose of Cairo 에서 그들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푸념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고, Marx 형제의 작품 Horse Feathers 의 삽입곡에서 영감을 받아 Everyone Says I Love You 를 만들기도 하는 등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들은 분명 Charlie Chaplin 도 아니고 Buster Keaton 도 아니다. 비록 그들의 작품에서는 Charlie Chaplin 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페이소스도 없고 Buster Keaton 의 작품과 같은 곡예 같은 스턴트이나 빈틈없는 극구성도 결여되어 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한 판 흐드러지게 놀고 즐기는 것, 바로 희극의 원초적 목적을 달성한다는 순수정신이 구현되면 그것으로 그들은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Let’s Have Fun, It’s Playtime!

  • Monkey Business(1931)

그들의 세 번째 작품이다. Zeppo 까지 네 형제가 미국으로 향하는 유람선의 밀항자로 출연하고 있다. 배 안에서 만난 갱스터의 납치극에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다. 역시 형들의 뛰어난 활약에 비해 가장 나이어린 Zeppo 의 활약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 Horse Feathers(1932)

Groucho Marx 가 한 대학의 학장으로 취임하여 라이벌 학교와의 축구시합에서 이길 수 있도록 납치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다소 반사회적인 작품이다. 거기에다 이 학장은 자신의 아들(Zeppo)의 정부까지도 넘봐 마침내 나머지 형제들이 그 한 여인과 동시에 결혼한다는 황당하고 심지어 무정부주의적이기까지 한 결론으로 끝을 맺고 있다. 단어를 가지고 치는 말장난이 맛깔스러운데 먼훗날의 소위 개그의 원조가 바로 이런 스탠딩 개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A Night At The Opera(1935)

그들의 작품 중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인데 오페라 극단에서 벌어지는 치정과 성공의 스토리가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이 사이를 오가는 유람선을 배경으로 짜임새 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다 비발디의 오페라 등 여러 고전적인 노래의 향연, 예외 없이 등장하는 Marx 형제의 뛰어난 악기 연주 솜씨, Groucho 의 물오른 코미디 연기 등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들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이 작품에서는 Zeppo 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 The Big Store(1941)

백화점의 유산 상속자이자 인기가수인 Tommy Rogers(Tony Martin)가 그의 백화점 지분을 헐값에 넘기고 음악교육에 전념하려고 하자 백화점 경영진 중 하나가 그의 재산을 가로채려 하고 Marx 형제가 이 음모를 막는다는 모험극이다. 이 작품에서는 Groucho 의 노래와 군무 등 뮤지컬적인 요소가 대폭 강화되었다.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 동안 이러한 볼거리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극적인 부분이 등한시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어정쩡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20世紀 少年

개봉 첫날 ‘20세기 소년’을 보았다. 손꼽아 기다리다 이 작품을 감상할 만큼 이 영화의 원작이나 우라사와 나오키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개봉관이 가까워서… –;

가장 궁금한 점은 자못 방대한 스케일의 영화라서 어떻게 영화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과제를 ‘반지의 전쟁’은 보란 듯이 성공했고 ‘아키라’는 절반의 성공에 만족하여야 했다. 감독 또는 제작진은 이런 제약조건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요즘의 추세에 맞춰 – 또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 ‘아키라’처럼 단편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지의 전쟁’처럼 시리즈로 제작하기로 결정 내렸다. 이번 작품이 1편이다.

원작에서도 어린 시절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현재, 또는 가까운 과거 등이 일종의 기억의 방아쇠 역할을 하면서 불연속적으로 교차되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도 그러한 식으로 진행된다. 비교적 충실히 만화의 에피소드들을 재현하고 있다. 화면구성까지 답습하는 면이 있는데 그런 점은 좀 더 창의력을 발휘해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예상한대로 켄지가 거대한 괴물을 상대하여 장렬히 전사(戰死)(?)하는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

허지웅씨도 이 영화에 대한 단평에서 지적하였듯이 “영화로 만드는 일 따위 누가 총대를 매든 욕먹기 딱 좋은 기획”이긴 하였다. 여하튼 철인28호나 케산 등 여러 추억의 만화들이 실사화 되어 원작에 누를 끼쳤고 워쇼스키의 스피드레이서도 별로 좋은 소리를 못들은 와중에도 ‘20세기 소년’의 실사화가 시도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B0 정도는 주고 싶다.

일단 출연배우들이 나름 만화 속의 캐릭터들을 충실히 재현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하얀 거탑’의 주인공이었던 카라사와 토시아키의 캐스팅도 적절해보였고 나머지 배우들의 캐스팅도 근사했다. 특히 카나의 어린 시절 역의 꼬마는 너무 너무 너무 귀여웠다. 가와이~~~ 반면 원작에서 미스터리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지던 ‘친구’와 ‘오쵸’와의 연계 의혹이나 오쵸가 정글로 간 상황설명이 너무 쉽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결정적으로 후쿠베의 존재감은 거의 있으나마나하다.(후속작을 어떻게 진행시키려는지…)

추. 켄지의 누나역의 쿠로키 히토미는 ‘하얀 거탑’에서는 카라사와 토시아키(켄지)의 정부 역이었다. 헉!~ 근친…? 🙂

추2. 원작 및 영화의 메인테마라 할 수 있는 T-Rex의 20th Century Boy

추3. 홈페이지도 맹글었단다.

Ocean’s 13 中에서

범죄영화라기보다는 하나의 스타일리쉬하고 깔끔한 게임과 같은 영화여서 범죄자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음에도 꽤나 장난기를 많이 부리는 영화다. 한 예로 오션스 12에서는 줄리아로버츠를 출연시켜놓고는 줄리아로버츠 인양 연기를 하라는 배배 꼬인 상황을 연출하는데 바로 이 짓궂음이 또 이 영화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오션스 13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기존 영화의 대사를 패러디하는 등의 장난기를 선보인다. 특히 귀가 솔깃했던 장면은 멕시코에 파견된 동료들과의 전화대화였다. 일행 중 두 명이 조작된 주사위를 만들기 위해 멕시코의 하청공장으로 파견되었으나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된다. 전화를 받던 다른 일당이 하는 소리가 “그들은 빵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는군.”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바로 Ken Loach 감독의 작품 ‘빵과 장미’를 패러디한 장면이다. 결국 일당들이 회의를 하는데 하나가 그들이 원하는 임금인상액이 얼마냐고 물었고 다른 이가 3만6천 달러라고 대답했다. 물은 이는 “3만6천 달러면 200명이니까 모두 합쳐” 어쩌고 하자 대답한 이 왈 “그들 모두 합쳐 3만6천 달러야.”하자 모두들 어이없어 한다. 단위가 틀린 돈 놀음을 하고 있는 영화 속 등장인물에게는 도저히 와 닿지 않는 비참한 현실이지만 실은 그게 현실이고, 한때 꽤나 진지했던 소더버그가 나름 그런 의도로 가벼운 웃음 속에 뼈있는 에피소드를 집어넣은 게 하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본다.

탐욕은 좋은 것이다

Oliver Stone 의 1987년 작품 Wall Street 의 한 장면. 기업사냥꾼 Gekko가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Teldar Paper 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행한 연설이다.

나는 기업의 파괴자가 아닙니다. 나는 그들의 해방자입니다. 요점은, 신사숙녀 여러분, 그 탐욕은, 다른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좋은 것입니다. 탐욕은 옳은 것입니다. 탐욕은 행해지게 합니다. 탐욕은 뚜렷하게 하고, 헤치고 나가고, 그리고 진보적인 정신의 정수를 획득합니다. 탐욕,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인생, 돈, 사랑, 지식에 대한 탐욕은… 인류를 급격히 고양시켰습니다. 그리고 탐욕은… 제 말 잘 들어보세요.. 텔다 제지를 살릴 뿐 아니라 U.S.A라고 불리는 다른 삐걱거리는 기업도 구할 것입니다.

I am not a destroyer of companies. I am a liberator of them! The point is, ladies and gentlemen, that greed, for lack of a better word, is good. Greed is right. Greed works. Greed clarifies, cuts through, and captures the essence of the evolutionary spirit. Greed, in all of its forms… greed for life, for money, for love, knowledge… has marked the upward surge of mankind, and greed… you mark my words… will not only save Teldar Paper, but that other malfunctioning corporation called the U.S.A.

아담 스미스가 현세에 태어나 기업의 주주총회에 나가서 연설을 하라면 이런 식으로 연설을 하지 않을까싶다. 물론 영화에서 Gekko의 연설은 주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탐욕(또는 욕망)은 어떤 인간에게서든 잠재해있는 본능이고, Gekko는 뛰어난 언변으로 그 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탐욕이 역사를 움직여온 것이 사실이다. 탐욕은 수많은 희생을 발밑에 깔고 문명을 헤쳐 왔지만 어쨌든 Gekko의 말대로 진보를 이룩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문제는 – 영화의 스토리 진행도 그렇지만 – 절제되지 않는 탐욕이다. Gekko의 제동장치 없는 탐욕은 타인의 삶을 앗아가는 탐욕이었고 결국 그의 충복 Bud의 배신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가 만들어진 후 20년 후 실제 세상에서 통제되지 않는 탐욕은 미국이라는 삐걱거리는 기업을 더욱 망치고 있다.

추. Oliver Stone 의 아버지 Louis Stone은 50년 넘게 Wall Street에서 일했고 이 작품은 그에게 헌정되었다.(관련 글 보기)

아웃사이더의 스파이 스릴러, Harry Palmer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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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 Deighton and Michael Caine Ipcress File” by http://www.twochapstalking.com/gazette/gazette32.htm. Licensed under Wikipedia.

스파이물은 100%(또는 99.9%?) 냉전시대의 유산이다. 미국의 개척시대가 없었다면 서부영화라는 장르가 존재할 수 없듯이 냉전과 스파이물의 관계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불가피하게 우리가 어려서부터 즐겨왔던 007시리즈로 대표되는 스파이물은 서방을 선(善)의 세력으로, 소련을 비롯한 서방의 적대세력을 악(惡)의 세력으로 하는, 이분법적 구도를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구도는 소련제국이 붕괴되는 시점에서 비로소 다변화되기 시작하였고 극히 최근에야 Jason Bourne시리즈와 같은 수정주의적 스파이물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냉전의 적대감이 기승을 부리던 1960년대에 영국 영화계 한편에서는 단순명쾌한 구도와 다양한 볼거리(첨단무기, 액션, 나체의 여인 등)로 무장한 007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묘한 스파이물이 존재하였다. 바로 Len Deighton 원작의 Harry Palmer 시리즈다. 이 작품 역시 동서의 냉전구도를 기본모순으로 깔고 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 당시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으나 영화를 보고 있자면 그것이 과연 선악의 구도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을 정도로 묘한 냉소와 모호함이 느껴진다. 즉 이 시리즈는 시대를 앞선 수정주의적 스파이물이었다.

이 시리즈는 개봉 당시 ‘생각하는 사람들의 James Bond’라는 별명을 얻으며 60년대에 세 편, 90년대에 두 편 영화로 제작되었다. 주인공 Harry Palmer는 요즘 The Dark Knight에서 Bruce Wayne의 집의 집사역을 맡고 있는 Michael Caine이 맡았는데 그가 아니었으면 누가 맡을 사람이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시니컬 그 자체인 공작원의 캐릭터다.(물론 60년대 영국영화에서 Michael Caine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졌는지 잘 모르는 이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겠지만 말이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Mike Myers 가 Austin Powers에게 검은 뿔테 안경을 씌워준 이유는 바로 Harry Palmer의 캐릭터를 염두에 둔 것이다.) 냉소적인 유머를 특기로 하는 “노동계급” 스파이, 그가 바로 Harry Palmer다.

여기 1960년대에 제작된 세 편의 Harry Palmer시리즈를 소개한다.

The Ipcress File(1965)

아웃사이더의 스릴러 Harry Palmer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영화화된 작품이다. 자그마한 아파트에 살면서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월급이 얼마 오를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노동계급” 스파이 Harry Palmer. 동시대에 같은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James Bond 와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여자를 밝힌다는 점. 그가 유혹하려는 여자와의 대화다.

Courtney: “Do you always wear your glasses?”(언제나 안경을 쓰나요?)
Palmer: “Yes – except in bed.”(네. 침대에서는 빼고)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정부를 위해 일하는 과학자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일을 그만두는가 하면 Radcliffe 박사는 기차에서 실종된다. Harry Palmer의 상관 Dalby는 납치용의자로 Bluejay 라는 암호명의 사나이를 지목하고 Dalby의 부서는 그를 찾아 나선다. 은밀한 뒷거래로 Radcliffe 박사를 찾았지만 그는 악당에 의해 브레인워시를 당한 상태였다.

한편 Harry Palmer가 실수로 미국의 스파이를 죽인 후 미국정보국은 그를 감시한다. 그러던 중 Harry의 차를 빌려 탔던 동료가 죽고 Harry의 집에 그를 감시하던 미국 스파이의 시체가 발견되자 Harry는 서둘러 유럽으로 탈출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곧 누군가에 의해 감옥으로 납치되고 그 곳에서 Radcliffe 박사가 당했던 브레인워시 실험의 제물이 된다.

감시, 유명인사 보호, 비밀접선지역, 비열한 뒷거래, 이중간첩 등 스파이 세계의 실체를 현실감 있게(얼마나 현실적 인지야 모르지만) 보여주는 장면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영상은 아방가르드 필름을 연상시킬 정도로 감각적이지만 액션은 James Bond 와의 차별성을 위해 일부러 자제하고 있다. Harry 의 냉소와 반항기질이 막판 반전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재밌다.

Harry 의 두 상관 Dalby 와 Ross 가 Harry 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사.

Dalby: “Incidentally, the Americans have put a tail on Palmer.”(우연히도 미국인들이 팔머의 뒤를 미행하고 있어)
Ross: “How very tiresome of them.”(그치들 참 피곤하겠네요)

감독은 Sidney J. Furie

Funeral in Berlin (1966)

베를린이 2차 대전 이후부터 베를린 장벽의 붕괴까지 지니고 있는 그 독특한 공간적 특성 때문에, 당연하게도 그 도시는 언제나 음모, 배신, 스파이 등의 단어를 은유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러한 베를린의 후광을 담보로 다른 도시들은 감당해내지 못할 얽히고설킨 협잡과 음모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다.

여러 면에서 오손 웰즈의 ‘제 3의 사나이’를 연상시킨다. 각각 베를린과 비엔나라는 공간적 특수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특한 분위기가 그렇고 작품의 큰 축이 되는 상황설정인 거짓 죽음, 그리고 영화 곳곳에서 느껴지는 허무주의가 그렇다.

Harry Palmer 는 역시 한냉소하는 직속상관 Ross로부터 소련의 한 고위 장성을 서베를린으로 망명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한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에 빠지지만 그는 의혹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편 장군의 탈출 시나리오는 장례식을 가장한 탈출. Palmer 는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빠져나온 관에 장군이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그 속에는 탈출계획을 대행하던 전문가 크라우츠만의 시체가 있었다.

그 와중에 그 아름다운 여인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소속인 것이 밝혀지고 이야기는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들어간다. 모두가 속이고 모두가 속는다. Palmer처럼 냉소적이지 않다면 그 업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했을까 걱정될 정도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Palmer가 자신으로 착각하게끔 자신의 코트를 입은 독일전범이 한때마나 사랑했던 그 여인의 지시로 죽었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여인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느꼈을 배신감은 당시 앞에 놓여 있던 베를린 장벽만큼이나 우울하고 암담하였을 것이다.

숀 코넬리가 제임스 본드로 있을 시절의 007 시리즈를 담당한 스파이물의 거장 Guy Hamilton이 스파이에게 총 대신 냉소와 머리를 건네주고는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였다. 흥미롭게도 감독은 또한 앞서 언급한 ‘제3의 사나이’의 조감독이기도 했었다.

Billion Dollar Brain(1967)

Harry Palmer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이전까지 Sidney J. Furie, Guy Hamilton 등이 맡았던 감독은 괴짜 감독 Ken Russel에게 넘어갔다. 그 덕에 그렇지 않아도 냉소적이었던 Harry Palmer 는 더 괴짜가 되었고 내러티브는 거의 블랙코미디 수준으로 치닫는다.

Ross 대령에게 시달리던 Harry 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설탐정으로 나선다. Ross 대령이 친히 방문하여 복귀를 설득하지만 요지부동이다. 그 와중에 익명의 남자 – 그런데 목소리는 마치 컴퓨터로 조작한 듯한 목소리다 – 로부터 어떤 물건 하나를 핀란드 헬싱키까지 배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곳에 도착하여 그가 만난 이들은 놀랍게도 오랜 친구였던 텍사스 출신의 미국인 Leo Newbigin 과 그의 아름다운 정부 Anya. Harry 가 배달한 물건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Leo 로부터 미지의 조직에서 같이 일할 것을 제의받는다.

한편 다음날 Harry는 그가 진짜 접선하려던 이는 이미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곳을 뜨려하지만 어느새 나타난 Ross 대령의 협박과 회유 – 참 희한한 직장상사 – 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조직에 몰래 잠입하여 바이러스를 되찾기로 한다. 소련 땅인 라트비아에서 죽을 위기를 맞기도 하나 Funeral in Berlin 편에서 친분관계를 쌓은 소련의 Stok 대령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마침내 조직의 우두머리는 텍사스의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석유재벌 Midwinter 임을 알게 되고 그를 만나 그가 사설 군대를 끌고 소련을 침공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한 광기어린 자본가의 전쟁 놀음에 냉전의 교묘한 균형관계가 깨질 것을 두려워 한 Harry 와 Stok 대령은 각자 Midwinter 를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아직 냉전 이데올로기가 전 세계를 뒤덮고 흔들 무렵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James Bond가 아직도 명백한 선악 구도를 추호도 의심치 않으며 빨갱이 사냥에 한창일 때에 Harry는 소련을 침공하려는 자본가를 저지하려 하다니 말이다. James Bond 는 냉전이 끝난 한참 후 Tomorrow Never Dies 에서나 겨우 시도하던 일이 아닌가 말이다.

이렇듯 원작도 그렇겠지만 영화는 지독히도 냉소적인 블랙코미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가령 라트비아에서 Harry가 어설픈 강도짓을 하다 몰살당한 현지인들 시체를 헤치고 나오는데 군인이 다가와서 혁대를 풀자 Harry 가 반격자세를 취하는데 그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버리는 그런 식이다. 대체 다른 당시 – 요즘도 마찬가지 일듯 – 스파이물에서는 시도조차 못할 캐릭터가 여봐란 듯이 등장한다. 그래서 무척 맘이 흐뭇하다. 🙂

풍자의 압권은 바로 이러한 한바탕 해프닝을 주도한 것이 바로 대형 컴퓨터라는 사실이다. 제목의 ‘백만불 짜리 두뇌’는 바로 Midwinter 가 전적으로 신뢰하였지만 고철 덩어리로 판명된 슈퍼컴퓨터였다. 1,2 편보다 훨씬 스케일이 커진 로케이션(헬싱키, 텍사스, 소련(으로 믿어지는 어떤 지역)) 덕택에 시원시원한 눈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 Leo의 정부로 출연하는 아름다운 여인 Francoise Dorleac의 낯이 익다 했더니 Catherine Deneuve 의 언니였다. 안타깝게도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차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유작이다.

Fan Site

Trailer of Funeral in Berlin

뒤늦게 본 Batman Begins

Batman Begins Poster.jpg
Batman Begins Poster”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IMP Awards. Licensed under Wikipedia.

고백하건데 지난번 The Dark Knight 에 대해 제법 거창한(?) 리뷰를 적었는데 사실 그 전편격인 Batman Begins 는 어제서야 봤다.(이게 뭐 고백해야할 거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니 좀 읽을 만하다 싶은 리뷰들은 거의 Batman Begins 를 보신 분들이나 아예 초기 Batman 의 캐릭터에 대해 꿰뚫고 계신 분들의 리뷰였다는 점에서 뒤늦게 수퍼히어로 문외한으로서의 리뷰가 약간은 낯부끄럽기도 하다.

어쨌든 어제 감상한 Batman Begins 를 토대로 다시 감독의 의도나 그의 철학(?)을 반추해보자면 The Dark Knight 까지 폄하할 필요는 없겠으나 감독의 전체적인 세계관은 약간은 과대평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Batman Begins는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뭐 물론 The Dark Knight 을 너무 재밌게 봐서 겉멋만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또한 팀 버튼 작품 이후로는 Batman 을 안 봐서 그 전의 Batman 시리즈가 얼마나 후져졌는지, 그에 비하면 놀란의 작품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안 겪어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선입견을 배제한다고 가정하고 – 그렇게 하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 이 작품을 보자면 나에게는 그저 짝퉁 사무라이 영화 내지는, 그 일본무사도의 잔상이 짙게 드리워진 스타워즈의 Batman 외전(外典)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아실 것이다.

극 초반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범인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증오감, 그리고 이로부터 연역되는 범죄에 대한 혐오감을 어떻게 배출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느라 중국 어느 교도소에 갇혀 있었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헨리 듀카드라는 인물이 나타나 그에게 이정표를 제시한다. 결국 그를 찾아가 고도의 무술수련을 쌓는데 이 부분에서 닌자의 수련기법이랍시고 흉내 내는 것이 영락없이 스타워즈의 일본 모방과 판박이였던 것이다. 게다가 듀카드 배역을 리암 니슨이 맡았으니 결국 브루스 웨인은 오비완 케노비(이완 맥그리거)와 사형 지간 아닌가 말이다.

결국 듀카드가 또 구루로 모시고 있는 – 국적 불명의 – 라스알굴은 수련을 마친 브루스 웨인에게 살인자를 처단하라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 본이 겪었던 상황과 똑같은 상황을 강요한다. 하지만 웨인은 본과 달리 일말의 갈등도 없이 이를 거부하고 여태 그를 가르친, 그리고 그의 수련을 묵묵히(!) 도와준 수많은 고수들을 정말 어이없을 정도 가볍게 물리치고, 수련장까지 홀라당 불태워버리고는 고담으로 날아와 정의의 사도 Batman이 된다. 물론 최후의 악당이 누가 될지는 안 봐도 비디오겠지.

여기까지 특별한 스포일러 없었다고 자위한다. 뭐 도입부까지만 이니까.

이후 스토리는 대강 짐작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물론 이번에도 The Dark Knight 에서처럼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아닌가, 인간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가 아닌가 하는 약간은 철학적(?)인 문제로 두 큰 세력이 갈등한다. 구원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세력은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총공세를 펼치고 Batman 은 이를 스릴감 있게 막아낸다. 끝나고 난 후의 느낌은 그런대로 무난한 작품이었다. 애초의 실망감은 당초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코믹스를 앞에 두고 철학서를 대하는 마음자세였던 것이 문제다.

영화를 보면서 그 안의 메타포나 시대적 맥락을 훑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작업이지만 이것도 어떨 때에는 과유불급이다. 그러다보면 영화 자체에 매몰되어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런 예를 한번 살펴보자. The Dark Knight에서 조커가 유사 ‘죄수들의 딜레마’ 게임 같은 복잡한 짓을 하지 않고도 Batman 을 이길 수 있는, 즉 자신의 인간관을 증명시킬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방법이고 왜 그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극중에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태워버린 돈을 헬기로 공중에서 뿌리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의리고 애정이고 간에 돈 줍느라 피터지게 싸웠을 것이고 도시는 과잉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시장이 마비되었을 것이고, 이 와중에 잘 하면(?) 브루스 웨인의 사업체도 망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영화가 액션물이 아닌 경제 드라마인 찰리 쉰이 주연한 월스트리트 같은 작품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조커는 자신의 승리 대신 영화를 살린 것이다. 빛나는 희생정신!

Electric Dreams, 컴퓨터는 믿을 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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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poster1984” by Time Warner Inc. Licensed under Wikipedia.

Blade Runner(1982년)의 진지한 팬이 들으면 약간 기분 나쁠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80년대 팝의 가벼움과 발랄함을 한껏 담고 있는 Electric Dreams(1984년)는 어떤 면에서 Blade Runner와 통하는 영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Blade Runner의 원작은 Philip K. Dick의 “안드로이드는 전자 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이다. 그리고 Electric Dreams에서는 자유의지를 갖게 된 컴퓨터가 모니터에 양떼가 장애물을 뛰어넘는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온다.  🙂

무엇보다 두 영화가 가지는 공통점은 인공물이 인간과 같아지려는 욕망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풀잇법에서는 차이가 분명하다. Blade Runner는 상징적 은유를 통해 인간조차도 (미지의 신이 창조한) 안드로이드일 수 있다는 음울한 메시지와 환원론을 전달하는 반면 Electric Dreams는 자유의지를 갖게 된 컴퓨터가 자살(?)을 통해 자신의 예외성을 포기함으로써 두 남녀의 사랑의 완성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맺는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이 어느 날 첨단 컴퓨터를 구입하여 홈오토메이션을 구현한다. 컴퓨터가 커피도 끓여주고 문도 열어준다. 그러던 주인공은 어느 날 실수로 키보드에 샴페인을 쏟아 붓는다. 맛탱이가 간(?) 컴퓨터는 갑자기 의식이 생겨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을 가지는 컴퓨터가 된다. 그리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첼로 연주에 이끌려 그 첼로를 연주하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문제는 컴퓨터의 주인, 곧 남자주인공도 그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기묘한 삼각관계가 되어버린다.

이 작품은 또한 80년대 팝팬들에게는 하나의 축복이었다. 그 당시 가장 잘나가는 음악가  Georgio Moroder와 이른바 뉴로맨틱스 계열의 아티스트들이 뭉쳐 환상적인 사운드트랙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사운드트랙에 참가한 이들은 Culture Club, Heaven 17, ELO, Human League 등 당시 제일 잘나가는 아티스트들이었다. Georgio Moroder가 바흐의 미뉴엣 G 장조를 편곡한 Duel 이 흐르면서 컴퓨터와 여자주인공이 협연하는 장면은 꽤 유명한 명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로맨틱컴퓨터’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었었다.